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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 - 탐욕스러운 금융에 맞선 한 키코 피해 기업인의 분투기
조붕구 지음 / 시공사 / 2020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업가는 사업을 할 때 사업계획과 더불어 리스크 관리를 잘해야 한다. 사업을 할 때는 오롯이 자기 자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권에서의 차입금, 원재료를 구입할 때 외상매입금 등 부채를 떠안으면서 운영을 한다. 이러한 부채를 미래 사업계획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인데, 이러한 리스크 관리에는 예상 가능한 리스크와 예상 불가능한 리스크 둘 모두를 생각해야 한다. 경영자라면 사업계획서를 작성할 때 예상 가능한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작성을 해두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서 크게 문제는 없다. 하지만 예상 불가능한 리스크는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의 피해가 생길지 몰라 준비를 할 수 없다. <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다>는 키코사태라는 예상 불가능한 리스크에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중소기업 사장의 시각으로 쓴 책이다.
키코란, Knock In Knock Out의 이니셜을 딴 것으로 간단하게 말하면 파생상품에서 상한가와 하한가의 불공정 약정에 대한 것을 말한다. 2008년 외환위기가 있기 전인 2007년~2008년에 시중 은행권에서 많은 중소기업을 상대로 환헤지 파생상품을 판매했다. 상품 내용은 환율의 변동에 대비해 일정 범위 내에서 환율이 변동할 경우, 약정 시 맺은 환율로 화폐를 교환해주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환율이 Knock-In(상한가)을 넘어설 경우 중소기업은 약정했던 금액 이상의 화폐를 손해 보면서 은행에 팔아야 하지만, 환율이 Knock-Out(하한가) 이하로 떨어질 경우 계약을 해지하게 되는 은행에 매우 유리한 규정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이후 키코에 가입했던 많은 중소기업들은 결국 외환위기 속 1400까지 치솟은 환율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 워크아웃, 도산에 이르게 된다.
제 3자의 시각에서 보면 왜 중소기업들이 꼼꼼하게 따져보지도 않고 키코에 덥석 가입했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산업에 종사하는 당사자의 입장이 되면 그 부분이 납득이 가능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기업의 운영자금은 대다수 부채로 이루어져 있다. 물건을 판다고 바로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못 받는 기간 동안은 현금흐름에 매우 취약한 상태다. 그러다보니 은행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면서 은행과의 관계는 갑을 관계로 형성이 된다. 은행이 가입을 종용하게 되면 딱 잘라 거절할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또, 새로운 계약을 맺으며 키코가입을 살며시 끼워 넣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중소기업들은 일종의 먹이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최근 라임사태와 더불어 키코사태 역시 금융 지식의 우위에 따른 약육강식의 세계를 보여줬다. 과거 물리적인 힘이 세상을 지배하던 것과는 달리 정보와 지식의 우위로 약자를 집어 삼키는 시대가 도래 했다. 이제 금융 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