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 1~4 세트 - 전4권 - 특별합본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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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서평] 장길산4




‘장길산’이라는 대하소설은 분명 제목처럼 장길산이 주인공이지만 약하고 고통받는 천민 백성 하나하나가 모두 주인공으로 생각되어지는 소설이다. 장길산은 그의 이름이 조선 팔도 방방곡곡의 백성들이 역병과 굶주림에 죽고 싸우며 이룬 이름이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하였다. 비록 그의 작은 육신이 죽어 썩어져버린다 한들 장차 수없이 생겨날 장길산이 있을 것이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과거 어려운 때의 백성들의 모습을 백성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여러 마음이 가는 등장인물들이 많았다. 그 중 만신 원향과 여환스님의 스토리는 인연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게 느껴질 만한 내용이었다. 우연같은 운명적 만남과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만들어져가는 환경과 상황 속에서 그것과는 별개로 사람과 사람의 연이 이어지고 서로에게 닿아지는 모양이 모순적이면서도 그것이 삶이고 운명이라고 생각하였다.


“너희는 모르는 소리를 하는구나. 원래가 넋이란 것은 육신에 다르는 것이니라. 원향이는 아예 제 육신을 비우고 넋이 나가버린 것이 아니라, 넋이 상하여 변하였지. 상심이 지나치면 실성하는 것이 바로 그 이치다. 육신의 정과 마음의 정이 다른 것이 아니다. 여환스님은 먼저 그 몸을 달래고 상한 넋을 생생하게 하여 몸에 담으려는 것이다.


나도 미친 사람과 더불어 굿을 할 적에는 죄책으로 인하여 미친 사람은 풀리도록 때려주고, 정으로 하여 미친 사람은 함께 곡하여 달래주고, 육신으로 하여 미친 사람은 안고 쓸어준단다. 우리 원향이는 참으로 큰 무당이 될 터이니 여환스님의 정성이 어찌 고맙지 않겠느냐.”




오랜시간이 지나서 만난 길산의 친아버지와의 재회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분명 마음에 있을 감정이 있을 터인데 오가는 대화는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설령 그것이 척이어도 그게 될까 싶지만 장길산이라는 총4권의 책을 돌아보면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이 지금의 시대와는 조금 다른 것이 아닌가도 생각되었다. 시대적 상황이 한몫 하겠지만 더 신중하고 더 큰 것을 바라보며 자신의 것을 잠시 내려놓는 듯한 성숙한 표현처럼 느껴졌다.


허, 잔망스러운 것! 묘향산을 못 보는 놈이로다. 그런 놈이 어찌 무엇을 새로 바꾸겠단 말이냐. 네 어미가 종으로 노중에 죽은 것만 알고 네 아비가 혈육을 건사하지 못한 설움만을 보겠다는 말이냐. 네 이놈, 자기도 부지하지 못할 녀석이 무슨 역적질이냐. 어느 백성이 네 말을 믿을까. 썩 없어져라. 명근스님의 어조는 나직했지만 차갑고 날카로웠다. 길산은 고개를 숙이고 차마 얼른 일어나 나올 수가 없어 자신의 격정을 억누르려고 애를 썼다. 다시 방바닥에 물기가 떨어져서 번졌다.


피가 변하여 살을 이루고 살은 기름을 이루고 기름은 뼈를 이루고 뼈는 골수를 이루고, 골수는 정액을 이루는구나. 이들의 윤회가 몸이니 어찌 번뇌 없으랴. 인연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이여 무상하다.




배신의 아이콘이 된 고달근은 읍내의 한복판에서 드넓은 땅을 차지하여 양반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장길산이 관군에게 잡히지 않고 달아난 사실을 잊지 않고 있어서 늘 그를 두려워하였다. 고달은 불안에 빠져 있었다. 사람을 져버리고 얻은 보상은 온전한 자기 것이 아니기에 문제가 생기거나 그것이 없다면 정신적인 문제라도 생기는 것인가 싶었다.


이제 네 목을 베려 한다. 너를 죽이는 것은 사사로운 원한을 갚고자 함이 아니라, 피붙이와 동기간을 저버리고 신의를 팔아 부귀를 얻은 씻지 못한 죄를 만백성의 이름으로 징치하려는 것이다. 너는 특히 우리와 같은 천민으로 한때에는 검계에 들어 형제들의 죽음을 목격하였고 산에 올라가 녹림당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너는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모였으며 우리가 피로써 맺어져 있었음을 잘 알 터이다. 네가 토포군의 앞잡이가 되고 나서 목숨이나 부지하여 참회하며 살아남았다면 우리는 너를 다시는 찾지 않았으리라.




길산의 징치는 모두 사사롭지 않았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개인의 것이 아닌 백성을 위한 대변자의 것이었다. 그것이 이름을 떨친 명화적이 된 힘이라고 생각한다. 백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삶은 개인적인 희생과 그 주변 가족들의 희생을 동반한다. 활빈당의 선행에 백성 모두 감사할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슬픔이 가득한 가시밭길이었다.


길산 :


나는 나라에서 이르기를 명화적이라고 하우. 그러나 백성들은 의적이라고도 하고 녹림당이라고도 부르며 또는 활빈당이라고도 불러줍디다. 우리 스스로 자처하여 활빈도라고 부르지요. 우리는 이제부터 팔도 천민의 선봉군을 자처할 셈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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