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놓인 책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더불어 딸려 온 책이다

주문한 책과 함께
동네 책방 주인장이
선물로 담았던 책이다

<가시리 >
사랑노래가 담긴

750년 전 이야기
시대는 몽골의 침입이 있던 때
세 명의 우정과 사랑
서로 다른 미래
그 사이에서
소녀 아청의 마음

가인(歌人)아청의 사랑노래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았다

아청의 옆에는 ‘좌‘와 ‘우‘
그녀를 향한 좌와 우의 마음을 아청은 알고 있다
하지만 둘을 잃는다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아청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의 운명을 의탁하지 않는다

‘‘그녀에겐 의지가 또한 사랑이었다‘

스스로의 의지가 중요한 그녀
의지가 확고할수록 아쉬움도 깊다
좌와 우의 엇갈린 미래 앞에서
가슴아파한다

가시리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노래하는
작자미상의 ‘고려가요‘를 모티브로 작가는

˝노래를 아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풀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처럼
‘이 노래의 주인공들만큼 사랑하며 살고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아주 오랜만에 사랑노래를 가슴에 담아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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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9

사랑의 대상

본래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는 아니다. 사랑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나머지 동포에게는 무관심하다면, 그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공서적 애착이거나 확대된 이기주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은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상에 의해서 성립된다고 믿고 있다. 사실상 그들은 심지어 그들의 사랑을 받는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사랑의 강렬함을 입증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은 위에서 이미말한 바와 동일한 오류다.

p73

모성애

모성애는 어린아이에게 살려고 하는 소망뿐 아니라 삶에 대한사랑‘을 천천히 길러준다. 이러한 사상은 성서의 다른 이야기에서도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약속된 땅(땅은 언제나 어머니의상징이다)은 젖과 꿀이 넘쳐흐른다‘고 묘사되고 있다. 젖은 사랑의 첫 번째 측면, 곧 보호와 긍정적 측면의 상징이다. 꿀은 삶의달콤함, 삶에 대한 사랑, 살아 있다는 행복감을 상징한다.
대부분의 어머니가 ‘젖‘을 줄 수 있으나 ‘꿀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꿀을 줄 수 있으려면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일 뿐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목표에 도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린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무리 심하게 말해도 과장이 될 수 없다. 삶에 대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불안도 감염된다. 이 두 태도는 어린아이의 퍼스낼리티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사실상 어린아이 - 그리고어른ㅡ사이에서 ‘젖‘만 먹은 자와 젖과 꿀을 먹은 자를 가려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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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모든 중대한 순간들은단 한 번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완전히 알고 있어야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척해서도 안 된다. 현대인은 속임수를 쓴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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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

살면서 가끔 농담이 주는 힘이 있다. 진담 못지 않게 힘을 주는 농담은 진지한 말보다 다양한 느낌으로 부담없이 다가와 거부감 없이 상대방에게 전달될 때가 있다. 이런 농담은 문제 해결의 다양한 방법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농담은 분명 때와 장소를 가려야 되며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되어 화를 부른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있다.

책의 주인공 ‘루드비크‘의 농담은 진지하고 엄숙한 시대에서 먹히지 않을 농담이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젊은 시절 농담 한마디 잘못 했다가 ˝삶의 길 밖으로 내 던져진˝ 농담 같은 시절을 보내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유명한 ‘밀란 쿤테라‘의 초기 작품이다. 그의 작가적 천재성은 더이상의 말이 필요 없겠지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책 제목의 친숙함과 달리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막힘에, 그의 천재성을 내가 따라가지 못하던 때가 있던지라 책을 들고도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농담>은 그의 처녀작이라 다행히 삶의 깊이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 심오하지 않아 내가 이해하는 점에선 괜찮았다. 그래서 조금 가볍게 즐기면서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이야기는 ‘루드비크‘가 ‘제마네크‘에 대한 복수심에서 ‘헬레나‘를 만나기 위해 고향을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유부녀인 헬레나는 대학시절 ‘제마네크‘의 부인이다. 제마네크는 자신이 공산당원에서 축출되고 오스트라바의 광산으로 가게된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래서 루드비크는 젊은 시절 자신의 삶이 그에 의해서 엉망이 되버렸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시작 된 헬레네의 이야기는 ‘농담같이‘ 헬레네의
삶에 비웃음을 던진다.

대학시절 루드비크의 어처구니 없는 ‘농담‘
어린 루드비크의 서투른 감정이 부른 ‘농담‘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

서툰 자신의 어린 감정에 표현하는 법을 몰랐던 ‘루드비크‘의 방식에서 나온 질투성 ‘농담‘은 그를 한순간에 불행의 시간으로 끌려가게 만든다. 당에서 축출되고 더이상 학업을 계속 할 수 없는 그는 고향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입대를 기다리지만, ‘검정표지‘ 탄광 바닥에서 노역을 하게 된다.

루드비크는 ˝자신의 삶이 길 밖으로 내 던져졌다˝고 생각하며 탄광에서의 삶을 부정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게 되는 순간, 적응하며 그 시간도 익숙해져 간다. 그러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주변 동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루드비크는 삶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게 된다.

‘혼자‘라는 인물은 그곳에서의 ‘자유‘를 깨닫게 해준 사람이며 자신이 응석받이 어린애 같았던 모습을 직면하게 한 사람이다. 하지만 적응을 한다고 해도 ‘한계‘를 실감할 때는 처참한 미래와 운명이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그 시간에 만난 ‘루치에‘ 와의 운명은 그에게 또 다른 삶을 맛보게 한다.
그는 이제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안식처인 그녀의 존재를 깨달으며 역사와 무관하게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는 삶을 바라보면서 해방감을 찾았다.

반면에 탄광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에 대한 관심은 그를 분노하게 했다. 누군가의 맹목적인 믿음에 그곳에서의 잔인성에 대해 경험하며 점점 ‘삶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삶은 아직 미완인 그들을, 그들이 다 만들어진 사람으로 행동하길 요구하는 완성된 세상 속에 턱 세워 놓는다. 역사 또한, 미숙한 이들에게 너무도 자주 놀이터가 되어주는 이 역사 또한 끔찍한 것이다.˝
(p151)

루드비크와 관계된 사람들 중 야로슬라프는 고향 친구이자 민속 음악을 같이 하던 친구였다. 그에겐 고향 같은 친구이다. 루드비크가 어느 순간 자신을 피하면서 원망하는 사이로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루드비크가 ‘복수‘의 무의미를 깨달으며 그들 사이에 놓인 거리감은 무너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야로슬라프와 함께 민속 음악을 연주하게 된다.

이제 헤어진 그녀, 루치에를 다시 만나게 되지만 그녀는 이미 그를 잊었다. 그리고 그녀의 과거를 코스트카에게서 듣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청년기 자아 중심주의에 빠져 그녀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내 삶의 이 구체적인 상황을 벗어나는 모든 것, 그 자체로서의 그녀 모습은 모두 간과되었던 것이다.˝

루드비크는 자신의 삶 또한 ‘엽서의 농담‘과 더불어 실수로 생겨난 일들 때문에 억울하고 부당했던 시간들을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복수 시기는 대학 그 시절, 그때였어야 했다는 복수의 무의미‘ 또한 알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것이 변한다.

루드비크는 알게 된다.
자신들의 기본적인 가치를 박탈당했던 유린의 역사에서 루치에와 자신은 닮은 운명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가치들은 잘못이 없다. 유린된 세계에서 루드비크와 루치에는 불행도 이해하지 못했고 세상과 등지고 자신의 불행을 악화 시켰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껴간 운명이었다.

책의 마지막의 ‘루드비크‘의 깨달음은 바닥 없는 심연 속으로 끝없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 그의 유일한 집은 무언가를 찾고 갈망하는 끊임없는 추락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자신을 내맡기며 클라리넷을 입에 문다. 고향 같은 친구와 함께 민속 음악을 연주하던 시절로 돌아간다. 청중은 더이상 의미가 없는 시간이다.

무언가의 정답을 찾은 것 같은 시간에서 그에게 던져진 삶은 또 최악의 ‘농담‘ 같은 현실로 다가온다. 제마네크에 대한 복수를 위해 귀향했지만 고향 같은 진정한 친구 야로슬라프를 두 팔에 안고 슬프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루드비크 두 팔에 무겁게 느껴지는 친구의 무게가 자신의 확실치 않는 죄를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다.

현실의 부당함과 억울함에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들 이 있다. ‘농담‘ 같은 삶이 때론 농담처럼 지나가길 원한다. 나에게 주어진 삶이 진지하게 다가오는 것을 나는 불편해 한다. 그래서 회피하고 도망가고 결국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세상을 향해 투정을 부린다. 내 탓이 아닌 남탓으로 책임회피는 세상에서 제일 간단한 문제 해결법 중의 하나다.
내가 내 삶을 ‘농담‘처럼 두리뭉실 넘기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책이다. 그리고 삶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농담‘의 주인공 ‘루드비크‘는
최인훈의 <광장>에 나오는 명준을 떠오르게 했다.
명준과 루드비크가 살았던 이데올로기적 역사 속 삶에서 유린된 시간들, 그들의 사랑에서 찾은 자유와 해방감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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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위한 지식 - 그림, 우아한 취미가 되다
허진모 지음 / 이상미디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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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우아한 취미가 되다˝

몇 년 전에 읽고 책장에 모셔둔 책을 다시 꺼냈다
찾아 볼게 있어 다시 넘겼다.
뭉크의 ‘절규‘ 를 두른 노란 표지가
비 오는 까만 밤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책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모나리자 도난 사건으로 시작된다.
피카소를 용의자로 지목한 사건
또 다른 절도 용의 선상에 오른 프랑스 시인이자 소설가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경찰의 수사망에 오르고
수사의 혼란은 <모나리자>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모나리자 도난사건은
‘모나리자‘를 몰랐던 사람까지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잊혀질 것 같았던 모나리자가 갑자기 반환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미술작품에는 단순히 물건값을 논하는 수준이 아닌, 국가적, 사회적,문화적인 복잡성이 얽혀 있다는 것이다. ‘가격‘이라는 수치는 도난사건의 표적이 되고 그럴수록 명성은 높아지고 작품의 가치 또한 덩달아 오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술 작품이 예술 본연의 가치를 잃고
재산 축적과 투자 수단이 되는 것에
예술을 위한 시장이 아닌, 시장을 위한 예술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러한 숨어있는 재미난 사실을 찿아 볼수 있다.
유럽 여행을 간다면 ‘한번쯤 간단히 읽고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미술사의 흐름,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들의 이야기가 담긴책이다.
물론, 깊이는 부족하다.
하지만 처음 서양 미술사를 접하는 사람이라면 핵심만 요약된 비법노트같은 책이다.

서양 미술뿐 아니라 미술 작품을 이해하며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화가의 삶을 알아야 한다. 이 책에 나오는 화가들을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미술사를 꿰뚫어 보는 눈이 생기고 그림을 제대로 즐길 여유를 갖게 될 힘이 조금은 생길 것이다. 제대로 감상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저자가 책을 쓴 목적이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결코 해결해 줄 수 없는 빈 공간
그 공간을 채우는 힘이 예술에는 존재한다.˝

작품과 대화를 나누면서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찾아 내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알랭 드 보통은‘ 예술은 자아의 균형을 회복시켜주는 기능‘이 있다고 했다.
일상에 매몰 되었던 자신을 쉬게 하는 것,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내가 잃어버렸던 뭔가를 되찾아 주는 것이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예술 작품의 힘이라 말한다.

늦은 밤 예술 작품의 힘에 의지해
오늘 하루의 피곤을 날리고 휴식에 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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