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듯한 나날을 보내는 게 어떤의미인지 안다. 그건 눈에 보이지 않는 혈투를 치르는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보냈다고 생각한 하루하루는 그 자체로 힘겨운 투쟁의 연속이다. 일상이라는 얼굴 없는 괴물과의 싸움, 내가 동의하지 않는 가치에 투항하지 않으려는 안간힘………. 밤이면 누군가에게 실컷 두들겨 맞기라도 한 듯 몸과 마음이 욱신욱신 아프다.
- 프롤로그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이다 - P7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란 없다. 그날이 그날인 것 같아도 인간은 천천히 어느 지점인가를 향해서 간다. 헛되이 거저지나가는 시간은 없다.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인 조급증과 욕심때문에 다만 실감하지 못할 뿐.
- 프롤로그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이다 - P8
이런 반응이야말로 시인 후쿠다 미노루의 말을 깊이 이해한게 아닐는지. "게으름을 피운다고 해도 사회가 강요하는 가치에 대해서 그러는 것이지 스스로에게 그러는 것은 아니다."
- 프롤로그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이다 - P9
한편으론 뭔가를 하고 싶어도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의 지향점을 다시 한 번 밝혀 두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란 나 자신의가치와 신념이 아닌 사회가 강요하는 트렌드나 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삶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상처받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권리장전이기도 하다.
- 프롤로그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이다 - P10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성찰해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모른다. 이광활한 우주와 자연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고민해 보지 않은사람이 타인이 처한 어려움과 절박한 심정을 자기 것처럼 상상하기란 힘든 노릇이다.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 나무 한그루, 새한 마리가 입은 상처를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는 공감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무위의 시간을 지나 보지 않은 사람은 또 기다리는 법에서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기에 우리는 다만 현재의 한순간 한순간을 지극한 마음으로 살아갈 뿐이다. 아침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이 저녁에 일어나는 ‘엄청난 일‘의 씨앗이 될수 있다. 진정으로 살아 있다는 실감을 안겨 주는 소중한 기회들은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내려놓은 그 순간에 찾아온다. 이 책은 바로 그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 프롤로그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이다 - P12
해야 할 일이 오직 휴식뿐일 때, 정작 제대로 쉬지 못한다는 것을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쉬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는 어중간한 상태로시간을 흘려보내기 십상이라는 것을.
- 왜 우리는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걸까? - P23
진정으로 휴식을 갈망하며 준비해 온 사람은 그 시간에 전념할 줄 안다. 잘 쉬는 것. 그 단순한 일에도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는 걸 그이는 잘 안다. 일상이 품고 있는 만성적인 권태는 휴식의 시간이 왔다고 해서 그리 만만하게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 왜 우리는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걸까? - P24
(안경)영화는 진정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연습과 열린 마음 그리고자신을 버리는 용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걸 잔잔하게 보여 준다. 휴식이란 자신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훌쩍 점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 왜 우리는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걸까? - P27
진짜 고수는 자신에게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철썩같이 믿는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믿는 것도 재능이고 행운이기 때문이다.
- 100점을 목표로 하지 않을 것 - P35
그럴 때마다 나는 소설가 최인훈 선생님이 했던말을 떠올리곤 한다. "사람은 가진 것으로 제사지낼 수밖에 없다."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진실인지 맞다. 가진 것으로 제사 지낼 수밖에 없다. 물론 진수성찬을 마련하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말라비틀어진 북어포에 사과한 알, 술 한 잔이 전부라면 그거라도 챙겨 상을 마련해야 한다. 없는 것에 연연해 정성스럽게 올려야 할 제사 자체를 망쳐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 100점을 목표로 하지 않을 것 - P38
"이제 그만 좀 물었으면 좋겠어. 질문하는 것도 좋지만 실천하는 게 더 중요하잖아. 자기 꿈이 무엇인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묻는 학생한테 내가 물어봐. 그 꿈을 위해 하루에 몇 시간을 바치고 있냐고, 구체적으로 몇 시간 몇 분이라고 답하는 사람은드물더라고, 벼락치기하듯 며칠, 몇 달 반짝하는 것 말고 꾸준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어. 모두 추상적인 질문만 잔뜩 안고서 정작 몸을 움직이진 않아 고민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 듯이."
- 100점을 목표로 하지 않을 것 - P39
그러나 자신을 오롯이 책임져야 할 시기가 되면 어떤 의문들은 스스로 해결해야한다. 그리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질문이후의 삶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숱한 통과의례의 질문들을 쏟아내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안다. 자신과 화해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잃는다는 것을. "나는 내 인생의 전반을 틀어쥐고 있는가?" "아주 중요한데도 남에게 맡겨 놓은 것은 없는가?" 어느 멘토를 찾아가도 원하는 만큼 속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 그 의문을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찾아가려 애쓴다. 그리고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60점, 양만 맞아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 100점을 목표로 하지 않을 것 - P40
친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듣자마자 이해할 수 있었고, 깊이 공감했다. 어쩌면인간이란 살면서 무작정 기다리는 뭔가를 하나쯤 지녀야 매매르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기다림이 없는 시간 모든 것이 확정된 듯 빡빡하게 흘러가는 시간이란 때론 먹먹한 아픔이며, 잔인한 권태를 낳기 마련이기에.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시간. 지나고 나서야 그 정체가 드러나는 기다림.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어떤 인간이 되기를 꿈꾸는지 모색하는 멈춤의 시간. 그런 종류의 기다림을 가르켜 사회학자 노베르트 앨리아스는 이렇게 말했다. "한 인간을 이해하려면 그가 간절히 성취하고자 하는 지배적인 소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 멈추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 - P42
이게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닐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당장 현실적으로 손에 잡히는 증거는 없다. 나를 만나기 위해 어떤 운명이먼 곳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얼마만큼 왔는지, 과연 내가 알아볼 수 있을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는 동한 세상은 나름의 질서를 따라 빈틈없이 돌아간다. 외롭고 고단하고 면역력이 약해지기 쉬운 시기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내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정지당한 것 같았던 그 시간조차 꼭필요한 멈춤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 덕택에 전진하지 않으면행복마저 잃을지 모른다는 초조함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선배 작가 한 분은 날마다 한 줄이라도 쓰기 위해작업실로 출근한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작업실로 가서 저녁식사 전까지 머문다.
"가장 위험한 때가 언제인지 아니? 글이 잘 안 써질 때가 아나 오히려 손이 머릿속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글이 잘 풀릴때지, 일이 잘 될 때는 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무리하기 쉽거든."
- 멈추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 - P45
멈춘다는 것. 그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삶과 소통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적절한 때에 내 의지로 멈추지 못하면 후유증이 생기게 마련이다. 만약 데이빗이 멈춤의 시간을 갖지 않고 우유부단하게 사태를 방관했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상처를 주고 말았을 것이다.
- 멈추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 - P49
투덜대려면 부족한 점이 한도 끝도 없이 쏟아지고, 감사하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순간들을 잠깐 벗어나면 욕망의 포로가 되기는 얼마나 쉬운 일인가.
-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순간들 - P74
사실 누구나 숨통이 막힐 것 같은 날에는 자신도 모르게 사막의 날을 본능적으로 꿈꾼다. 다만 하이데마리처럼 그 시간에사막의 날‘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 사막의 날은마음껏 방랑할 권리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사막에서는 끊임없이 걷거나 모래 위에 주저앉아 쉬는 수밖에 없다. 인간이 생활하기에는 가혹한 조건이건만 사막은 늘 사람을 불러 모으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녔다. 종교의 창시자들은사막에서 일정한 날을 보낸 뒤에야 중요한 메시지를 인류에게전했다. 성인들뿐만 아니라 역사상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들도인생의 많은 시간을 뒤로 물러서서, 다른 사람들과는 따로 떨어진 채 사막처럼 적막한 환경에서 혼자 보내는 시기를 거쳤다. 자신 안의 빛을 되찾아 생동감 넘치는 인생을 살고 싶은 여행자들도 사막으로 향했다. 사막은 불모의 땅이면서도 재생과 창조의비의로 가득한 곳이다.
- 하루쯤 마음 가는 대로 해 보기 - P77
나쁘다. 좋다. 행복하다. 불행하다의 기준을 정해 줄 수 있는 존재는아무도 없다. 그 기준은 오로지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행복의 기준은 최대한 낮춰 잡고, 나쁜 일의 기준은 최대한 높여잡을 것. 행복의 그물코는 작은 기쁨이라도 놓치지 않도록 최대한 촘촘하게만들고, 불행의 그물코는 웬만한 것쯤은 다 빠져나가도록 크고 넓게 만들 것. 굴뚝새가 아는 진실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었다.
덕분에 세상에서 스스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임을,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히말라야를 넘는 일만큼이나 힘든 일임을 깨닫는다면?
- 좋기만 한 일도,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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