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특별판)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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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다닐 때 나는 개봉동에 살았다. 열릴 '개', 봉우리 '봉'을 쓰는 개봉동은 수십 년전만 해도 산으로 둘러쌓인 곳이었는데, 산을 깎아 평지로 만든 동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흉흉한 괴담들이 많았다. 원래 산이었던 학교 터는 6.25 전쟁 때 죽었던 많은 사람들이 묻혀있던 땅이라는 둥, 학교를 짓기 위해 땅을 파보니 무더기의 시체를 발견했었다는 이야기들. 밤이면 세종대왕 동상이 책을 넘기는 유치한 괴담보다 한층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러한 괴담은 선생님 모르게 비밀리에 아이들 사이에서 퍼져나갔고, 수업을 마치고도 학교 주변에서 놀던 아이들도 해가 지기 전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무서웠고 궁금했고, 하지만 짜릿했던 이야기들.


"이 학교에는 아무래도 뭔가가 있다. 출근 첫날부터 느낄 수 있었다. 안은영은 유감스럽게도 평범한 보건교사가 아니었다. 은영의 핸드백 속에는 항상 비비탄 총과, 무지개 색 늘어나는 깔때기형 장난감 칼이 들어 있다. 어째서 멀쩡한 30대 여성이 이런 걸 매일 가지고 다녀야 하나 속이 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은 멀쩡하지 않아서겠지. 안은영, 친구들에게는 늘 ‘아는 형’이라고 놀림받는 소탈한 성격의 사립 M고 보건교사, 그녀에겐 이른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p.12)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은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어릴 때부터 보아 온 '퇴마사', 혹은 '심령술사'(뭐, 대충 비슷하게 부르는)인 안은영이 보건교사로 근무하는 사립 M고에서 학교와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기이한 괴물들, 미스터리한 현상들, 학교 곳곳에 숨은 괴상한 힘들과 싸우는 이야기이다. 그녀의 무기는 무지개 색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 그리고 엄청난 에너지로 둘러쌓인 학교 설립자의 후손인 홍인표.


작가는 오로지 이 작품을 '쾌감'을 위해서 썼다고 밝혔다. 플라스틱 칼과 비비탄 총으로 악귀와 혼령을 물리치며, 통굽 슬리퍼를 신고 뛰어다니는 조금 독특한 보건교사 안은영은 학생들의 갖가지 고민을 스스럼없이 들어주고, 엇나갈 것 같은 학생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도하며 안은영만의 용감함과 교사로서의 직업의식을 톡톡히 보여준다. '안은영'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 자체가 이 작품.


사오 년 전쯤 『보건교사 안은영』의 판권이 계약되고, 영상화하는 작업의 시나리오도 정세랑 작가가 직접 참여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무척이나 이 드라마를 기다려왔다. 영화화 되기 위해 판권 계약되는 작품들은 많지만, 사실 실제로 제작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거나 무산되기 일쑤. 하지만 '안은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들을 시각화하는 오랜 작업 끝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공개된다고 한다. (9/25일 공개!)


'정세랑 월드'의 사랑스러움은 드라마도 좋지만, 꼭 글로 먼저 봐야한다는 것! .......책이 이렇게 예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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