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 빈센트 반 고흐 전기, 혹은 그를 찾는 여행의 기록
프레데릭 파작 지음, 김병욱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멸의 화가, 비운의 화가 - 빈센트 반 고흐'

나는 그에 대해 무얼 알고 있나 잠시 생각했다.

돈 맥클린의 노래가 떠오르고 조용필의 킬리만자로도 잠깐 떠오른다. 그리고 영혼의 동반자였던 동생 테오,  존경했으나 서로 너무달랐던 고갱, 한 점 밖에 팔지 못한 작품, 네들란드, 프랑스, 정신병원, 자살!

너무나 단편적이고 가시화된 사실 외에 깊이 알고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이 책을 쓴 프레데릭 파작도 그러했을까?

고흐에 대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하고 너무나 많은 일화들이 소개되어 씌어지지 않는 게 없을 정도지만 그와 함께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던 작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안으로 들어가 이 글을 적고 싶어했다.

그를 좀 더 잘 되찾기 위해서, 더는 그를 잊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이 책의 부제도 빈센트 반고흐 전기, 혹은 그를 찾는 여행의 기록이라 붙였다.

소설가이자 화가인 작가는 이 책 안에 그려진 모든 삽화를 고흐의 작품을 흉내 내거나 자료를 참고 삼아 직접 그렸다고 한다.

빈센트의 강렬한 작품에 빠져 정작 빈센트는 잊고 있었다고 고백하지만 그가 고흐를 얼마나 사랑하고 심혈을 기울여 연구했는지지 고흐가 태어나면서 부터 권총 자살로 서른일곱의 나이로 죽을 때 까지의 여정이 빽빽히 기록되어 있다.


돈 맥클린의 노래가사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당신이 무얼 말하려 했는지 나는 이제 이해합니다.

당신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유로와지려 노력했는지
사람들은 알지도 못했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아마 그들은 이제는 듣고 있을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고흐의 마음이 되어 고흐를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가슴이 뭉클해 지는 대목이다.

그 시대 사람들이 그랬듯,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흐의 고통에 대해 자유로운 정신세계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조용필 노래 가사처럼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사나이-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가슴이 아프다.


그가 단순히 보통의 시대적 불행을 겪고 간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그를 이토록 그리워하고 가슴 아파할 이유가 있었을까?

어느 순간 그의 불행과 고통마저도 상업적 클리셰의 한 부분으로 자리해 가는 걸 느낄 때 마다 그 영혼의 순결함과 불멸의 아우라가 폄훼되는 것 같아 안타깝고 화가 난다. 정신병을 앓으면서도 죽기 전까지 쏟아낸 그의 그림들은 그림이라기 보다 고흐 내면을표현해 낸 일기였다고 생각한다.

*고흐가 생전에 팔았던 단 한 점의 작품 - 붉은 포도밭


언젠가 비록 모작이긴 하지만 작은 소도시의 고흐 작품의 전시회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그림을 감상하는데도 이해하는데도 이렇다할 지식이 없었지만가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보는 고흐의 그림들은 감동이었고 강렬 그 자체였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그릴 때의 명암과 아름답고 인상적인 풍경을 그릴 때의 빛갈이 꿈틀대며 살아있는 거 같은 (모작이라고 생각되지 않은 만큼)감동이 전해왔다.


바라건데, 고흐가 파리로 건너와 그림을 그렸던 아를, 생 레미,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이르기까지 그의 화집을 들고 다니며 고흐가 바라보았던 들판, 풍경, 하늘을 느끼며 자취를 더듬어 볼 기회가 내 생전에 한번이라도 있다면 정말 좋겠다.


작가는 반 고흐 이전이 있고 반 고흐 이후가 있다고 했다. 백번 동의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주학교 - 맥주 만들기, 맥주로 창업하기 For my living 1
정연숙 글, 지한비 사진, 백윤국 / 한솔스쿨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남은 생에 마지막 할 일을 찾는다면 바닷가에 맥주집을 차려 놓고 해질녘 노을을 보며 술은 내가 마시고 취하긴 바다가 취하는 모습을 보는 나날들이었음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이 맨날 바다랑 술 내기나 하고 있으면 돈은 언제 벌고 뒷치닥거리는 누가 할려고? 이런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 이건 그냥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희망사항이지 구체적인 사업구상이 아니니까.

아무튼, 내 인생에 있어 맥주는 참 좋은 나의 친구다.

취해서 오를 범하기 까지의 시간이 많고 배가 부르고 마음을 나누는데 이만한 촉매제가 있을까 싶다. 한때 맥주 사랑이 극에 달했을 땐 (국내 시판 맥주에 한해서였지만)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도 다 알아 맞추고 500만 마시고 갈까? 가볍게 들린 호프집에서 5000cc를 마시고 나서야 일어서곤 했다. 뭐, 자랑은 아니다.^^;


맥주가 맛 없기로 유명하다는(듣기로는 북한 대동강 맥주만도 못하다고...나는 맛있기만 하더만ㅠ) 대한민국에 수제 맥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주조에 대해 엄격했던 시대적 탓에 누구나 오비 아니면 크라운을 마셔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면 다양해진 취향과 기호에 따라 나에게 맞는 맥주를 찾는 사람이 늘고 외국에서 맛 본 특유의 맥주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수제 맥주는 커피집이 생겨날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새 하나 둘 상권에 침투해 가고 점포수를 늘여가고 있는 추세다.

이 보다 더 반가울 수 없다다!


맥주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 관심이 많다.

할 수 만 있다면 어릴적 할머니가 누룩을 깨서 고두밥과 섞어 막걸리를 만들던 것 처럼 나도 보리를 갈아 수확을 해서 내가 마실 맥주는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

그런 호기심으로 손에 든[ 맥주학교]는 나의 희망사항이 얼마나 안이하고 대책없이 허황한 꿈인지를 단박에 깨게 해 주는 책이엇다.

한솔북스(아이들 책만 잘 만드는 줄 알았어요^^)에서 펴 낸, 10년 후이 삶을 준비하기 위한 방법을 담은 첫번째 시리즈로 수제맥주에 관한 책이다. 맥주 이해하기, 맥주 만드는 방법,  맥주 창업에 대한 실질적인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는 책은 실용서의 미덕을골고루 갖추면서도 무조건 덤비지 말고 천천히 준비해 보라는 조언이 가득 담겨있다.

맥주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넓힐 수 있는 다양한 정보가 많았던 것도 좋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라거맥주'와 '에일맥주'에 대한 이해는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에일은 섭씨 15-25도의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발효하는 효모를 사용한 상면발효 맥주이고 알콜도수가 비교적 높으며 맛과 향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고, 라거는 섭씨 5-12도 정도의 저온에서 발효하는 효모를 사용한 하면발효 맥주로 알콜 도수가 낮고 부드러워 목넘김이 좋다는 특징이 있다. 대중적으로 마실 수 있는 맛이라서 상업맥주의 대부분은 라거맥주라고 한다.

람빅은 유럽 전통 맥주 양조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데 야생 효모를 이용해 신맛이 강하다고 한다 . 발효 후에도 긴 숙성기간을 거치는데 2-3년씩 숙성시키는 경우도 있고 예측과 통제가 어려워 균일한 맛과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단점이 있단다.

맥주 스타일의 양대 산맥은 역시 에일과 라거인데 우리나라에서 라거 맥주가 많이 팔리는 이유를 조금 알겠다. 기회가 된다면 람빅 스타일의 맥주를 마셔 볼 수 있기를..!


가장 유용했던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맥주로 창업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편집한 부분이었다. 수제 맥주를 직접 만드는 사람-홈브루어들이 직접 만드는 일-홈브루밍을 하면서 깨달은 노하우와 시행착오를 읽어가면서 쉬운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홈브루밍의 종류도 참 다양하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알수록 다채로운 맥주의 세계여!!

마시기는 내가 마시고 취하기는 바다가 취하는 상상따윈 호강에 겨워 요강에 X싸는 소리라는 걸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 주었다. 무엇보다 수제 맥주를 만드는 일은 너무 힘들고 대량 생산이 힘들기 때문에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힘들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수제맥주 만드는 홈브루어이길 포기하지 않는 건 맥주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라고 밖에 표현 할 말이 없었다. 부끄럽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더 맛있고 질 좋은 차별화된 맥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있으므로 나는 내심 기쁘다.

아직 커피숍처럼 많이 보이진 않지만, 차츰 그들은 세상밖으로 목소리와 향기를 가지고 나타날 것이고 나는 그때를 기다렸다 맛있게 마시면 될테니까!^^


다음 시리즈는 어떤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이 소개될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포크라테스 선서 법의학 교실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라는 상이 일본에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2000년 초에 만들어진 상인데 일본 미스터리 장르의 저변화와 작품의 수준이 이런 상으로 인해 한 층 더 업그레이드 되어오고 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장르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일본 미스터리하면 벌써 미미여사나 히가시노 게이고같은 이름이 퍼뜩 떠오르니 말이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 미스터리나 스릴러는 수준이야 내가 말할 깜냥이 못되지만 저변화에는 아직 이렇다할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베스트 셀러 소설가 중에 미스터리만을 전문으로 쓰는 작가를 찾아보기 힘들거나 매니아들만 알고 있다는 게 반증이다. (내가 눈 감고 있어 보이지 않은 탓일 수도 있고ㅠ)

아무튼,

상 이름이 재밌어 몇 권 찾아 읽어 봤는데 내용도 재밌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쓴 나카야마 시치리도 2009년 8회 [안녕, 드뷔시]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받은 작가였다. (이런 상을 알지도 못했고 작가도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으니 읽어 봤을리가 없는 건 당연,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통장은 텅장이고 장바구니는 계속 무거워지는 추세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상 시작했을 당시보다 훨씬 오래 되었다는 게 슬플 뿐.)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제목에서 느낌이 뙇! 병원 이야기겠구나 싶어진다.

읽어 보니 그렇다. 좀 더 친절한 설명을 덧 붙이자면 시신을 부검해 진실을 규명하는 법의학을 주제로 한 의료 미스터리다.

띠지에도 큼지막하게 적혀있듯, '죽은 자의 소리없는 소리를 듣는다' 다.

 거짓말을 제외한 모든 말, 오로지 진실만 이야기하는 시체들을 사랑하는 법의학자 얘기들이다.

유명한 미드 CSI 그리섬 반장의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와 일맥상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누군가 우리를 만난다면 그의 인생 최악의 날이다.” 라고 천명하며 팀을 지휘, 과학수사대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을 때, 명불허전이 (우리나라 드라마 명불허전과 상관없다) 무엇인지 보여준다.

드라마지만, 저런 믿음이 가는 과학 수사대가 있는 나라 괜히 부러워지기도 하고 우리나라 과학 수사대는 어디까지 왔나 궁금해지기도 하고 그러더라.


법의학 교수 미쓰자키, 미국인 조교수 캐시, 연수생 마코토가 주축이 된 법의학 팀이 평범하고 당연해 보이는 사건들을 시체의 해부를 통해 진실을 파헤쳐 가는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된다.

한 편 한 편이 새로운 내용이지만 주축이 된 팀원들이 그대로라서 매번 새로운 드라마를 시청하는 느낌도 든다. 당연히 이 법의학 팀이 있으니 사건이 제대로 규명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어 불안하지는 않다. 그런만큼 미궁으로 빠져 고뇌하는 스릴이 그만큼 줄어든 것은 아쉬운 점이었다. 

그리고 이건, 법의학이고 시신을 사랑하는 팀원들의 이야기니 억울하게 죽었거나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반전의 반전을 거쳐 홀연히 살아올리가 절대 없다는  냉정함이 있다.

소리없는 죽은자들의 목소리를 어떤 식으로 캐내어 우리에게 들려줄지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크게 부라리고 있으면 된다. 의사들이 쓰는 전문용어가 빠질 수 없어 등장하는데 세세히 찾아 읽기가 귀찮아 그런게 있구나, 있겠지..설렁설렁 넘어 간 적도 많아 독자로서의 바른자세를 가지지 못했음도 고백한다.

의학 상식이 전무한 사람이라 아, 이런 약을 쓰면 이런 역효과가 나고 이런 상태에선 이런 행동이 나타나는 구나.. 학이시습지 효과가 있었던 걸로 감사하지만, 대단해!는 아니고 괜찮네! 였다면 나는 독자의 바른 마음가짐까지 가지지 못한 사람이 되는건가?ㅠ

시리즈로 다음은 [히포크라테스의 우울]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를 걸어 본다.

.

.

.

여기서 끝내려니...혼자 궁금해 지는 게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는 데 한 획을 그은 세월호 사건 때, 유병언의 시신이 발견 될 당시 이야기다.

안 잡나? 못 잡나? 웬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의혹이 증폭되고 카더라 통신들이 활개를 칠 때 유벙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유병언이 맞다, 아니다 음모설과 루머가 역시 핏대를 바짝 세울 때 법의학자들의 발표가 있었다,

"시신은 맞고 사인은 모른다"

그랬더니 또 어떻게 믿냐? 사인을 밝혀내야 하는 법의학자들이 사인을 모른다니 정권의 하수인들 수작이다 -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여전히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고 유병언이 어딘가 살아있을 거라 믿는 사람들도 있다.

우연히, 그때 참여한 법의학자 중 한 사람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시신이 유병언이 맞다는 걸 자신의 법의학 (20년인가 30년) 명예를 걸고 얘기할 수 있다는 기사를 봤다.

진실이야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 길을 잃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고--- 그때 그 법의학자의 목소리가 진실에 가깝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겼다. 그래야, 우리가 당할 혹 모르는 억울할 죽음들을 그들이 밝혀준다고 믿고 '나쁜놈아, 두고봐라 꼭! 밝혀질거다' 하는 마음으로 죽을 수 있을테니까!

마지막까지 이기적이기.^^

근데 유병언이 맞다면 백골이 진토 되기 직전까지 왜 발견이 안되었는지 더 궁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해, 여름 손님 (반양장)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렸을 때 '사랑의 체험 수기' 공모 이런 게 있었다.

사랑이 삶의 체험 현장도 아니고 세상에 이런일이도 아닌데 무슨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인양 수기를 공모하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지만 이렇게 공모된 수기들은 심사를 거쳐 우수작은 상금도 주고 책으로도 만들어져 나왔으며 김자옥씨가 진행하는 '사랑의 계절'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도 방영되기도 했다. 해피엔딩의 사랑보다 비극적이고 애달픈 수기일 수록 더 인기가 많았었다.

주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해마다 공모를 진행해 문학상을 받은 책이 출간되는 것 처럼 한 해 한 권씩 출간되었는데 인기도 좋아 누가 한 권 사면 돌려 읽고 그랬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때 당시 대학생이고 고등학생이었던 언니들이 책을 사면 몰래 훔쳐보고 라디오(오전 10시쯤 방송했던 걸로 기억되는데 평소에는 잘 못 듣고 방학 때 열심히 들었다)에 귀를 쫑긋 세운 언니들 옆을 알짱거리다 시끄럽게 한다고 욕도 얻어먹고 그랬다.


불과 몇 십 년 전 이야기인데도 전설따라 삼천리, 조선시대 이야기처럼 들린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누구나 가져마땅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내놓고 드러내면 욕먹고 있는대로 얘기하고 다니면 행실이 바르지 않은 사람이 되곤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듯 언젠가는 '게이 소설 부분을 따로 공모하던 시절이 있었지!' 웃으며 얘기한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그때 아이들은 "예에~?"하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왜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이 구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아해 할 지도 모른다. "시대의 가치관이라는 게 감정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단다" 얼버무리는 수밖에!


[그해, 여름 손님]은 20th 람다 문학상 게이 소설 부문 수상작이다.

이런 문학상이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람다 문학상(Lambda Literary Award)에 대해 잠깐 검색을 해 보니 성적(性的) 소수자 문학에 수여하는 상으로 1989년 제정되어 여러 장르를 포함하는데 레즈비언 미스터리(Lesbian Mystery)와 게이 남성 미스터리(Gay Men's Mystery) 부문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1989년이면 우리나라 올림픽이 막 끝나고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의 3저시대 초호황을 누릴 즈음인데 누구도 성소수자의 인권이나 권리에 대해 말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이상한 놈 이라고 손가락질 안받으면 다행이고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수 있다는 것 조차 생각해 보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변화의 물결은 대원군때 부터 쭈욱 서양으로 부터인가?


책 출간을 앞둔 젊은 학자를 초대해 원고를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돕기로 유명한 부모님을 둔 열 일곱의 소년 엘리오와 그해 여름 이탈리아 해안의 멋진 별장으로 초대된 스물 넷 미국인 철학 교수 올리버와의 만남을 그린 이야기다.

성 정체성이 아직 굳어지지 않은 열 일곱 엘리오의 격랑같은 감정의 출렁거림 위에 지적이고 멋있기 까지한 올리버의 절제된 이성과 선심쓰듯 보여주는 감정을 적어 나갔는데 기대(? 뭘?^^)했던 것 만큼의 수위는 아니었다. 엘리오 상상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대부분이고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격한 묘사나 전개는 거의 없었다.

게이 소설이라..동성애를 그린 소설이라는 건데 어떻게 썼을까? 약간의 호기심이 없지는 않았으나 실망에 가까웠다.

(수위가 높지 않아서 그렇다는 건 아니다.^^)

다만, 엘리오의 동성애 감정을 눈치 챈 아버지가 한 말은 비난도 질책도 아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라는 격려의 말이어서 충격적이었다. 만약, 내 자식이 이런 상황이 되면 나는 이런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 봤지만 나도 내 자식도 소설 속 주인공은 되지 말았으면 싶다는 생각으로 끝냈다.


실망의 이유에는 젊은(엘리오는젊다라고 하기엔 아직 어린 미성년자지만..) 두 사람의 사랑에는 금기시 된 사랑에 대한 고뇌와 마음의 성찰보다는 전달되지 못하는 감정에 대한 낭비적 묘사가 너무 많았다. 선택할 수있는 사랑이 아니라 그것밖에 대안이 없는 사랑이어야 함에도 잠깐 호기심에 어려 관계를 맺었으나 너 아니어도 상관없었다는 식의 이성과의 섹스에도 주저 않고 종래엔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는 이야기는 소설이지만 허탈 했다.


동성애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나'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소설들은 읽고 나서도 가슴이 저릿해 온다.

'해피 투게더'나 '번지점프를 하다'같은 영화는 동성애를 이해할 수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의 벽들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너무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내가 생각하던 버전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제 점수는요~ 별 셋이다.^^


처음부터 다리가 짧게 태어난 사람에게 너는 왜 절뚝거리면서 걷니? 묻는게 동성애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라고 누군가 하는 말을 들은 뒤로는 그들을 바라볼 때 그들을 그들로 인정하는 마음이 되려고 노력한다.

노력하지 않고 그냥 보는 사람이 아직 안되는 게 부끄럽지만 앞서 말했 듯 가치관이라는 게 감정을 따라가질 못하는 이유다.


미국판 사랑의 체험수기를 읽은 기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맞다, 동화책이다.

작가는 12세와 13세 청소년을 위하여 이 책을 썼으나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니 이건 청소년(12세와 13세라고 굳이 연령대를 꼬집어 주는 친절이라니^^)을 위하여 쓰긴 했으나 어른이 읽으면 더 좋은 동화책이 될 것이라는 걸 작가는 알았던 거 같다. 정확히 봤다.

작가는 프랑스 사람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을 쓰고 그렸는데 딱, 내 취향이다.

이야기는 재밌고 시각 표현을 공부하고 삽화를 그려왔던 사람답게 디테일하면서도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신비감을 주는 그림이다.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주인공을 부각시키면서도 주변의 작은 세세한 것에도 심혈을 기울인 그림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 그렇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 마다 '윌리가 어딨나?' 찾아야 할 거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 (그림이 내 취향이라 그림을 많이 올려 보기로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하며 자연을 파괴하고 살육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인간이 사악한 이기심을 비판하는 [마지막 거인]은 교훈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나 그냥 신비한 모험 이야기로 읽어도 재밌다.


벽에 걸린 초상화, 산양의 뿔, 지구본, 장거리 여행용 가방, 모형 범선, 망원경, 거북 등껍질, 가득한 책... 하나 하나 그림들을 살펴보며 '이 작가는 모험을 좋아하고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부자구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책이 벽면 가득 쌓여있고 전세계에서 사 온 진귀해 보이는 물건들과 아직 풀지 않았거나 혹은 떠나기 위해 싸 놓은 짐 짝과 가방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식사를 준비해 주는 가정부가 있는 것.


음...내가 원하는 삶이잖아, 부러움과 함께 동경의 대상이다. 부러워 했으니까 벌써 졌다. 인정하고 이야기 속으로 가보자!


모험가이자 지리학자인 주인공은 부두를 산책하던 중 이상한 그림이 조각되어 있는 아주 '커다란 이(齒牙)'를  백발 성성한 노인에게 산다. 고래 이빨에 그림을 새겨 넣은 것이 아닌 진짜 '거인의 이'라고 주장하는 노인에게 뻔한 속임수라고 여기지만 얘기가 재미있어서 2기니에 산 후, 호기심에서 어금니에 그려진 그림을 연구한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연구는 놀라움에서 당혹감으로 바뀌고 어른 주먹만한 어금니 뿌리 안 쪽에 새겨진 미세한 지도는 지리학자의 육감과 연구로 '거인족의 나라'가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긴 여행을 결심한다.

 

대부분의 동화처럼 험난한 여정이 이어지고 가진 물건도 함께 간 동료도 다 잃고 천신만고 죽음 직전에 거인의 나라에 도착한 주인공은 그들이 지구상에남은 마지막 거인족의 나라임을 알게 된다.

거인들 몸에 그려진 정신없이 혼란한 금박 문신은 형태와 색깔을 달리해 가며 의사소통을 하고 자연과 대화를 나눈다. 피부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주인공을 말 못하는 벙어리로 생각해 불쌍히 여긴다는 내용은 기발하고 자연친화적인 상상력이라 엄지척! 슬몃 웃게 된다.


거인의 나라에서 열 달 가까이 지내며 거인들과 친해지지만 고향이 그리운 주인공은 거인의 도움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지리학자 답게 거인의 나라로 가는 지형과 여정, 거인들의 특징, 경험을 책으로 내고 과학 단체의 거친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세기의 발견자'라고 칭송하는 측과 있지도 않은 얘기를 꾸며 내는 '협잡꾼'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지만 두 번째 원정단을 계획할 만큼 충분한 돈도 마련하게 되고.


짐작했겠지만, 결론은 우울하다.

주인공이 낸 책을 안내서로 삼아 사이비학자, 도적들, 온갖 종류의 협잡꾼들이 먼저 도착해 마지막 남은 아름다운 거인들은 살육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분주히 오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된다. 달콤한 비밀을 폭로 하고 싶었던 어리석은 이기심과 자신의 명예욕이 이들을 죽였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걸 내려놓고 고기잡이 선원으로 살아간다는 얘기다.

한때 가장 자신을 사랑해 주고 진실한 친구였던 거인 안틸라가 축제의 제물로 머리가 잘린 채 마차에 실려 오면서 슬픔 담긴 영혼의 목소리로 축제 행렬을 지켜보고 섯는 주인공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그는 아이들에게 수많은 여행담과 너른 바다와 대지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려 줍니다. 하지만 귀중품 맨 밑바닥에 가만히 누워있는 그 이상한 물건, '거인의 이'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P.78)


서평이나 독후감을 쓸 때 책 내용을 세세히 쓰는 걸 싫어하지만 이 책은 원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읽어 주고 싶은 책이다.

자연을 걸어다니는 아름다운 거인들로 빗대어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해 온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지만 어디에도 억지 교훈을 주려 하지 않고 이야기 자체의 힘으로만 이야기를 읽히게 한다.  거인들의 모습과 특징, 거인 나라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이야기들은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르는 신밧드 모험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이 책으로 인해 작가는 작가이자 삽화가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수많은 상을 받았다는데 충분히 그럴만 하고 더 많은 책을 써 주길 기다리고 있다. 아이에게 딱 한 권의 책을 읽힐 수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할 것이고 만약 내가 한 권의 책을 쓸 수있다면 이런 얘기를 써 보고 싶다.


책을 덮고 나서도 안틸라 영혼의 목소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 들려오고 침묵을 지키지 못해 잃었던 우정과 신뢰와 인연들을 조용히 생각해 보게 한다.

안틸다 미안-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