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자는 왜 이 책을 썼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답변이 <프롤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중세에는 어디나 시간의 책이 있었다. 하루 중 어느 때라도 경건한 사제는 『성무일도서』를 꺼내 딱 맞는 페이지를 넘기고, 판토플 성인이랄지 그 시간에 맞는 성인을 찾아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내 의도도 비슷하다. 이 책이 빠르게 넘겨볼 수 있는 참고서적이 되면 좋겠다. '이 상황은 무슨 낱말이지?' 혼잣말하며 시계를 확인하고, 이 책을 권총집에서 꺼내 맞는 페이지를 넘기고, 식전바람ante-jentacular, 발록구니gongoozler, 빙고 모트bingo-mort 따위 낱말을 찾을 터이다. - page 6
알파벳 순으로 정렬된 사전의 쓸모없음을 한탄한 그.
그래서 이 책의 원제 『The Horologicon』, 즉 '시간의 책'처럼 하루의 각 시간에 맞춘 낱말들을 나열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쉬이 읽히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나온 표현들, 낯선 영어 단어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엔 왠지 찜찜하고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면 훨씬 재미나게 읽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런 단어들이 있구나! 알아가는 즐거움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아이들이 개학하고 유일한 제 오전 시간, '열한 시'.
오전 휴식의 신성한 시간에 차 또는 커피를 마시거나 비스킷을 먹곤 하는데.
여기서 『곰돌이 푸』 첫 번째 책 두 번째 장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푸는 언제나 오전 열한 시쯤 되면 뭘 먹는 걸 좋아했지. 그래서 래빗이 접시랑 머그 컵을 꺼내는 걸 보고는 굉장히 기뻤단다.
"빵은 뭘 찍어 먹을래? 꿀? 연유?" 래빗이 물었어.
푸는 너무 들떠서 "둘 다"라고 대답했다가, 식탐을 부리는 것처럼 보일까 봐 얼른 이렇게 덧붙여 말했어. "빵은 안 줘도 괜찮아." (앨런 알렉산더 밀른, 『곰돌이 푸』, 박혜원 옮김, 더모던, 2018 - 옮긴이)
여기서 주목한 점이 바로 '군것질'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열한 곁두리elevenses(켄트 방언), 돈턴dornton(북부), 열한 참eleven hours(스코틀랜드), 열한 새참eleven o'clock(미국), 열한 사이참elevener(서포크) 따위다. 열한 사이참이 좋다. 술을 마실 수 있어서다. 나머지 싹 다 절대금주teetotalitarian다. - page 88
이렇듯 여러 표현 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우리의 '한글'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지역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있듯이 말입니다.
또한 재미난 것도 있었는데...
계산대에서 여러분은 갑작스레 사랑을 깨닫는다. 매장 카드를 받거나 포인트를 적립하는 일을 고객 로맨스romancing the customer라고 하니 그렇다. 로맨스라고는 하지만 단지 누군가 계산을 하고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 만큼 제공하는 일일 뿐이다. 그런데 모든 로맨스가 그렇긴 하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 page 190
로맨스라...
약간은 당혹스럽지 않나요?
(저만 그런가...)
그 시대의 문화와 역사와 학문과 종교를 담고 있는 '단어'.
낱말들은 자연과 같아, 그 정신을
절반은 드러내고 절반은 감춘다.
테니슨의 말처럼 감춘 절반 쪽 낱말들.
앎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고 새삼 우리의 단어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시간의 책'처럼 만들어지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우리 문화에 대해선 잘 알고 있으니 공감하며 즐겁게 읽어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