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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문예 출판사)를 읽다가


니체, 베토벤, 플라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에 ‘니체‘ 사상의 집약체라 불리는 이 책을 찾았다.

그랬다.
이 책은 처음부터 겁을 주는 것이 거북스러웠다.
대강의 정보로 어느 정도 각오와 마음가짐으로 책을 넘겼다. 어려움이야 찬찬히 시간 두면서 보자는 마음으로 잡은 책이다. 그래서 욕심도 내려 놓았었다.

그런데 읽다가 책 앞의 ‘일러두기‘에서 말한 것이 자꾸 거슬린다.

많은 옮긴의 주가 붙어 있으며,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비유와 상징이 많아
주 없이 이해하기 무척 어렵기 때문에
이 주를 통해 충분히 이해하고
다시 자기의 안목으로 읽어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매우 친절한 책 읽기 요령

과연,

읽다가 자꾸만 신경쓰이는 것은 책의 내용보다 더 불편했다.
그래서 결국 전자책을 찾았다. 다른 출판사의 책을 하나 더 읽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출판사 ‘책세상‘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한결 읽기가 편하다. 결국엔 두 책을 번갈아 읽는 상황이 벌이진 것이다.
문예 출판사의 주 없이, 나는 출판사 ‘책세상‘ 책으로 이해하고 있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나는 뒤에 만난 ‘차라투스트라‘가 훨씬 친절하다.




문예 출판사의 영역, 일역본을 참고한 책이 아닌 ‘책세상‘

알라딘 책소개에서 가져옴⬇️

˝니체전집의 정본으로 평가받고 있는 독일 발터 데 그루이터 출판사의 <니체 비평 전집(Nietzsche Werke, Kritische Gesamtausgabe)>(전 23권)을 완역한 책으로 <유고(1887년 가을∼1888년 3월)>와 함께 먼저 출간됐다. 한국어판 니체전집은 전체 23권 중 14권이 국내에 처음 번역된 것으로 옮긴이들은 그동안 일어판 중역이나 비전문가에 의한 번역으로 인한 니체 원전의 훼손과 니체 철학의 개념상 오류를 상당수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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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 도시소설가, 농부과학자를 만나다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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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작가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좋다
친근한 눈 웃음의 그 매력에 빠져
(그의 글도 함께)
집엔 작가의 사인본이 몇 권 된다

작가는
곡성의 미실란의 대표이자 농부과학자인 이동현대표를 만나면서
그가 발견한 인생 두 번째의 발아의 시간을 발견한다

이 책의 목차는 벼농사의 여정,
파종부터 추수까지의 과정으로 짰다
총 5장으로 발아, 모내기, 김매기, 추수, 파종으로 이루어졌다


첫 장은 발아
‘‘한껏 솟아오르고 또 한껏 뻗어내려‘‘

그리고 농촌이야기들

이 책의 많은 질문들 중

‘‘당신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이름은 무엇인가‘‘

과연 살면서 내 깊숙한 곳을 건드린 이름이 있는지부터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럼 나는
밀란 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사비나‘가 떠오른 것은 나에게 이 책은 숙제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의 첫 장에 나오는

˝가끔은 단 한문장을 반박하기 위해 한 인생 전체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이 인용문을 본 순간 떠올랐던 작가가 밀란 쿤테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순간 책 속에서 던져지는 단어들과 문장들이 자꾸만 머리 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멍을 때리기도 하고 한참을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이 밀란 쿤데라의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제목에 끌려 아주 오래전부터 ‘무거움‘과 ‘가벼움‘을 달고 산 것 같다

작은 농촌 곡성의 아름다움은 그 곳에서 지내고 그 곳의 매력을 어느정도 겪어 본 사람이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아름다움이 없는 곡성은 그 흔한 아름다움은 없지만 아는 사람만이 아는 아름다움이 있다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끽한 후엔 그 경험에 어울리는 단어를 고심한는 법이다. 아무리 찾아도 하나뿐이었다. 아름다움!˝

그리고 비슷한 동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공감도 끌어낸다
누군가의 추억이 아름답게 남을 수 있다는 것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잊혀져 버린 시간이 된 것들을 말이다

˝ 다르게 아름답고 다르게 진실할 때 다른 삶이 펼쳐진다는 것을 ˝

책은 조용히 생각하게 한다
나의 고향에 대해서도 말이다
작가 김탁환과 이동환 대표는 둘다 고향이 시골이다 이러한 공통점
그래서 작가는 농촌과학자를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깨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연에서
그 속에서 찾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말한다
그리고 땅을 사랑하는 농촌과학자와 작가는

˝나이가 들었다고 발아하여 열매를 맺기까지 거쳐야 할 과정이 생략되진 않는다. 그와 나는 열매를 자랑하기보다 다시 그 속에서 씨앗을 품고 허리 숙여 땅에 심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늘 다르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정답처럼 고정된 아름다움이 아닌 다른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다
자연과 땅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그 속에 사는 모든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에서 질문한다 그리고 계속 답을 찾아간다
이러한 과정이 녹아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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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하루 2020-09-22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해지네요~~

레삭매냐 2020-09-2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소설을 주로 쓰시던 분인데
이번에는 다른 주제에 도전하셨나
보네요 :>

이뿐호빵 2020-09-22 11:1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역사소설로 만났어요
이번에 나온 신간은 작가의 에세이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른의 어휘력 - 말에 품격을 더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세상은 언어의 한계만큼 작거나 크다 ˝

책를 읽는다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보통 책을 읽는다고 한다. 하지만 책을 그저 읽는다는 것은 아이들이 글을 처음 배우고 읽는 재미에 빠져 낱글자를 읽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말이 통상적으로 책을 읽고 이해하는 단계, 그리고 그 책이 주는 힘까지 느끼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 같다.

과연 내가 읽고 있는 책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때 눈에 들어온 책이다.

긴 시간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읽고 술술 넘어간다.

무엇보다 새로운 어휘에 대해 친절한 주석을 달았다.
꽤 많은 어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capter3

어휘력을 키우는 방법들

1. 말맛을 파악하라
2. 글을 쉽게 쓰는 기초 요령
3. 수식어를 용언으로 돌려라
4. 생각이 충만한 게 먼저다
5. 틀 만드는 연습
6. 기본 문장 쓰기부터 능숙하게 익혀라
7. 문장 수집과 필사
8. 자료와 근거 제대로 활용하기
9. 논지를 만드는 힘 키우기
10. 변칙을 배울 수 있는 텍스트, 노랫말
11. 관점을 키우는 책 읽기
12. 콘텍스트 읽는 연습

꽤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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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9-15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사 좋네요 :-)

레삭매냐 2020-09-22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인 정 트렌카의 <덧없는 환영들>
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어렵지 않은 듯 싶은데 문맥이나
관점을 놓치는 게 아닌가 싶네요.

공감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와
내 것으로 만드는 이해는 다른 차원
이라는.
 
시녀 이야기 (특별판, 양장)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시녀이야기> <증언들>


이 책들을 판타지라고 해야 할지 스릴러라고 해야 할지 애매모호한,  무언가 딱 떨어지지 않는 작품인 것 같다. 책의 흐름을 보면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추어 연결고리를 만들고 그로 인해 이야기를 이해해야 한다는 면에서는 스릴러를 연상케한다.  시간과 공간적으로 해석을 하면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있는 믿지 못할 이야기다.

두 책은 관점을 달리한 ‘길리어드‘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역사적 기록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작가는 이러한 소설적 이야기를 풀면서 책의 마지막에 역사학자들의 ‘심포지엄‘ 장면과 함께 역사적 주해를 넣었다. 그래서 이야기는 우리가 속해 있는 세상의 밝혀지지 않는 사실적 발견이 그것을 심도있게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적인 이야기에서 마지막 ‘심포지엄‘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작가의 관점과 생각들이 그대로 녹아있다. 우리가 이해하는 역사적 사건과 그 진실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언제라도 그러한 진실이 밝혀져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두고 있다.

그렇게
<시녀 이야기>와 <증언들>은 과거 이야기, 역사적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길리어드‘라는 국가의 성립과 사회를 직접 겪었던 사람의 역사인 것이다.

<시녀 이야기>가 세상에 나온 뒤 그 후속편<증언들>이 나오기까지 3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그동안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또한 우리에게는 역사를 살아온 산 증인인 것이다. 그래서 인지 <증언들>은 그가 지금껏 살면서 느꼈던 그녀의 생각들이 그대로 녹아 있을지도 모른다.

독자의 입장으로 <시녀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고 불편했지만, <증언들> 두 번째 이야기 길리아드가 붕괴되고 증언들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을 읽고 마지막 심포지엄의 강연을 읽는 순간 이 책의 문학적 가치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두 책에 담긴 ‘심포지엄‘ 의 학술회 강연은 이 책을 쓴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이면서도 그녀가 주는 메시지를 어느정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은 우리가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말해 주었다.

두 번의 심포지엄

책은 먼저 ‘오브프레드‘의 ‘녹음 테이프‘들이 발견되면서 그녀가 살았던 ‘길리아드‘의 역사적 고찰이 이루어진다. 이야기는 이렇게 해서 <시녀 이야기>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하나씩 설명해 나간다.

개인적으로 유심히 보였던 것은 스토리 뿐만 아니라 심포지엄 강연회에서 ‘파익소토 교수‘의 강연이 더 인상적이었다.(두 책은 마지막에 심포지엄 장면을 남겼다)

그는 책 속에서 ‘길리어드‘에 관한 연구를 집중적을 한 역사학자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발견된 유물에서 우리가 과거를 유추하고 밝혀내는 것에 얼마나 많은 한계와 부딪혀야 되는지를 설명하며 녹음 테이트에 담겨진 사실을 증명해 나간다.

˝한 시대의 어떤 역사라는 것이 다른 사회들이나 그 후대의 사회들의 구성원들에게 교훈적인 전설이 아니라 위선적인 자기 만족의 기회로 받아들여지게 된 듯합니다.  길리어드인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틀림없이 지금까지 우리는 그런 도덕적  판단이 필연적으로 문화의 구체적인 특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길리어드 사회는 당시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었습니다. 인구 분포와 그 외 여러가지 압력이 있었으며 현재의 우리들은 좀 더 자유로운 요소들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난이 아니라 이해입니다.˝ (p513)

지난 역사의 어두운 면도 당시 시대적 배경과 흐름을 이해하면 이 모든 것이 해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과거 유럽인들이 신 대륙을 발견하고 그들 눈에 보인 원주민들에 대한 편견과 식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야만인으로 치부했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도 그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과 시대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 어떤 것에 대해 우리가 쉽게 단정짓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조금더 진화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는 작가의 태도가 보였다.
시녀 ‘오브프레드‘의 비인간적 상황들과 소설 속에서 인권이 유린된 채 지내는 모든 여성들의 처지,
이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더 자세히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히틀러라는 괴물이 독일을 장악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이 더 중요했던 것처럼, 그래서 역사적인 이야기보다 그 밑에 깔린 배경의 중요성을 책의 뒷면 심포지엄 강연에서 파익소토교수라는 인물을 세워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닌지.

아기를 담는 그릇으로 치부된 자궁 역할의 여성으로  비인간적인 실상이 끔찍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출산율이 적어서 사회적 문제가 심각했던 시기였다. 질병으로 인한 사산과 유산이 많았고 유전적 기형아의 증가 등으로 출산율 감소를 길리아드 사회는 이전의 낙태와 산아제한에서 보았다. 그리고 사회에서의 불임은 고의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시급한 선택은 극단주의 기독교적인 방식과 가부장적인‘일부다처제‘와 ‘대리모‘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건 그 속에서 희생양이 된 ‘여성‘의 안타까움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는 실수를 줄여야 한다.

˝새로운 체제를 기존의 체제에 덮어 씌우려고 할 때는 구체적 요소를 상당수 수용해야만 한다.˝
길리어드 사회도 이 법칙에서 예외 없이 수용해서 만들어진 사회다. 그 이전에 뿌리박혀 있던 인종차별주의적인 요소는 길리어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감정적 연료가 되었다는 것이다.
길리어드 사회의 가부장제, 참여 처형, 여성 통제 기관 등 이 모든 제도의 밑바탕에는 과거의 그림자들이다.

두 이야기

<시녀 이야기>는 1인칭 화자로 담담히 이야기 한다.
때론 과거를 회상하고 그리워하면서 한때 자신의 가족인 남편과 딸을 기억한다. 그들의 가족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사여부도 알 수 없지만 세상 어딘가에 있다고 믿으면서 살고 있다.
최대한 현실에 적응하면서 엎드려서 살고 있다.
그녀는 현재 시녀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성

<시녀 이야기>의 ‘길리어드‘ 전체주의의 충격적인 사회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계기는 ‘서른 개 남짓한 카세트 테이프였다. 그리고 이를 복원하여 힘겹게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한 결과물에 대한 설명은 소설의 끝부분 ‘심포지엄‘ 장면에서 알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
<증언들>의 ‘아르두아 홀 홀로그래프‘의 발견은 전 이야기인 <시녀 이야기>를 다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 원고의 기록자는 ‘리디아 아주머니‘로  <시녀이야기>의 화자인 시녀‘오브프레드‘와는 적대적인 관계다. 어찌보면 대립적인 관계를 역사적인 재해석으로 인해 결론은 전혀 다른 결말이 만들어졌다.
‘길리어드‘ 연구는 계속된다. 13차 심포니엄에 다시 모인 학자들은 이전의 심포지엄 강연보다 더 겸손하고 차분한 것 같다. 시대적 흐름과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이야기가 더 차분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녀 이야기>에서 나온 오브 프레드의  테이프 발견 이후 학계에선 두 건의 큰 발견이 또 이루어졌다.
<아르두아 홀 홀로그래프>라는 원고가 발견 되었다.
이 원고의 저자는 ‘리디아 아주머니‘로 <시녀 이야기>에서 읽었듯이 ‘여성 통제 기관의 지도자이다. 앞 선 책에서 그녀는 무자비하고 교활한 사람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뒤에 밝혀진 많은 것들이 그녀를 재해석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역사의 진실에 대한 한계를 여기서 또 한 번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것을 염두해 두고 책을 마무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녀 이야기>가 나오고 제법 긴 시간이 지나 <증언들>이 나오기까지 그녀의 의식변화와 생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증언들>을 읽고 있을 때는 더 몰입할 수 있었고 편했다. 불편한 이야기보다는 스릴러적인 면이 많아서 였을까 더 빠르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길리어드 붕괴 후 증언들의 목소리와 리디아 아주머니가 남긴 원고의 등장은 소설적인 면에서는 반전이다. 그리고 역사적 관점으로서는 <시녀 이야기>의 심포지엄에서 파익소토 교수의 말처럼 도덕적 판단에 앞서 ‘이해‘가 먼저라는 것을 보여준다.

리디아 아주머니
그녀의 이해가 없었더라면, 그녀는 역사속에서 영원히 악녀이거나 교활하고 그저 무자비한 사람으로 기억 될 것이다. 우리가 아는 진실이 불멸의 진실이 아니란 것을 인지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늘 다시 언제라도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실과 진실은 깨질 수 있고 재해석 될 수 있다는, 여지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증언들>의 마지막 심포지엄에서 나온 연구도 하나씩  밝혀져 간다. 그리고 역사학자들은 아주 희박한 가능성도 놓치지 않고 염두해 두어야 한다.

˝우리 연구 분야에서는 미지의 상자를 하나 열면, 다른 상자가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p586,증언들)

‘니콜‘과 ‘아그네스 제미마‘의 임무는 길리어드의 최종적으로 붕괴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폭로로 인해 길리어드의 고위 관리들의 비리와 비밀들의 폭로는 서로가 서로를 제거하기 위해 그들이 꾸며낸 음모이기도 했다. 폭로가 이루어지고 대거 숙청이 된다. 이들의 정권 말기는 온갖 부패로 혼란했고 정권은 점점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최고조로 달하는 순간 여러 외부적 공격으로 길리어드는 결국 붕괴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우연히 발견 된 ‘테이프‘는 잊혀졌을 시간을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작은 이 열쇠는 계속 이어져 많은 역사적 사건과 이야기는 지금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주변 가까이 심지어 내 옆에서 존재하는 모든 사실과 진실이 묻힐 수 있다.  누군가의 호기심과 누군가의 도전과 우연의 발견이 없었더라면 이 모든 것은 영원히 잊혀져 가거나 지나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관심‘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이 또 한번 느껴지는 순간이다. 어딘가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발견할 확률도 많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길리어드의 역사가 묻혀져 지나칠 수 있었지만 ‘메이데이 저항운동‘ 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던 중 ‘도서관 책‘ 중에서 밝혀진 단서는 그동안의 퍼즐 조각을 완전히 연결시켰다.

이 책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과 그것을 고증하는 과정의 흐름을 말하면서, 이러한 과정에 매우 신중한 태도가 필요한 것을 강조하는 것 같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과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즉 역사적 태도를 심포지엄을 통해서 말해주는 것 같다. 이는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당부가 엿보이는 장면이다.

책을 다 읽은 다음 우리는 ‘니콜‘과 ‘아그네스‘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냥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역사학자들의 섬세한 고증과 사소한 단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관심의 힘이다. 성급한 오류를 범하지 않게 모든 여지를 최소한 줄이기 위한 노력과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의 확신있는 이야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비로소 세상으로 나와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증언들>의 심포지엄 강연은
˝우리가 발견한 기록에 등장하는 몇몇 핵심 인물과 최초 서신들의 연관성이 몹시 강하게 떠오른다는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퍼즐 조각을 채우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시녀 이야기>와 <증언들> 두 이야기를 읽고
소설이지만 어두운 역사책을 읽고 중세기적 암훌했던 시간을 느끼면서 여성으로 착찹한 기분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면서 유난히 화려했던 <시녀 이야기>의 책 표지 또한 의미있게 다가온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시녀들, 얼굴도 알아 볼 수 없는 모자를 쓴 그녀들 그리고 주변에 화려한 꽃들 사이에 숨어있는 이야기 속 단서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저 화려함 속에 숨어있는 어두운 현실은 가까이서 들춰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닌 현실인 것이다.
<증언들>의 짙은 청색의 표지는 불완전하고
성숙하지 못한 체제가 무너지고 담담하게 하나씩 뱉어내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전 권의 화려함의 위장술을 벗어버린 담담한 원래 색으로 돌아온 책이 남았다.
갠적인 생각으로 책을 마무리하면서 두 책에 대한 표지의 연결고리를 나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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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9-1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제가 잘 몰라서 길리어드를 구글링하고 있었습니다. 제약 회사 길리어드는 아는데 ㅜㅜ
책 속의 가상 국가이죠? ...

이뿐호빵 2020-09-13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네
제약 회사 이름이 길리어드라는 것에 놀랍니다ㅋ

초딩 2020-09-13 01:00   좋아요 0 | URL
네... 그것도 세계 10위여 ㅋㅋㅋㅋ
좋은 밤 되세요~
 
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바람이 불어가는 곳으로 가는 모비 딕‘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는 선장 에이해브‘

끝없는 향해가 시작된다


다른 책과 겸해서 읽다보니 제법 오랜 시간을 걸쳐 넘기게 된 책이다. 거의 3주 가량 걸린 것 같다. 페이지수의 방대함도 있지만 ebook으로 틈틈히 읽으면서 자투리 시간을 제대로 활용한 책이다. 오가며 중간중간 읽는 책치곤 그 깊이가 제법 있는 책이라 틈틈히 몰입하게 되는 때에는 다른 걸 잊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차안에서 구절구절 생각하게 되는 책의 힘이 만만치 않아 무진 애를 쓰며 운전에 집중해야 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일상에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우울한 현실과 <모비 딕>의 비극적인 결말이 더 착찹하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사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 훌륭한 고전이라 전문적인 서평도 많지만,
나에게 <모비 딕>과 작가 ‘하멀 멜빌‘은 바람같은 존재로 와닿았다. 올 여름은 유난히 아쉬움이 남는다.
지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며 선뜻 다가온 가을을 맞이하는 시점, 그 시간의 무상함과 삶의 오묘함을 이 바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로 느낄 수 있다.
<모비 딕>은 나에게 그렇게 지나면서 한참 생각하게 만든다.

하멀 멜빌의 의식과 작품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해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49세 이후 세관원으로 일하다가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이름은 문학사에 한 줄 정도 언급되는 정도였다고. 하지만 100년이 지나고 나서야 재평과 되어 극적인 부활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사람으로 세계 문학의 거장으로 이름을 남기고 있지만 살아 있을 때는 물론 죽어서도 오랫동안 관심조차 받지 못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사후에 그 가치를 인정 받은 대표적인 인물 고흐보다 더 비운의 인물이 아니었을까 (고흐는 그래도 10년 정도 후에 인정받은 게 비하면)그래서 한 시대를 살았던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예술과 문학은 한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영원하다고 말하는 것일수도..

너무나 유명한 고전이지만 진지하게 읽어 본 적 없는 고전 <모비 딕>

책의 첫 문장 ˝Call me Ishmael˝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이 첫문장, 번역가의 문학적 번역의 고민은 책 뒷부분에 자세히 설명되어있다)
이야기는 이슈메일의 1인칭 시점으로 그가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회고록이다. (이슈메일은 작가가 만든 가상의 인물, 즉 자신이 아닐까)

당시 미국은 세계 포경산업의 중심이었다. 작가 하멀 멜빌도 한 때 포경선을 타고 고래를 잡기위해 바다를 떠돌았으며, 포경선을 탈출하여 당시 식인종이 산다는 미지의 땅에 도착해서 손님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포경선은 지구에서 알려지지 않는 곳을 찾아내는 개척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래잡이의 공적을 ˝포경선이야말로 오늘날 저렇게 강대해진 식민지 진정한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고 포경업을 변호한다.

˝충성스러운 영국인들이여 여러분의 왕과 여왕들의 대관식에 쓰는 기름을 공급하는 것은 우리들 고래잡이라는 것을 잊지 말지어다.˝

인물

이슈메일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에이해브‘선장과 커피 숍의 이름으로 유명한 ‘스타벅‘(여기서 유래라고 함) 그리고 이슈메일의 친구가 된 퀴퀘그. 그는 식인종이라 불리는 원주민이자 이단아다.
이슈메일은 야만인이라고 생각했던 그에게서 예민한 감수성과 예의바른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그에게 인간애를 느끼며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당시 인종 차별과 식민지에 대한 제국주의 적인 관점을 초월한 작가 하멀 멜빌의 생각이 보인다.
어떠한 편견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객관성은 <모비 딕>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다. 그 자신이 청교도의 개신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종교의 융합과 평등을 말하고 있다. 작가의 초월함이 <모비 딕>이 고전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인 것이다.
뭔가 우직한 퀴퀘그의 묘사는 그를 정감있는 인물로 느껴지게 했다.

그의 섬세한 관찰

이슈메일의 관찰은 포경선을 타러 가면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관찰은 좁은 포경선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과 포경선의 최후까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면서 아주 섬세하게 그의 관찰이 묘사된다. 당연 고래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 백과전서 수준이며 다양한 고래들의 습성과 처음 들어본 고래 이름들은 생물 도감을 찾아 보는 듯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야기의 진행이 느리다 보니 지루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욕심없이 틈틈히 읽다보니 꽤 흥미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방대한 고래의 지식은 고래에 대한 그의 사랑이 느껴지기도 했다. 인간의 무분별한 고래 잡이에 대한 생각도 함께 녹아 있었다.

˝우리는 모두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살해자다. 나폴레옹과 상어도 물론 여기에 포함된다.˝

좁은 포경선 위에 존재하는 서열에 대해서

˝영광은 덧 없고 인생은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바다의 돛대 망꾼과 육지의 돛대 망꾼을 결부시켜 이야기하는 부분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움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영웅들이 오른 자리에서 내려다 보는 시선과 갑판 위에서 벌어지는 혼란스러움에 응답하지 않는 영웅들의 모습을 풍자했다.

이렇게 포경선은 망망대해에서 끝없는 향해를 이어나간다. 보통 포경선의 항해는 3년이나 4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의 배는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채 그들이 목적한 오직 고래 하나만 집중한 채 바다위에 떠 있는 것이다.

에이해브 선장의 목적은 흰 고래 ‘모비 딕‘이다 .
그의 편집광적인 아집은 모비 딕에게 자신의 다리 한 짝을 잃어서 생긴 것만은 아니었다. 상처입은 육신은 영혼으로 흘러들었다. 그렇게 육신과 영혼의 상처가 겹쳐 ‘모비 딕‘에 대해 편집증으로 인한 광적인 집착을 보였다. 인간의 광기를 그대로 표현한 인물 에이해브 선장은 선원들을 선동한다. 결국 모비 딕에 대한 복수를 위한 항해에 선원들이 이용된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질문한다.
이 항해의 위험성을 알고 유일하게 반대하는 ‘스타벅‘의 미덕과 상식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선장의 분노에 열광적으로 응했던 선원들, 그들의 영혼은 과연 어떤 힘에 끌려 노인의 증오가 자신의 증오로 여기게 된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하멀 멜빌의 질문은 같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누군가는 선동하고 누군가는 동원되고 있는 무지몽매한 현상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모비 딕> 이 책에서의 고래에 대한 설명과 고래에 관련된 자료와 지식은 섬세하다. 그리고 고래잡이 포경선의 일상도 놓치지 않는다. 그 속에 있는 인물 하나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다. ‘고래 잡는 광경‘을 서술하기 이전 ‘포경 밧줄‘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포경 밧줄‘ 작살이 발사되어 복잡하게 엉키면 이는 치명적으로 그들을 휘감아 버린다. 그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포경 보트의 광경에선 그래도 유쾌한 농담과 즐거운 웃음, 멋진 익살과 재치가 있었다. 상상할 수 없지만 그들은 포경 밧줄을 감은채 마치 ‘칼레 시민‘처럼 자랑스럽게 죽음으로 돌진하는 고귀함도 지녔다. 포경 밧줄에 묶여 있는 인간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p774)
인정하지 못하지만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위험들과 그것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 할 때 뿐이라고 말한다. 포경 밧줄에서 깨달은 삶의 성찰, 그는 이미 철학자였던 것이다.
포경선 위의 선원들은 하루하루가 덤으로 얻은 나날이었다. 죽음을 초월한 삶이란 즐거움 자체였고 고래 잡이들은 살아 남은 시간에서 얻어진 덤으로 얻은 시간의 연속 위에 얹혀진 삶이었다. 그들에게는 유언장이 주는 무거움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죽음 앞에서 더 냉정하고 침착해지는 자세는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다.

고래 해체 작업을 보면서 하멀 멜빌의 묘사는 너무 적나라해서 눈 앞에 붉게 물든 바다가 펼쳐질 지경이었다. 고래의 몸에서 제일 굵은 부위, 목이 없는 고래 몸에서 머리를 자르는 장면을 작가는 ˝ 그 속을 들여다 보지 못하고 땅 속을 더듬는 것처럼 암중모색할 수밖에 없다.˝ 고 한다. 서로 다치지 않고 교묘히 해체하는 과정은 경이롭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꼬리 찬양

향유 고래의 꼬리를 로마 성벽과 비유했다.
이 거대한 고래의 힘은 꼬리에 응축되어 있다. 고래의 관찰과 고래를 잡으려고 떠난 포경선 위에서 그는 고래의 위대함과 경건함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알려고 해도 고래에 대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한탄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가 머리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안다고 밝혀진 것 또한 그것이 진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봐야 되지 않을까.
하멀 멜빌은 아는 것 같다. ‘진리‘라는 것에 대해 답을 찾기 힘들다는 것을 그래서 끝없이 이야기는 펼쳐진다.
방대한 책의 분량은 그의 호기심과 관찰이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고래를 잡고 사투를 벌이는 급박한 순간에도 놓치지 않고 쪼개고 쪼개어 섬세하게 설명하는 것에서 만들어 진 것이다. 책 속 이슈메일의 눈은 그 찰나의 순간에 펼쳐진 광경과 머리 속 자신의 생각마저 세심하게 쪼개어 시간을 늘린다. 긴박감에 책을 읽는 눈은 흥분해 간다. 하지만 차분하게 설명하는 주인공의 생각을 쫓아가다 보면 정말 바다 위에서 파도를 타고 떠 다니는 배 위처럼 울렁거려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혼란스러움이 아니다. 이것은 출렁임 속에서 느끼는 생동감과 그 속에서 찾은 이성적인 생각들의 출렁거림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순간이 ‘살아 있는‘ 모든 감정을 동원한 기분을 만끽하기도 했다. 삶의 생동감을 체험하게 한 묘한 기운의 책, 이 책속에서 나는 또 현실에서 벌어지는 인간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진지하게 읽었다는 이유는 책 속의 어느 하나 나에게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 말도 기록할 말도 많은 것 같다.
향유 고래의 거대한 집단과 군집에 대해서 말하면서 학교와 교장을 비유로 내세웠다. 이 적절한 비유에 어찌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있나 싶다.
이 이야기는 정말 재미난 단편 소설을 읽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직접 읽고 느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쌓기와 청소
이제 이야기는 고래 해체 작업이 끝나고 정리 작업에 들어간다.
항유 고래 잡이에서는 이 작업이 가장 놀랄 만한 작업일 것이라고 한다. 고래를 잡고 이 마무리 작업이 있기까지 아주 고된 시간은 필수다. 이 시간을 해치우고 맞이하는 짧은 시간, 그들에게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우아함과 깨끗함이 남는다. 그리고 말끔히 정리되어 한 켠에 차곡히 쌓여 있는 기름통과 함께 후련함이 남는다. 하지만 이런 진저리 나는 그 일을 처음부터 되풀이 해야 되는 운명은 시시포스의 운명처럼 죽을 맛이다. 하멀 멜빈은 이것이 바로 쳇바퀴 도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선장 에이해브에 관한 이야기는 책의 중간이 넘어서고 후반부에 달해서야 진지하게 다뤄진다. 에이해브의 다리에 관한 이야기와 거대한 흰 고래 ‘모비 딕‘과의 숙명적인 관계는 정말 미련하게 집착적이다. 책의 후반부에 그의 광적인 집착은 최고조로 폭발한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망망대해 바다 한 가운데에서 의지할 것이라고는 나침반과 사분의 밖에 없는데, 그 사분의를 파괴하고 던져 버린다. 이제 나침반과 에이해브의 감각만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런데 이때 나침반 마저 폭풍우에 손상을 입게 된다. 이 막막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불안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고 ‘에이해브‘는 이때 극적으로 나침반을 고치면서 선원들에게 그의 오만함을 증명했다.

˝경멸감과 승리감으로 불타는 에이해브의 두 눈에는 그의 파멸적인 오만함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이미 운명이 정해진 ‘피쿼드 호‘는 불안함을 안고 비극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바람이 불어 오는 것을 향하는 사람‘ 에이해브

18살 에이해브는 처음 고래를 잡는 경험을 하고 40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고래를 잡고 있다. 그는 폭풍우 속에서 모든 고난과 위험을 겪으면서 40년을 살았던 것이다. 지상의 평온함을 버린 채 바다의 공포와 맞서 싸워왔다. 그렇게 고독을 몸에 지닌 채 살아야 했던 그의 삶은 오직 광기와 열광, 끓는 피와 땀 흘리는 삶이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고래만을 쫓고 살았던 그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어리석은‘ 삶이었다고 처음으로 이야기 한다. 포경선 위에서 유일하게 선장에게 반기를 들었던 스타벅의 눈을 보면서 그는 ‘인간의 눈‘을 느낀다고 말한다.
에이해브와 스타벅의 뜨거운 교감에서 오는 에이해브의 눈물 나는 그의 처절한 삶이 안타까워졌다. 스타벅도 마찬가지였다. 에이해브를 조금 이해하면서 그를 막으려 노력하는 애절함도 책에서 놓치기 싫은 감동이다.
에이해브는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빠져 나올 수가 없는 지경이다. 불가사의한 힘은 모습도 없고 그 형체를 드러내지도 않는 기만적인 주인으로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에이해브를 자연스러운 사랑과 갈망에서 등지도록 강요했다.
인간이기보다 괴물로 변해버린 에이해브의 눈은 ‘스타벅‘의 눈에서 그의 아내와 아이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에이해브는 스타벅에게 모비 딕을 만나게 되더라도 보트를 내리지 말라고 한다.

˝나는 자네의 눈 속에서 머나먼 고향집을 보네. 그 고향집을 그런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지.˝

스타벅은 에이해브에게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은 얄궂게도 모비 딕이 눈 앞에 나타난다.

에이해브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인간도 신도 모두가 이웃이 아니라고 말한다. 세상에 ‘홀로‘ 서 있는 에이해브의 영혼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괴물로 변해야 했던 것이다. 그의 처절한 내면 속의 싸움에서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정복당한 채 노예가 되어 삶을 마감하게 된다. 이 비극적인 결말이 이야기의 첫 부분부터 끊임없이 암시되었다.
책의 끝 부분에야 만나는 흰 고래 ‘모비 딕‘과 세 번의 추적에서 보여준 에이해브의 비장함은 숭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선장으로서의 역할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의 신념 하나 때문에 선원 전원이 참사를 겪는 비극을 초래했으니 말이다. 결말이 주는 씁쓸함, 이 배가 어디로 갈지 알지만 그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그들의 운명이 저토록 무기력한 인간들의 모습에 지금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믿었던 신념은 흰 고래 ‘모비 딕‘은 절대적인 악의 화신이었다. 그래서 영원히 그 악의 화신을 손수 물리쳐야 한다는 사명감에서였을까. 한 가지의 목적아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에이해브 선장과 어리석게도 동원된 선원들의 최후는 비극이라는 결과를 남겼다. 그리고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죽이려고 만든 작살이 모비 딕에 명중하자 그 밧줄에 자신이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이 흔적도 남지않고 모든 것이 파괴 된 바다위에서 살아 남은 한 명이 이슈메일이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것을 말해둬야 된다고 전한다.
여전히
흰 고래는 바람이 불어가는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결국 선장은 죽어서야 고래가 가는 자연스러운 방향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가 온 몸으로 부딪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했을 때 부딪힌 ‘모비 딕‘과 함께 말이다.
에이해브가 그렇게 쫓아 다녔던 모비 딕의 존재, 모비딕은 한 번도 에이해브를 의도적으로 헤치려하지 않았다. 모비 딕을 미친듯이 잡으려고 달려 온 선장 에이해브의 모습에서 무례하고 자아도취적인 인간의 우월감이 보인다. 누가 악이고 선인지 모를 그 기준은 또 누가 만든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새로운 항해가 준비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나면,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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