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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페트로니우스. 이건 어머니가 아들한테 주는 충고인데, 움은 움이라는 것, 그리고 움은 움이 필요로 하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모든 움은 맨움을 정부로만 볼 뿐이야. 움이 흥미를 갖는 것은 그것뿐이야. 움이 단지 이야기만 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라, 페트로니우스. 너의 가엾은 작은 막대가 그녀를 흥분시키는데, 더구나 어둠이 내리면 움이 단지 수다로 만족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거야. _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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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네가되고 싶은 것이 될수없다고 했니? 내말은, 네가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거야. 꿩도 먹고 알도 먹을 수는 없어. 네가 아이를 갖는다면 아이를 키우는 일밖에 할수 없는거야. 잘들어라, 페트로니우스. 어렸을 때 나도 뭐가 될 것인가에 대해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단다. 바다의 낭만, 그것 때문에 네가 괴로워하는거지...'
여동생이 그를 비웃었다. 그녀는 페트로니우스보다 한살반 어렸지만 늘 그를 못살게 굴었다.
'하하하 맨움은 뱃사람이 될 수 없어. 너는 아마 선실 보이나 남자 선원, 아니면 남자 타수가 되겠다는거구나? 우스워죽겠다. 바다에 가는 맨움들은 창남이나 팔루리안 뿐이야.' _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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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이와 놀아주고 보살펴주느라고 스물 네 시간 내내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어머니처럼 정해진 노동 시간이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일에 대해 임금을 지불받지도 않는다.
가사 노동에 대해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제안은 실제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물론 맨움이 움과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한 일에 대해 맨움이 돈을 받아야 한다고 심각하게 제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것은 여전히 일이었다. _p.293
최근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만큼 화두가 되는 주제도 없는 것 같다. 그 전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문화적으로는 『82년생 김지영』이 흥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던 것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자라오면서 이런 일도 있었지'하고 과거의 일을 다시 경험하는 책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책이 페미니즘의 대명사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어쨋든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내가 이 생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하고 어쩌면 당연하게 여기면서 지냈던 많은 상황들이 사실을 공평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이 전에 <SBS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한 남성이 모르는 여성에게 스토킹을 당하고, 끝내 그 여성을 포함한 무리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사건을 다룬 적이 있었다. 사실 그 재연 영상을 보고 있을 때는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그 이야기는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공포 혹은 성폭력의 상황을 반대로 설정하여 보여주었던 사건이었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그 지점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체계가 완전히 뒤바뀐 가상의 세계 이갈리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 책으로 1977년 출간된 이후,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여성학 이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과 여성 운동의 역사를 담고 있는 훌륭한 여성학 교과서이기도 하다. 현재의 남성(Man)과 여성(Woman)을 여성(Wom), 남성(Manwom)이라는 단어로 설정하여 거울처럼 지금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당연하게 여겼던 '여성'의 불편한 지점들을 바꾸어 여성들에게는 '인식'을 남성들에게는 '경험'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페트로니우스(Manwom)은 열 다섯살의 맨움으로 메이드맨 무도회에서 움의 선택을 받기 위해 한껏 꾸미고 참석한다. 맨움들은 그 곳에서 움의 선택을 받지 못해 '부성보호'를 받지 못하면 고된 노동에 혼자 살아남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 맨움에게도 거절의 선택권이 있다고는 하나 현실적으로는 누군가에게든 선택받아 그 움의 아이를 키우고 싶어한다. 그리고 '메이도터'라는 움을 만나 하룻밤을 보낸다. 페트로니우스는 당연히 남은 생을 '메이도터'의 부성보호를 살며, 아이를 키우고 살 것에 꿈이 부풀어 있다. 하지만 교사 올모스를 통해 점점 '부당함'을 인식하게 되고, 움의 하우스바운드(남편)으로서 부성보호를 받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페트로니우스는 여러 폭력적인 상황을 만나는데, 어두운 시간 숲을 걷다 여러 명의 움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과 메이도터에게 부성보호를 받고싶지 않다고 했을 때 폭력(가정폭력)을 당하는 것이다. 페트로니우스는 이런 상황이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있었고, 그 전에도 있었음을 서서히 인지하게 된다. 또한 자신들이 움의 그늘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과 집안일에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그러는 사이 사회적인 활동은 전혀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전히 사회적으로 맨움이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농장을 가꾸는 작은 일부터 움들이 스스로 해보려 노력하고, 많은 맨움들이 이러한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맨움 해방 운동을 진행한다.
물론 '현재'와 비교한다면, 조금 극단적으로 느낄 수 있지만 과거에는 분명 이러한 것들이 자연의 법칙처럼 당연시되었을 때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는 것'이 아닐까?
최근에 읽은 『사양』에서는 귀족의 계급이 몰락하면서 겪게되는 이야기로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말하는 '평등'이라는 말이 사실은 아주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구나!라고 느꼈다면, 『이갈리아의 딸들』에서는 남녀의 평등이 사실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이어져 온 불균형으로 인하여 '평등'이라는 말은 익숙해졌을지 몰라도 여전히 균형이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왜 균형을 이루지 못할까, 여전히 우리 사회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 계급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가 고개 숙이고, 차별을 감내하면서도 순종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본다면 알 수 있다. '사람'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 그리고 영원히 완벽한 균형과 평등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은 계급이건 남녀건 누군가 불균형 상태에 놓여있다면 그의 상태와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 '이해하려는 마음'이 아닐까. 그래서 『이갈리아의 딸들』은 여전히 고전처럼 읽히는 것 같다. 짐작할 뿐이지만, 상대가 겪었을 불편을 헤어려보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