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의 일상도 프로답게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이 말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성실히 책임감있게 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가끔 이 당연한 상식 앞에서 언론의 지나친 찬사가 쏟아질 때가 있다. 그리고 이는 하루 아침에 사회적 영웅을 만든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에코는 이러한 사회와 언론을 꼬집는다.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

영웅이 필요한 사회는 조용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일반적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나의 말이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비판이다. 쉽게 말해 ‘프로 정신‘의 부족, 진정한 프로를 찾기 힘든 사회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를 떠나서 내 주변에서도 우리는 보통 이 영웅적 인물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찾으려 애쓰는 면이 있다. 이 험난한 시간을 벗어나게 할 그 누군가를 늘 그리워한다. 심지어 쓰레기 처리 문제 하나도 누군가의 해결을 기다린다. 사소한 것 하나지만, 그 누군가가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사는 것 같다. 각자의 쓰레기는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결코, 누군가가 해결할 수 없다. 내 손을 벗어나 누군가의 몫으로 떠 넘기는 식의 해결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개인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회,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넘치는 사회는 나의 잘못된 의식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개개인이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지나가는 시간에 자신을 맡기고 운전대를 놓고 있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 내가 정신을 차릴 때가 있다. 책장을 넘길 때 갑자기 불편해 지거나 도끼 정도는 아니지만, 돌 맞은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 멈추고 나를 다시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엘리베이터 손잡이에 누군가 아주 보란 듯이 올려 놓은 일회용 커피 용기를 보고 불편했던 기분을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보통은 성격상 내가 그냥 치우고 만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남이 먹다 남은 컵을 만지는 것조차 꺼림직해 만지기 싫어 속으로 욕만 진탕하고 들어왔다. 그리고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을읽다가 이 소제목을 보면서 이것 저것 연결고리가 만들어 진 것이다. 또 궁시렁거리면서 온라인 나의 서재에 풀고 있다. 책 후기도 아닌 개인적인 궁시렁거림
이 이 책을 계기로 제대로 말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에코의 언급처럼 이미 우리는 역사 속에서 증명된 불행한 사건,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 담긴 이념을 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를 때 최악의 역사는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개인의 책임과 의무는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마치 대단한 의식을 안고 무언가 큰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나의 의식이다. 사소한 것, 일상적인 것에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본다. 기본이고 상식이다. 일상도 프로답게 살아야한다.

삼일절이라는 역사적인 날을 맞이했다. 주절거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하루를 넘겨버렸다. 불편해진 마음으로 흥분을 퍼내고 있었더니 시간이...가끔, 책 읽으면서도 나는 열을 낸다.
여튼, 우리가 영웅을 찬사하고 지나치게 포커스를 맞추는 것에 대해 지금의 사회가 어떠한지를 생각해봐야 될 것이라는 에코의 말이 더 와닿는 시간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21-03-01 04: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에코!
저도 빨리 이 책 봐야 하는데 줄 서 있는 책 본다고 미루고만 있네요. 삼일절은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지만 쉬는 날이기도 하죠. 편안한 휴일 되세요.

scott 2021-03-01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일절날에 읽는 에코옹이 말하는 미친세상을 이해하는법 ! 쵝오의 선택이네요 책커버 넘 예뻐서 뚫어지도록 봄 ㅋㅋ 빨간색 컵 커피향에서 고소한 향이~날것 같네요 전 파란색컵에 먹는데 빨간색에 담긴 커피가 더 맛나보임 ,이쁜호빵님 3월 월요일 휴일 평안하게 ^ㅎ^
 

나에게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한눈팔기다




눈 덮힌 하얀색의 세상

˝세상은 그 많은 눈의 무게에 눌려 축 처져 있었다.˝

굽어 보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주 많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한눈을 팔게 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도둑>은 그런 이야기다.

죽음의 신에게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한눈팔기‘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 곳곳에서 그가 하는 일은 영혼들을 거두어 들이는 일이다. 하지만 가끔 죽음의 신에게도 견딜 수 없는 시간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냉혹하고 서늘하고 온통 어둠으로 둘러싸인 죽음의 신, 이 책은 적어도 그런 생각을 일반화하지는 않았다.

책의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 독일이다. 나치 독일의 어느 한 도시, 전쟁을 일으킨 당사국  그 속에 사는 독일인의 일상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쟁의 참혹한 면을 상상할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전쟁 속의 피해자는 어느 한쪽에만 생기는 게 아니라는 또 한 번의 진실에 맞닥뜨리는 책이었다.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책은 2권이라는 분량 만큼 무겁다면 충분히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작가 마커스 주삭은 지나치게 이야기를 무겁게 몰고 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10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책도둑인 소녀의 행동보다 어른들의 세상은 더 나빴다. 그리고 그런 어른들은 오히려 세상을 도둑질 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들은 현실에 대한 모순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 앞에 일어나는 누군가의 불행과 아픔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시대가 주는 공포와 처절한 상황은 아이들의 현실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소녀는  말의 의미를 배우면서 말의 힘을 느낀다. 또 그런 말의 힘을 원망한다.


˝인간 존재의 모순됨의 또 다른 증거였다. 이만큼의 선이 있으면,  이 만큼의 악이 있다. 그냥 물만 붓고 섞어 주어라.˝ p243


죽음의 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음의 신은 소녀가 그녀의 양부모가 될 사람들을 향해 가고 있는 기차 속에서 그녀를 처음 만난 기억을 떠올린다. 동생의 죽음, 이 비극앞에서 죽음의 신과 소녀의 첫 만남은 이루어졌다. 죽음의 서늘함을 소녀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소녀는 처음으로 < 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라는 책을 도둑질한다. 리젤 메밍거라고 부르는 이 소녀를 죽음의 신은 ‘책도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죽음의 신의 장점인 ‘한눈 팔기‘는 이 소녀에서 시작된 것이다. 소녀와 죽음의 신의 교차는 한 번이 아니었다. 죽음의 신은 소녀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아이의 책을 수백 번이나 읽으면서  그 아이가 본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살아남아 세상 어딘가에 자신의 자리를 채워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죽음의 신의 호기심은 소녀를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죽음의 신에게 소녀의 존재는 가치있는 기억으로 그에게 영원히 남았던 것이다. 그렇게 남은 기억을 꺼내어 죽음의 신은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뮌헨의 도시 외곽 지역 힘멜이라는 곳에서 양부모랑 살게 된다. 동생과 소녀를 맡는 대신 이들 부부는 약간의 수당을 받을 터였지만, 동생은 오는 도중에 죽음을 맞이 해야만 했다. 결국 소녀만 양부모 밑에서 보호를 받게 된다.

양부모 한스 후버만과 로자 후버만

한스 후버만은 제 1차 세계대전 부대에서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 살아 남았다. 그는 전투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년의 시간에서도 죽음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운이 제법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소장품이 있었다. 아코디언이다. 전쟁 내내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아코디언은 자신의 생명을 구한 친구의 유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에게 아코디언을 배우기도 했다. 에릭 판덴부르크의 아코디언은 한스 후버만의 친구이자 삶의 의미였다. 시간이 지나 그의 아들 막스를 도와야 하는 의무감도 여기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스에게 막스는 책임이자 의무였다. 그렇게 유대인 막스는 한스의 집 지하실에서 오랜 시간 보호를 받게 된다.
한스 후버만의 일은 히틀러가 권좌에 오르면서 큰 타격을 입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공정성을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친구였던 에릭 판덴부르크는 유대인 독일인으로 그의 목숨을 구해준 친구였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그는 히틀러를 따르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렇기에 독일인이지만 히틀러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다.  참혹하고 냉정한 전쟁 속에서도 그는 따뜻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전쟁 말 독인이 전세에 밀려 위기에 빠졌을 때 한스에게 잠시 호황이 찾아왔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의 행복은 짧은 순간으로 사라진다.

전쟁의 아픔은 어느 한 쪽의 일상도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전쟁은 일반인에게 무방비 상태에 놓여지고 최악의 상황을 만든다. 하지만 유대인과 독일인 어린 리젤의 불행한 시간에서 그래도 리젤은 유대인이 되는 것보다 나았다는 점이다. 유대인은 여자도 남자도 아니었다. 사람도 아니었다. 당시 유대인은 ‘유대인‘이었다. 독일인들은 그래도 살아갔다.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책은 어느 한쪽도 벗어날 수 없는 불행에서 이유없이 자신들의 삶이 무참히 짓밟혀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 속에서 어린 10대의 눈은 세상의 어떤 부조리함과 부당함을 발견한다. 이해 할 수 없는 세상이다. 기차 안에서 목격한 동생의 죽음과 친엄마와의 헤어짐은 어린 소녀에게 충격이었고 적응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리고 밤마다 악몽으로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미쳐있는 세상에서 불안한 어린 소녀를 양아버지 한스가 지켰다.

소녀의 양어머니 로자 후버만은 위기 속에서 강한 힘을 발하는 인물이다. 책의 표현처럼 ˝매일이 절뚝절뚝 지나갔다.˝
그런 시간에서 로자는 일의 순서를 제대로 인지하고 실천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양부모 한스와 로자는 히틀러를 지지하지 않는 10%의 독일인이다. 그래서 나치당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순수독일인 후버만 가족은 지하실에 유대인 막스를 숨겨주는 엄청난 모험을 한다.


리젤의 책도둑

책을 훔치는 것 리젤의 행동은 그래도 암묵적인 허락이 있었다. 그래서 진정으로 훔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달랐다. 아이들에게 진정한 도둑은 어른들이었다. 부자 나치들 그리고 군대였던 것이다. 그들은 내 아버지, 가족을 데려가는 가장 나쁜 도둑이었다.


힘멜의 거리가 폭탄과 함께 사라졌다.
소녀가 사랑한 친구 루디, 후버만 가족 그렇게 최고의 영혼들이 사라졌다.유일한 생존자 리젤은 최후의 한 명으로 살아 남는다.
굽어보는 자(죽음의 신) 조차도 이 상황이 눈물나게 슬프다.
남겨진 리젤의 아픔을 그저 바라만 봐야하는 안타까움에 더 슬퍼한다.
이제 리젤에게 말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세상의 가장 추악한 힘을 담고 있는 저주스러운 말이다. 글을 읽을 수 없었던 리젤에게 말이 주는 힘을 느끼게 했던 책 속의 말들이 있었다. 그리고 리젤은 그 능력을 보았다. 하지만 사랑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던 날 말의 가혹함을 알게 되었다. 지젤은 그런 말을 증오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말이라는 것은 없었어야 한다고.

제2차 세계 대전의 하늘은 회색 빛의 하늘로 채워졌다.
찬란하게 빛을 발하던 태양도 푸르름을 자랑하던 자연도 다른 쪽을 보고 있었던 것처럼 세상은 온통 한 가지색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죽음의 신은 세상을 굽어본다. 하지만 신의 심장도 그 시간은 객관적일 수 없었다. 한 소녀의 아름다운 이야기, 회색빛 세상에서 그래도 인간적인 영혼을 보았던 죽음의 신은 자신의 장점인 한눈팔기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작지만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실 하나
오랫동안 많은 젊은이들이 다른 젊은이들을 향하여 달려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마지막 덧
정말 죽음의 신이 존재한다면,  전쟁 중 그는 업무과다로 한계에 달할지도 모르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죽음의 신도 피해갈 수 없는 한계는 전시에 더 극으로 치닫지 않았을까
책의 앞 부분에 죽음의 신을 묘사하는데, 낫이 아닌 빗자루를 들고 있다는 부분이 생각났다. 갑작스럽게 빗자루를 든 죽음의 신이 상상되었다. 인간적인 죽음의 신 모습에 잠시 미소짓게 된다.
그리고 조만간 다시, 영화로 책도둑을 만날 날을 기대하며 이 여운을 접어둔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cott 2021-02-28 0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뿐 호빵님 책도둑 완독 추카! 이책의 저자 부모님이 실제 겪은(호주로 이민오기전 고향 독일에서 목격함) 걸 작가가 쬐끔 픽션 허구를 섞어서 (아마도 ‘죽음의 신‘ )장면은 썼다고 합니다. 영화도 좋아요 아이들 넘 연기 잘하고 양부모의 연기도 잊을수가 없어요 ^.^

이뿐호빵 2021-02-28 0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먼저 감사합니다
무거운 주제를 차분하고 잔잔하게 풀어내는 작가가 좋았습니다

늘 풍부하고 즐거운 스콧님과의 인연에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1-02-28 03: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아주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도 잘 안나는데 이뿐호빵님 덕분에 다시 기억을 휘리릭 돌려봤습니다. ^^
 


책 헤는 밤에~~~


오랜만에 쇼핑을 다녀왔다
돈 쓰는 재미는 수많은 재미 중에 빠지지 않는 즐거움이다
이 소비 본능은 사람이라면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 라는 의문과 함께 바구니를 들었다

오늘 쇼핑 품목은 책이다
무엇보다 무겁고 그 어떠한 것보다 즐거운
그리고 제법 시간이 걸리는
그리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쇼핑이다

이곳에서 이제 나의 책을 향한 집요함은 날개를 단다
두 눈에 빛을 발한다
하지만 두 발은 의식적으로 속도를 줄인다
그리고 완전 광적으로 천천히 아주 집요하게 달려든다

모처럼 들린 대형서점의 유혹에서
넘쳐나는 텍스트들의 수다장에서 
잠시 정신줄을 놓지만
다시금 두 눈은 할 일을 찾는다

즐비한 책들 그 위용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도 당연 눈에 띄는 따끈따끈 신간들은
내 발걸음이 닿는 곳곳을 선점했다
전략적으로 유혹하는 손길을 나는 놓칠 수가 없다
결국엔  매혹적인 그 손을 잡고야 말았다
이 무게를 어찌 다 감당하려고 말이다

모처럼의 서점 나들이에서
그렇게 일년의 양식을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쇼핑의 유효기간이 가장 긴 것이
그래도 책으로 장바구니를 채웠을 때다

이 무겁지만 설렘 가득한 즐거움을 만끽한 시간
내 손에 쥐어진 책들의 수많은 이야기는
벌써 아우성이다

나의 손을 제일 먼저 끌고 가는 책은
움베르트 에코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이젠
미친 세상을
에코를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야 될 것 같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cott 2021-02-26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에코옹 가죽 커버네요 ㅋㅋ 이뿐 호빵님 오늘 지식의 양식 두둑히 쟁여 놓으셨네요 ^.^

이뿐호빵 2021-02-26 2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네 에코~특별박스세트 충동구매입니다
조만간 또 몇 권을 쟁여 놓지...싶습니다
그리고 야금야금 챙기려고요ㅋ

레삭매냐 2021-02-27 0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 책은 쇼핑하기에 부담스러운
아이템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것저것 쟁이면 손모가지가 다
아프더라구요...
 

읽어야 하는 책 vs 읽고 싶은 책

나의 고심은 깊어진다

이것도 저것도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에

이쪽 저쪽 손길을 주지만

양쪽 모두 조급증만 늘고

갈증으로 애가 탄다

페이스 조절 실패

읽어야 하는 책 < 읽고 싶은 책

한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고


올리신 리뷰들이 요즘 나의 호기심을 지나치게 유혹하기 때문이라고 은근슬쩍 넘긴다 ㅎㅎ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cott 2021-02-21 0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 이쁜 호빵님 드디어 책도둑 ! 전 읽어야할책 <줄줄이 도착할 책들<읽지 않은책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ㅎ^

이뿐호빵 2021-02-21 00:26   좋아요 2 | URL
네 ^^영화도 담았습니다
일단, 책 먼저 ..영화는 그래서
잠시 뒤로 ~

ㅎㅎ 잠시 공감하고 웃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미미 2021-02-21 0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깊이 공감합니다!<책도둑>도 읽고싶어요. 저도 영화까지 얽혀있어요~원작 소설이랑ㅋㅋ😳
 
빨강의 역사 - 인류는 왜 빨강에 열광하는가
미셸 파스투로 지음, 고선일 옮김 / 미술문화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극과 극의 빨강

 

 

가장 원초적인 색, 빨강

 

<파랑의 역사>가 천천히 떠올라 뒷심을 자랑하는 인내의 역사라면, <빨강의 역사>는 열정적인 강렬함으로 극과 극을 오고 가는 역동적인 역사다. 튀지 않게 조용히 지금까지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는 파랑에 비해, 빨강의 파란만장한 시간은 우리의 삶을 연상시킨다. 인생무상과 새옹지마. 빨강의 상징성은 날개 없이 추락하고 급변한다. 시대별 변화무쌍함에 과히 멀미가 날 정도다. 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그리고 책의 자료에서도 <파랑의 역사>보다 압도적이다. 그래서 볼 것도 많고 흥미롭다. 신화적 이야기, 에피소드도 있어 책은 첫 부분부터 빠르게 흡인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파랑의 역사>를 읽은 후라 <빨강의 역사>는 그저 얻어 가는 부분이 제법 많아 더 가볍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늦은 후기에 뒷북치는 기분은 감출 수가 없다. 잠깐 푸념을 하자면, 이렇게 올해도 나의 다짐은 1월부터 무너졌다는 것이다.

 

 

극과 극을 달리는 빨강의 역사는 다채롭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익숙한 자료와 로마 그리스 신화 이야기 속에 담긴 빨강의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신화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갔다. 여러 신의 상징물(아폴로, 마르스, 케레스, 메르쿠리우스)인 수탉은 예언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수탉은 로마인의 숭배 대상이었는데, 볏의 색은 빨강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광과 승리를 나타내는 징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빨강의 위치는 사람의 경우에서는 제외다.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했다.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졌다는 것은 일상적으로 모욕적인 욕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이다.

 


원초의 색 빨강은 불과 피를 연상케 한다. 빨강은 이처럼 생명의 색이었다. 그리고 과거 신성함과 지배적인 상징성을 표현하는 살아있는 색이었다. 성서에서 그리스도의 색으로 포도나무의 피는 포도주다. 고대 로마 화가들은 다른 어떤 색보다 다양한 색조의 빨강을 사용하였다. 로마 염료의 명성을 드높인 염료는 자주 조개다. 로마의 자주 조개 염료로 염색한 고품질의 모직물은 15 ~20배나 높은 가격을 받았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사기행각은 당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동로마 시대 황제 직할의 사업으로 몇몇 특정 지역에서만 독점적으로 수확과 염료 제조 등을 할 수 있게 규제했다. 자주 조개 염료는 곧 황실 가족에게만 허용되었고 귀족들의 특권이 되었다.

 


성서에서 주조를 이루고 높이 평가되는 빨강 그리고 하양과 검정에 관한 잘못된 편견을 꼬집었다. 성서 속 다양한 의미의 색채는 시뻘건 지옥과 어둠의 검정으로 하양의 순수와 순결이라는 단순한 상징만 남긴 잘못된 편견을 말하였다. 그리고 근대의 흑백 대비는 고대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색의 대립에서도 근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색의 이야기는 그 사회를 그대로 담고 있다. 빨강의 상징성은 일상 언어의 색을 나타내는 어휘뿐만 아니라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지금까지도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루비콘 강을 건너다.”

금기를 어기고 모든 것을 건 카이사르는 레드 라인을 넘었다. 이는 로마 제국의 앞날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불경한 행동을 의미한다. ‘레드 라인금지된 경계선을 넘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루비콘 강의 지리적 의미보다 강의 상징성은 불그스름한 색의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카이사르의 시간을 담고 있다. 이 강을 건너면서 이야기한 카이사르의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도 함께 말이다. 빨강은 이렇게 역사를 바꾸는 분기점을 이루는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색은 단지 색을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었다. 색은 추상적이고 색소와 염료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인정받아 개념화되었다는 점이다. 중세 교부들의 빨강에서도 풍요와 생명의 긍정적인 면과 인류 타락의 상징인 부정적인 면은 극을 달렸다. 파랑의 잔잔한 시간에 반해 빨강의 시간은 몰아치는 파도 같다. 빨강은 귀족층이 가장 선호하는 색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성적인 색으로 남성적인 색으로 그 상징성을 동시에 지니기도 하였다. 그래서 빨강의 이야기는 지루할 수 없는 다양함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용맹스럽게 때로는 잔인하게 또 때로는 영예로운 이야기로 말이다. 무엇보다 사랑의 빨강은 관능적이면서도 따뜻하다. 우아함과 매혹적인 빨강은 누군가를 유혹하거나 무언가를 욕망하는 색이기도 하다. 빨간 열매는 사랑의 상징물이 되었다. 특히 체리는 젊은이들이 사랑을 고백할 때 쓰였으며, 체리는 젊음이며 봄의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빨강의 역사도 교회에선 속임수와 죄악의 상징성을 지니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중세 채색 화가들의 그림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빨강의 옷을 입혔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로 붉은색 드레스나 망토를 입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빨강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창녀라는 예전의 신분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제 독보적인 빨강의 위치는 막강한 경쟁자를 만나면서 무너지게 된다. 필적할 만한 상대가 없을 만큼 빨강의 시대는 화려했다. 하지만 파랑의 등장은 이 모든 것을 역전시킨다. <파랑의 역사>에서 이미 읽었지만, 12세기 중엽부터 13세기 초 사회적, 예술적, 종교적 삶의 모든 분야에서 파랑의 가치 상승은 빨강의 영광을 과거의 뒤안길로 보내 버렸다. 이렇게 파랑의 혁명은 시작되고 역사적인 신분 상승과 함께 파랑의 위치는 현대까지 이어졌다. 빨강과 파랑의 전쟁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염색업자들의 경쟁과 그들과 관련된 모든 면에서 사회적인 갈등이 생겨났다.

 


중세 봉건 시대의 빨강의 독보적 위치는 이제 배척당하고 추락한다. 이제 빨강은 모든 색 중 가장 추한 색 중의 하나로 포함되기도 한다. 흑사병 이후 빨강의 위기는 사치 단속령과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에 의한 색의 새로운 체제에서 버려짐으로 더 심해진다. 그리고 과학의 진보와 아이작 뉴턴의 스펙트럼 발견으로 빨강의 색의 단계는 점점 더 한쪽 끝으로 밀려났다. 빨강은 이제 지옥 불에서 악의 상징으로 남는다. 빨강과 악마는 불가분의 관계다. 우리가 아는 체스에서 빨강 말과 흰색 말의 대립은 체스가 유럽으로 넘어오면서 원래 빨강과 검정의 대비에서 바뀐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속에서의 빨강은 죄의 색인 동시에 징벌의 색이었다. 그리고 낙인의 대명사 빨강은 글자에서도 줄을 긋는 것에서 상징성을 더했다. 이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금지에 관련된 빨강의 위치다.



화가의 팔레트에서 빨강은 매우 다양한 색조로 변조되었고 섬세하게 다뤄졌다. 17세기는 과학적인 측면에서 색의 전환기였다. 이제 색의 영역에 과학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색은 곧 빛이며, 다양한 환경에서 빛은 물리적 변화를 겪으면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제 색은 제어 가능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많은 화가의 팔레트에서 그들의 호기심은 부풀어 올랐다. 18세기는 화려한 빛의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많은 이들이 밝고 선명한 색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유행에서 빠진 색이 있다. 바로 빨강이다. 18세기는 파랑의 시대였다. 빨강은 힘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빨강의 여러 색조 중 주목받지 못했던 색조인 분홍의 위상이 달라진다. 당시까지 분홍 색조를 명명하던 이름이 없었다. 고유의 이름이 없던 색 분홍은 아름답고 우아한 색이었다. 그리고 당시까지 색 배열에서 분홍은 빨강과 흰색의 조합이 아니었다. 분홍은 노랑 계열이었다는 점이다. 노랑의 연하고 우아한 버전으로 정의되었다. 18세기에 중엽에는 분홍의 인기가 절정에 달한다. 그리고 당시 분홍은 여자들의 색이 아니라 남자들의 색이었다. 여성화된 분홍으로 고착된 시기는 1930년대 이후로 그리고 1970년 바비인형이 분홍 옷을 입고 나타남으로써 여자아이들의 놀이와 함께 더 고착되었다.

 


18세기 귀족들은 투명한 하얀 얼굴 푸른색 피정맥이 보일 정도의 얼굴빛을 띠고 백연을 두껍게 발라 주름을 감추고 입술과 뺨에는 붉은색을 칠하지 않고서 나타나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프랑스어 루즈(rouge)는 당시 화장품을 가리키는 단어처럼 쓰였다. 프랑스 궁정의 남녀 모두가 사람들 앞에서 화장품을 휴대하여 덧발랐다. 화장품은 시대를 불문하고 필수라는 사실에 별 놀랍지도 않지만, 비슷한 모습들의 오버랩은 늘 아이러니하다. 화장의 색조 계에서 빨강은 독보적이다. 19세기 조명과 새로운 사회에 맞춘 간결하고 세련된 화장법이 유행하였다. 그리고 빨강은 사회 질서 밖에서 예술가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색이 되었다. 진한 화장과 빨강의 상징성은 캔버스 위에서 춤을 추었다. 빨강은 지금도 여전히 화장품 회사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붉은 입술과 불그스름한 뺨은 젊음의 상징이고 건강의 상징이다.

 



1960년대 이후 색은 자유를 맞이한다. 그리고 빨강의 상징체계는 더 다양해진다. 정치적 색으로 빨강의 새로운 의미가 부가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속에서 탄생한 정치적 빨강은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끊임없이 투쟁하였다. 20세기에는 국제적으로 다시 위상을 획득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급진파, 혁명파 등의 상징인 빨강은 이념의 색으로 강렬하게 남았다. 빨강은 유난히 정치적인 색이다. 그리고 분홍은 온건한 노선의 급진파의 색이 되었다. 빨강의 역사가 더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은 정치색이 짙어서 일지도 모른다. 유혈 사태를 연상케 하는 급진적인 색 빨강은 이렇게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 잡았다. 위험을 경고하는 빨강은 평화적인 상징이다. 빨강은 반항적이거나 폭력적인 색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경고를 알리는 신호였던 빨강은 구조를 위한 색이었다. 하지만 1791717일 혁명의 날, 분노한 백성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 빨강 깃발은 억압받고 분노한 민중의 깃발이었다. 그들이 바라던 자유의 상징이기도 했던 빨강은 전제군주제에 저항하는 투쟁의 색이기도 하였다.

 

 

시대를 지나면서 한 가지 사고의 흐름은 색의 다양한 상징성을 박탈한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빨강의 상징성처럼 요즘에는 녹색이 그 뒤를 밟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열렬한 생태운동가들과 녹색은 또 다른 빨강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환원주의적 태도가 색의 상징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휩쓸림에서 살아남기는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한 가지 개념이 아니라 여러 개념의 다양한 표현을 가질 수 있는 색이 존재할 수 있는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일 것이다. 모두가 획일화된 사고방식으로 흘러갈 때, 그 사회는 극으로 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성격에 따라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사회, 색의 변화무쌍한 상징성을 허락하는 사회를 <빨강의 역사>를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정치적인 색 이외에도 많은 상징성을 내포하는 빨강은 일상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색이다. 금지와 경고를 알리는 빨강은 일상생활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존재다. 위험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의 빨강은 다소 금지의 의미인 부정적인 개념으로 많이 쓰이지만, 분명한 건 우리를 보호하는 색이다. 공포를 의미하는 빨강은 때론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들지만, 이는 위험한 색만은 아니란 것이다. 무엇보다 빨강의 강렬함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색이다. 그래서 광고나 홍보에서 빠질 수 없는 색이다. 매우 감각적인 색으로 힘이 있는 색이다. 기쁨과 축제의 색, 공식 석상에서 레드 카펫은 대중을 압도하는 색이다. 빨강의 장엄함과 위엄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극과 극을 잇는 빨강의 극적인 역사는 역동적이고 파란만장하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위치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생동감 넘치는 색이다. 그렇게 활력을 주는 빨강은 우리에게 자양강장제 같은 색이다. 빨강이 취향적으로 선호하는 색이 아닐지라도 분명 빨강은 우리에게 힘을 발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빨강의 역사>는 감당하기 무거울 수 있는 버거운 역사다. 하지만 파랑이든 빨강이든 우리의 삶에서 함께한 이들의 역사가 그 자신만의 역사가 아니란 점이다. 우리의 역사다. 그러기에 버겁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다. 감당해야 하고 일상에서 나와 함께한 모든 것이 역사의 흔적이라 생각하면 빨강의 역사도 나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막시무스 2021-02-06 0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빨간색에 이토록 깊은 역사와의미가 있다니 정말 놀랍네요!ㅎ 그리고생각해보니 우리 민족도 빨강에 대해 상처, 오해, 낙인등이 찍혀있는듯 하여 서글프기도 하구요! 덕분에 주말 아침에 너무 좋은글 읽었어요! 즐건 휴일되십시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