어떤 섬세함 - 이석원 에세이
이석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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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질문을 던지는 단상들.

그리고 재미를 더하는 에피소드들이 조화를 이룬 그만의 서사가 담긴 이야기들.

그래서 전 그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합니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마음 열고 읽어봅니다.

"이렇게 타인이 내 마음에 지퍼준 온기로

나는 또 얼마간은 시린 마음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일상 관찰자 이석원이

따뜻하고 사려 깊은 시선으로 포착한

인생의 단면들

어떤 섬세함



각자 지켜야만 하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어른.

아이일 땐 그저 재미있고 신나고 맛있으면 행복했는데 어른이 되고선 단순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일이 결코 단순하지 않음에...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지켜야 할 것이 많고,

왜 그리 작은 침범에도 무너지고 마는 허약한 사람들이 된 것인지,

왜 지금의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가 그토록 어려우며 왜 그리 자주 불안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하여 진정으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이라도 더 우리의 삶이 예전처럼 단순해질 수 있기를

그러니 적어도 이 책을 다 마칠 때까지는 모두 불안없이 평안하길

바란 그의 바람처럼 책을 읽는 동안은 참 고요하고도 따뜻했습니다.

책을 마주하자마자 저에게도 물었었습니다.

섬세함이란 무엇일까...

내 딴에는 배려한다고 했던 행동이 누군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남의 하소연을 함부로 징징댐으로 치부하지 않는 태도를 갖는 것. 남들과 대화할 때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시선을 주는 것. 누군가 아파 쓰러지면 무작정 일으켜 세울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상태를 봐가면서 그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

다시 말해서 주인공은 도움을 주는 내가 아니라 도움을 받는 상대라는 사실을 항시 잊지 않고, 따라서 내가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하고 받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내가 생각하는 섬세함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건 다른 말로 타인과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성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page 97 ~ 98

누군가를 이해하고 헤아리며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은 결국...!

결국 누군가를 이해하다 보면 상대에 대해 보다 너그러워진 마음은 점점 더 큰 이해를 불러오고, 이해를 하는 만큼 원망은 계속 줄어드니, 모두가 행복해지는 선순환이 시작되는 셈이라고 할까? - page 90

누굴 이해한다는 건 우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가 편해지기 위해서라도 남을 열심히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런 섬세함이 필요함을 저자는 우리에게 전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떤 글도 허투루 넘길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인상적인 문구들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일상의 매 순간뿐 아니라 삶의 중요한 길목에서도 사람은 뭔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욱 크고 강력한 행위의 동력이 될 때가 많다. 꼭이 부자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그저 가난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 page 34

누구에게나 꿈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정말로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언제든 있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그렇기에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 page 38

그리고 저도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나나 상대나, 어차피 우리 모두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하면, 어차피 다들 나만 불리할 것 같고, 내가 가는 차선만 느리게 가는 것 같고,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뭐든 잘 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게 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착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 page 55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아서. 그게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 page 57

'착각'이라는 위안이 좋았습니다.

사람이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의리'라는 말...

마냥 씁쓸하게만 느껴졌었는데 그의 친구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사람이라고 나 말고 다른 사람 생각해 본 적 없겠어? 만난 지 십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치만 미안해서건 의리 때문이건 뭐건 그런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건 상대를 생각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잖아.

우리가 함께 보낸 그 수많은 순간들이 여전히 소중하니까, 나 자신을 그렇게 함부로 놔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참는 거지. 여전히 사랑하니까." - page 202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사 '나'를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말하였습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홀로 글만 쓰며 살아도, 타인과 접촉을 아예 하지 않을 도리는 없기에 여전히 '남'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 역시 타인으로부터 최소한의 이해조차 받지 않으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결국 이해라는 게 우리 인간에게 그렇게나 산소처럼 중요하기에. 그 중요하고 어려운 일을 해내는 데 있어서 섬세함이란 덕목이 꼭 필요하기에, 이 책이 독자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맺을까 한다. - page 297

모쪼록 모두 '섬세함'으로부터 지키고 싶고 지켜야만 하는 것들을 마주하길...

이렇게 저에게도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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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웃고, 배우고, 사랑하고 -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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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좋았습니다.

'함께'한다는 것이...

그렇게 저자는 1999년 가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향한 네 자매의 여행기였습니다.

저 역시도 '자매'이기에 공감할 수 있을 이야기...

이들의 신바람 여행기에 저도 동행하고자 합니다.

"우와따따뿌뻬이!"

마드리드 에스파냐 광장에서 바르셀로나 까사밀라까지!

평균 나이 칠십, 네 자매가 함께한 신바람 여행

함께 웃고, 배우고, 사랑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일상의 잡사를 훌훌 털어버리고 가고 싶은 곳으로 훌쩍 떠나는 일'을 꿈꾸게 됩니다.

울창한 나무로 가득한 '산'이든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든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꿈속 여행지'가 존재하게 되는데 저자에게는 '스페인'이 그런 곳이었다고 합니다.

교직에 몸담아 평생 제철에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그녀.

정년 퇴임 후 이어령 선생과의 부부 동반 여행을 계획했는데 남편이 석좌교수가 되어 여행에 제동이 걸리게 됩니다.

그러자 작은언니가 자기와 같이 가자고 제안했고 동생, 큰언니도 같이 결성되어 네 자매의 특별한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섯 사람의 여건이 순탄하게 맞아서 함께 외국을 여행하는 것은 바랄 수도 없는 꿈이었다. 모두가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처럼 같이 여행을 하면서 "우와따따뿌뻬이!"가 자주 나올 수밖에 없었다. - page 22

갑작스레 결성된 여행이기에 더없이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여행.

그래서 신나는 것만 보면 세 살이었던 막내 손녀가 아주 신이 나면 하는 감탄사 "우와따따뿌뻬이!"를 외칠 수밖에 없었고 눈앞에서 새로 산 가방을 날치기를 당해도, 큰언니의 구두 끄는 소리에 며칠 잠을 설쳐도, 서둘러 길을 걷다 겹겹이 넘어져도 그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었습니다.

그 웃음이 우리를 소녀 시절로 데려갔다. 우리는 맨날 그렇게 웃으면서 자라났다. 언제나 야단을 맞을 때까지 자지 않고 킬킬댔다. 6·25 동란 때, 등화관제의 어둠 속에서도 그렇게 웃고 까불어서 밤마다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았다. 계집애가 여섯이나 되니 웃음소리도 컸다. 일을 잘못 처리해서 할 말이 없자 다급한 김에 옛날에 하던 욕을 내뱉기는 했지만, 내 허리가 염려스러워서 잔뜩 켕겨 있던 작은언니도 그 웃음 덕에 기력을 회복했다.

"봐! 이렇게 웃으며 다니문 엔도르핀이 막 생겨 병 같은 거 안 난단 말이야!" - page 25

사실 여행은 누구에게나 힘겨운 일이기에 룸메이트 사이에 트러블이 생기기 쉽습니다.

사이좋게 손을 잡고 떠난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싸우고 절교하는 것도 신혼부부들이 신혼여행 갔다가 다투는 것도 다 서로가 피곤해서 참을 힘을 잃은 것이 원인이지만 이들은 지나온 수많은 시간들을 추억하며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배려로 재미있고 아름답고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었습니다.

"으응...... 형제끼리는 싸우거나 흉보면서도 다시 저렇게 화해가 되는구나! 남은 그게 안 되던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성니임......" - page 43

동생은 자기가 지브롤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있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어온 그 애는, 자기가 살아서 유럽의 땅 끝에 있는 바위산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 그저 흐뭇해서, 혼자 두어도 충분히 즐거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옆에 남았고, 다시 올 가망이 없는 유럽의 땅끝과 그 해협을 오래 바라보게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 page 162 ~ 163

책은 2002년 출간된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과 저자의 에세이 「로스앤젤레스에 두고 온 고향」을 한데 모아 엮여있었습니다.

1977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동생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식에 그동안 감히 혼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던 그녀의 첫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떠나고 나면 나는 그들이 도울 수 있는 권역에서 벗어난다. 싫건 좋건 내 문제는 나 혼자 처리해야 하는 준엄한 현실 앞에서야 하는 것이다. 예년에 없는 강추위 속에 보름달이 둥실 떠 있는 램프에 나서니 모든 것이 어느새 낯설게 느껴졌고, 기이한 실루엣을 그리며 비행기 트랩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먼 곳으로 귀양살이라도 떠나는 무리처럼 처량하게 느껴졌다. - page 272

동생의 수술까지 지켜보고 가려고 했지만 모두가 처음 해외에 나온 여행인데 잔소리 말고 파리 구경까지 하고 집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심란한 마음...

한 번도 혼자 식사를 한 일이 없게 늘 옆에 있어주던 친구들과 가족들...... 로비에 가서 다시 동생에게 전화를 거니 그녀는 파리에 혼자 가는 나를 오히려 걱정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 병든 동생에게 오히려 의지하면서 살아온 이상한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좌충우돌하면서 겨우 음식을 주워다 놓고 혼자 않으니, 파리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곧장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따뜻한 온돌, 낯익은 일상, 보호받는 생계와 친숙한 얼굴들...... 아아,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 page 330 ~ 331

비철의 파리의 모습은 생동하는 청동의 조각들과 철책의 아라베스크 무늬가 겨울의 말라붙은 분수까지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연극을 본 뒤 전한 이야기...

다시 자정이 가까운 밤거리에 나서니 이제는 이곳을 떠나도 마음이 홀가분할 것 같은 안정감이 되돌아왔다. 어차피 다 보고 떠날 수는 없는 일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결국 자기 앞에 놓인 것밖에 못 보고 죽는다. 그것도 다 보는 것은 아니다. 눈앞에 있는 사상도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관심이 있는 것만 골라 보다가 우리는 모

두 유한한 생명을 끝마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끔 다른 여행기를 쓰는 것, 그리고 그런 여행기가 쓰일 이유가 거기에 있다. - page 381

참 울컥했습니다.

저자는 '1세기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이 책을 다시 펴냈다고 하였습니다.

읽으면서 감동받았었고 그 따스함에 위로도 많이 받았습니다.

웃었고, 배웠고, 사랑을 배울 수 있었던 여행.

저도 이런 여행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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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데이 인 뮤지엄 - 도슨트 한이준과 떠나는 명화 그리고 미술관 산책
한이준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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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이면 마음이 들뜨게 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거리들.

곳곳에 보이는 트리들.

(정작 집에는 설치하지 않았다는...!)

이 들뜬 마음으로 심오한 책을 읽기란 여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장르 소설을 읽거나 에세이, 미술 관련 책을 읽는데...

딱!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습니다.

10년간 70개 이상의 전시에서 3,000회 이상 해설을 진행한 도슨트계의 라이징스타 '한이준'.

그가 고심 끝에 자신이 사랑한 10명의 국내외 화가를 꼽아 찬란하지만 고독했던 거장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그림이 특별한 이유, 더불어 그 작품과 연관 지어 둘러보기 좋은 국내 미술관 소개까지.

이 한 권으로 정리했다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제 눈을 끌었던 건 다름 아닌 '이쾌대' 화가였습니다.

과연 그는 누구일지, 어떤 작품을 남겼을지, 왜 그토록 알려지지 않았는지(저만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간만에 휴일에 맞춰 미술관 산책을 떠나보았습니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재조명된 명화,

근현대를 대표하는 10명의 화가들,

그리고 한국의 숨은 보석 같은 미술관 이야기

"야무진 해설과 바삭바삭한 말투, 여운으로 이끄는 호흡까지 그대로 글로 옮겼다."

장담컨대 이 책을 읽다 보면 하루빨리 그 명화를 보러가고 싶어질 것이다.

홀리데이 인 뮤지엄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개인 소장하던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했었는데 작품은 인상파부터 동시대 미술까지 그야말로 세계 10대 미술관을 버금갈 정도의 '이건희 컬렉션'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이중섭 화가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아무튼 교과서에서만 보던 이중섭의 <황소> 부터 화가가 세상을 등진 지 100년이 되어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 까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발걸음을 옮기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은가?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세계적인 미술품을 만나기 전 우리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미술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방탄소년단 RM이 SNS에 인증사진을 올려 화제가 된 월북 화가 '이쾌대'.

그는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시대를 치열하게 견딘, 당대를 온몸으로 살아내며 붓을 들었던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왜 그의 이름이 우리에게 소개되고 그의 작품이 알려지기 시작한 역사는 짧을까?

그 이유는 그가 한국전쟁 이후 북한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당시 월북 작가의 이름은 남한에서 모두 지워졌기에 1988년, 월북 작가들의 해금이 되기 전까진 그의 이름 석 자를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분단의 시대에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지워져, 그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었던 화가.

그의 작품 중 이 작품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이국적이면서도 동양적인, 묘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푸른 우리 강산을 배경으로 조국의 산천을 펼쳐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우리 민족은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고국산천으로 희망찬 미래를 표현한 메시지가 아닐까요?

그리고 동양의 것을 한 가지 더 발견할 수 있는데요.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가의 왼손에는 서양식 팔레트를 쥐고 있지만, 오른손에는 동양식 붓인 모필을 잡고 있습니다. 주로 붓과 팔레트는 서양 미술에서 화가가 자신의 자화상을 그릴 때 등장시키는 요소인데요. 이쾌대가 서양화에 영향을 받은 것을 또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이 이쾌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도 보이는데요. 서양화를 그리고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한국인이라는 점을 자화상을 통해 전합니다.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진한 눈썹, 큰 눈을 부릅뜨고 정확하게 우리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서 거친 역사의 바람이 휘몰아치던 시대를 개척하고 나아가려는 화가의 사명이 온전히 느껴집니다. - page 55 ~ 56



해방을 맞이하고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으로 국군에게 포로로 잡혀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 그.

자나 깨나 가족 걱정뿐이었던 그.

3년에 가까운 포로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남북 포로 교환 당시 가족을 남쪽에 두고 북으로 가길 선택한 그.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그의 사랑하는 아내, 유갑봉 여사 덕분이었음에.

35년간 지워진 화가 '이쾌대'.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근대미술사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역사, 문화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알아가야 하고요. 붓을 들고 당대의 어려움을 치열하게 담았던 이쾌대. 그의 작품 덕분에 우리의 역사 그리고 분단의 아픔을 상기합니다. - page 64

이젠 그의 이름을 당당히 새기겠습니다.

요즘 제가 관심 있게 보고 있는 화가도 이 책에 소개되었습니다.

인상파로 시작해 야수파, 입체파까지 어느 화파에도 분류되지 않고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예술가 '라울 뒤피'.

뒤피는 살아생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습니다.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였죠. 그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그는 평생 푸른 바다, 그리고 바다 위 다양한 배들을 화폭에 담아 나가는데요. 그에게 바다란 한 발짝 나아가는 계단, 그리고 도전의 무대가 되어준 것 같습니다. 절망과 비극 속에서도 희망찬 미래를 바라던 뒤피, 끊임없이 연구하고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 뒤피입니다. - page 232



"삶은 나에게 항상 미소 짓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삶에 미소 지었다."

- 라울 뒤피

이들의 작품은 또다시 빛나고 있었습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도전의 외침, 시대의 개척자였던 이들.

이들이 건넨 말이 그 어떤 말보다 큰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덕분에 한 해의 마무리를, 다가올 새해의 시작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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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정원 (타샤 튜더 코티지 가든 에디션)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리처드 W. 브라운 사진 / 윌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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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동화작가이자 손꼽히는 정원의 대가, '타샤 튜더'.

이미 십수 년간 수많은 독자에게 자연을 향한 로망을 안겨주었던 이 책이 이번엔 '타샤 튜더 코티지 가든 에디션'으로 보다 포근하고 감성적인 일러스트 커버로 우리 곁에 돌아왔습니다.

매번 그녀의 이야기를 읽어봐야지...

다짐을 했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와 영화로도 꾸준히 알려져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진짜' 레트로 라이프 스타일.

그녀의 정원살이, 시골살이를 한 번 둘러보겠습니다.

나는 아흔 살이 넘은 지금도

장미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답니다.

전문가가 되고 싶다, 정말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꿈을 따르는 일이 즐겁습니다.

"꽃과 나무와 타샤가 만들어낸 행복의 정원,

타샤의 정원으로 놀러오세요."

타샤의 정원



그림책 인세를 모아 사들인 버몬트주 30만 평 대지.

그곳에 타샤는 손수 정원을 가꾸고 있습니다.

그녀의 흙 묻은 손이 거쳐 간 자리에 겨우내 내린 눈을 걷어가는 짧은 봄을 지나, 색의 향연을 펼쳐내는 튤립을 비롯해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는 한여름을 만끽하면, 곧 싱싱하나 열매와 토실한 감자를 넉넉히 캘 수 있는 풍성한 가을이 찾아오고, 어느새 하얀 눈이 다시 소복이 쌓이는 겨울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사계의 정원에서의 때론 고요하고 때론 분주한 모습이 책에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힘들지 않나요?"라고 묻는 분들도 계시지만, 난 정원의 나무나 꽃에게 특별한 걸 해주지는 않아요. 그저 좋아하니까 나무나 꽃에게 좋으리라 생각되는 것, 나무와 꽃이 기뻐하리라 생각되는 것을 하고 있을 뿐이지요. 잡초 뽑기나 물 주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필요한 비료를 제대로 주기만 하면 정원은 그에 화답해줍니다. - page 6



다른 원예가들이 키우기 어렵거나 못 키운 재배종도 키워내는 타샤.

겨울 저녁이면 활활 타는 벽난로 앞에 앉아, 돋보기를 쓰고 씨앗 카달로그와 원예 서적을 읽는 타샤.

찾기 힘들지만 반드시 손에 넣어야 되는 화초의 씨앗은 반드시 구해내는 타샤.

나이를 불문하고 그녀가 보여준 용기와 열정은 나태한 저에게 일침을 주곤 하였었습니다.

늘 어깨와 팔꿈치를 가리고, 치마는 발목까지.

땋아 올린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칼라에도 스카프를 두른 그녀는 원칙적으로 살을 드러내지 않지만 봄이 올 무렵부터는 늘 맨발로 정원을 돌아다닙니다.

그런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자연과 동화된 그녀의 모습...

그 모습에 더하여 많은 꽃들 중에 개인적으로는 백합이 잘 어울린다 느껴졌었습니다.



그녀는 꽃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실수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정원은 육신과 영혼을 양식을 주는데 여기서 그녀는 이 이야기를 건네었습니다.

뉴잉글랜드의 추운 겨울을 이기지 못할 약한 과실수를 가꾸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하지만 타샤는 본채와 직각으로 이어지는 안전한 곳에 살구나무를 심어놓았다. 아직 살구를 따본 적은 없지만 나무는 죽지 않고 살아서, 타샤는 자주 "인간의 가슴에는 희망이 영원히 살아 있는 법이니까"라고 말한다. - page 175

이런 희망이 있기에 그녀는 정원으로 길을 나서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올해.

뭔가 쉼 없이 달리기만 했던 건 아닐까...

뒤돌아보니 허무함이 남는 건...

그 마음을 타샤로부터 따스히 채울 수 있었습니다.

'자연과 하나 된 삶'

왜 모두가 그녀의 정원을 사랑했는지를, 결국 자연으로부터 답을 얻을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타샤의 또 다른 이야기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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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남편이 돌아왔다 2
제인도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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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남자 '재우' 이야기가 펼쳐질 텐데...

과연 그는 진짜 죽은 남편이 맞을까...?!

그에게 끌리지만 믿을 수 없다!

자신이 죽은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수상하고 매력적인 남자와의 동거, 그리고

점점 짙어지는 의심의 농도

죽은 남편이 돌아왔다 2



그 여자는 쌍년이었다.

난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가 우리와 같은 족속이라는 것을.

종대의 말이, 맞았다. - page 6

강렬한 첫 문장.

사실 효신과 재우의 만남은 이러했습니다.

시간은 거슬러 6년 전.

효신은 건설 분양 대행사 계약직 직원으로 자신의 이익에 민감하고 사람을 속이는 데 능수능란해 영업 실적이 꽤 높았습니다.

VIP를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그 분양 대행사 사장과 여러 번 일해 왔던 덕에 누가 VIP인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던 그녀.

임원급이 모두 자리를 비운 어느 날, VIP 고객 중 하나인 김호중 사장이 분양관을 방문하였지만 반기는 이 하나 없었습니다.

그의 옆엔 패션은 화려하지만 천박해 보이는, 당연히 부부라 생각되지 않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여자를 데리고 온 것을 보면 아마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었던 것.

'잘만 하면, 돈 좀 쓰겠는데?'

임원급이 오기 전 그들에게 접근한 효신.

아쉽게도 실적으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그녀를 좋게 본 김 사장이 식사 대접에 초대하였고 그 자리에서 같이 온 여자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일이 바빠서 연애하기가 쉽지 않아요."

"이런...... 내가 사람 소개해주고 싶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면서요? 외롭지 않아요?" - 1권, 113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된 남자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잘생기셨는데요? 이 분이 절 괜찮다고 하실까요?"

"그런 걱정은 말아요. 사실은 내 아들인데, 내가 봐도 참 괜찮은 아이예요. 효신 씨 소개해주고 싶은데."

"네? 아드님을요?" - 1권, page 114

그렇게 급 결혼까지 성사된 이들.

그런데...

2권에서 반전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말하면 스포가 될 것 같고...

난 조용히 요리를 먹으며 여자의 기색을 살핀다. 그녀는 얼굴에 서비스용 미소를 가득 띠고 요리를 먹으며 한상호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간간이 누나의 말에도 장단을 맞췄다. 세상 고분고분한 며느리처럼 말이다. 덕분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썰렁한 한상호의 유머에도 웃음이 자주 터졌다. 마지막 디저트를 먹고 커피를 마실 때까지, 우리는 행복한 가족을 연출해내는데 성공했다. 그나마 난희 누나의 일이 잘 풀리는 것에 대해 나는 안도한다. 정효신, 진작 이랬으면 좋았잖아. - page 281

서로 속이고 속이는 눈치게임을 하는 이들.

반전의 반전이 더해져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끝은...?!

"아아아악."

나는 분을 참을 수 없어 악을 쓰며 고함을 질러댔다. 이제 끝났다. 난 끝장난 것이다. 보험조사원은 나를 똑바로 보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무도 믿지 말라고요." - page 475

무엇보다 이 소설의 관전 포인트는 '듀플렉스 하우스'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이 둘처럼 말입니다.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지만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제 수준의 한계가 느껴져 속상할 뿐입니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 전한 말.

늦든 빠르든 악인은 결국 그 죗값을 치르게 된다. 죄의 무게는 피해자가 당한 고통의 결과인 만큼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권선징악, 내가 추구해온 이 결과는 이번에도 해피엔딩이었다. - page 486

권선징악.

저 역시도 너무나 좋아하는 말 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건이라도 그 끝은 꼭 해피엔딩이길.

이 소설은 모두가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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