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에는 정확함이란 게 없으니까요. 어떤 하나의 사건 때문에 건강했던 사람이 아파지는 게 아니고, 어떤 하나의 비정상 세포가 분열하거나 돌연변이를 거쳐서 사람의 미래를 바꾸는게 아니니까요. 그저 느리고 불분명한 과정이 있을 뿐이죠. 우리는자신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죠. 알지만 알지않으려 하죠. 자신이 충분히 끊을 수 있다고, 관리할 수 있다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불안해서 홀짝홀짝, 부정하려고 벌컥벌컥.

-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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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절망감에 맞서 싸울 자원이 있다는 사실, 내 시간을 잘 쓰고 내 영혼을 잘 돌볼 능력이 있다는 사실, 외로움이 우리에게 닥치더라도 우리는 그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으리라는 사실 그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고독한 일요일이었지만, 결국에 외로운 일요일은 아니었다.

- 외로움에 관하여 - P186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년이 흐른 지금, 그 감정들은다소 누그러졌다. 덜 통렬하고 덜 자동적이고 덜 필요한 것이 되었다. 나는 개를 쓰다듬으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각자의 부모에 대해서 오랫동안 남몰래 화낸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아닌지, 우리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지, 우리가 어떤 실망과 단절을 겪었는지, 그들이 우리를 키운 방식이 왜 이렇게 꼬여있었는지, 이 모두에 대해서 화낸다. 이 괴로움을 놓아버리는 일은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고, 자기 인식과 성숙함과 시간이 절묘한 비율로 섞여야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혹은 왜 그 일이 가능해지는지, 부모에 대한 복잡한 감정에서 가장 아픈 모서리들이 깎여나가는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분이 돌아가신 뒤 내가 얼마나 멀리 나아왔는지를 떠올렸다. 나는 작은 눈물의 강을 타고서 우리가 그 테이프를 녹음했던 날부터 내가 마침내 그것을 틀어본 날까지 흘러왔다. 

- 더 이상 곁에 없는 사람을 수용하는 것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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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자

모든 것이 너무 많다.
모든 것은 너무 많고 모든 것은 불완전하며 모든 것에대한 설명은 불충분하다.
불완전한 것들을 더 완전한 것들로 만들려는 노력은시기와 불확실성이라는 제약하에 언제나 부차적인 것으로치부된다. 그래서 결국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제약이 고려되지않는 가장 불필요한 것들뿐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것들을 손보는 사람, 사람들의 필요와는 상관없이 스스로가필요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말 그러한지 스스로되묻지 않을 수 없는 착란에 빠져버리고 마는 사람.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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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인형을 파는)

해역을 건너온 아이들을 좌판에 벌여두고 난롯불에 두 손을쬐고 있는 일요일, 겨울, 동묘는 16세기 말 선조가 명나라 황제의명에 따라 지은 관우의 사당,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성인가요. 가짜 브랜드, 가짜 시계. 권력도, 약속도 없는 반지들. 이미유물 같은 전자 제품들. 한창 허기질 때 길거리 음식 냄새.
옷 무덤이 군데군데. 그야말로 옷의 무덤. 이 모든 죽어가는것들이 여기서도 구원받지 못한다면……… 유독 추운 날이라 그런지썩 밝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표정. 눈이 올 것만 같은, 오지않는 하늘. 울 것만 같은, 울지 않는. 그러나 내가 너희 부모도아니고, 언제까지 너희를 돌볼 수는 없단다…. - P38

산역꾼

당신은 흙을 덮을 것이다.
우리는 남은 술을 마저 걸칠 것이다. 어미 아비도 못알아볼 만큼 취하고 오늘을 잊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산에서 하는 일[役]이다. - P40

묘지기(공원의)

유명인의 무덤 하나 없는 이 공원은 늘 조용하다. 가끔늙은 산책자들이 보일 뿐, 헌화하러 오는 사람도 거의 없다.
대부분 가족 없는 묘이거나, 그나마 있던 가족도 더는 없는오래된 묘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과거와 단절된 시간 속에 자리한이 묘들을 보면서 내게 오는 미래를 감각한다. 그리고 이감각에서 친연성을 느낀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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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은 결코 강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계속 움직이고 계속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견고성을 얻고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사고방식에 나는 강하게 매혹되었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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