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 [초특가판]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1
피터 웨버 감독, 스칼렛 요한슨 외 출연 / 기타 (DVD)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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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요하네스 베르메르, 1665년 작품

출연/콜린 퍼스, 스칼렛 요한슨
감독/ 피터 웨버



요며칠 가을비와 바람이 가져다주는 차가움은 어느새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안타까움을 던져 주었다. 이 가을이 가기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시간에 대한 미련에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찾은 영화 한 편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네덜란드의 황금기 17세기는 경제적 부흥과 동시에 문화도 황금 꽃을 피웠다. 특히 부유층의 예술가의 후원은 그들의 활발한 작품 활동을 도왔다. 작품 제작을 의뢰하고 주문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영화 속 인물 또한 당시 화가 렘브란트와 함께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요하네스 베르메르‘다.

네덜란드의 황금기 1665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영화는 그의 작품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탄생하는 과정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알려진 이 작품에서 주인공 소녀의 실존 여부는 아직도 논란이 많지만, 오묘한 그녀의 표정과 분위기는 명화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작품이다. (참고로 책에서 소녀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명한 ‘트로니(Tronie)라는 회화 연구 기법으로 특정한 얼굴 타입을 상상하여 만든 모습‘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경을 유심히 보면 베르메르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소품과 배경들이 얼핏얼핏 눈에 들어온다. 연출의 디테일함이 보이는 장면이 꽤 많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작품 <와인잔을 들고 있는 소녀> 에서 붉은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는 젊은 여인과 그녀를 아주 음침한 눈길로 술잔을 거들고 있는 남성이 보인다. 영화 속 등장 인물이 이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보이는 아주 간사한 눈빛과 함께 후원자의 간교함이 드러나는 감독의 연출은 정말 흥미있는 장면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작품 속 테이블 위 은쟁반에 있는 노란 레몬의 의미를 안다면 더 재미지다. 당시 레몬은 와인의 풍미를 더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지만, 회화에서 ‘레몬‘의 의미는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경고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다.

이 영화가 흥미진진한 영화는 절대 아니다. 정말 조용하고 잔잔하다. 그래서 지루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런 잔잔함과 여운을 즐기는 나로서는 꽤 괜찮은 시간이었다.
영화는 당시 예술가와 후원가의 관계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 생계를 위해서 작품 활동을 해야만 하는 예술가로서의 고뇌가 담겨 있다. 그리고 하인과 주인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맨스도 담고 있다. 물론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든 이야기일지라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탄생 배경이 될 수 있는 스토리가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집안의 몰락으로 인해 하녀로 일하게 되는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하녀라는 직분으로 ‘순응‘하면서 살지만, 결코 자신을 놓지 않는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작품에 작지만 영향력을 미치기도 한다. 베르메르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신의 느낌대로 ‘의자‘를 치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트의 과감한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쾌감과 희열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용히 ‘그리트‘의 느낌을 읽고 작품에 담아내는 베르메르는 그의 그림에서도 의자를 치웠다.

조용하지만 둘의 관계는 시간이 갈 수록 애잔하게 다가온다. 어느새 서로의 마음에 들어선 감정들은 그들의 눈빛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소리없는 애원, 선을 넘지 않는 서로의 절제에서 그들의 간절함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과 간절함은 더 관능적이었다. 그래서 더 설레임을 자극했다. 자극적인 장면과 대사 한 마디 없지만, 온몸의 세포가 반응하는 시간이었다. 책이 주는 베르메르의 우울함이 영화에서 로맨틱한 감성을 던져 주고 상상력의 무한한 창을 열게 하는 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또 한 권의 책과 영화 한 편으로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과 그의 이야기로 감성 풍만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하루도 감사해야 될 것 같다.

이 지나가는 가을 감성을 정확하게 자극하고 적중한 영화를 만나게 해 준 것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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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11-04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밤에 맥주마시면서 이 영화를 보고 싶어 지네요! 좋은 소개 감사합니다!ㅎ

이뿐호빵 2020-11-04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딱 좋은데요ㅎㅎ
즐감하세요~
 
누가 백인인가? - 미국의 인종 감별 잔혹사
진구섭 지음 / 푸른역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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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넘기 어려운 수만개의 장벽


미국을 이해하는 키워드 인종과 인종주의

책의 저자는 미국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게 인종이라고 말한다. 미국사에 아주 깊이 녹아있는 인종의 영향력은 미국의 흑역사이자 그림자다. 그 역사의 시간이 길기도 하고 깊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미국이 어떻게 인종이 제도와 관습화 되었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여전히 미국 사회는인종 차별과 갈등이 많다. 그렇기에 미국의 실상을 파악하려면 인종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란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차별, 그리고 인종 차별의 문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드러나지 않지만 미국 못지 않은 보수적인 통념은 많은 것을 거부하는 민족임에는 틀림없다.

잠깐 다른 이야기지만, 책을 읽는 순간 한 이미지가 계속 머리 속에서 아른거려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인종‘하면 개인적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광고 캠페인이 생각난다. 꽤 오래 되었지만 뇌리에 강하게 박힌, 충격적인 베네통의 광고는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세 개의 심장에 적힌 인종, 하지만 심장의 색은 똑같았다. 붉은 피가 흐르는 심장은 인종의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파격적인 베네통의 광고들은 많은 분란을 낳기도 하지만 메세지는 분명했다.
그 캠페인의 중심에는 책임자이자 사진 작가인 ‘올리비에로 토스카니‘가 있다. 그로 인해 베네통의 기업 이미지는 늘 강렬한 메세지를 전한다. 조금은 선정적이고 충격적인 표현에 놀랄 수도 있지만, 이런 광고의 영향은 나름 의미도 있고 필요할 때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관심을 일으키는 방법에는 이만한 것이 없으니까

미국의 건국 이념 ‘평등‘과 ‘자유‘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성경‘이 자연세계의 안내자 역할을 하였고 이는 ‘비정상적‘인 것과 백인과 미국인을 만들어 냈다.
˝누가 백인인가?˝
˝누가 미국인인가?˝
‘누가 시민권자이냐‘는 질문과 맞물려 원조 백인과 그 백인의 범주가 유동성있게 점점 범위를 넓혀가는 역사를 들여다 본다.
식민지 시기와 독립초기 백인의 자격은 영국계로 기독교를 믿는 정착민으로서 자신의 재산을 소유하고 납세 의무를 준수하며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시민으로 국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백인의 범위는 점점 역사와 물려 확장된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피부색으로 인종을 나눴다는 아주 단순한 사고는 여기서 무너진다. 미국사에서 만들어진 인종의 개념은 결코 피부색은 별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는 초기 백인의 자격을 갖춘 시민 외 다른 집단은 ‘흑인‘의 위치에서 차별을 받았다.
백인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정의된 부류로 그 경계가 불분명하고 그 범주 안에서 다양한 집단이 섞여있는 ˝인간이 자의적으로 재단한 범주˝이다. 그리고 여기서 같은 맥락으로 ‘누가 한국인인가‘라는 주제와 관련해서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인‘이라는 카테고리도 근본적으로 법적이자 정치적 문화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조금은 황당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연필 테스트‘ 흑인 감별법 이야기가 등장한다.
18세기와 19세기 미국의 흑인의 인종 판정 기준을 설명하면서 20세기 초부터는 ‘피 한 방울 법칙‘이 등장한다. 이 법칙은 인종 결정의 확고한 기준으로 자리 잡아 흑인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인 백인은 오염된 백인으로 간주하는 당시 풍습도 증명되었다. 마치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노예의 절대적인 고립과 똑같다. 정말 단순한 법칙에 따른 감별법은 누구라도 흑인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으면 이는 흑인인 것이다.

인종 차별 고착화의 과정에서 제일 먼저 이바지 한 ‘교회‘와 ‘과학‘과 ‘법‘의 역사에서 미국의 개신교의 흑역사를 보았다. 여기에 ‘과학적 인종주의‘를 파고 들면서 과학적 인종주의의 대표적 인물과 저서들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인종 권력이 법과 법률에서 인종 범주화에 미친 막대한 영향력을 설명했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인종은 창작되고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허구이자 동시에 실재라는 말이다.˝

작가는 말한다. 인종과 인종주의가 더이상 먼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문제이고 과제인 것이다. 이미 뿌리 내린 인종 문제는 한국에서도 심하게 갑질 문화를 낳고 있다. ‘다름‘을 인정하자는 문구들이 자주 등장하는 요즘이다. 인종을 떠나 ‘차별‘을 낳는 맥락을 같이하는 혐오들은 현대 사회에 차별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을 정도다.
학벌, 출신 지역, 종교, 국적, 젠더 문제, 계층 등을 나누고 배제와 혐오하는 사회는, 편견이 가득한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같이 공존할 때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쉽게 말한다. 다름을 인정하기까지는 분명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깬다는게 결코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정리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은 종교와 교회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에서 절대 빠지지 않고 어마한 영향력을 끼친 종교의 힘이 궁금해진다.
가장 보수적 단체를 대표하는 교회, 너무 커져버린 그들의 덩치와 수많은 분파들 그리고 그들 권력을 정치화하는 것.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가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것에 과연,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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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의 우주 3부작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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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가 매순간 느끼는 감정들이 우리의 실체다.

‘‘내게 삶, 이 짧은 삶은 감정들의 끊임없는 외침에 불과하다.
이 외침은 우리를 이끌어 하느님의 이름 안에, 정치적 신념에, 우리를 안심시키는 의식 안에 가두어 결국 정리된 상태로 아주아주 거대한 사랑 안에 머물게 한다. 결론적으로 아름답고 찬란한 외침인 것이다. 이 외침은 때로는 고통이 되고 때로는 노래가 된다. ‘‘
p278


우리는 이 감정들에 애정을 쏟으면서 삶을 이끌어간다.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이 감정들이 때론 꼬이기도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허무하게 만드는 커다란 구멍들도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헛점들과 모든 것들을 인지하는 순간의 감정도 우리들 삶의 부분인 것이다.

철학적인 면이 가득한 책이다.

양자학, 물리학으로 어려운 시간의 개념을 증명하고 설명한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결국 우주의 시간에 비해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주적 관점으로 그 찰나를 사는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미미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근시안적 관점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우주의 시간 속에서 너무나 느려 그 흐름을 느낄 수도 없을것이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오버랩되는 책, 그래서 이 책을 넘기면서 나는 다시 <코스모스>를 만났다. 그리고 지구의 속삭임을 다시 들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코스모스‘의 일부분인 아주 작은 지구라는 한 생명체 우리의 감정을 파고 들었다. <코스모스>는 아주 거대한 우주에서 구석에 위치한 아주 작은 지구를 이야기 한다. 지금이라는 이 시공간을 사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감정의 연속들로 채워진 나의 시간은 멈췄다. 아니 보이지 않지만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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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가 매순간 느끼는 감정들이 우리의 실체다.

‘‘내게 삶, 이 짧은 삶은 감정들의 끊임없는 외침에 불과하다.
이 외침은 우리를 이끌어 하느님의 이름 안에, 정치적 신념에, 우리를 안심시키는 의식 안에 가두어 결국 정리된 상태로 아주아주 거대한 사랑 안에 머물게 한다. 결론적으로 아름답고 찬란한 외침인 것이다. 이 외침은 때로는 고통이 되고 때로는 노래가 된다. ‘‘
p278


우리는 이 감정들에 애정을 쏟으면서 삶을 이끌어간다.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이 감정들이 때론 꼬이기도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허무하게 만드는 커다란 구멍들도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헛점들과 모든 것들을 인지하는 순간의 감정도 우리들 삶의 부분인 것이다.

철학적인 면이 가득한 책이다.

양자학, 물리학으로 어려운 시간의 개념을 증명하고 설명한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결국 우주의 시간에 비해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주적 관점으로 그 찰나를 사는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미미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근시안적 관점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우주의 시간 속에서 너무나 느려 그 흐름을 느낄 수도 없을것이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오버랩되는 책, 그래서 이 책을 넘기면서 나는 다시 <코스모스>를 만났다. 그리고 지구의 속삭임을 다시 들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코스모스‘의 일부분인 아주 작은 지구라는 한 생명체 우리의 감정을 파고 들었다. <코스모스>는 아주 거대한 우주에서 구석에 위치한 아주 작은 지구를 이야기 한다. 지금이라는 이 시공간을 사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의 나의 감정의 연속들로 채워진 시간은 맘췄다. 아니 보이지 않지만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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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갇힌 남자》,데이비드 발다치

모처럼 시간이 남아 한 시간 가량의 산책 시간이 생겼다. 정말 움직이지 않는 나로서는 부끄럽지만, 두 다리 보다는 네 개의 타이어와 핸들을 잡은 두 손의 움직임에 의지를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운동의 필요성을 알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힘든게 운동이라 누군가 억지로 끌어내지 않으면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던 내가 슬슬 자발적 운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움직임에 절친은 역시, 현대 문명의 최고의 발명품 스마트 폰이다.

산책을 하면서 귀에 이어폰을 끼고 오디오북을 듣는 재미는 귓가의 음악 소리보다 더 솔솔하게 들려온다. 대 자연을 앞에 두고 이 무슨 무례한 짓인지 생각도 든다. 가을빛으로 물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눈 앞에 두고, 자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차단한 무례함을 말이다. 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찻길 옆에 조성한 인위적인 숲길이라 자연적인 소리보다 지나가는 차량의 소리가 더 크다. 그래서 그 어색함의 부조화에서 나의 선택은 내가 듣고 싶은 것을 듣는 것, 즉 오디오 북을 듣는 것이었다. (참고로 나는 운전할 때만 음악을 트는 경향이 있다. 나름 운전에 집중해야 되는 것도 있지만,  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

나의 독서 습관은 한꺼번에 여러 종류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상 위는 늘 책탑이 쌓여있다. 다른 책에 점점 밀려 가장 밑에 있던 책을 오디오 북에서 골랐다. ‘ㅁㄹ의 서재‘ 구독은 이럴 때는 정말 유용하다. 전 국회의원이자 범죄 심리학자인 표창원이 들려주는 ‘데이비드 발다치‘의 범죄 소설, 뭔가 확 와닿는다. 그리고 왠지 걸어가는 발걸음에 힘이 실려 더 씩씩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진실에 갇힌 남자》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과거 학창시절 ‘애거사 크리스티‘에 빠져 야자 시간에 몰래 도둑책을 읽던 기억까지 소환하는 재미를 주었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범죄 사건을 밝혀 나간다는 사실과 그 과정을 보는 순간 심하게 빠져드는 마력이 있다. 실제로 퍼즐 같은 복잡한 문제가 때때로 머리를 쥐어 뜯게 하지만, 하나씩 풀어가는 재미와 유추해가는 시간은 자신도 모르게 범죄를 밝혀가는 탐정이 되는 시간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명석한 두뇌와 문제 해결력으로 하나씩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은 희열을 맛보는 순간이다. 최강의 몰입과 귓가에 들려오는 긴장감은 점점 두 발의 속도를 바꿔놓았다. 얼마전 넷플릭스의 셜록 홈즈를 정주행 했던 시간과 함께 겹쳐서 머릿속은 온통 사건의 이미지로 꽉 들어찼다.

결국, 빨라지는 발걸음은 한 시간만의 산책을 급히 끝내고 집으로 들어와 책을 찾아 손에 쥐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불만은 이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한다는 것에 기분이 상했다. 일을 해야 된다는 것, 원없이... 내가 원할때 이 기분을 망치지 않고 몰입 가능한 시간을 언제쯤이면 맘껏 누릴까라는 조바심이 생겼다.

책의 주인공 ‘데커‘는 한때 미식 축구 선수였다. 당시 그는 큰 부상을 입고 뇌에 외상을 입게 된다. 그리고 부상당한 뇌부위의 구조가 바뀌어 ‘과잉 기억 증후군‘과 ‘공감각증‘이라는 두 가지 증상이 생겼다.

그에게 다시, 가족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 불운이 닥친다. 그의 사랑하는 딸과 부인 그리고 삼촌인 세 사람의 죽음은 가장 행복한 날인 딸의 생일날에 일어난다.  끔찍한 눈 앞의 믿지 못할 장면을 목격한 그는  늘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힘들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자신의 증상을 저주하게 된다.
모든 걸 기억하는 데커의 능력은 그를 힘들게도 하지만 그 능력은 범죄 수사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삶에서 생긴 구멍들을 범죄자를 쫓고 잡는데 이용했다.

이야기는 데커가 딸의 생일날을 기념하기 위해 묘지를 찾으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과거 그가 맡았던  사건의 범인인 ‘메릴 호킨스‘를 만나게 된다. 메릴 호킨스는 병에 걸려 죽음을 코앞에 두고 가석방되었다. 인간적 석방인 것이다. 그는 또 자신을 검거한 데커에게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며칠 뒤 호킨스는 살해된다. 

의문의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럴수록 13년 전 자신의 수사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죄책감과 함께 다시 바로잡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0... 노력한다.
13년 전과 똑같은 단서, 흩어진 단서들을 다시 주워서 조립하는 데커에게 예전에 그냥 지나쳤던 단서 하나하나가 다시 쌓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조금씩 들어나는 구멍들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구멍을 아는 순간 자신의 미흡하고 초보적인 실수에 자책하는 데커는 ‘진실‘에 대한 더 강한 이끌림을 받는다.

과거 강렬하게 진범을 밝혀내고 싶은 욕망은 억울하게 ‘호킨스‘를 범인으로 지명했던 것이다. 단순하고 확실했던 단서인 ‘지문‘ 앞에서 다른 단서들을 묻어 버리는 결과를 낳았던 것. 범인들의 흔적들은 그렇게 단정짓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무엇인가를 단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어리석은지 알게 되는 순간이다. 단정짓는 순간, 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일이 돼버린다는 사실이다.

아주 오랜만에 CSI영화 한 편을 보는 듯 일하기 싫을 만큼의 흥미있는 책을 읽었다. 가끔씩 이렇게 감초같이 달작지근한 맛의 책은 책상 위의 탑에서 찾는 자극제가 된다. 여러 종류의 책을 보는 나의 독서 습관에서 몇몇의 장르는 시간의 틈을 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 그날 끝을 내야 속이 후련해지는 책이다. 그래서 이런 중독을 피하기 위해 지루하거나 시간이 부족할 때 넘긴다. 그렇지만 가끔 그게 오히려 더 독이 될 때가 있다. 이 책을 든 순간이었다.

13년이 지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사건의 재수사가 어려운지 이 책을 보면서 조금 느끼게 된다.
지난 시간에서 지워진 기억들을 다시 떠 올리게 한다는 것이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추억이라는 감성을 자극하는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들로 살면서 꾹꾹 눌러 아주 구석진 곳으로 억지로 눌러 박았던 기억들이다. 가끔씩 스멀스멀 올라오기라도 한다면 더 잊어버리기 위해 숨길 것이다. 이렇게 영원히 꺼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기억들은 외부적인 자극으로 인해 건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이들은 살아갈 수 있다. 책 속의 인물들도 그랬다.
13년 전 관련된 인물들을 찾아서 재조사를 한다는 것이 다들 반가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끔 범죄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인물의 등장, 돌발적인 인물의 등장은 우연한 기회로 휘말리게 되어 억세게 재수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다. 반면에 사건과 치밀하게 관련되어 이야기의 맥락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로 이야기 내내 재미를 주는 인물일 수도 있다. 이 책 속의 ‘마스‘처럼 말이다.
셜록홈즈와 왓슨의 브로맨스를 여기서 볼 수 있다.

‘호킨스‘는 억울하게 범인으로 지명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10년 이상의 징역을 살았다. 그리고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 병든 몸이 되어 그는 살해를 당했다.
범죄 소설과 추리 소설의 묘미는 반전이다. 역시 이 책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로운 장면이 꽤 많다. ‘범죄 스릴러‘ 그 긴장감의 절정을 느낄 수 있다.
호킨스의 운명은 이 사건에서 ‘장기판‘의 말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다. 점점 드러나는 엄청난 사건의 전말과 숨어있는 진실의 남다른 스케일이 깔려 있다.

사건을 수사하면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범죄의 동기, 하지만 드러난 것은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진실‘은 들춰내야 한다. 그리고 찾아야 한다.

잘못된 과오를 다시 바로 잡으려는 데커
그에게 주어진 제 2의 기회, 그는 다시 진실을 밝혀 낸다. 그의 죄책감과 그의 변화와 성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을 재미나고 유쾌한 영화를 보고 나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진실이 늘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건 아니에요.
때론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 될 수도 있죠.˝

물론이다.
하지만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 앞에서 우리의 태도는 절대 단정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은 우리가 들여다보지 않으면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대하는 태도는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가 나에게 쾌감을 주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적극성이다. 

‘아주 적극적인 진실 파헤치기‘
답답한 시국에서 조금이라도 ‘시원한 뚫림‘을 원한다면 적극 권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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