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동료는 이미 높은 지위에 올라 있으니, 그 자신이 옛날에 우둔하다고 깔보던 그들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것이 왕년의 준재 이징의 자존심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었는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늘 불만에 가득 차 마음이 즐거울 때가 없었으니, 괴팍한 그의 성질을 억누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 중국의 고담 : 산월기 - P10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모르겠다. 우리는 전혀 아무것도 모른다. 이유도 모른 채 강요되는 것을 얌전히 받아들이며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살아가는 것이 우리 생물의 운명이 아닐까. 나는 곧 죽음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눈앞에 토끼 한 마리가 뛰어가는 것을 본 순간, 내 속의 인간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 중국의 고담 : 산월기 - P12
아까는 왜 이런 운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지는 않다. 인간이었을 때, 나는 애써 남들과의 교제를 피했다.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다. 거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거의 수치심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물론 지난날 고향에서 귀재로 불린 내게 자존심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그것은 소심한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 성질의 것이었다. 나는 시로써 이름을 떨치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게나 기꺼이 시우와 어울리며 절차탁마를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한 나는 속물들 사이에 끼는 것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 모두가 나의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 탓이었다. 내가 옥구슬이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애써 각고하여 닦으려 하지 않았고, 또 내가 옥구슬임을 반쯤 믿는 까닭에 그저 줄줄이 늘어선 기왓장들 같은 평범한 속인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 중국의 고담 : 산월기 - P16
나는 점차 세상에서 벗어나고 사람들과 멀어지며 번민과 수치와 분노로써 내 속의 소심한 자존심을 더욱 살찌게 했다. 인간은 누구나 맹수를 키우는 사육사이며, 그 맹수는 바로 각자의 성정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에는 거만한 수치심이 맹수였다. 호랑이였던 것이다. 이것이 나를 해치고 처자를 괴롭히며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에는 내 외모를 이렇게 속마음과 어울리게 바꾸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가진 약간의 재능을 다 허비해버렸던 셈이다. 인생이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나 길지만 무언가 이루기에는 너무나 짧다는 둥 입에 발린 경구를 지껄이면서도, 사실은 부족한 재능이 폭로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각고의 노력을 꺼린 나태함이 나의 모든 것이었다. 나보다 훨씬 재능이 부족한데도 오로지 그것을 열심히 갈고닦아서 이제는 당당한 시인이 된 자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호랑이가 되어버린 지금에야 나는 겨우 그것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타는 듯한 후회를 느낀다.
- 중국의 고담 : 산월기 - P17
게다가 이 남자는 자기의 행위가 한나라까지 알려지는 것을 예기하고 있지 않다. 자신이 다시 한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물론, 자신이 이런 무인의 땅에서 곤궁과 싸우고 있는 것을 한나라는커녕 흡노의 선우에게도 전해줄 인간이 생길 것을 기대하고 있지도 않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 죽어갈 것이 틀림없는 최후의 날에 스스로 되돌아보아 마지막까지 운명을 일소에 부칠 수 있었던 데 만족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 자신의 사적을 알아주지 않아도 관계없다는 것이다. 이릉은 지난날 선대 선우의 목을 노리면서, 그 목적을 달성한다고 해도 자기가 그것을 가지고 흉노의 땅에서 탈주할 수 없으면 모처럼의 행위가 공허하게 한나라에 전해지지 않을 것을 걱정하면서 결국 결행의 기회를 찾지 못했다. 남에게 알려지지 않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 소무를 앞에 두고 그는 남몰래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 중국의 고담 : 이릉 - P68
이릉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흉노에게 항복한 자신의 행위가 바르다고 하는 것은 아니나, 자기가 고국에 바친 것과 그에 대해 고국이 자기에게 보답한 바를 생각한다면, 아무리 무정한 비판자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는 점을 인정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여기 한 남자가 있어, 아무리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되는 사정이 앞에 있어도 단연코 그런 생각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 남자에게는 기아도 추위도, 고독의 괴로움이나 조국의 냉담도, 자기의 고절은 결국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라는 거의 확정적인 사실까지도 평생의 절의를 꺾을 정도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은 아니었다. 소무의 존재는 그에게 숭고한 훈계이기도 하지만 초조한 악몽이기도 했다. 때때로 그는 사람을 보내 소무의 안부를 묻고 음식, 산양, 융단을 보냈다. 소무를 보고 싶은 마음과 피하고 싶은 마음이 그의 마음속에서 늘 싸우고 있었다.
- 중국의 고담 : 이릉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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