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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그는 내 존재를 몰랐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은 가라앉을 줄 몰랐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가 요즘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이 무색할 정도다. 그렇게 이 책이 담고 있는 시대상은 책 표지의 앙상한 그림처럼 말라 비틀어졌다. 우리가 살았고 우리 앞 세대가 살았던 시대.

차이는 어마한 거리감을 둔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어릴 적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들도 이 책의 적나라함에 담겼다는 사실이다.

삼대에 걸친 이야기로 그 중심에는 아주 우직하고 바보스런 ‘만수‘가 있다. 6남매로 시대상의 우울한 아픔과 함께 장남 아닌 장남이 된다. 그렇게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사명감을 바탕으로 요령도 부릴 줄 모르고 융통성 없는, 우직한 책임감 하나로 살아간다. 만수의 보이지 않는 희생은 가족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의 성실함과 책임감은 어디를 가도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진정 그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누구 한 명 그의 희생을 고마워하거나 알아주는 이가 없다. 만수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고의적 목적도 없다는게 더 문제다.

˝그가 왜, 어떻게, 언제부터 투명인간이 되었는지를.˝

이 짧은 문장이  ‘만수‘의 모든 시간을 말해주는 것 같다.
가슴 아픈 시대 오로지 적응하고 버티며 성실하게 살아냈던 만수에게 남은 건 결국 많은 빚과 가족의 외면이다. 분명한 건 그들의 시간에서 만수의 희생은 이미 사라졌고 투명인간이었다. 만수의 삶을 좌지우지 한것은 동생들이고 주변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만수는 어떤 존재였을까.

각자의 이해 관계와 이익 앞에서 냉혹함만 남아있는 시간은 가족이라는 관계에서도 소용 없었다.  만수의 희생은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았다. 조건없는 사랑이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그래서 만수는 응당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아니었다. 심지어 가족인 동생들 조차도 말이다.

그리고 큰형 백수의 허무한 죽음엔 우리의 역사적 아픔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모두의 기대를 안은 채 한 청년이 쓰러져가는 집안을 위해서 버틸 수 있었던 견딤은 그 자체가 고통이었다. 그리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베트남 파병, 그 곳에서 고엽제로 인해 죽게 되지만 독재 권력 아래서 원인불명의 질병사로 강제적 투명인간이 되어 사라졌다.

만수와 정반대의 인물인 동생 석수,
권력에 들어가 그 일원이 되어 새로운 나로 거듭날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석수 또한 투명인간이 되어 사라진다. 오직 자신을 위한 삶을 위해 석수는 그렇게 사라졌다.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그들은 사라져가고 투명인간이 되었다. 누구 한 명 잘 살았다고 할 수가 없다. 분명 열심히 살았고 잘 견뎌냈다. 하지만 나의 불편한 마음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누군가를 위해 오롯이 헌신하는 삶, 자신은 사라져가는 것도 모르고 누군가에게만 향한 시선은 부담과 무거움일 수 있다. 금희와 옥희의 선택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너무 쉽게 자신을 던지고 스스로 사라졌다. 똑똑한 명희도 연탄가스라는 치명적인 사고로 평생 지적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
시대가 그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주지 못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더 어려웠던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이다.
이러한 희생과 책임감으로 성실하게 시대를 살아낸 만수를 보고 있자니 ‘안톤 체호프‘의 단편 <베짱이>이에서 허영심 많은 올가의 성실한 남편 드이모프가 떠올랐다. 30대 젊은 나이로 주검이 되어 생을 마감하는 드이모프의 올가에 대한 희생과 성실한 헌신을 생각하게 했다. 이렇듯 사람사는 세상에서 모든게 생각대로 정당하게 흘러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느낄 때마다 허탈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가을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마주한 <<투명인간>>
올해는 유난히 내 머리 속에 맴도는 단어가 ‘적응‘이다.
현재를 살면서 매순간 적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적응의 방식에서 어리석게 매순간 선택의 후회는 남는다. 하지만 옳다고 생각했던 선택 또한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속에서 누군가는 ‘투명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현대인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서 무엇으로 남아야 하는 것일까. 생각이 무거워진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버리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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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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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깊은 골짜기
굽이굽이 돌아 운문사에 도착했다.

책에서 유홍준 교수는 운문사의 아름다움은 겨울에 있다고 했지만, 나는 늦은 가을에 찾았다. 그리고 긴 계곡을 끼고 돌아가는 길을 지나 만나는 운문사를 보면서 느꼈다.

‘여름에 다시 오고 싶다‘
초록의 생명력이 최절정을 이룰때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운문사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만난 푸른 솔밭길,
솔밭길을 10분 정도 걷고 나면 정겨운 낮은 돌담을 만난다.  그 돌담길을 따라 서 있는 붉은 단풍나무는 운문사를 찾은 많은 이의 포토존이 되고 있었다.

계절 끝자락에 만난 운문사의 가을빛은 땅 위에서 메말라 바스락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나가는 발걸음에서 비틀어져 부서지며 소리내는 낙엽들이 처량했다. 이 가을도 이제 막바지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급작스럽게도 가을의 쓸쓸함이 겹쳤다.  마침, 걸치고 간 외투 또한 갈색 프랜치코트다. 

‘쓸쓸함의 이 가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건가‘
실없이 웃음이 났다.

청도의 운문사, 사리암

유홍준 교수의 ‘운문사의 아름다움 다섯 ‘

첫째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어 항시 승가대학 비구니 학인 스님들이 있다는 것.(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승가 대학 쪽은 개방을 하지 않았다. 담 넘어 보이는 넓은 공간과 나무들 보고 싶어 많이 아쉬웠다)

둘째는 장엄한 새벽 예불이다. (나에겐 불가능, 어찌 저녁 예불이라도 가능할까)

셋째는 운문사 입구의 솔밭이다. 이 아름다움은 눈으로 목격을 하였기에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적 아픔의 흔적도 눈으로 목격했다.(일제 시대 송진 공출 때 상처입은 흔적들)

넷째는 운문사의 자리매김이다. 높은 산자락에 위치한 운문사는 넓은 평지 사찰이다. 그리고 분위기 또한 아기자기 하고 평온하다. 그래서 유난히 연인들과 가족들이 많았다. 오늘 나는 아이들을 버리고 가볍게 찾았다. 영원한 나의 누구씨랑 ,함께.

마지막 다섯째는 너무나 유명한 역사책 <<삼국유사>>
가 여기서 쓰였다는 사실이다. <<삼국유사>>가 발간된 곳은 인각사(麟角寺)였지만 ‘일연스님‘이 운주사 주지 스님으로 있던 시절에 쓰였다고 한다.

책의 다섯 가지 아름다움을 다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다른 색의 아름다움은 체험하고 내려 온 것 같다. 무엇보다 사리암을 올랐다는 기쁨이다.

운문사를 돌고 반대편으로 나오는 길에 사리암 가는 길이 보였다. 여기서 사리암 주차장까지의 거리가 걸어서 30분 정도였다.  사리암 주차장까지 걸어가느냐 차를 끌고 가느냐의 고민에서 단호히 나의 두 발을 선택했다. 결국 30분을 걷고 사리암 주차장에서 시작해서 또 사리암까지 올르는 계단 1008개의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결코 만만치 않은 경사와 계단 수에 숨이 턱밑까지 헉헉 거렸지만 올랐다. 그리고 사리암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커피 맛을 선사했다.

오른자의 여유와 함께 느긋한 발걸음은 하산하는 가벼움을 느낄 수 있었다. 높은 곳을 향해 올랐던 시선은 이제 낮은 곳을 향했다. 등산의 기분 중 최고의 기분인 성취감을 제대로 느꼈던 시간이었다. 산 정상을 오른 경험이 별로 없는 개인이라 그 짜릿함은 더 컸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할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길의 매력이다. 가는 길에서 만나는 즐거움과 소소한 행복을 더 좋아한다. 목적지에서 주는 기쁨보다 나에게 더 감흥을 주는 것이 가는 길에 만나는 작은 것들이다. 하지만 사리암을 오를 때 그 작은 소소함을 놓쳤다. 눈앞에 보이는 사리암을 오르기 위해 헉헉 거리면서, 목적지만을 향하는 발걸음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려오면서 마지막에 찾은 여유는 나름 좋았다.
땅 위에 뒹구는 낙엽도 주워가며 내려오는 시간과 사진도 찍을 여유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책장에 꽃힌 책을 찾았다.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시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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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리커버 개정판) - 국내 최초 수메르어·악카드어 원전 통합 번역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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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김산해



‘길가메쉬 프로젝트‘

불멸을 추구하는 긴 프로젝트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도 언급되어진 주제 중 하나다. 죽음은 인류의 모든 문제 중에서도 가장 성가시지만 흥미로운 문제였다. 근대 후기 이전까지 죽음은 삶의 의미를 주는 원천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종교나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과 내세에 희망을 가지라고 가르쳤다. 즉, 선지자들은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신화의 주제도 죽음이다.
피할 수 없는 이 숙명적인 죽음 앞에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선 길가메쉬의 여정은 결국, 실패로 끝이난다.
그는 한때,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고 ‘명성‘을 위해 거침없던 도전적인 왕이었다. 젊은 왕 길가메쉬는 아직 ‘죽음의 실체‘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미성숙 단계의 길가메쉬는 모두가 말리는 원정길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의 호언장담도 ‘훔바바‘의 괴력 앞에서 멈칫한다.
길가메쉬의 깨달음의 시작이다.
훔바바의 죽음의 시선 앞에서 꼼짝할 수 없는 그는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야 했다. 결국 비열하지만 자신의 누이를 훔바바에게 팔아먹는 치졸한 속임수를 사용하게 된다. 그렇게 훔바바를 제압하고 우르크로 돌아온다.
길가메쉬 그에게는 친구이자 부하인 엔키두가 있었다.
그들은 이제 하늘의 황소까지 죽인다. 점점 더 오만해지는 길가메쉬를 신들은 벌을 주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그 벌은 엔키두의 죽음이었다.

길가메쉬는 엔키두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의 실체를 자각하게 된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가 그를 엄습한다.
길가메쉬는 깨닫는다. 자신의 운명 또한 엔키두와 마찬가지로 죽음 앞에서 속절없이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길가메쉬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죽음을 물리칠 방법을 끝까지 찾아 나선다.
그래서 그의 영생을 위한 불멸의 여정이 시작된다.
죽음의 바다를 건너 영생자 우트나피쉬팀을 만나지만,영생으로 가는 기회는 얻지 못한다. 결국 길가메쉬는 죽음을 맞이한다.

길가메쉬의 마지막 허망함은 결국 자신이 그토록 찾았던 것을 위해 쏟았던 노력에 대한 시간이다.  죽음뿐이라는 결말에서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시간에 대한 후회는 허무와 허탈만 남은 그의 인생인 것이다.


˝길가메쉬. 자신을 방황으로 몰고 있는까닭은 무엇 때문인가요?  당신이 찾고 있는 영생은 발견할 수 없어요. 신들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에게는 필멸의 삶을 배정했고, 자신들은 불멸의 삶을 가져 갔지요. 길가메쉬, 배를 채우세요. 매일 밤낮으로 즐기고, 매일 축제를 벌이고, 춤추고 노세요. 밤이건 낮이건 상관없이 말이에요. 옷은 눈부시고 깨끗하게 입고, 머리와 몸은 씻고, 당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을 돌보고, 당신 부인을 데리고 가서 당신에게서 즐거움을 찾도록 해주세요. 이것이 인간이 즐길 운명인 거예요. 그렇지만 영생은 인간의 몫이 아니지요.” p347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는 동안 내 머릿 속에는 길가메쉬의 삶에 대한 여정, 어른이 되어가는 성숙해 가는 과정도 보였지만, 그의 이름을 딴 이 길가메쉬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현재 우리의 과학기술과 생명공학은 길가메쉬의 긴여정을 경험 중이다. 그 가능성의 힘, 지금 인류의 과학적 진보는 어디까지일지.
이제 과학자들은 죽음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기술적 차원으로 접근해서 그 원인을 분석할 따름이다. 과학혁명의 선도적인 길가메쉬 프로젝트는 인류의 불멸을 위한 것, 죽음을 정복하는 긴 여정인 것이다.
최근에 발견 된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이미 맞춤형 아기까지 설계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러한 생명공학의 기술적 진보가 윤리적 차원에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결국 새로운 과학 기술은 언젠가는 우리에게 어떻게든 적용될 것이다.
길가메쉬의 거침없던 욕망은 젊음에서 비롯된 자신감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는 깨닫는다. 인류의 이 불멸의 프로젝트를 향한 무한한 자신감도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생각하게 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수많은 미성숙의 길가메쉬
그의 오만과 그의 만용과 그의 집착을 다 가지고 있을지 모를 길가메쉬. 숙명적인 죽음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거미줄에 걸린 그 무엇처럼 커다란 세상이라는 거미줄, 그 속에 갇힌 채로 흔들리고 있다. 언제라도 덮칠 수 있는 무서운 발걸음을 옮기는 거미를 주시하며 불안해하고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적응하며 사는 법을 배워나간다.

예외가 아닌 모든 것이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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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뜨거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사계절 내내
내 옆을 지키지

라떼는 말이야
역시나 오늘도
뜨겁고 구수한 냄새로
그 존재를 발하고 있지

라떼는 말이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야
양분된 만남의 조화가 있어
화해가 있는 통일이 있어

라떼는 말이야
무엇보다 미학이 있어
적당함의 온도
적당함의 비율
적당함의 기교
이 모든 것의 시간이 녹아있어
하나라도 깨지는 순간
무너지는거지

라떼는 말이야
사랑이 있어
따뜻함 속의 하트는 미소야
일상의 소소한 그리움이 있어
일상의 즐거움이야
하루의 비타민이지
그건 소확행이야

라떼는 말이야
묘한 힘이 있어
영양가 있는 든든한 힘
카페인의 힘도 빠지지 않아
뜨거울 때
차가울 때
전혀 다른 에너지야
지나치게 가볍거나
지나치게 무겁거나
하지도 않아
중용을 알지

라떼는 말이야
이야기가 있어
그만의 여정이 있어
그만의 에로틱한 매력으로
유혹할 수 있어
부드러움이야

라떼는 말이야
뜨거울때 제맛이야
그러니까 지금이 딱인거야
그러니까 즐길 수 있게 기다려 줄래

라떼는 말이야
이제 아름다운 영혼에 대해
말 할 수 있을거야
또 다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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