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판소리 - 조선의 오페라로 빠져드는 소리여행 방구석 시리즈 3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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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판소리'

이 단어에 이끌렸습니다.

사실...

오페라나 뮤지컬 같은 건 간간이 접해보았지만

우리의 소리에 대해서는 많이 접해보지 않았기에 궁금했었습니다.


우리만의 소리

우리만의 울림

그 향연 속으로 빠져들어보겠습니다.


소리로 풀어낸 서사, 한과 해학의 선율,

조선 오페라로 떠나는 힐링 에세이 여행서


방구석 판소리


언젠가, 방 한구석에서 판소리를 듣던 날이 있었다고 합니다.

소리꾼의 목소리는 공간을 가득 채우며, 마치 오래된 나무 문을 열어젖히듯 저자를 과거로 이끌었고

심장을 두드리는 북소리와 소리꾼의 창은 저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감정을 깨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던 감정이

한 곡, 한 곡, 소리를 따라가면서


'그래, 삶이 이렇게 힘들지라도 우리는 견디고 살아가는구나'라는 깨달음이 소리의 여운을 타고 제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슬플 때 들었던 판소리의 구슬픈 가락이 저의 마음을 달래주고, 기쁠 때 해학적인 장단이 더 큰소리로 웃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 page 5


'한(恨)'과 '해학(諧謔)'

즉 우리 한국인의 정서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판소리가 '어렵다'라는 편견에 갇혀 있고, 과거의 유산으로만 남아 현대인의 삶과는 동떨어져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판소리가 어렵지 않다는 것을

판소리가 얼마나 현대적이며 여전히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지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장 조선의 오페라_판소리 다섯 마당 : 심청가, 홍보가,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

2장 잃어버린 조선의 아리아들_타령 네 마당 : 옹고집타령, 장끼타령, 변강쇠타령, 숙영낭자전

3장 삼국시대 뮤지컬_향가 : 도솔가, 서동요, 헌화가 & 해가, 처용가, 원가

4장 고전의 발라드_고전시가 : 하여가 & 단심가, 임제의 한우가 & 한우의 화답시, 황진이와 소세양 이야기-<봉별소판서세양>, <소요월야사하사>, 홍랑과 최경창 이야기-<묏버들 가려꺾어>, <송별>

5장 달빛 아래 붉은 실_고전소설 : 이생규장전, 옥단춘전, 금방울전, 정수정전


고전 22편을 판소리의 호흡으로 엮어내 마치 무대 위 오페라처럼 마음을 울리고 사유를 머물게 하였습니다.


제가 판소리라 하면 딱 떠오르는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 가득한 노래입니다.


사실 <춘향가>는 현전 판소리 다섯 마당 중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을 작품 기조로 삼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주제-선과 악, 신분의 차이 등-를 모두 다루어

애절하게, 그것보다 구슬프게, 때로는 무엇보다도 유쾌한 소리로 관객들을 울리고 웃게 만드는데

이는 우리에게


현대를 사는 우리들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의 장애물을 맞닥뜨립니다. 두 사람에게 찾아오는 고난과 역경은 예나 지금이나 고달프기 마련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만 사랑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지도 모릅니다. 눈앞에 닥친 역경이 개인적인 범위에서 시작되어 넓게 확대될 때 우리는 더 용기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극복할 용기, 서로를 믿고 함께 나아갈 용기, 비난과 비판을 용하거나 수용하지 않을 용기, 사랑을 지킬 용기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면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를 들여다보세요. - page 70


둘의 해피엔딩이 그려지면서 절로 미소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타령 중에 <숙영낭자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서 <춘향가>도 그렇고... 제가 사랑 이야기를 좋아해서...)

종이었던 매월의 질투로부터 비롯된 거짓말 때문에 갖은 수모를 당하게 되는 숙영의 억울함.

이후 백선군이 돌아와 숙영의 죽음을 알고 슬퍼하다가 매월을 찾아내 그 죄를 묻고

숙영이 다시 살아나 백선군과 임낭자와 함께 죽을 때까지 행복을 누리며 사는 이야기.



<숙영낭자전>은 사랑과 희생, 운명과 도덕적 갈등, 그리고 천상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신화적 요소와 인간의 현실적 갈등을 결합하여, 사랑의 영원성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하지요. 또한, 선녀가 인간 세상에 내려와 인간과 사랑에 빠지면서 발생하는 갈등은 신화적인 전통과 인간 세계의 현실적 고민을 동시에 풀어내고 있습니다. 선녀와 인간의 만남은 천상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로, 판소리 특유의 상상력과 심리적 깊이를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 page 173


<춘향가>와도 닮았던 이야기.

이번을 계기로 <숙영낭자전>도 잘 기억해둬야겠습니다.


고려의 정몽주가 조선의 이방원이 부른 하여가에 대한 답가로 부른 <단심가>

단골 시험문제라며 열심히 외웠던 추억이 있는...!

간만에 만나니 반가웠습니다.

자기 신념과 왕에 대한 충성을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로 확고히 나타냈었던 이 시조.

다시 읽어보니 정몽주의 결단이 또다시 묵직이 울리곤 하였습니다.



판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살아 숨 쉬는 서사입니다. 춘향의 지조와 심청의 희생, 흥보의 웃음과 적벽의 전율은 모두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닿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판소리 속에는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page 5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었던 판소리.

이제 우리는 귀를 열고

소리를 들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내 안의 소리를 깨워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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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떠나는 수밖에 - 여행가 김남희가 길 위에서 알게 된 것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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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가님을 알게 된 건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때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가 마치 내 얘기였기에

여자 혼자 떠난다는 것이 저로서도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책을 덥석 들곤 읽었었고

덕분에 저도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작가님의 책을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어느덧 '23년 차 여행가'라는 '김남희' 작가님.

또다시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어떨지 기대하며 책을 펼쳤습니다.


주어진 생을 견디고 사랑하기 위하여

기꺼이 길을 나서는 23년 차 여행가 김남희의 기록


일단 떠나는 수밖에



미처 예상치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서른셋

찬 바람 부는 1월의 인천항에서 중국행 배에 오를 때 3년 정도면 전 재산이 사라질 테고,

그 무렵이면 여행도 끝이 나리라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올해로 23년 차가 된 여행가 '김남희'

20년이 넘도록 그녀를 여행으로 이끄는 것이 무엇일까...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내가 알던 상식과 진리가 무너진다. 걸으면 걸을수록 질문이 생겨나고, 내가 배워온 것들을 의심하게 된다.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와 타인이, 나와 지구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조금 더 사랑하고 아끼게 된다. 여행은 언제나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게끔 했다. 정말이지 조금 더 선한 사람이 되고 싶고, 지구와 타인에게 해를 덜 끼치는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 간절함이 나를 여행으로 이끈다. - pageg 10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지구에게도

조금씩 더 다정해지기에

또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 여행이 끝나면 언제나


"떠나길 참 잘했어."


라 외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행'의 의미들을 되짚어주었던 이 책.

직접 보고 듣고 느껴야 비로소 그 나라를 알 수 있는,

그렇게 그 나라의 진면모를, 

그리고 나의 이야기와 함께 한 권의 책을 완성해나감을.




우리가 여행을 주저하는 이유는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 '여유'에 발목이 잡혀 동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인생은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니 마음이 끌릴 때 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으니

'지구가 언제까지 우리의 여행을 허락해줄 것인가'

였습니다.

기후 위기로 병든 지구...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살아가는 일의 기쁨과 슬픔 - 에어비앤비>였습니다.

공유 경제에 기반한 숙박업인 '에어비앤비'


이 고단한 여관업이 내게 주는 선물은 이런 찰나의 소통이다. 나이와 하는 일과 국적과 종교, 이 모든 의미 없는 선을 뛰어넘어 이뤄지는, 살아가는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한 공감. 비록 순간일지라도, 단 한 번 일지라도, 이렇게 번개처럼 찾아드는 찰나의 소통이 있어 삶은 살아갈 만한 것이 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나누는 그 드물고 귀한 순간을 위해 오늘도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선다. - page 121


에어비앤비도 또 하나의 여행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여행은 타인의 친절이 아닌 스마트폰 검색에 기대는 일이 되었습니다.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비행기표를 고르고

클릭 몇 번으로 숙소를 예약하고

구글 리뷰가 좋은 식당을 찾아가고

큰 용기가 없어도, 외국어를 하지 못해도, 누구나 실패 없는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대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여행에서의 낯선 이의 호의가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의에 기대어 저도 그렇게 다정히 낯선 길 위로 떠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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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떠나는 수밖에 - 여행가 김남희가 길 위에서 알게 된 것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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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떠나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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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놀라운 화학 - 주기율표에 숨겨진 우리 주변의 신기한 비밀들
표트르 발치트 외 지음, 리사 카진스카야 그림, 이경아 옮김, 이황기 감수 / 미디어숲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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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으로 열심히도 외웠던 '주기율표'

그리곤 시간이 흘러...

머릿속에선 사라진 듯하였으나!

또다시 언급되었는데...

다름 아닌 아이들이 '끝말잇기'를 하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어디서 들었는데 '한방단어'라며 주기율표의 원소들을 외치는데...

이왕 외치는 거!

제대로 알면 더 좋을 것 같아 이 책을 선택해 아이와 함께 읽고자 합니다.

"세상을 이루는 원소들,

그 속엔 놀라운 이야기가 흐른다"

주기율표 속 원소 하나하나가 들려주는 만물의 비밀

세상을 움직이는 놀라운 화학

'화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단 한 방울로 액체의 색깔이 순식간에 바뀌는 플라스크 속에도,

감자가 튀겨지는 프라이팬에도,

못 쓰게 된 전구에도,

우리 몸에도,

발밑의 포장도로에도,

멀고 먼 별에도,

화학은 존재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화학이라 하면 무척이나 어려운 과목으로 느끼곤 하는데...

이 책은

과학 전공자가 아니어도,

교과서에 트라우마가 있는 어른이라도,

아직은 화학이 낯선 초등학생이라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큰 매력으로 '주기율표를 따라 떠나는 여행'이라는 이야기 방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

그래서 '주기율표'가 이렇게 앞장을 장식하였는데...!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서 설렘이 있는...

벌써부터 흥미로워졌습니다.

주기율표의 순서대로

산소와 수소, 탄소와 질소, 황과 은, 금 같은 원소들이 캐릭터처럼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일러스트와 함께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한 예를 들어보면 원자번호 17인 염소(Cl)

황록색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클로로스'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염소는 우리에게도 익숙한데

위액의 주성분만 해도 염산이고

나트륨염과 염소는 실제로 염화나트륨(소금)의 형태로 날마다 우리가 먹고 있는!

이제 여름이 다가오면서 놀러 가는 수영장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실제로 수영장 물에서 나는 냄새는 염소가 아니라 질소 화합물인 삼염화질소 냄새예요. 이 물질은 염소가 요소와 반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죠. - page 142

역시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집에서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실험들이 소개되어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실험을 하면서 호기심과 탐구심을 키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붉은 양배추 시약으로 산성과 염기를 구분하고

뼈에 칼슘이 필요한 이유를 달걀 껍데기를 가지고 실험하고

슬라임을 만들고

불꽃 실험을 하는 등으로

아이들에게는 재미를,

어른들에게는 잊고 지내던 과학의 설렘을

되살려 주었습니다.


 



주기율표 20번까지는 열심히 외웠었기에 친숙했는데...

그 외의 원소들은 낯설었습니다.

의료용 체온계에 독성을 가진 수은 대신 '갈륨'을 바탕으로 한 합금을 이용한다는 것을

항암제로 쓰이는 '테크네튬'

레늄, 오스뮴, 이리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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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말을 걸 때 - 아트 스토리텔러와 함께하는 예술 인문학 산책
이수정 지음 / 리스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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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번달까지는...

긴팔을 입고 다녔고 이불도 두툼한 걸 덮었습니다.

그런데!

급격히 기온이 오르고 벌서 30도라니...!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습니다.

그래서!

지친 저를 달래주기 위해 좋아하는 '명화'를 보면서 충전하고자 합니다.

"그림 앞에서 멈추는 순간

삶은 비로소 깊어진다"

미켈란젤로, 고야, 프리다 칼로, 샤갈, 반 고흐, 앙리 마티스...

예술가들이 지나온 시간과 공간을 따라 떠나는 여행

그림이 말을 걸 때


예술 전문 강연가이자 아트 스토리텔러인 '이수정'

그녀는 이 책을 통해

30명의 화가와 50여 점의 작품을 중심으로

미술사 속 익숙한 그림뿐 아니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화들을 소개하며 독자에게

'삶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예술'

을 제안하고자 하였습니다.

책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장 '그림 속에 내가 있었다'에서는 고흐, 앵그르, 쿠르베 등을 통해 예술이 인간의 감정을 비치는 거울이 될 수 있음을

2장 '예술가의 상처, 삶을 견디는 그림들'에서는 프리다 칼로, 샤갈, 미켈란젤로 등 예술가들이 고통을 견디며 그려낸 인간적인 이야기들을

3장 '그림, 또 하나의 언어'는 라파엘전파를 비롯해 신화·문학과 얽힌 그림들을 다루며, 그림이 서사가 되는 과정을

4장 '그림 너머의 모든 것'에서는 그림의 외연을 통해 그림 밖의 예술을 조명하며

우리에게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본 적이 있는가?

를 묻고 있었습니다.

이 질문을 받고 한참을 고민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림이 말을 걸 때 귀를 기울였을까...?

그만큼 천천히, 깊게, 대화하듯이 그림을 대한 적이 있었는가...

저자는 우리에게 그림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림이 말을 건다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담은 그 침묵의 세계에 귀 기울여보기를

예술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당신의 일상에도 작지만 단단한 변화가 스며들기를

그리고 언젠가, 그림 앞에서 당신 자신에게 말을 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일까...

유독 제 시선이 잡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국민 화가로 추앙받는 윌리엄 터너의 <눈보라-항구를 향해 떠나는 증기선>


프랑스 인상주의가 태어나기 전, 그 기틀을 마련한 선구자.

빛과 색채, 순간의 인상을 통해 전통 회화의 한계를 넘었으며, 형태를 해체하고 감각적 본질을 표현한 그.

1842년 폭풍우를 화폭에 담기 위해 77세에 스스로 배의 돛대에 자기 자신을 묶고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극한의 행위를 감행해 완성한 이 작품은

단순한 풍경이 아닌 자연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경외와 공포, 살아 있음에 대한 실존적 자각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경험'이라는 진실한 감각과 그로 인한 영혼의 진동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그의 작품.

작품이 우리에게 건넨 말은

터너의 예술은 이처럼 경험의 생생한 증언이며, 삶을 걸고 완성한 숭고한 기록이다. 붓을 들고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간 터너가 우리에게 속삭인다. '폭풍을 두려워하지 말고, 온몸으로 통과하라. 비로소 그때 그대의 삶 또한 한 폭의 그림이 될 수 있다.' - page 247

그리고 실제로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작품이 있었으니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



18세기 이전까지 유럽의 미술은 기독교 신앙과 깊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예술가들이 다룬 주제와 표현 방식은 신앙의 울림을 품고 있었고

작품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믿음의 이야기'를 담은 창이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예수의 죽음'은 유럽 미술의 가장 깊고도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았는데

전통적인 도상적 개념을 과감히 깨뜨린 안드레아 만테냐.

예수의 시신을 발끝에서 머리 방향으로 바라보는 독특한 구도로 관람자가 시신 앞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로써 관람자는 단순한 외부의 관찰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는 증인이 되고

신의 죽음을 이상화하지 않고 현실적인 육체의 고통과 인간성을 강조한 이 작품.

실제로 보면 얼마나 경이로울까...!

이 작품이 우리에게 건넨 말은

500년 전, 나보다 앞서 이 세상을 살았던 한 예술가의 치열한 고민은 그의 작품 속에 생생히 숨쉬고 있다. 이 작품 앞에 선 수많은 이들의 속삭임과 감탄은 보이지 않는 실로 엮어 지금의 나와 연결되는 듯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서 있던 나는, 예술작품이 지닌 이 경이로운 힘 앞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느끼며, 경외감과 겸허함을 동시에 마주했다. - page 79

덧붙여 안드레아 만테냐는 수 세기 동안 파도바의 신앙과 예술의 중심지였던 에레미타니 교회의 오베타리 예배당 벽면에 성 야고보의 일생을 담은 프레스코화를 제작했었는데...

1944년 3월 11일, 연합군이 이탈리아 북부 파도바에 300톤에 달하는 폭탄을 투하하면서 만테냐의 프레스코화가 파괴됩니다.

대부분의 파편은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리게 되었는데...

2001년, 수학자이자 데이터 과학자인 마시모 포르나시에르와 그의 연구팀이 첨단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복원 방식을 고안,

마침내 2006년, 만테냐 사후 500년이 되는 해 폭격에 사라졌던 오베타리 예배당의 프레스코화가 다시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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