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의식 가득하고 서열화된 사회에서 자유로운 언어의 표출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가끔 이러한 경직된 공간에서 유머의 힘은 긍정의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농담 한마디의 힘, 격식을 허물면서 주는 자유로움이다.

p21
움베르트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질문 , 어떻게 지내십니까?

오이디푸스 , 질문이 복합적complex이군요.
탈레스, 물 흐르듯 살고 있습니다.
피타고라스, 만사가 직각처럼 반듯합니다.
소크라테스, 모르겠소.
플라톤, 이상적으로 지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삶의 틀이 잘 잡혀 있지요.
단테, 천국에 온 기분입니다.
노스트라다무스, 언제 말입니까?
데카르트, 잘 지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파스칼, 늘 생각이 많습니다.
헨리8세, 저는 잘 지냅니다만, 제 아내는...
비발디, 계절에 따라 다르지요.
뉴턴, 제때에 맞아떨어지는 질문을 하시는군요.
셰익스피어, 당신 뜻대로 생각하세요.
칸트, 비판적인 질문이군요.
헤겔, 총체적으로 보아 잘 지냅니다.
마르크스, 내일은 더 잘 지내게 될 거요.
다윈, 사람은 적응하게 마련이지요...
니체, 잘 지내고 못 지내고를 초월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카프카, 벌레가 된 기분입니다.
비트겐슈타인,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게 낫겠군요.
프로이트, 당신은요?
카뮈, 부조리한 질문이군요.
예수, 다시 살아났습니다.
애거사 크리스티, 맞혀보세요.
아인슈타인, 상대적으로 잘 지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말없이 묘한 미소만 짓는다.)



‘‘본래 지성은 유희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유머감각은 없어도 ‘유머니즘‘은 읽을 줄 안다.

혹시 읽다가

배잡고 웃을 일이 생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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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작고 사소한 도구지만 가장 넓은 세계를 만들어낸 연필


장맛비를 뚫고 온 따끈따끈한 책,
반가운 즐거움을 자극한다.
새로운 책을 접할 때마다 두근두근 설렘은 늘 있어 온 감정이지만, 흐린 하늘 묵직한 무게에서 초록색이 주는 힘은 한마디로 말해서 싱그런 생명의 힘이다.

7월 푸르른 날과 딱 어울리는 책이다.
아주 정성들여 만든 잘 차려진 한정식을 천천히 먹는 기분이랄까
표지의 색감이며 일러스트 연필의 그림이며 친근하고 그냥 ‘기분 좋음‘이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으로 500페이지를 넘는 쬐금은 두꺼운 책이다. 개인적으로 소장각이 잡히는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정판.

문명에서 연필이 차지한 역할,
연필 공학을 이해하는 것은 오랜 공학의 역사에서 그 진보 과정을 다각적으로 주의 깊게 관찰한다는 의미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고 평범한 물건이 된 필기도구 연필이 한때 매우 경이롭고 소중한 물건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산다. 연필은 이제 일상 공간에서 빠지지 않는 흔한 물건이 되었기 때문에 종종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필은 이처럼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 중의 하나이다.

이제는 연필보다 샤프 펜슬이 더 익숙해졌을지 모르지만, 아직도 연필이 주는 정서는 매우 낭만적이며 아날로그 감성을 선사한다. 종이 위에서 연필의 걸림은 모든 감각을 동원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중독성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연필의 느낌을 잊을 수 없어 옆에 끼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러한 연필의 역사를 들여다 본다. 역사적인 인물과 대단한 사건 뒤에 숨어있던 공로자인 연필에 대해서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될지도 모른다.

에디슨의 몽당연필 사랑,
그의 조끼 주머니에 늘 몽당연필을 넣어 다녔다. 그의 몽당연필 사랑은 한 번에 1,000여 자루나 되는 연필을 주문해 썼다는 것이다. 몽당 연필이 주는 정겨움은 ‘발명과 발견‘이 있던 인간사에서 항상 주머니나 어딘가에 있었던 친구였다. 그리고 몽당연필의 ‘작은 사이즈‘는 작업하는 사람에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준다. 에디슨의 몽당 연필 사랑이 한층 에디슨을 인간적이게 보여준다.

그리고 나도 몽당연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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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0-07-19 0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필하니까 우주 경쟁 시대에 미국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무중력 상태에서 쓸 수 있는 펜을 개발했는데 소련에서는 연필을 썼다는 유명한 우스갯소리가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봤더니 완전 와전된 스토리더군요. 게다가 연필의 흑연은 고온에서 발화할 수도 있다고도 하고. 어쨌든 요즘은 우주선도 다 터치스크린이니 연필도 펜도 필요가 없겠지만요. ^^ 꼬꼬마시절 숙제를 하고 나면 손이 새까맣게 되던 기억도 납니다. 그래도 여전히 연필로 한 스케치가 그 어떤 페인팅 보다 멋스럽다고 예술의 ‘예’자도 모르면서 끄적이고 갑니다.

이뿐호빵 2020-07-19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감사합니다.ㅎㅎ그리고 반갑습니다.
종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연필의 존재도 영원할거라 믿고 싶네요ㅋ
 

가장 작고 사소한 도구지만 가장 넓은 세계를 만들어낸 연필


장맛비를 뚫고 온 따끈따끈한 책,
반가운 즐거움을 자극한다.
새로운 책을 접할 때마다 두근두근 설렘은 늘 있어 온 감정이지만, 흐린 하늘 묵직한 무게에서 초록색이 주는 힘은 한마디로 말해서 싱그런 생명의 힘이다.

7월 푸르른 날과 딱 어울리는 책이다.
아주 정성들여 만든 잘 차려진 한정식을 천천히 먹는 기분이랄까
표지의 색감이며 일러스트 연필의 그림이며 친근하고 그냥 ‘기분 좋음‘이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으로 500페이지를 넘는 쬐금은 두꺼운 책이다. 개인적으로 소장각이 잡히는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정판.

문명에서 연필이 차지한 역할,
연필 공학을 이해하는 것은 오랜 공학의 역사에서 그 진보 과정을 다각적으로 주의 깊게 관찰한다는 의미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고 평범한 물건이 된 필기도구 연필이 한때 매우 경이롭고 소중한 물건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산다. 연필은 이제 일상 공간에서 빠지지 않는 흔한 물건이 되었기 때문에 종종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필은 이처럼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 중의 하나이다.

이제는 연필보다 샤프 펜슬이 더 익숙해졌을지 모르지만, 아직도 연필이 주는 정서는 매우 낭만적이며 아날로그 감성을 선사한다. 종이 위에서 연필의 걸림은 모든 감각을 동원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중독성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연필의 느낌을 잊을 수 없어 옆에 끼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러한 연필의 역사를 들여다 본다. 역사적인 인물과 대단한 사건 뒤에 숨어있던 공로자인 연필에 대해서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될지도 모른다.

에디슨의 몽당연필 사랑,
그의 조끼 주머니에 늘 몽당연필을 넣어 다녔다. 그의 몽당연필 사랑은 한 번에 1,000여 자루나 되는 연필을 주문해 썼다는 것이다. 몽당 연필이 주는 정겨움은 ‘발명과 발견‘이 있던 인간사에서 항상 주머니나 어딘가에 있었던 친구였다. 그리고 몽당연필의 ‘작은 사이즈‘는 작업하는 사람에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준다. 에디슨의 몽당 연필 사랑이 한층 에디슨을 인간적이게 보여준다.

그리고 나도 몽당연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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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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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화합하려는 마음에서 모든 것은 비롯된다.‘
저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다.


역사 속에서 인간은 수많은 갈등과 충돌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만들어지고 문제점을 해결해 왔다. 여기서 새로운 생각은 갈등과 충돌을 화합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갈등을 화합으로 이끌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이란 모든 인간과 모든 기계가 하나의 언어로 통합되는 시대를 말한다.˝

이처럼 하나의 소프트웨어 언어로 통합되면 모든 기계가 서로 소통하고 전 세계의 언어 장벽이 무너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과 기계, 가상공간과 현실 공간의 경계도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의 개념도 달라 진다. 점점 다양성이 사라지고 서로 비슷한 문화가 형성되는 지금의 획일화된 공간을 보면 머지않아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건축물은 그 시대를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그의 전작들이 각각 저마다의 이야기로 차곡차곡 쌓여진 책이었다면, <공간이 만든 공간>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올라간 건물을 길게 자른 단면도 같은 책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흐름에따라 생각이나 문화가 어떻게 변하고 진화했는지, 문화와 사람의 생각이 담긴 공간을 여기저기 찔러 보며 탐구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제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 거리에 놓여진 징검다리처럼 생각의 징검다리를 건너가길 희망한다고..
작가의 여는 글이다.

책의 시작은 역사적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공간에서의 건축물과 문화를 이해하면서 펼쳐진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과 그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의 이야기 속에는 건축의 진화과정을 볼 수도 있다.
동서양 두 문화권은 건축 공간을 대하는 것에도 달랐다. 서로 다른 사고방식의 차이는 강수량에 의해 농사를 짓는 방식에서 생겨났으며, 이런 이유로 건축물도 서로 차이가 났다. 그리고 서서히 서양의 ‘벽 중심‘의 건축물이 동양의 ‘공간‘중심의 건축물과 만나 새로운 건축물로 재창조되는 이야기도 만난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를 만든 것은 각각의 사고방식에서 오는 것이다. ‘절대성‘과 ‘수학‘은 서양 문화의 키워드다. 수학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철학과 기독교는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관을 낳았다. 그리고 그곳에 이르는 길은 이성과 논리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반면에 동양의 키워드는 ‘관계‘, ‘비움‘이다.
그리고 동양의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중용>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다. 동양의 상대적인 가치와 관계를 중시했음을 ‘선‘은 주변의 상황과 관계에 따라서 유연성있는 선의 개념으로 절대적이지 않다. 공동체에서 튀지 않게 행동하는 것은 ‘우리 사회는 뛰어나지만 튀는 것‘보다는 ‘무능하더라도 무난한 것‘을 좋게 보는 사회‘다.요즘에도 이 덕목은 최고로 내세운다. 하지만 관계 중심의 사회에서 ‘튀는 것‘은 반대로 제거 대상이 되는 위험이 있다.
상대적 가치관 외에도 ‘비움‘의 덕목은 가능성의 상태로 해석될 수 있으며, 언제나 생성하고 소멸하는 생명의 원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동양에서의 비움은 부정적이기 보다 새로운 창조의 준비라는 의미가 더 크다고 말한다.

개미 같은 동양, 벌 같은 서양

집단 서식으로 강한 사회성을 띠며 여왕을 중심으로 계층이 나누어져 있고 조직적인 사회성을 띠는 대표적인 곤충이 개미와 벌이다.
이들 곤충의 집를 살펴보면 인간 건축의 동서양 차이와 비슷한 특징을 보여 준다고 한다. 벌집은 서양의 공간처럼 기하학적인 형태, 벌집 모양이라고 불리는 6각형 모듈러구조를 띠고 있다. 6각형의 구조적 안정성과 벌이 살기에 공간 손실이 적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육각형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벌은 원초적으로 원형의 방을 만든다. 하지만 원형은 벌이 방을 만들어 합쳐질 때마다 밀리고 중력에 의해 눌리게 되면서 6각형의 모양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반면에 개미의 집은 복잡한 미로 같은 형태를 띤다. 마치 관계의 회로망을 보는 듯, 개미의 집은 외부 형태는 중요하지 않고 내부 방끼리의 관계가 더 중요한 건축이다.

동양의 공간을 닮아 가는 서양의 공간

동서양 공간의 이종 교배가 일어났으며 이는 세대를 건너면서
가상공간의 확장과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는 현실 공간에 영향을 미쳐 공간의 의미도 바꾸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공간을 소유하는 대신 소비하면서 나를 표현한다고 한다.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가상공간 안에 있는 내 SNS공간뿐이다.
이 공간은 내가 찍은 사진과 글만 있으면 구축할 수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든게 가능해진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것들로 채워진 사진들은 ‘디지털 벽돌‘이 된다. 그래서 이 벽을 넘기위해 색다른 경험과 인증샷을 남기려고 애쓴다. 사진이 중요해지다 보니 독특한 인테리어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공간은 계속해서 다른 공간을 만들어 왔다. 다음 단계로 진화할 때마다 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지혜와 노력으로 발전하여 왔다. 다가올 변화를 걱정하기보다는 새롭게 펼쳐질 세상을 기대하라는 희망적인 메세지를 남기고 책은 마무리 된다.




책을 읽다가 웃픈 이야기 하나
을지로에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마법 학교 입학자들만 아는 ‘런던 킹스크로스9와 4분의 3플랫폼‘처럼 비밀 공간이 숨어 있다고 한다.
그곳에 있지만 다른 차원에 존재하듯 자리하고 있어, 이곳은 간판도 없다. 인터넷 가상공간상에서 정보를 얻은 사람만이 찾아 갈 수 있는 공간이다. 하나 더 이런 가게들은 높은 층에 존재하는데 중요한 것은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물관리 차원에서 튼튼한 무릎이 있는 사람만이 찾아 갈 수 있다.

숨은 현실 공간들 찾기
한 공간에 있어도 세대별 누리고 있는 공간의 차원이 달라지는 씁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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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랜드 - 모든 것이 평평한 2차원 세상
에드윈 애벗 지음, 윤태일 옮김 / 늘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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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차원의 눈


책을 쓴다는 것은
‘차원을 넘어선‘ 기발하고 대담한 상상력의
산물인것이다.

빛도 그림자도 없는 모든 것이 평평한 2차원 세상
‘플랫랜드‘

2차원의 세상, 플랫랜드에는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세상처럼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곳은 철저한 신분사회다.
이 책은 1884년에 쓰여진 책으로 무려 100년이 넘은 이야기다.
당시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 하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에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주인공 ‘정사각형‘의 모험이야기는 판다지에 버금가는 흥미로운 시간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조금 어려운 공간의 여러 차원을 인식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는데 있어선 작가가 전문 과학자가 아닌지 의심도 간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에드윈 A. 애보트는 신학자이며 언어학자인 교육자다.
빛바래 책장에 앉아 있는 이 책은 가끔씩 넘기는 책 중의 하나가 된 책이며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끼는 책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플랫랜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플랫랜드의 세상엔 모든 것이 평평하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각기 다른 도형들을 서로 구별하기 힘들다.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오로지 ‘직선‘뿐이며 다른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그들이 서로를 구별하는 방법으로는 ‘청각‘과 ‘느낌‘ 그리고 ‘시각‘이다.
플랫랜드에서는 여성의 처지가 가장 비참하다.
여성들은 직선이다.
군인들과 가장낮은 계층인 노동자들은 이등변삼각형이다.
중간계급은 정삼각형, 전문가들이나 신사들은 사각형 혹은 오각형으로 주인공 ‘사각형‘ 신분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 귀족 계급은 육각형부터 변의 개수가 증가하다가 다변형에 이르고 마침내 동그라미에 가까울수록 성직자에 속하게 되는 최고 계급을 말한다.

‘공간‘을 내포한 3차원의 사람들,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2차원의 ‘플랫랜드‘ 사회도 스페이스랜드인 3차원 세계와 다를게 없다.
소수의 ‘동그라미‘들은 수 세대에 걸쳐 플랫랜드의 다수의 사람을 지배해 왔다. 그들의 ‘지적능력‘은 교묘하게 낮은 계급들을 교란시키고 선동하면서 자신들의 계급에서 서로간 싸움을 촉발시켰다.
불평등하게 나눠진 신분 사회와 그것을 지키려는 독재는 지금의 사회문제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리고 당시 여성의 낮은 인권은 현대에 와서도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채로 인권 그 중심에 놓여있다.
플랫랜드의 사람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에서 ‘시각‘은 상류층의 인식법으로 사는 지역 또한 따뜻한 지역이다. 따뜻한 지역의 안개는 그들의 시각을 더 강화시켜주고, 훈련을 통해서 시각인식법을 발달시킨다. ‘느낌‘은 여성과 낮은 계급의 인식법으로 상류층에서는 지극히 제한하거나 금지시킨다.

불규칙 도형에 관해서 주인공‘ 사각형‘은 규칙성과 동일함에 기초한 사회 체제에서 혼란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도형의 불규칙성에 대해서 충분히 조사하거나 느끼기엔 삶이 너무나 짧아서 형태의 규칙성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형의 불규칙성은 여기서 비행이나 범죄와 같은 뜻으로 그에 따라 다루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사각형‘은 중용의 입장에서 어떠한 고착된 절대적인 구획선을 긋지 않겠다고 한다. 이는 책을 쓴 이의 생각이기도 할 것이다.

플랫랜드의 삶은 단조롭고 따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미학적, 예술적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따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플랫랜드도 과거 조상들의 삶에 다채로운 변화를 가져다 주었던 시기가 있었다.
가장 권위있는 이름 크로마티스테스(Chromatistes, 색체환각)
보수적인 오각형을 제외한 크로마티스테스를 모방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최상류의 귀족계급에까지 퍼져 크로마티스테스의 지역을 다른 지역과 구별되게 하였다. 이는 두 세대가 지나자 플랫랜드에선 여자와 종교인을 빼고는 색깔 없는 사람은 볼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색채혁명은 플랫랜드의 찬란한 유아기에 해당한다고 했다. 감각적으로 화려함의 극치는 당시 시민들의 가장 평범한 말씨까지도 사상과 언어의 다채로운 풍미로 풍만했다.

˝그 당시 산다는 것은 본다는 것이기 때문에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쁨이었습니다.˝ (p75)

반면에 지적인 예술은 급격히 쇠퇴했다. 그들의 인식법인 ‘시각인식법‘은 더이상 행해지지 않았고 ‘느낌인식법‘도 무시되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독점적이고 귀족적인 기술의 금지‘를 외치며 ‘평등‘을 외치기 시작했다. 귀족적인 인식법이 필요없어진 이상 모든 개인과 계급들간의 절대적 평등권을 요구하며 나선것이다. 그리고 여성과 성직자도 색칠을 할 수 있는 색채법에 따라 그 위상이 올라가게 되었다.

사회를 풍미했던 시각인식법이 색채혁명에 의해 어떻게 사라졌는지

모든 계층간 평등을 외칠수 있게 만든 색채의 등장과 우두머리 동그라미의 주장 그리고 질서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치뤄진 학살 등
동그라미들은 승리하였고 그 뒤로 색채의 사용이 폐지되었고 그것을 보유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단, 동그라미들과 자격을 갖춘 몇몇 과학교사들은 제외되었다.
플랫랜드를 떠받드는 중심축인 동그라미 바로 성직자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관여하는 관리자이며 감독관이다. 그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플랫랜드 모든 일들의 근본 원인이 된다.

이제 두 번째 이야기로 접어든다. 이야기의 재미는 여기서 더 흥미롭다. 그 신나는 시간을 뻬앗을 권리는 없는 듯 하여 간략하게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플랫랜드의 지식인 ‘사각형‘의 모험은 걸리버 여행기처럼 이제 시작이다.
그는 다른 세상들을 우연히 여행하게 된다. 포인트랜드, 라인랜드와 스페이스랜드를 여행하면서 그가 깨달은 비밀들을 훗날 손자에게 가르치려했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다.
다른 세상을 아는 ‘사각형‘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다.
그의 고뇌와 그의 행동은 플랫랜드에서는 미친짓이다. 그리고 감옥행을 부른다.

이책은 SF장르다. 그리고 수학적 논리를 쉽게 풀어놓은 과학 소설이다.
공간의 여러 차원과 그 상대성에 대해서도 정교하다.
재미있는 공상과학소설이며 사회에 대한 비판적 풍자소설이다.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숨어있는 철학 소설이다.
이 모든걸 다 담아놓은 인문서적 같은 책이다. 200페이지 남짓한 얇은 책이지만 절대 가벼운 책은 아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깊이가 더해지는 책이다. 내가 애정을 쏟아붓는 이유다.

옮긴이의 말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속한 세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누구나 자기가 익숙한 세계만이 유일하게 현실적인 가능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라고 말하고 있다.‘‘

플랫랜드의 사람들과 마찬가지 우린,
이렇게 길들여진 세상과 내가 길들인 사람들에 익숙하게 살고 있다.
나와 다른 세상의 인식 없는 삶,
‘가능성‘의 여부를 열어 놓지 않은채 내가 속한 세상이 전부라 믿는 착각 속에 빠진 삶이 얼마나 분별력 없는 삶인지 다시 생각하는 책이다.
현실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고정된 틀은 항상 깨지고 부서졌다. 차원을 넘는 기발한 아이디어,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 준 용기있는 자들의 선택은 역사적으로 늘 세상을 변화시켰다.
이러한 차원을 넘어선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쓰여진 ‘플랫랜드‘를 접하게 된 시간은, 이 책의 주인공 ‘사각형‘이 여러 차원을 여행하면서 얻게 되는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진정한 나의 영원한 고전이다. 책을 읽으면서 항상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예전에 적어 놓은 독서노트를 꺼집어 내고 다시 읽게 된 책이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조금더 다양한 관점으로 다가가야겠다는 예전의 다짐은 아직까지도 부족하다.

‘어디든 항상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는 진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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