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없음 - 삶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쓴 것들
아비 모건 지음, 이유림 옮김 / 현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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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건 이 책에 쏟아진 찬사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상황이 가장 어두울 때에도 웃음 짓게 하는 포인트가 있다. 매 순간 극적으로 전개되며 스릴러처럼 밀도 있다. _《더 가디언》

아비 모건의 사랑은 모든 것을 괜찮다고 말해주는 따듯한 입김처럼 절망과 행복이 교차하는 문장들 사이에 촘촘히 놓여 있다. _유진목

우리 삶에 비극이 일어나면, 알게 된다. 불완전한 행복이야말로 현재형의 삶이라는 사실을. _이다혜

그녀가 처한 상황.

하지만 마냥 고통스럽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그녀.

그녀로부터 사랑과 상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상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나를 돌보며

써내려 간 3년간의 기록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다. 전부는 아니다."

각본 없음



집안은 아직 어둡고 늘 하던 일을 합니다.

제이콥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일...

"머리가 또 아픈 거야? 진통제는 먹었어?"

제이콥은 이마에 손을 짚으며 두피부터 목덜미까지 마치 칼로 긋는 것처럼 아프다 말합니다.

그를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이콥의 담당의와 상담해 스테로이드를 받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 제이콥?"

잠시 침묵이 흐른다.

"당신은 형편없는 간병인이야."

'당신 말이 맞아. 나는 형편없는 간병인이야. 이런 일에 재능이 없어. 10년 동안 이리저리 뛰어나디며 진통제와 아이스 팩을 가져오고, 밤마다 손님방에서 자는 일 말이야.'

내가 몸을 기울여 입을 맞출 때면 제이콥은 말한다.

"모든 걸 가진 기분은 어때?"

"나는 모든 것을 가지지 않았어. 당신이 아프니까." - page 14

수 년 동안 스테로이드를 받으러 다니던 나날들, 간병인 침대에서 지내던 나날들에, 이 병과 싸우는 동안 나눴던 대화 속 서로를 향한 보이지 않는 미움과 분노에도.

모든 것이 괜찮은 척하는 것도 이젠 너무도 지쳐버린 그녀.

괜찮지 않다. 이 모든 건 전혀 괜찮지 않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침대는 비어 있고, 욕실에서 새어 나온 빛...

제이콥이 욕실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이콥, 당신 괜찮아?"

"왜? 왜? 왜? 왜? 왜?"

제이콥이 멈췄다. 제이콥의 시곗바늘이 멈춰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제이콥?"

"왜?"

"제이콥, 당신이 누군지 알아?"

"왜?" - page 19

그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긴 투병 생활이 시작되게 됩니다.

그렇게 제이콥과 그녀의 이야기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해 주던 남자.

이젠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그녀를 못 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녀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도 암에 걸리게 되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항상, 나는 불안해하며 살았다. 제이콥은 그런 나를 늘 안심시키고, 웃게 하고, 용기를 불어넣었다. 나는 매번 그런 제이콥에게 고마웠다. 절벽에서, 집라인에서, 다이빙대 밑 깊은 물속으로 밀어 넣어준 것에 대하여.

내가 그토록 불안해하고 우려하던 진짜 위험은 사실 안에 있었다. 그 위험은 내 가슴 안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나는 평범한 삶의 끝이 얼마나 가까운지 모른 채로는 그 절벽을 두 번 다시 걷지 않을 것이다. 그 끝으로 걸어온 내게 보이는 것은, 절벽 너머에 있는 것은, 죽음이다. 어둡고, 끝이 없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리고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 아직은. 하지만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언젠가 저 절벽 너머로 가야 할 때가 온다면, 나는 두 팔을 벌리고 멋지게 뛰어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제이콥이 가르쳐준 것처럼. - page 212 ~ 213

그렇게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서로를 두고

"우리는 행운아야"

라고 말하던 그들.

사랑했기에 필연적으로 겪어야만 했던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

저라면 아마도 파도에 휩쓸려갔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땅을 박차고 날아가려는,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기려는 연처럼,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앞뒤로 흔들리며 불안정하게 걷더라도 똑바로 서려고 노력하면서 견디는 모습으로부터 '잠재력'을 '희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난 뒤 내 옆을 지켜준 사람, 그리고 사랑의 본질과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한 맹세, 서로를 향한 헌신, 사랑...

그 변함없고도 단단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을...

새삼 옛 추억도 소환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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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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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일 년 중 짧은 달...

그런데 이번 달엔 묵직한 주제들의 책 읽기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가난'이었고 이번엔...

'인간'

책 제목을 들었을 때 많이 익숙했었습니다.

읽지는 않았는데...

아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었나 봅니다.

무엇보다 선물을 받아 저에겐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이 책.

어떤 내용이 그려져 있을지 기대되었습니다.

노동의 고독을 승화하여 써내려간 뜨거운 소설!

우리의 상식을 두드리는 묵직한 거짓말

회색 인간



'김동식' 작가.

그는 10년 동안 공장에서 노동하면서 머릿속으로 수없이 떠올렸던 이야기들을 거의 매일 [오늘의 유머] 공포게시판에 올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써내려간 300편의 짧은 소설 가운데 66편을 추려 묶은 것이 '김동식의 소설집(전3권)'.

그중에 1권이 바로 『회색 인간』이었습니다.

책을 펼치면 바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회색 인간>을.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 page 7

첫 문장부터 강렬했습니다.

어느 날, 한 대도시에서 만 명의 사람들이 하룻밤 새 증발하듯 사라지게 됩니다.

땅속 세상, 지저 세계 인간들의 소행.

만 명의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땅을 파야 했습니다.

왜...?!

[지금 너희들이 겪었듯이,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지상의 인류를 간단히 멸망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인류를 위해 땅을 파라. 도시 하나만큼의 땅을 파내면, 너희들을 무사히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 page 8 ~ 9

진짜이길 바랬지만...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헛된 기대를 버리고 분노를, 더 흐르자 체념의 단계로 강제 노동을 받아들였고, 인간 같지 않은 삶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인간 같지 않은 삶.

회 색 인 간...

사람들은 모두 마치, 회색이 된 듯했다.

그것이 흩날리는 돌가루 때문인지, 암울한 현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무표정한 회색 얼굴로 하루하루를 억지로 살아가고 있었다. - page 10

이런 그들에게 한 여인의 '노래'로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누군가 여인에게 빵을 가져다준 것이다. - page 16

목숨과도 같은 '빵'을 땅을 파지 않는 이에게 건넨다는 거.

그렇게 하등 쓸모없는 것이라 여겼던 '예술'은...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여전히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아무리 돌가루가 날리고 묻어도, 사람들은 회색이 아니었다. - page 21

짧지만 묵직한 한 방.

그렇게 <회색 인간>을 필두로 가상현실, 인조인간, 영생 등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로부터 우리에게 건넨 메시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참으로 숙연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 현실로 돌아온 저에게 던져진, 인상적인 문구가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애초에 원래 우리는 이런 인간이지 않았습니까?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갔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맞아. 원래대로 돌아갔을 뿐이지..."

"그래... 맞아..." - page 274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를 이야기들.

그렇기에 꼭 한 번은 읽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들.

저자의 두 권의 소설집이 궁금하였습니다.

그만이 그려낼 수 있었던, 전에 없던 '진짜 이야기'.

어떤 이야기로 우리에게 물음표를 건넬지 기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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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With Frida Kahlo 활자에 잠긴 시
박연준 지음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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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운명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었던 '프리다 칼로'.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고통과 아픔을 감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열정을, 희망을 엿볼 수 있기에 자꾸만 보게 되는...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가 있다면 항상 읽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읽게 된 이 책.

고통과 상처로 '하염없이 추락하는' 삶을 살았던, 그리고 그것을 질료로 '피보다 더 붉은' 작품을 남긴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예술과 사랑의 궤적을 좇은 박연준 시인의 시적 사유의 기록이라 하였습니다.

시와 그림으로 써 내려간 에세이...

이보다 더한 조합은 없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살아남은' 그림과 시인의 변주곡

두 예술가의 아름다운 대화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그림은 말하지 않는 시, 시는 말하는 그림"

이라고 말한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의 말을 곱씹어 보며 그림을 시로 '번역'한 '그림 번역'.

박연준 시인은 '시적인 것'과 맞닿은 프리다 칼로의 그림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그림으로 변용되기 전 화가 마음 상태를 미리 읽어"보고, 일기나 편지에 남긴 프리다 칼로의 언어들을 되새기며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의 실체에 대해 탐색하였습니다.

수천 번 부서졌지만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했던 '사랑'에 대하여

그리고 결국 부서지지 않고 살아남게 된 '작품'에 대하여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시인이 속한 현실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소하지만 솔직하고 부조리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개인적 독백을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은 불치병을 앓는 자가 올리는 기도이자 제사다. 절박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지금도 움직인다. 꿈틀대고 말하고 비명을 지르고 죽고 살아난다. 기도하는 자의 힘이다.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는 옛말처럼, 무엇에 미친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는 작품은 언제나 도를 넘는다. 도를 넘어 아름답고, 도를 넘어 끔찍하다. 도를 넘어 흥미롭고, 도를 넘어 경이롭다.

도를 넘는 일. 사랑이 종종 즐겨 하는 일이다. - page 203



그녀의 고통을, 그녀의 심정을, 디에고를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 가늠할 수 있을까...

죽음을 앞두고

"나의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결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던 여인.

그런 그녀를 따스하고 위트 넘치며 한없이 감각적인 언어로 우리에게 안녕을 묻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이야기.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를 떠나서, 사랑과 아픔, 배신과 고통을 떠나서 아니타 브레너의 편지에서 건넨 이야기.

어떤 순간에도 "이게 나다. 나는 가치 있는 인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뭔가가 내면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우리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 세상이 주는 모욕과 멸시를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 "궁극적으로 의지할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 제아무리 위대한 사랑이라 해도, 사랑보다 위에 있는 것은 예술이요, 예술보다 위에 있는 것은 나의 가치를 긍정하는 자세다. - page 190

내가 없으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을지라도, 사라진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

'사랑'에 대해, '사랑보다 위에 있는 것'에 대해 깊이 있는 사유를 펼쳐나갔던 이 책.

묵직이 다가왔었습니다.

프리다 칼로가 '특별히' 불행했다면, 그 불행의 특별함은 '사랑'에서 기인한다. 그녀는 사랑의 실패에 괴로워하다 죽은 사람의 편에 서지 않았다. 사랑의 실패를 견디고 견디어서, 그녀는 드디어 '실연의 실패'에 도달했다. 물론 나는 실연의 실패가 사랑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견디는 자는 실패할 기회를 잃은 자, 견딤으로써 열반에 든 '약한 강자'라고 생각할 뿐이다. 마음껏 실패하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울고 불며 끝내지도 못하고, 무지몽매하게 견디는 자. 사랑을 꽉 쥔 주먹을 펴지 않는 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사랑을! - page 200

가장 앞서 사랑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그게 끓어넘칠 위험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몰랐을까? 나를 나만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또한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자를 바라보기는 얼마나 버거운 일인가? - page 201

참...

밤은 길고 괴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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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이상한 수학책 - 그림, 게임, 퍼즐로 즐기는 재미있는 두뇌 게임 75¼
벤 올린 지음, 강세중 옮김 / 북라이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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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으로 재미있고 유쾌한 벤 올린의 '이상한 수학책' 시리즈 최신작.

그는 '수학'을 이해하는 즐거움을 선사했었는데 이번엔 전작들과는 달리 일상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두뇌 게임으로 우리를 찾아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의문이 드는데...

왜 게임일까?

실상 진지한 수학이 유치한 놀이에서 태어날 때가 많기 때문에, 게임 대부분이 수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게임의 유래와 그 안에 숨겨진 수학적 원리들을 저자 특유의 위트와 광범위한 지식 그리고 익살맞은 그림과 함께 즐겨보려 합니다.

수학자처럼 생각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

"최고의 천재들은 게임 마니아였다!"

천재들의 게으른 예술, '놀이'의 비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어려운 것을 쉽게 해결하라!

아주 이상한 수학책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카드 게임 <세트>를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하였습니다.

파스칼은 도박사가 낸 수수께끼를 풀다 확률 이론을 탄생시켰고, 폰 노이만은 포커를 분석하다 게임 이론을 개발하였다 하였습니다.

루비크 에르뇌는 블록을 가지고 놀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장난감을 발명했으며, 오일러는 다리를 건너는 놀이를 하다 그래프 이론의 창시자가 되고...

이처럼 천재들은 게임을 즐겼고, 수학적 원리는 세상을 이해하는 안목을 넓혀주었습니다.

우리는 수학을 일련의 유한한 게임으로 볼 때가 많습니다.

질문을 통해 답변을 얻고, 수수께끼에서 해답을 찾고, 정리에서 증명을 만드는 식으로.

하지만 종합해보면 수학은 광대하고 끝없는 게임을 형성하며 지성 있는 모든 유인원의 생각을 포괄합니다.

수학자 로자 페테르는

"나는 수학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수학에 놀이의 정신을 불어넣었고, 수학은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게임인 무한을 포용해주었기 때문이다."

무한을 포용하는 데서 얻는 기쁨.

그 기쁨을 함께하고자 그는 다양한 게임을 다루면서 그 게임들을 통해 수학의 원리는 물론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까지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책은 공간 게임, 숫자 게임, 조합 게임, 위험과 보상 게임, 정보 게임 이렇게 5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부 공간 게임 : 공간과 시간을 유영하며 판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다.

2부 숫자 게임 : 수를 갖고 놀다가 어느새 수학의 원리를 깨우치다.

3부 조합 게임 : 전략적 선택이 만들어내는 최상의 결과를 맛보다.

4부 위험과 보상 게임 : 리스크를 감수하되 최대의 보상을 거머쥐는 승부사로 거듭나다.

5부 정보 게임 : 두뇌 플레이를 하며 논리와 분석, 직관과 통찰의 힘을 키우다.

각 부는 관련 수학 분야에 대한 재미있는 에세이로 시작하였습니다.

그 뒤에 추천 게임 5개가 나오는데, 대체로 뒤로 갈수록 복잡성이 커지고 각 부의 마지막 장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포함해 관련 게임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좀 더 재미있게 읽고자 한다면 준비물이 필요하였습니다.

펜과 종이, 같이 놀 친구, 무엇보다 중요한 진정한 본성, 내 안의 아기 침팬지를 불러내야 했습니다.

단순한 듯하면서도 어려운 듯한, 몰입하며 짜릿한 승부욕까지.

특히나 혼자서는 놀지 못하는 우리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자꾸 엄마만 이긴다고 속상해했지만...)

아마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바는 이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것의 요점이 뭐냐고? 사실 아무 요점이 없다는 것이 요점이다. 그냥 멋질 뿐이다. 에두아르 뤼카는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하게, 꿈꾸는 사람은 꿈을 꾸게 하라."라고 했다. "호기심의 대상이 유용해 보이는지 쓸모없어 보이는지는 걱정하지 마라. 현명한 아낙사고라스가 말했듯이 '만물 안에 만물'이 있으니까."라는 말도 덧붙였다. - page 43

어린아이의 게임이 성숙한 성인뿐만 아니라 자연도 플레이하고 있음을.

유치한 놀이에서 진지한 수학이, 나아가 세상을 이해하게 됨을.

이 책을 통해 한 수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함께 놀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다 내 안에 잠재된 수학적 사고 능력을 소환해 멋진 이론을 만들어낼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저는 그럴 일이 없겠지만 말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저자의 전작들도 궁금했습니다.

'이상한 수학책' 시리즈.

매력적인 '수학'의 세계로 안내해 준 저자의 책들을 찾아 역주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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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한의원
이소영 지음 / 사계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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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호기심이 생겼었습니다.

알래스카?

내가 아는 그 오로라를 볼 수 있고 설원 아니던가?

근데 다른 것도 아닌 한의원?

뭐...

그럴 수 있지만...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출간 전 영화 판권 계약 완료!라고 하니 그전에 책으로 먼저 만나보려 합니다.

오른팔에 붙은 유령을 떼어내기 위해

떠난 여정에서, 끝날 줄 알았던

동화 속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시차 유령은 또

어떤 아이를 먹으러 갔을까요?"

알래스카 한의원



오른팔에 유령이 붙은 건, 9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야근 중 짬짬이 박 대표의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이지'.

그날 강아지 록구와 도산공원을 돌아다니다 골목에서 똥을 쌌고, 이지가 그걸 치우려고 허리를 숙이는 순간, 불법 택시인 콜뛰기 차가 이지의 오른팔을 축 쳤습니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파 부서졌을 거라 생각했던 오른팔, 오른손은 놀랍게도 뼈에 금이 간 곳도 없고 가벼운 타박상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 아파요."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어느 병원을 가도 단순 타박상이라는 결과뿐이었고 오른손과 팔의 끔찍한 통증으로 마우스조차 쥘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결국 일까지 그만두게 됩니다.

병원비로 얼마를 썼을까, 가늠할 수 없을 때쯤에야 병명이 선고되는데 바로 '복합통증증후군'.

병명을 알았다고 해도 원인과 진단법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병명을 알았다는 안도와 동시에 더한 좌절감을 맛보게 됩니다.

이지는 간절한 마음으로 인터넷에서 복합통증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찾던 중 '복합통증증후군 치유 모임'이라는 네이버 카페를 찾게 됩니다.

그곳에서 헬로키티 인형 탈을 쓴 소녀로부터 놀라운 정보를 듣게 되는데...

"앵커리지 대학 연구진 논문에 치료 사례가 있다고."

...

"치료? 그럼 완치라고요? 복합통증증후군이?"

"네. 앵커리지에서 치료했는데, 놀라운 건 한인 한의원이래요."

"앵커리지가 어디죠?"

"알래스카에 수도가 앵커리지잖아요." - page 24

이지는 소녀의 말대로 '알래스카에 있는 한의원에서 복합통증증후군이 완치되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임의 사람들은 그 논문이 거짓이라고 말하고, 이 정보를 처음 알려준 소녀 역시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

이지는 논문 속 '완치'의 정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더불어 이 무모한 여정 끝에 어떻게든 알게 될 진실을 위해 알래스카 한의원이 있는 호머로 향하게 됩니다.

알래스카 한의원의 고담 의사에게 치료를 하면서 그동안 다른 병원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흠, 그렇군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그러니까 그 경미하다는 자동차 사고가 일어난 날 어떤 일이 있었냐는 겁니다."

"그날은 평범했습니다. 일하다가 개를 산책시켰다, 정도."

"좋아요. 루틴이 확실하군요. 그럼 뭔가 독특한 일은 없었나요? 평소와 다른." - page 105

사고 전후를 기점으로 있었던 일을 모두 적어보라는 고담.

먼저 사고 나기 하루 전으로 거슬러 가보면, 그날 마감 중이라 회사 소파에서 잠시 눈을 붙였고, 점심쯤 일어나 배달되 와퍼 세트를 먹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평소와 같은 코스로 서점에 가 리터칭한 잡지 표지를 살피다 우연히 한 책에 시선이 닿았는데...

『시차 유령』

특별한 일이라면 바로 『시차 유령』을 샀다는 것.

이지는 이제껏 '동화책을 산 것'과 '자동차 사고'를 연결해본 적이 없었는데 고담이 이 두 사건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동화책 속 마지막 문장

시차 유령은 또 어떤 아이를 먹으러 갔을까요?

순간 오른 손가락에서부터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고담은 자동차 사고라는 매개적 사건이 과거의 통증을 깨웠다고 보았습니다.

당신은 기억을 지웠지만, 과거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 상처가 났던 몸속 세포들은 기필코 그때의 통증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당신의 뇌가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말이다. - page 111

그리하여 동화책 속 내용을 따라가며 이지 역시도 점점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하는데...

과연 이지의 오른팔 속 세포가 기억하는 아픔과 동화책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그리고 이지는 오른팔에 붙은 유령을 떼어내는 과정에서 어떤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걸까?

"Hey."(저기.)

"Yes?"(응?)

"Am I going to be cured?"(나 여기서 치료될 수 있을까요?)

"Only Alaska knows tha."(그건 알래스카만 알겠지.)

"What?"(네?)

"Alaska doesn't call anyone. This is a place where only people who are called come."(알래스카는 아무나 부르지 않아. 여기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만 오는 곳이니까.) - page 102

통증...

결국 모든 병의 원인은 우리의 마음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병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

오른팔에 붙은 건 '만약에'라는 유령이었다. '만약에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아이들의 시간 그리고 사유의 시간'이라는 유령.

It's beginning to hurt. 이지는 옥빛의 빙하 위에서 고담이 지나가듯 말했던 게 떠올랐다. 통증을 치유한다는 건 동시에 '아프기 시작하는 일'이기도 했다. 알지 못했더라면 치유할 수도 없지만, 이미 알아버렸다는 건 또 다른 아픔으로 이동한다는 의미였다. - page 193

그리고 우리에게 건넨 이야기.

"선생님, 세상은 너무 시끄러워요. 그래서 단 한 번도 내 속에 있는 말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어요. 태어나서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런데 트랩 라인 너머는 고요했어요. 그때 알았어요.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건 나까지 침묵시키는 고요라는걸...... 그러자 모든 게 선명해졌어요. 내 진짜 목소리. 내 속의 유령까지도.

은하 씨는 그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들었어요. 은하 씨는 아마 그걸 춤으로 표현하고 싶었나 봐요. 송신탑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목소리를 들었을 거예요.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꿈이라고 해도, 그건 분명히 고요 속에서 외치는 자기 목소리예요.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 단 한 번도 듣지 못하기도 하잖아요. 거기도 지금 고요한가요? 그래서 선생님은 들었나요? 선생님만의 목소리를......" - page 295

나는 이지처럼 용기가 있을까...?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건넨 위로와 처방이었습니다.

눈보라가 치는 광활한 미지의 대륙.

한 편의 로드무비처럼 알래스카에서의 여정은 끝이 나고 이제 우리의 여정이 펼쳐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언가 생을 걸고 버리지 않으면, 어느 쪽으로든 나아갈 수 없다는걸. 그리고 나아가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것임을. - page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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