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박소해 작가님의 <해녀의 아들>이 포문을 열었습니다.
팔심 평생을 물질로 살아온 해녀의 죽음.
얼핏 사고로 보였지만 곧 살인사건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거슬러 올라 아직 끝나지 않은 제주 4·3 사건과 관련이 있게 되고...
"나 말이 맞는지 니 말이 맞는지는 어디 한번 법정에서 따져보게. 이번 기회에 말없이 파묻힌 수많은 억울한 사연들이 양지로 나올 수 이시믄 좋으키여. 나가 재판받는 법정이 4·3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공론화할 기회가 되어줄지도 모르주."
...
"누구를 죽이지 않고서도 겅할 수 이서마씸.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헙니다.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어수다."
승주가 단호하게 대꾸했다.
"정말 겅할까? 주목을 끌잰 하믄 쇼가 필요한 법이라. 사람들이 잊으믄 쇼를 해서라도 강제로 기억하게 해사주게. 테러리스트들이 무사 테러를 하크냐?" - page 56
너무나도 먹먹했던 소설.
이 소설은 많은 이들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남았습니다.
잊지 말아야할 과거와 현재가 얽히고설킨 혼돈의 도가니, 4·3.
살암시민 살아진다.
누님의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누구든지 살아 있으면 살아지리라. 누님이 저에게 넘겨준 생명을 ,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소중하게 이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세상에 전하겠습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고귀하다는 것을. 두 번 다시 4·3 같은 비극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대개 '여성'이라 하면 희생자로 다루어졌던 여성상을 벗어나 파격적인 빌런의 모습으로 그려낸 서미애 작가님의 <죽일 생각은 없었어>
40피트 원기둥 형태의 건물 안쪽에 갇힌 채 죽임을 당한 여성, 그 여성의 불가해한 죽음을 파헤쳤던 김영민 작가님의 <40피트 건물 괴사건>
사회를 등지고, 가족으로부터도 은둔하는 주인공이 수상한 외국인 노동자 자히르를 만나면서 파멸, 몰락, 붕괴를 가져오는 모습을 그린 여실지 작가님의 <꽃은 알고 있다>
저에게 짜릿한 반전을 선사해 주었던 홍선주 작가님의 <연모>.
학교에서 사이코패스로 소문난 소녀 '소형'에게 유일하게 관심을 주었던 교생 선생님 '민우'.
9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두 사람이 재회하게 되는데...
열망이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소형이 환하게 미소 짓는다. 나는 그 모양새를 따라 입꼬리를 올린다. 소형이 눈을 감고 살짝 벌린 입술을 내게 내민다. 나는 고개를 숙여 반짝이는 그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갠다. 그사이 짧게 내뱉는 숨에 나의 쾌감이 실린다. - page 222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하여 그리워하는 연모(戀慕)가 아닌 깊은 계책의 연모(淵謀)였음에!
반전에 저도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부잣집 막내아들> 드라마를 오마주, 패러디한 느낌을 주었던 박순찬 회장의 생일잔치로 북적거리는 팔각관, 그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그린 홍정기 작가님의 <팔각관의 비밀>
마지막 강한 종지부를 남겼던 송시우 작가님의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초등학생 유괴·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10대 여성 청소년 김윤주.
"... 그런데요, 형사님."
"뭐야."
"제 사건, 유명해요? 엄청 난리 났어요?"
김윤주의 눈이 뭔지 모를 만족감으로 빛났다.
"누가 그래?"
"어제 변호사님이요. 저 때문에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던데. 그정도예요?" - page 311
폭력적이고 잔혹한 가상 세계에 빠져들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죄 없는 사람을 죽임으로 몰아내기까지...
이 소설은 세상 떠들썩하게 했던 2017년 인천 초등학생 유괴·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였는데 이미 넷플릭스 <소년심판>에서도 다룰 만큼 '소년법'에 대해,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절실함을 일깨워주었었습니다.
7인 각양각색이었기에 재미있게 읽었던 이 책.
몰랐던 작가도 알게 되었고 앞으로 그들의 행보에 관심을 가져보려 합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황금펜상 수상작들을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