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둘의 차이가 분명하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어쩌면 단지 양력 11월의 어느 날과 음력 10월 어느 날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할수록 희미하고, 또 차이가 없다고 할수록 선명하다.

- 좋아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모두가 혼자 - P19

서로의 공통점과 살고 싶은 삶의 방향을 이야기할 때도 나는 알아버렸다.
나도 마침,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다. 라디오를 많이 듣는 사람을 만난 것이 오랜만이었고, 비행기의 맨 뒷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기에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근사했다. 하지만 누구나 사랑의 대상이 일시적으로나마 필요한 시기가 있다. 조금은 더 절박하며, 조금 더 긴장하면서 쓸쓸한 시간을 연결할 수있는, 극적인 사람과의 미치겠는 시간이.

- 좋아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모두가 혼자 - P19

나도 누군가를 좋아한 적이 있다.
좋아하는 그 자체보다는, 오로지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파고들어가는 감정만을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었을 때는 달랐다. 파도의 높이도,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파괴력도 충격적이었다. 
그 굉장함은 사랑이 종말을 맞이하고도, 그리고 세월이 몇 겹으로 바뀌고 나서도 마음에 큰 빚을 지게 했다. 사람들은 그 갚을 수도 없는 빚을 ‘힘들다‘라는 말로 건조하게 축약해 사용하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나버렸는데 어떻게 어렵지 않을 수 있으며 그 어려운 상태가 고작 ‘힘들다‘라는 것이라면 수제비를 먹고 나서 밀가루를 먹었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 좋아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모두가 혼자 - P21

한 장 한 장 셔터를 누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듣게 하고, 마치 원고지 스물네 장에 한 자의 글자를 채워나가면서 가슴뛰는 것 같은, 그런 순간들을 만나보라고 하고 싶다.
상금을 대신해 아이슬란드 왕복 항공권을 선물로 안겨주는 그런 축제 하나를 만들고 싶다. 삶은 작은 순간들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기로 한다. 계절이 주는 착한 신호들이 사진 안에 탐스럽게 내려앉았으면 한다.
오래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게 되기를, 그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불안을 앓고 있는 청춘이 알게 되기를 한 장 한 장 사이의 이동 거리가 모이고 한 장 한 장 사이의 시간 차를 밟으며 필름 한 통을 다 쓰는 동안 꽤 괜찮은 시간을 사용했음을 알게 되기를.

사진은, 우리가 축소하려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지속하라고 알려주며, 누르고 가두려는 본래 모습을 잃지 말라며 우리를 계속해서 뒤척이게 해준다.

- 좋은 날의 증거들 - P50

가면을 쓰고 살기보다는 민낯으로 살기에 이 세상은 이미 충분하다고,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떻게 이 세상을 혼자 건너가겠냐고…………. 이런 근사한 메시지를 포함하여 사진은 삶의 순간순간을 착하게 대면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니 세상이 침침하거나 두려울 때가 오면 카메라를 들어 안으로 건너다보이는 세상에 눈 맞추면 된다.

- 좋은 날의 증거들 - P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래전 여행이 간절했던 시기에는 한 번의 여행을 위해 오직 떠날 날만을 기다리면서 모든 일상을 여행에 맞춰 사는 그런 때도 있었다. 숨쉬는 매 순간마다 떠날 날을 기다렸다면 믿을까. 하지만 이제는 여행에서 별다른 느낌 혹은 감흥을 얻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맥빠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스스로도 참 많이 놀란다. 그만큼 바싹 마른 상태, 결핍이 있는 상태에서 떠난 여행이 아니어서였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느만큼을 채워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형편없어진 여행을 대하는 태도 앞에서 새삼 놀란다.

-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 - P12

뭔가를 빨아들이려면, 작은 것을 커다랗게 느끼려면, 미지근하기만 한 대기를 청량한 것으로 바꿔서 받아들이겠다면 어느 정도 메마른 상태여야만 가능하다. 물론 이 사실은 여행에만 적용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엄살을 부리며 사는 건 그래서다. 우리가 자주 메말라 있는 것은 곧 좋아질 거라는 잠재적 ‘신호‘가 왔음을 알려주는 것.

-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 - P13

하지만, 떨어지는 것은 절대로 중요한 일이다. 당선되지 않았다는것은 당선의 의미만큼이나 중요하며 역시나 안 되었다는 것은 되기 위한 과정으로도 중대하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남에게 이해될 수없다는 것도, 내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만으로 도달할 수 없다는 것도,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커다란 상실감과 오기 또한 필요하다는 것까지도 알게 해주니까. 낙선된 다음에 쓰는 글은 태도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안 될 수도 있는 일에 말도 안 되는 확률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한 사람의 어느 한 단면은 바뀐다. 그 상황은 자신의 현재를 확대해서 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내부의 힘까지도 뭉근하게 키운다. 어딘가에 떨어져보지 않는 우리는, 어디에선가 망해보지 않은 우리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 - P14

또 필요한 것은 씻어내는 일이다. 잘 씻어내는 일.
우리는 어떻게든 상처받는다. 우리는 어떻게든 타인에 의해 내 단점이 발견되고 만다(발견되기도 하는 것이지만 남에 의해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남들은 그것을 잘도 캐낸다. 남에게 단점을 가격당하는 순간 모든 것이 멈추는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시간 속에서 그 기분들은 희석된다. 상처든, 남이 들춰낸 단점이든 잘 씻어내야 한다. 씻어내는 것은 닦아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덜어내는 것이기도 하고, 그 세포의 뿌리를 잘라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씻어내야 새살이 돋는다. 그곳에 새 기운이 돋는다. 잘 씻어내지않은 부위는 새로운 살이 붙기에 깨끗하지 못하다. 이전의 것들과 적당히 섞여 좋은 것이 생겨나더라도 온전히 좋은 것일 수가 없다. 군내를 잘 씻어버리지 못하면 군내는 계속해서 따라오지 않겠는가. 트라우마가 나를 지나가면서 남긴 지문을 슬쩍이라도 몸에 남겨서는 안 된다.

-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 - P14

내가 좋아하는 ‘반동‘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물리학에서 ‘반작용‘이라고도 쓰는 이 말은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물체 A가 물체 B에 힘을 작용시킬 때, B가 똑같은 크기의 힘을 A에 미치게 하는 작용.
힘의 시작은 내가 무엇을 시작했을 지점부터를 말한다. 그 어떤 시작 없이는 그 어떤 반동도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반동의 연속이고 그 연속을 통해 일어나는 결과가 결국 미래를 받치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나의 내부로부터, 누군가의 신호와 영향으로부터 반동을 멈추지 않을 준비를 하는 추자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은 마음이 시키는 것이 있을 때에도, 몸이 시키는 일이 있음에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마음의 사용법과 몸의 사용법 앞에서 숱하게 주저해왔다. 혼자 헤쳐온 일이 거의 없는 생을 산다면 우리는 자주 난감해할뿐더러 인생의 그 어떤 무늬도 만들지 못한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살면서 큰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거기서 더욱 성장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아주 작은 일로도 탈진 상태가 된다. 만일 그들 자신에게 의지력이 없거나 자신들의 책임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그들을 쓰러뜨리게 된다‘라고.

-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 - P15

당신이 혼자 있는 시간은 분명 당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이떻게 혼자인 당신에게 위기가 없을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막막함으로부터 탈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혼자 시간을 쓰고, 혼자 질문을 하고 혼자 그에 대한 답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닥쳐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그 외로움 앞에서 의연해지기 위해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 써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목숨처럼 써야 한다. 그러면서 쓰러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일어서기도 하는 반복만이 당신을 그럴듯한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비로소 자신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다. 물론 자기 안에다주인을 ‘집사‘로 거느리고 사는 사람이다.
오늘밤도 시간이 나에게 의미심장하게 말을 건다. 오늘밤도 성장을 하겠냐고. 아니면 그저 그냥 지나가겠냐고.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보통의 사람은 남이 만든 파도에 몸을 싣지만, 특별한 사람은 내가 만든 파도에 다른 많은 사람들을 태운다.

-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 - P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기까지 읽고서 무슨 일이 있어도 환자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당신의 건강과 행복이 최우선이다. 환자와의 관계가 당신에게 해가 된다면 먼저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환자에게도, 당신에게도 결코 도움이 안 된다.
자기애성 성격 장애를 가진 범죄자 중에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손아귀에 꽉 틀어쥐고 마음대로 부려먹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많다. 힘들었던 인생 경험을 털어놓으며 동정심을 유발한 후 상대를 꼼짝 못 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교도소에 여러 번 들락거린 사람들은 현실성 있는 극적인 스토리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끌어온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배운다. 그래서 힘들고 아팠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자주 늘어놓는다.
따라서 뭔가 미심쩍다는 기분이 들거든 자신의 직감을 믿고 조심하는 것이 좋다. 그의 고달픈 인생이 불쌍하고,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가 다 사실이라 해도 다분히 의도적일 수 있다. 특히 사연이 너무나 극적이고 이야기를 들은 당신이 충격을 받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환자가 즐기는 것 같다면 그건 100퍼센트 의도적인 고백이다.
환자는 당신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긍정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신은 ‘영웅‘이라고, 온갖 무시무시한 일을 다 겪어냈기에 이제는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고 말이다. 그런 이야기에 압도당해 주눅 든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못 믿겠다고 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환자가 수치심을 못 견디고 격하게 공격할 수도 있다. - P2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거의 동료는 이미 높은 지위에 올라 있으니, 그 자신이 옛날에 우둔하다고 깔보던 그들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것이 왕년의 준재 이징의 자존심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었는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늘 불만에 가득 차 마음이 즐거울 때가 없었으니, 괴팍한 그의 성질을 억누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 중국의 고담 : 산월기 - P10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모르겠다. 우리는 전혀 아무것도 모른다. 이유도 모른 채 강요되는 것을 얌전히 받아들이며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살아가는 것이 우리 생물의 운명이 아닐까. 나는 곧 죽음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눈앞에 토끼 한 마리가 뛰어가는 것을 본 순간, 내 속의 인간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 중국의 고담 : 산월기 - P12

아까는 왜 이런 운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지는 않다. 인간이었을 때, 나는 애써 남들과의 교제를 피했다.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다. 거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거의 수치심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물론 지난날 고향에서 귀재로 불린 내게 자존심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그것은 소심한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 성질의 것이었다.
나는 시로써 이름을 떨치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게나 기꺼이 시우와 어울리며 절차탁마를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한 나는 속물들 사이에 끼는 것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 모두가 나의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 탓이었다. 내가 옥구슬이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애써 각고하여 닦으려 하지 않았고, 또 내가 옥구슬임을 반쯤 믿는 까닭에 그저 줄줄이 늘어선 기왓장들 같은 평범한 속인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 중국의 고담 : 산월기 - P16

나는 점차 세상에서 벗어나고 사람들과 멀어지며 번민과 수치와 분노로써 내 속의 소심한 자존심을 더욱 살찌게 했다. 인간은 누구나 맹수를 키우는 사육사이며, 그 맹수는 바로 각자의 성정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에는 거만한 수치심이 맹수였다. 호랑이였던 것이다. 이것이 나를 해치고 처자를 괴롭히며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에는 내 외모를 이렇게 속마음과 어울리게 바꾸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가진 약간의 재능을 다 허비해버렸던 셈이다. 인생이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나 길지만 무언가 이루기에는 너무나 짧다는 둥 입에 발린 경구를 지껄이면서도, 사실은 부족한 재능이 폭로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각고의 노력을 꺼린 나태함이 나의 모든 것이었다. 나보다 훨씬 재능이 부족한데도 오로지 그것을 열심히 갈고닦아서 이제는 당당한 시인이 된 자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호랑이가 되어버린 지금에야 나는 겨우 그것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타는 듯한 후회를 느낀다.

- 중국의 고담 : 산월기 - P17

게다가 이 남자는 자기의 행위가 한나라까지 알려지는 것을 예기하고 있지 않다. 자신이 다시 한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물론, 자신이 이런 무인의 땅에서 곤궁과 싸우고 있는 것을 한나라는커녕 흡노의 선우에게도 전해줄 인간이 생길 것을 기대하고 있지도 않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 죽어갈 것이 틀림없는 최후의 날에 스스로 되돌아보아 마지막까지 운명을 일소에 부칠 수 있었던 데 만족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 자신의 사적을 알아주지 않아도 관계없다는 것이다.
이릉은 지난날 선대 선우의 목을 노리면서, 그 목적을 달성한다고 해도 자기가 그것을 가지고 흉노의 땅에서 탈주할 수 없으면 모처럼의 행위가 공허하게 한나라에 전해지지 않을 것을 걱정하면서 결국 결행의 기회를 찾지 못했다. 남에게 알려지지 않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 소무를 앞에 두고 그는 남몰래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 중국의 고담 : 이릉
- P68

이릉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흉노에게 항복한 자신의 행위가 바르다고 하는 것은 아니나, 자기가 고국에 바친 것과 그에 대해 고국이 자기에게 보답한 바를 생각한다면, 아무리 무정한 비판자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는 점을 인정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여기 한 남자가 있어, 아무리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되는 사정이 앞에 있어도 단연코 그런 생각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 남자에게는 기아도 추위도, 고독의 괴로움이나 조국의 냉담도, 자기의 고절은 결국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라는 거의 확정적인 사실까지도 평생의 절의를 꺾을 정도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은 아니었다.
소무의 존재는 그에게 숭고한 훈계이기도 하지만 초조한 악몽이기도 했다. 때때로 그는 사람을 보내 소무의 안부를 묻고 음식, 산양, 융단을 보냈다. 소무를 보고 싶은 마음과 피하고 싶은 마음이 그의 마음속에서 늘 싸우고 있었다.

- 중국의 고담 : 이릉 - P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런 상황은 쉽게 상처받고 다시 상대를 공격하기를 반복하는 환자 자신의 딜레마를 닮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당신 탓이 아니다. 그러니 자책해선 안 된다. 당신은 그저 환자의 행동에 반응했을 뿐이다.
조금만 더 참을 걸 하는 후회와 죄책감은 둘 다 부적절한 감정이다. 자기애성 성격 장애 환자가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당신의 마음에 불어넣은 터무니없는 감정이다. 환자는 당신을 무력한 위치로 끌어내리고 죄책감과 자책을 불러일으켜 당신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그럼 환자 자신은 힘을 과시할 수 있고, 환자를 자제시키려는 당신의노력은 실패로 돌아간다. - P123

자기애성 성격 장애 환자에게 사과란 상상조차 할 수없는 일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나약함‘
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자신이 힘없고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분명 당신은 왜 환자가 사과하지 않을까 궁금했을 것이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그걸 인정하지 못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물으면 환자는 자신은 실수한 적이 없으므로 사과할 이유도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 P1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