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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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아마 읽어보지 않았을 이야기...

그렇기에 사람들이 독서모임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목으로부터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 책을 읽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답이 아니길...

"처음 만날 때는 열예닐곱 살의 청소년이었던 이들이

지금은 서른 즈음의 청년이 되었다"

10년간 정성스럽게 기록된 가난과 성장의 시간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2010년 본격적으로 빈곤 대물림에 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이십여 명의 청소년과 가족들을 만났고 2016년 논문을 끝낸 후, 이들이 어른이 된 이후의 삶까지 계속 따라가는 책을 쓰기로 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책!

첫 만남부터 강렬했던, 조부모부터 대를 이어 내려온 우울증과 중독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소희'

성실하게 생활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받으리라고 믿지만 한편으론 불안한 모범생 중의 모범생 '영성'

어려운 환경에서도 정말 원하는 일을 위해 자신의 선택을 밀고 나가는, 에너지가 넘쳤던 '지현'

가족의 무관심과 방임 속에서도 사색하는 시간을 통해 좋아하는 일을 찾은 '연우'

어머니의 병과 빚 때문에 꿈을 포기하다가 독립하게 된 '수정'

전과자라는 편견과 오해 속에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바꾸고 채워나가려는 '현석'

'돈 좀 만지는 사장님'이 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전념하는 '우빈'

학교 밖 청소년으로 자존감이 많이 낮았지만 이제 자기 자리를 찾은 '혜주'

이렇게 여덟 명의 청(소)년을 만나 인터뷰하며 이들의 가족 문제와 진로 고민, 우울증, 탈학교·가출과 범죄, 그리고 사회 진출과 성인으로서의 자립, 청(소)년의 노동 경험 등의 심층적인 이야기를 기록하며 마지막에는 교육·노동·복지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과 제안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가난'이라는 굴레...

벗어날 수 없는 건 가난한 가정의 부모는 사회적 지지체계가 약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타의 다른 수단이 없어 대물림되고...

그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취약해지기 쉬우며 삶에 여러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빈곤은 "단순히 낮은 소득이 아니라 기본적 역량의 박탈로 규정해야 한다." 여기서 역량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이다. - page 146

가난을 벗어난다는 것은 역량을 되찾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가난, 가족, 다른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인식의 폭을 확장하고 자기 자신을 고유한 욕망을 지닌 독립된 개인으로서 이해하게 될 때 아이들은 부쩍 성장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계속 언급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돈이 많지 않지만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

이들은 모두 가정 내에서 일정 정도의 가난을 경험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불행과 연결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풍족하지 않은 경제생활과 세상살이의 신산함 때문이라고.

가난해도 가족 간에 충분히 화목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껍질을 깨고 나오는 아픔을 크게 느끼지만 사회는 너무도 냉정하였습니다.

자신의 욕구 실현이 번번이 좌절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사회적 존엄성에 침해를 입고, 이렇게 침해된 존엄성은 주체를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며,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질곡이 됩니다.

결국, 오랜 시간 축적된 빈곤은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고, 거기서 만들어진 능력을 발휘해 사회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행복감을 추구하려는 가능성을 모두 훼손합니다.

그렇기에 더 이상의 외면해서는 안 될 우리들의 문제임을 저자는 우리에게 일러주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철이 든 이들.

그럼에도 이들을 통해 자신의 처지에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는 '용기'와 '희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사회적 제도 이전 우선 저부터 그들을 마주했을 때 다정히 손을 건네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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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의 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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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미스터리'라는 특출한 영역을 개발하여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부 아리스가와 아리스로부터

"저도 모르게 빙긋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

라는 평을 받은 '히가시가와 도쿠야'

사실 저자의 작품을 읽은 건 없지만...

드라마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는 재미나게 보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것도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가에 대해 아무런 정보는 몰랐고 그저 '유머 미스터리'라는 점에서 끌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눈에 띄었던 히가시가와 도쿠야 데뷔 20주년 기념작으로 그동안 그가 쓴 작품들 가운데 가장 스케일이 크고 분량도 길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번 작품이 그동안의 전작으로 쌓은 작가만의 무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을 것이기에!

큰 기대감을 안고 읽어보았습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정수를 펼치면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낸 수작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상상을 초월한 사건의 진상!

"범인은 이 책을 읽는 독자라는 뜻이지.

야, 거기 너 말이야, 너!"

속임수의 섬



"실례합니다, 벤텐마루호의 선장님 계세요? 야노 법률 사무소에서 나왔는데요."

외딴섬에 가게 된 변호사 사야카.

그곳에 가는 이유는 복숭아에서 태어난 아이가 주인공인 『모모타로』 그림책으로 유명한 출판사의 오너가 사망하자 고인의 유지에 따라 외딴섬에 모여 유언장을 개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푸른 바다에 외따로 떠 있는 섬 하나.

섬 전체가 커다란 점프대를 연상시키는 특징적인 실루엣.

그 광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조타실의 선장이 큰 소리로 말합니다.

"다들 잘 봐 둬. 저게 비탈섬이야."

유언장 개봉을 위해 모인 이곳은 섬의 유일한 건축물이자 돔 모양 전망실과 헬기 착륙장을 갖춘 가족 별장이었습니다.




스님의 염불이 마쳐지고 드디어 공개된 유언장.

어떤 사람은 심각한 표정, 어떤 사람은 상쾌한 표정으로 저마다 방을 나섰고 사야카는 막중한 임무를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젠 모처럼 방문한 외딴섬에서 느긋하게 여가를 만끽하려 합니다.

하지만...

오전 1시.

문밖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립니다.

"꺅!"

에이코의 외동딸 사이다이지 미사키가

"얼굴이 새빨간 남자 도깨비였어요. 두 발이 땅에서 몇십 센티 떠 있더라고요!"

"공중에 떠 있었다고?"

"네."

"공중에 떠 있었다면 역시 귀신 아닐까?"

"에이. 귀신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

"빨간 도깨비도 있을 리 없잖아!"

"있을지도 모르죠. 비탈섬은 오카야마의 섬이니까." - page 105

오카야마의 외딴섬에 도깨비섬 전설은 으레 따르기 마련이기에 그저 헤프닝으로 끝냈는데...

오전 8시.

"에이코 씨? 혹시 미사키 말고 다른 사람도 찾으시나요......?"

에이코는 고개를 똑바로 끄덕였다.

"맞아요. 제 사촌 오빠 쓰루오카 가즈야의 모습이 안 보이는 것 같아서요. 어디로 간 걸까요?" - page 112

이마에 쩍 벌어진 상처로 바닥에 누운 쓰루오카 가즈야.

충격을 받은 미사키는 잠꼬대하듯 중얼거립니다.

"그건 빨간 도깨비가 아니었어...... 그때 쓰루오카 씨는 이미 죽은 뒤였던 거야......"

하필 태풍으로 꼼짝없이 섬에 갇히고 만 그들.

유언장 개봉을 담당한 변호사 야노와 쓰루오카를 찾아 섬에 데려온 사립탐정 고바야카와는 경찰을 대신해 사건을 수사하려 합니다.

하지만 사건은 점점 더 미궁에 빠져들고...

이 과정에서 23년 전 섬에서 벌어진 또 다른 살인사건이 더해지면서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수수께끼의 베일이 하나둘 벗겨지는데...

"확실히 그렇게 볼 수 있는 상황이군. 발이 미끄러져서 실수로 떨어진 건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뛰어내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23년 전 사건 때와 완전히 똑같은 전개인데. 정말로 그럴까?" - page 274

과연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지...

그리고 그 끝은...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공중에서 떨어지는 불티. 새빨간 혀를 연상시키는 불길이 청동으로 만든 모모타로와 그의 동료들을 집어삼켰다. 도라쿠 스님은 합장한 자세를 유지한 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오. '화강장'의 머리가 떨어졌군...... 이걸로 이 저택도 운명했어......" - page 456 ~ 457



고립된 외딴섬, 기묘한 저택, 살인사건.

여느 추리소설에서도 볼 수 있는 스토리 라인이지만 이 소설의 매력은 그야말로 가끔 사건의 정곡을 찌르는 역할을 하는 '유머'였습니다.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더 짜릿했고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을 마주하기가 싫었습니다.

저자의 필력에 전작들이 궁금하였습니다.

'유머 본격 미스터리'라는 그만의 독특한 작풍.

그 매력에 빠져 그의 작품들을 역주행해 보려 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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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와 만나 사랑에 빠질 확률 아르테 미스터리 21
요시쓰키 세이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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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춘 로맨스에 우주와 양자역학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접목시켜 수많은 이의 심금을 울린 화제의 신작

이 문구만으로도 이 소설이 기대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로맨스와 우주?

그리고 양... 자...... 역학이라고요?

이게 무슨 조화인지...

출간과 동시에 풋풋하고 절절한 러브 스토리가 절정에 달했다는데 저도 아름다운 청춘 로맨스에 우주, 양자역학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내가 너와 만나 사랑에 빠질 확률 0.0000034%

무수한 확률을 뚫고 만난 나의 운명적인 사람

"나에게 살아가는 의미를 가르쳐준 사람은 너였어."

내가 너와 만나 사랑에 빠질 확률



첫 장을 펼치자마자 마주하게 된 게 '드레이크 방정식'이라니!

지구인이 외계인과 만날 확률을 계산하는 공식 '드레이크 방정식을 한 영국 수학자가 운명적인 사람을 만날 확률을 계산해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질 여자의 수는 전 세계에 고작 스물여섯 명, 더 나아가 그 여자와 어느 날 밤 우연히 만날 확률은 0.0000034퍼센트였다. 이는 외계인과 만날 확률의 400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금까지 외계인과 만났다는 증거를 확실히 제시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즉, 운명적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 page 9

열 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친척 집을 전전하다가, 고등학교 입학을 계기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남겨주신 집에서 혼자 살게 된 '미쓰야 구온'.

외롭지만 평범하게 고등학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미쓰야 구온님

한눈에 반했어요. 당신은 저의 운명적인 사람입니다.

학교 끝나고 교문에서 기다릴게요.

운명적인 사람은커녕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조차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기에 분명 이건 악질적인 장난으로 생각했던 구온.

그런데

"앗, 미쓰야!"

이름을 부르길래 반사적으로 얼굴을 돌렸고, 돌아보자마자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검은 머리, 화장기가 없는데도 화사한 얼굴, 분명 나와는 엮일 일이 없는 타입인 '간다 이노리'라는 여학생이 한눈에 반했다는 고백 편지에 대한 답을 기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에둘러 거절하려 했지만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이노리에게 떠밀려 느닷없이 사귀게 된 구온.

그러다 그녀를 따라 우주부 동아리에도 가입하게 되고, 그곳에서 부원인 다쓰미 신야, 아마미야 아사히와도 만나게 됩니다.

그동안 흑백이었던 일상에 이노리가 구온의 삶에 들어오면서부터 따스한 햇살이 다채로운 색을 띠며 비쳐들기 시작한 구온.

우주와 양자역학, 천체관측에 빠져 있는 천진난만한 이노리가 가끔 보이는 그늘진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구온은 어느새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 그리고 그해 여름.

간다 이노리는 집에서 사람을 죽이고 실종, 내 앞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 page 62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이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가득하다.

마음과 사랑, 기억과 의지, 기쁨과 슬픔, 그리고 다정함, 전부 실체는 없지만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생사도, 이노리가 보낸 이 편지의 내용도 그렇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생물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 존재하는 것,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과거도 기억도, 먼 옛날에 사라진 게 아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노리도 지금 분명 내 가슴속에 있다. 그저 허울 좋은 말이 아니다. 확실히 있다. 단지 내 눈에 비치지 않을 뿐, 이노리가 내게 준 우주는 앞으로도 이노리와 함께 펼쳐져 나갈 것이다.

...

이 우주는 유한하다. 살아 있는 시간도 무한하지는 않다.

그러니 이 제한된 시간을 함께한 존재를 나는 잊지 않겠다.

......그래도 언젠가 너무 외로워서 이노리의 온기가 그리워지면, 그때는 이 편지에 기댈지도 모르겠지만. - page 259 ~ 260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우주와 양자역학이 이렇게나 로맨틱하였었나...

그냥 소설보다도 더 가슴 절절하고도 애틋했었습니다.

우주에...

그것도 수없이 많은 별들 속에...

지구에서 너와 내는 유일무이한 존재였고 우연히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질 확률은 0.0000034% 정도로 희박함에도 그럼에도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우리...

과학적 증명이 뭐 중요한가!

'운명'에 이끌림에 대해 이들을 바라보며 지금의 내 운명적인 사람도 사뭇 다르게 보였습니다.

역시나 사랑 이야기는 죽어 있던 연애 세포를 깨우기 충분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젠 내가 너와 만나 사랑에 빠질 확률 하나는 확실히 각인되었습니다.

0.000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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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사람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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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기'

솔직히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고전...

그래도 일 년에 한 달!

마음잡고 고전을 읽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눈길조차 건네지 않는...

그래서 그런 저에게도 팔을 잡아끌며 읽자고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넌지시 박연준 시인에게 손을 내밀어 보았습니다.

서른아홉 개의, 박연준 시인이 그간 자신이 귀 기울였던 고전은 어떤 것일지, 그리고 저자의 시선으로부터 고전은 어떤 느낌일지 읽으며 이해해 보고 싶습니다.

"혼자 책 읽는 사람을 본다.

침묵에 둘러싸여 그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박연준 시인이 옆 사람의 팔을 잡아끌며 읽자 한 서른아홉 권의 고전!

듣는 사람



글쓰기는 공들여 말하기, 읽기는 공들여 듣기.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page 11

저자는 독서가 타인의 말을 공들여 듣는 행위라 하였습니다.

이 말이 참 멋지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공들여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박연준 시인.

이는 '존 버거'로부터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다큐멘터리 <존 버거의 사계>에는 주름으로 가득한 존 버거의 얼굴, 그림을 그리는 그의 투박한 손이 나온다. 상체를 기울이며 타인의 말을 듣는 존 버거를 볼 수 있다. 나이든 사람이 한결같이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흔치 않은 일이다. "내가 이야기꾼이라면, 그건 내가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사람. 쓰는 자는 우선 듣는 자임을, 그리고 다르게 보는 자임을 나는 존 버거에게 배웠다. - page 55 ~ 56

그래서 저도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책을 읽어보아야겠다 다짐해 보았습니다.

'고전'이란 무엇일까...

고전에 대해 저자는

해석으로 탕진되지 않은 채 온전하게 살아남은 책,

읽고 또 읽어도 닳지 않는 책,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도 소문을 등지고 커다래지는 책,

우리 곁에 유령(교차로의 유령!)처럼 남아 일상에 스며드는 책,

작가는 죽고 없는데 이야기는 살아남아 여전히 세상을 여행하는 책,

시간의 상투성과 세월의 무자비함을 견디고 목소리의 생생함을 간직한 책

이라 하였습니다.

그럼 고전을 왜 읽어야 할까?

고전에는 올바른 길이나 훌륭한 선택법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계속 길을 잘못 가는 방법'이 나와 있을지 모르지요. 시행착오가 없는 삶, 그런게 있을까요?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한다면 '잘못된 길을 열심히 걸을 때 우리가 얻는 가치'를 위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 page 15 ~ 16

어쩌다 잘못 든 길을 온 마음을 다해 그 끝까지 걸어간 이들이 남긴 기록으로서 고전.

그 어떤 삶도 완벽할 순 없으니 그 누구도 온전히 지혜로울 순 없으니, 최선은 피할 수 없는 좌충우돌을 겁내지 않는 것, 그리고 최대한 즐기는 것, 이를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 말하고 있었고 우리가 이러한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서른아홉 개의 고전들.

역시나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들이 많았고 저자가 건넨 이야기를 들으며 고전은 거창한 것이 아닌 어쩌면 평범할 수도, 어쩌면 어리석을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더 빛나는 삶을 달고 있음을 일러주었습니다.

읽고 싶어진 책들이 있었습니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그동안 내가 알았던 '슬픔'이 마냥 배척해야 할 대상이 아님을.

기쁨이 감정을 밖으로 발산하는 감정이라면 슬픔은 밖에서부터 내 안으로 수렴하는 감정이다. 슬픔을 아는 자는 타인의 고통이나 불행에 쉽게 감응한다. 기쁨ㅇ은 우리를 행동하게 하지만 슬픔은 우리를 사유하게 한다. 문학에 기여한 많은 작가들이 기쁨보다 슬픔에 더 반응한 이유다. 슬픔을 모르고서 우리는 시를 쓸 수 없고 그림을 그릴 수 없고 노래 부를 수 없다. 탁자를 두드리며 부르는 유행가 가락에도 슬픔이 배어 있지 않은가. - page 77 ~ 78

슬픔이 사람을 단단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육체 단련을 위해서 운동이 필요하듯 영혼의 단련을 위해선 슬픔이 필요하기에.

슬픔을 아는 그가 그려낸 이야기를 저도 기회가 닿는다면 읽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토베 얀손의 『여름의 책』.

소피아와 할머니가 여름 내내 섬에서 같이 걷고 이야기하고 싸우고 화해하며 일상을 나눈 이야기.

서로의 세상을 침범하지 않고 함께 지내지만 혼자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는 이들.

슬픔도 기쁨도 이야기 사이에 풀잎처럼 껴 있어 그것을 발견하는 일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라는데...

무엇보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지낸 적이 있기에, 지금은 병상에 계시는 할머니가 너무나 그리워지면서 이 책을 읽으며 그 시절을 떠올리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창밖에서 낳은 엄마다. 건너다보는 엄마.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아득해진다. 할머니는 늙고, 소피아는 자랄 것이다. 세상 곳곳에서. - page 172

무심히 책장을 바라보았는데...

아직 읽지 않고 꽂혀있던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가 눈에 띄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 살다 간 사람이라는 '스토너'.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릴 땐 요절이 근사해 보였으나 이젠 안다. 누구라도 인생을 끝까지 온전히 살아내는 일이 귀하다는 것. 자기 일을 오랜 시간 해왔을 뿐인데 어느새 폭삭 늙어버린 모습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삶, 이런 삶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비범'을 간직한 채 평범하게(혹은 평범해 보이게) 사는 일이 아닐까. 끊임없는 자기 수양과 다독임, 생을 향한 긍정 없이는 어려운 일일 테니까. - page 238

우선 이 책부터 읽어야겠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저자가 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좋은 소설은 겪지 못한 인생을 '살아보게' 한다. 다 읽은 후 고치처럼 몸을 말고 웅크리게 만든다. 마치 상처받은 것처럼. 이야기가 몸에 상처를 내고 들어와 나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랄까. 어떤 이야기는 읽기 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 page 49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는 누구일까...

아니 내가 잡을 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또다시 귀를 기울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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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것들의 기록 - 유품정리사가 써내려간 떠난 이들의 뒷모습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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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이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마지막 흔적을 정리하는 이 '유품정리사'.

어느덧 7년이란 시간이 흘러 또다시 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외로이 떠난 이들의 마지막 자리를 정리하는 일을 25년이 넘도록 해오고 있지만 유품을 정리할 때면 여전히 안타까움과 먹먹함이 밀려든다는 저자.

그렇지 않아도 막막해져가는 세상 속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지만 동시에 희망을 느껴보고자 이 책을 읽어보려 합니다.

잠시 속도를 늦추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겠습니다.

너무 멀지 않은 곳에

너무 늦지 않은 때에

우리가 함께일 수 있다면

천국으로의 이사를 돕는 유품정리사

그가 써내려간 다정한 배웅의 기록

남겨진 것들의 기록



고독사가 더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가까운 일임을 알게 되면서, 사회적 관심이 생겨나고 관련 정책도 마련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고독사 자체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 하였습니다.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 1인 가구, 이혼이나 실직으로 주변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중장년층이 많아지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고독사의 위험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비중이 커졌다고 합니다.

'우리'를 잃고 '개인'화되어가는 세태...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삶의 무게는 버티기 힘겹고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기에 수없이 좌절했을지도...

벼랑 끝에 내몰리기 전 우리가 조금만 더 다정해진다면 외롭고 쓸쓸한 마지막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사람의 의미'를 전하고자 남겨진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자가 찾은 현장들.

강박장애로 집 안에 물건을 가득 쌓고 살아온 중년 여성의 쓸쓸한 마지막,

세상의 어른으로 살고 싶었지만 마음이 그늘에 짓눌려 끝내 세상을 등진 청년,

이혼 후 두고 온 아들을 잊지 못하고 밤새 대문 앞을 지키던 치매 노인의 애끓던 모정이 꺼져가는 순간...

각자의 사연으로 저마다 다르게 물들인 인생의 마지막 장면들은 안타까움만이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희망은 자가발전이 잘 안 된다. 혼자서 아무리 기를 써봐야 쳇바퀴 위를 구르는 것 같아 지치기 십상이다.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고 꿈꿀 때 희망이 생겨난다.

하지만 고인들의 집에는 없었다. 관계도, 대화도, 웃음도. 세상과 단절된 집 안에서 이미 자신감을 잃었고, 세상으로부터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상실감에 휩싸여 좌절했다.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버린 그들에게 타인과의 관계는 공포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외로움을 자처했고 결국 외로움에 잡아먹혔다.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와야 하거늘 문 여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렇게 희망을 외로움으로 바꾸고 고독하게 죽어가는 것이다. - page 178

그 희망의 지푸라기라도 있었더라면 그렇게나 고독하게 죽어가진 않았을 텐데...

지금의 난 어떤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절망을 잠시나마 들여다보고 환기해줄 관계나 제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베란다 벽을 타고 들어오는 냄새로 괴로워하기 전에 서로에게 작은 창이 되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타인의 고통과 죽음에 무감해지는 대신, 죽음으로 그 존재를 확인하는 대신, 사는 동안 서로에게 나지막한 울타리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 page 228

무엇보다 이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 한 계절만 지속되지 않는다. 사계절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의욕을 품고 새로운 것을 배울 때도 있고, 눈부시게 성장할 때도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나 꽃 같은 한때를 보내기도 하고, 실패에 좌절하기도 하고, 숨죽여 때를 기다릴 때도 있는 법이다. 인생은 굽이치고 이번 모퉁이를 지나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눈 덮인 산과 꽁꽁 언 강만 보이는 겨울이라도 그 시간이 지나면 따스한 봄이 찾아온다. 눈 덮인 땅속에서도 씨앗은 싹을 틔우기 위해 홀로 분주하다.

단단히 옷을 여미고 겨울을 버티고 나면 포근하나 봄이 선뜻 다가오기도 하는 법이다. 곧 다가올 봄을 못 보고 가버린 고인이 못내 아쉽다. - page 132

그러니 딱 한 걸음만.

죽음으로 달려가지 말고, 딱 한 걸음만 삶 쪽으로 방향을 틀기를.

그리고 손을 내밀어보기를.

나도 그 손을, 그 길을 동행할 테니 우리 함께 살아보자!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이런 말을 건네었습니다.

"또 한 명의 인생을 지웠습니다"라는 문구 대신 "또 한 명의 인생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사용할 수 있기를. 누군가의 인생을 지우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남겨진 이야기에서 출발한 이 책이 시작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page 15

이 진심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전달되기를.

그래서 모두가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떠난 이들의 뒷모습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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