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어린이.어른
폴 아자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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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앞 부분만 보았다가 덮었던 것이 기억나서 얼른 집어들었다.
일단 목차 부분도 보통의 이론서보다 더 끌리고,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읽어 나가기 전 2페이지의 서문에서 폴 아자르의 생각을 어떻게 풀어내서 우리를 설득하려 노력했을지 궁금해졌다.


책에 대한 사랑은 편안하고도 세심한 즐거움과 즉각적인 선택, 일정한 품성, 노력, 마음의 평정, 성찰, 그리고 우리 삶이 흔들릴 때 저항하는 힘, 즉 도덕적인 태도 등을 전제로 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책을 수호하는 문제는 바로 교육 문제라 하겠다.
-서문 중에서 (1937년 4월 17일자 <누벨 리테레르>지에 실림-

폴 아자르는 프랑스의 비교문학자로 초창기 지도적 학자로 비교문학의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였다. 소르본,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비교문학 잡지》 초대 감수자였다. 저서는《유럽 의식의 위기》(1935),《18세기 유럽 사상사》등이다. 본 책 <책.어린이.어른>에서는 처음으로 북유럽의 어린이 문학이 남유럽의 어린이 문학보다 뛰어나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1장. 어른은 오랫동안 어린이를 억압해 왔다.
2장. 어린이는 어른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왔다.
3장. 남쪽 나라에 대한 북쪽 나라의 우월성
4장. 민족적인 특색
5장. 인류의식

1장에서는 어린이 문학의 역사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사실 독서지도사 준비를 하면서 이미 이론적인 내용으로 처음 아이들을 위한 문학의 시작들을 읽어 왔다. 물론, 같은 맥락의 의미로 아이들을 위한 문학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지만, 훨씬 몰입될 수 있게 이야기를 해 나간다. 실제로 저서들을 펴낸 작가들의 생활과 그들의 글들을 인용하면서. (와, 이 책에서는 정말 어쩜 이리도 솔직하게 표현한건지 뭔가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2장에서 어린이를 위한 문학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결국은 어른에 대한 승리를 이끌어내는 감정을 이끌어낼 정도로 감화하게 된 고전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 <돈 키호테>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로빈슨 크루소>도 펭귄클래식판으로 읽었는데, 어린이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그걸로도 큰 의미로 와 닿았는지 모른다.

3장에선 남쪽나라와 북쪽나라의 문화, 문학들을 설명해냈고. 프랑스인인 폴 아자르의 솔직한 생각들이 꽤나 담담하게 펼쳐진다. 프랑스인으로써 영국인들의 어린이들에 대한 생각들과 행동들, 그에 따른 문학들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극찬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높이 평가하고 있으니 그의 전문가로써의 명성이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고 명성을 얻은 자여도 쉬운 일이었을까?

5장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문학에 대한 이야기들. 마지막 '어린이가 바라는 이야기' 부분에선 뭔지 모르게 겸허히 받아들이는 듯한 심정으로 읽어나가게 되었다.


어린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책을 주세요. 날개를 주세요. 당신들은 힘이 세고 강하니까, 우리가 더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마법의 정원 한가운데에 새파란 궁전을 지어주세요. 달빛을 받으며 한가로이 거니는 요정들을 보여주세요. 우리도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걸 모두 배우고 싶어요. 하지만 제발 우리에게 꿈도 남겨 주세요."

많은 이들이 "어린이에게 책을 읽어주세요. 하루 10분 읽어주세요. 엄마의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와 닿지 않은가. 간절함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게 되었다. 학교이야기에서는 지금의 어린이들도 이 글을 읽으면 "맞아요!! 제발 우리에게 꿈도 남겨 주세요!"라고 외치지 않을까싶을 정도로. 너무나 필요한 이야기 아닌가.


나는 또 어린이들이 즐겨 머릿속에 그리는 것을 그대로 담은 책을 사랑한다. 온 세상 삼라만상 속에서 특히 어린이들의 취향에 맞추어 선택된 것, 어린이들을 해방시키고 기쁘게 하며 행복하게 하는 이미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린이들한테 덤벼들어 그들을 현실 세계의 굴레로 얽매어 버리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신비의 세계, 그런 것을 어린이들에게 주는 책을 나는 사랑한다.

어린이들에게 감상이 아니라 감수성을 자각시켜 주는 책, 인간다운 고귀한 감정을 어린이들의 마음에 불어넣는 책, 동식물의 생명 뿐 아니라 삼라만상의 생명을 모두 중시하는 마음을 심어 주는 책, 천지의 만물과 그 만물의 영장인 인간 속에 있는 신비스러운 것을 헛되이 하거나 소홀히 하는 마음을 결코 어린이들에게 심어 주지 않는 책, 그런 책을 나는 사랑한다.

폴 아자르가 사랑하는 어린이를 위한 책에 대한 내용이다. 이 뒤로도 조금 더 이어져 있었고, 모두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었다. 이 부분이 우선 순위에 두어야하지 않을까싶다. 어린이들을 해방시키고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하는 책. 생명을 중시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현실 세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책.
얼마나 많은 책들이 인성 동화, 감성 동화, 등등 그럴듯한 이름을 내걸고 나오는지! 불안한 부모들의 마음을 헤쳐놓고 깊숙히 들어가려한다. 아이들을 질리게 해버린다.


어린 영혼, 아직 미숙하고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어린 영혼, 나중에 미덕이 되는 것도 아직은 본능에 불과하고 나중에 악덕이 되는 것도 아직은 실수로만 여겨지는 어린 영혼. 그 영혼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뚜렷이 알기 위해 남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 어떤 책을 읽고 그 속에서 분명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여 스스로를 인식할 때, 어린 영혼은 날아갈 듯 기뻐한다. 거울에 비친 것은 자기와 흡사한 모습이다.
폴 아자르는 명쾌하게 말한다. "어린이란 자유로운 상상력을 지닌 창조적인 존재이며, 좋은 어린이책이란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에 펼쳐 놓은 책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그저 내용이 좋으면 그만이고, 아이가 뭔가를 깨달았다면 더 좋은 책이지.
어린이들 책 속에서 좋은 책 고르는 것이 왜 힘들지?
책을 읽고 느낀 점 쓰는게 어째서 어렵지?

이런 안일함을 지니고 있지 않았나싶다.
아이들의 표현하기 두려워하는 마음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 아이들이 책을 펼쳐드는 것이 어렵게 시간을 내어야 가능하게 된 현실을 애써 부정하고 싶었다. 그 전에, 어린이 책들에 대한 생각들이 여전히 어른들의 시선에서만, 어른들의 목적에 의해서만 좌우되고 있다는 것을 더 확실하게 느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쥐어줄 수 있을까?
나는 아이들과 책으로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폴 아자르는 어린이의 아군으로서, 어린이의 충실한 대변자로서 말한다. "어린이는 독립된 가치를 지닌 존재이다. 이제 막 인생의 희열에 눈뜨는 이들에게 잔인한 교훈의 비를 쏟아붓지 말라. 어린 영혼의 싹을 짓뭉개지 말라. 어린 영혼들을 일그러뜨리는 가짜 읽을거리를 가차없이 추방하라."
-옮긴이의 말 중에서

어른이라면, 꼭 읽어보시라고 감히 추천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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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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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은유 작가님의 글이 읽고싶어서, 그리고 유유출판사를 좋아해서 선택한 책이다.
결론은, 정말 만족스러울만큼 오래오래 다시 또 읽고싶은 책으로 주저하지않고 말할 수 있다.

<글쓰기의 최전선>에서도 서문에서부터 솔직히 작가의 유명세를 벗어나서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 엄마, 일하는 엄마. 일과 가정 사이에서 어느것하나 자유로울 수 없는 그녀의 생각들이 그대로 전해져서. 읽으면서, 이 여자도 그렇구나 ! 이 작가님도 결국 그런 생각을 하는 '보통' 엄마이구나.

<쓰기의 말들>에서도 프롤로그부터 작가는 나를 끌어당겼다.

열린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네 속으로 파고 들어가라
-에리히 케스트너

100개가 넘는 인용구들과 그 인용구들을 둘러싼 작가의 생각들이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소박하지도 않게 그대로 작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게 적어내려갔다.
나는 글을 어딘가에 (여기서는 노트) 적고 고치고 (퇴고) 하지 않고, 바로 블로그나 워드에 적고 올린다. 지금도 역시 그러한데, 그래도 확실히 예전보다는 조사와 부사를 신경쓰고 있다니. 문법책, 글쓰기 책을 보고 나서도 움직이지 않을 내 사고의 흐름이 이 작은 책 한권으로 움직이고 있다.

나는 당황했다. 착한 딸, 좋은 엄마, 좋은 며느리의 도덕에 결박당해 시들어 간 청춘, 스스로 부과한 도덕적 책무를 이고 지고 사느라 삶을 사막으로 만들어 버린 낙타 같은 날들이 스쳤다. 정확한 뜻과 맥락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구절마다 니체는 도발했다. 갈피마다 행간마다 섬세하면서도 격정적인 문체, 상징적인 잠언과 비유와 모순을 내포한 겹의 언어가 춤을 추고 있었다. 가치 전복의 말, 시대의 도덕이 아닌 네 본성에 충실하라는 생의 의지를 고양시키는 해방의 말, 폭포처럼 떨어지는 아포리즘은, 그대로 시였다.

은유 작가님 덕분에, 니체의 책들을 두려움없이 무조건 읽어내야겠다며 다짐하게 된 부분이다.
나의 지금 삶을, 아니 많은 여성들의 삶을 어쩜 이리 멋지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멋지지만 쓰라린 느낌까지 동시에 주고, 고독까지 느껴진다. (나는 그렇다는 것인데 다른 이들은 어떨까?)

글쓰기의 작업이, 아주 고통스럽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 생활에 발을 담궜다가 뺐다가 담궜다가 빼는 연속의 작업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호기심과 욕구에 이끌려서 이 글쓰기 책의 문구에 이끌려서 들어갔다가 고통스럽다는 부분에서는 또 발을 빼고마는. 참 솔직하다 하겠지만, 딱 그렇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 책을 뒤져 자료를 추려 놓는다. 또 버스에서 시집을 보다가 관련한 단어나 괜찮은 표현을 발견하면 메모한다. 틈틈이 생각의 단초를 풀어놓는다. 문장 단위로 사고하고 단락으로 정리하며 매만진다. 마치 나무를 잘라놓고 대패질을 해 놓듯이 말이다. 그 단락들을 요리조리 배열해 놓고 잠든다. 꿈에서 사유를 불어넣는다.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다시 고친다. 어느새 글 한 편 완성된다. 큰마음 먹기가 아니라 짬짬이 해 나가기의 결과다.

마감이 있기에 글을 마칠 수 밖에 없고, 끝없이 고치고 싶어서 마감이 아니었다면 끝나지 않을 글들이라고 말한다. 그 글이 되기까지, 그냥 하루의 시간들 속에서 조금씩 적고 매만지고 다시 고치고. 큰마음 먹는 것이 아닌 짬짬이 해 나가는 것이라는 이 말이 나에게조차 용기를 준다. 나도 그럴 수 있을것 같다는 마음. 큰 다이어리를 들고 다닐 필요없이, 그냥 작은 수첩과 펜만 있으면 되는 것.

읽고 쓰며 묻는다. 몸으로 실감한 진실한 표현인지,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는지. 앎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그게 어느정도일지 감을 잡을수가 없다. 내 글이 한번도 잘써졌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서일까.
내가 그만큼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서겠다.

그 망설임으로 꽉찬 시간들.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거기서 막 빠져나온 나에게 그의 동작이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무의미의 반복에서 의미를 길어내기. 무모의 시간을 버티며 일상의 근력 기르기.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무의 시간을 버티며 일상의 근력 기르기. 그렇네. 사는 모습도 그렇다싶다.
나 역시, 무모해보이고 의미없어보이는 일상들 속에서 적어도 예전보다는 조금 단단해지지 않았나싶으니깐. 무의미의 반복이 곧 의미를 이끌어내게 되는 필수조건으로 존재하는 것이겠지.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건 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눈앞의 인간관계보다는 깊은 어딘가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 아닐까?
-리베카 솔닛

플래그를 붙이면 끝이 없을 것 같았고, 그래서 귀접기를 해 봐도 너무 많이해서 두툼해질 것 같은 책이었다. 결국 몇 부분은 표시를 하지 않고 넘어갔지만, 다시 보면 또 기억에 새겨놔야겠다며 결국 표시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정말,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라는 부제에 너무나 충실하게 따라가려 하는 나다. 쓰고 싶어졌다. 공감 받지 않는다해도, 내 안의 속내를 한번 글로 써내려가고 싶어졌다. 

옆에 두고 읽을, 초록색 표지의 작은 책이 나에게 두고두고 위안의 손길을 건네 줄 것 같다.
은유 작가의 글을 빌려서 격려해줄 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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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타이탄의 도구들 - 1만 시간의 법칙을 깬 거인들의 61가지 전략
팀 페리스 지음, 박선령.정지현 옮김 / 토네이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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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에 의해서 자주 봐오던 [타이탄의 도구들]을 제대로 정독하게 되었다.
저자인 팀 페리스가 우리가 흔히 '성공'이라고 부르는 위치에 오른 이들을 만나 그들에게 받은 지혜로운 생각들을 최대한 많이 펼쳐놓았다.

저자인 팀 페리스는 <4시간만 일한다>로도 알려져 있다.
'이 시대 가장 혁신적인 아이콘'으로 평가받는 그가 만난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다.
실제로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 <팀 페리스 쇼>에 지난 3년간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 200명'을 출연시켰고, 그들과의 대화에서 그는 진액들을 뽑았다. 그저 뽑아서 늘어놓은 것이 아닌, 본인의 생각까지 함께 담아냈으니 그저 진부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서문 . 세계 최고들이 매일 실천하는 것들
1장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의 비밀
2장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밀
3장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들의 비밀

1월 초에 나름 내가 해 오던 것에서 벗어나게 되는 상황에 놓여있다보니 다시 마음을 다잡을 책이 필요했다. 정말 탁월한 타이밍이 아닌가?

서문에서는 팀 페리스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과정들이 적혀있다. 본인이 기록하고 모은 노트들 가운데 가장 빛나는 보물이라고 말할만큼 빛나는 사람들의 생각들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2가지다.
1. 성공은 당신이 그걸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올바른 경험으로 얻어진 믿음과 습관들을 쌓아가다 보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
2, 당신 마음에 떠오르는 슈퍼 히어로들(기업가, 억만장자, 최고의 하이퍼포머 등)은 모두 걸어 다니는 결점투성이들이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가 이야기한, 그 만의 능력.
생각하고 기다리고 금식할 수 있다는 것. 이 3가지를 단련할 수 있도록 돕길 바란다고 말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아침'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여기에서도 그 시작이 '아침'이다. 나 역시 미라클모닝을 1년 넘게 지속해오면서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다시 마음을 다지기도 하고, 스스로를 격려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나에게 또 물어오는 것 역시 몇 시에 일어나는지, 왜 일어나는지, 무엇을 하는지 등이었고. 시간때문에 본인은 그러지 못한다며 지레 짐작하여 거부하는 것을 많이 봐왔었다. 항상 시간보다 중요한 건 무슨 마음으로 시작하는지, 무엇을 하는지라고 말하곤 하지만 말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침을 얼마나 일관적으로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
-B.J. 노박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우연히 생긴 일은 아니다.
-크리스 사카

역시,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잠자리를 정리하라'라는 것. 사실 본인은 일어나면 딸아이가 깨지 않게 슬금슬금 나오기마련이라 한번도 잠자리를 정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조금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는 것.
또한 아침 일기를 매일 쓰지만 그 내용이 자신이 없었다. 확신이 없었다고 해야할까. 그저 의지를 다지는 정도의 의미가 강했었는데, 그 일기를 쓰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 더 구체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을 걸고 뭔가를 해보겠다는 목표가 있다면, 그걸 이루기 위해 10년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면, 즉각 스스로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6개월 안에 그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가?' 물론 진짜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이같은 목표는 '지금 당장 무모하게 시작해서는 절대 안 되지. 10년이나 걸릴 거창한 거니까 진지하고 신중하게 시작해야 해'라는 변명에 다름 아니다. 즉각 시작하지 못하는 자기 합리화에 목표가 쓰이면, 어떤 삶도 가망이 없다. 목표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시나리오라면, 죽을때까지 절대 시작하지 못한다.

머리를 한 대 맞았다. 나의 합리화가 여기서 시작된 건가 싶기도하고. 매 년 계획을 세우고 그걸 지키기위해 애써가며 연말에는 계획을 지키지 못했고, 그 시작도 하지 못했음에 자책하고만다. '무모하게' 보일지라도 일단 시작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것인데, 그 시작을 하기까지 무슨 이유가 그리도 많은 것인지. 물론 시작하고나면 부딪치고 직접 깨져보게 되는 것인데 그게 무서운 것이다. 오히려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시간 낭비고, 실패고 겪고 싶지 않은.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지 않은가. 당장 시작하라고 나도 말하고 싶다. 나 역시 아직도 완벽히 원하는 것에 다가가지 않고, 이 길이 그 길의 중간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매번 고민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이들에겐 꼭 무엇이든지 시작하라고 하고 싶다. 시작하면, 일단 시작하면 길이 보이는 법이니깐. 참 캄캄해보이는데, (사실 나도 그랬으니) 그래도 길은 생기게 되더라는 거다.

매일 새로운 대안을 찾아라. 우리에겐 날마다 '새로운 하루'라는 손님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어떤 손님은 환대하고, 어떤 손님은 박대하는 장사꾼이 부자가 되는 걸 본 적 있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갑자기 진상으로 변한 손님에 대한 걱정과 불평, 두려움이 아니다. 모든 손님을 환대할 수 있는 계획이다.

어찌 좋은 날만 있을까. 이제 좀 익숙해지니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웃을 만하면 다시 슬픈 일이 찾아오고. 그런게 우리 사는 거 아닌가싶다. 다만 그 슬픔이 올 때, 힘겨움일 올 때, 쓰러지지않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 내 안의 나가 담담해져야 하고 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떠올릴 때마다 약간 두렵고 긴장되고 떨리는 일, 그게 바로 당신이 원하는 것이다. '와, 잘하면 완전히 인생을 망칠 수도 있겠는걸!'하는 일이 바로 당신이 찾아 헤매던 모험이다. 두려움이라는 친구를 멀리하는 데 시간을 쓰지 마라. '용기'라는 새 친구를 초대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라.

학창시절보다 더 내 '꿈'이라는 것에 대해 이리도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여전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내가 꿈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생각들. 그 이면에 항상 자리하는 '두려움'이라는 친구. '용기'라는 친구.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를 가지는 힘이 필요하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실수와 한계를 드러내는 일에 두려움을 갖지 않아야 한다. 가장 많은 실수를 드러내는 사람이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것들을 보여주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지, 부끄러워 할 이유가 아니다.

'실수'에 한없이 약한 우리들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실수를 줄이게 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많으니. 아이들은 '실수'가 잘못된 것이라 여기고 지낸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게 하는 데 제일 시간을 들이다보니 아이의 '몰라요.' 라는 말이 줄어들고 그 말을 채우는 자신의 생각이 늘어나면 손뼉을 치고 반가워할 정도다. 말을 하고 싶고, 자신의 생각에 자신감을 갖는 것에서 성장이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위 이야기들 뒤로 경험과 기록, 글로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고, 마지막은 건강을 위한 이야기들로 이어진다.

자기계발서를 보면서 그 자기계발서의 법칙들, 규칙들을 그대로 따르려 노력하는 것보다 그 규칙들을 하게 된 이유들. 근본적인 것들을 들여다본다면 자기계발서들이 뻔한 이야기로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든다. 근본적인 것들도 언젠가 인문학, 역사서, 철학서 등을 읽으면 이어지게 되고 저절로 터득될거라 생각하지만 어느정도는 자기계발서를 보며 조금의 마음을 다지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가 닯고 싶어하는 이들 역시 처음의 시작은 평범하거나 오히려 별볼일 없다는 사실에 희망을 품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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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거림 2020-05-2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책보다 더 재밌네요

다온엘리 2025-08-21 14:33   좋아요 0 | URL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폭풍우 치는 밤에> 그림책 시리즈로 이미 이름이 익숙해진 아베히로시의 책이다.
이 책에 나온 그대로 아베히로시는 25년간 작은 마을의 도서관에서 사육사로 일을 해 왔고, 동물들과 자연을 보며 끊임없이 관찰한 그대로 그림을 그리며 지내다가. 25년후 동물원 일을 그만두고 그림책 작가로의 삶을 시작했다.

사실 <폭풍우 치는 밤에>는 <가부와 메이 이야기 1>에 해당하는 책이다. 처음 그림책톡 모임에서 그림책을 만났을 때의 첫인상이 워낙 강하게 닿아서, 여전히 시리즈로 다 읽어보고 싶은 책 중 1권이다. 그 그림책의 그림을 그린 아베 히로시가 궁금했었고, 이 책이 조금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고 해야할까.

더군다나, 사육사로 25년을 지냈다니 !!
사실, 어릴 적에 꿈이 수십 번도 더 바뀌었던 나에게 사육사라는 직업도 한 번은 꿈 꾸기도 했었다.
동물의 까맣고 동그란 눈망울이 너무 순수하게 느껴졌었고,
그저 말없이 모든 내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든든한 친구라고 생각했었고.
동물원 이야기가 나오는 프로그램의 사육사들의 모습도 부러움 가득 담긴 눈길로 바라보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내용들이 마치 그 때의 나의 기억들을 불러오는 느낌마저 들게 하였다.

어째서 동물원이 있는걸까.
어째서 동물을 돌보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생명이란...
죽음이란...

점점 근원적인 의문을 갖게 되었지만, 아무리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도 전혀 그 답을 알수 없었다.

동물원에서 사육사로서 일을 시작하면서, 그저 동물들의 생활을 관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쾌적하고 너무 좋은 시설이 아니었던 탓에, 그와 그의 동료들은 오히려 그 '없음'에서 '무한함'을 발견해냈고, 여러 생각을 하면서 동물원이 존재하게 하는 이유에 가까워질 수 있게 노력하였다. 정말 동물들을 보호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려 하기보단, 생명과 죽음에 맞닿아있는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죽음 앞에서 '수고했어, 고마워'라고 말해줄 수 있는 초월함까지. 그들은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보여주었다.

대상이 무엇이든지 그림을 그릴 때는 형과 색, 질감 등을 응시한다.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동물들을 여러 각도로 관찰하고 눈으로 그렸다. 그런 식으로 접촉하며 피부로 느꼈던 동물이 내 몸에 익었다. 그리지 않아도 좋았다. 화가가 되려고 했을 무렵에는 한 장이라도 더 많은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그것이 능숙하게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육사 시절의 나는 달랐다. 그림 그릴 시간이 없어도 걱정이 없었고, 실제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이상으로 '그리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림에 빠져 지내며, 종이를 자전거에 싫고 다니며 산과, 들, 하늘을 그리던 그의 열정이 사육사 일을 하면서 내려놓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는 눈과 손으로 만져지는 느낌, 냄새 등 모든 것을 온 몸으로 다시 그려내곤 했다.

이제부터 나의 일은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사육사로서 나는 많은 동물과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깊게 사귀고, 많은 '생명'과 접했다. '동물원이나 동물의 생명'을 응원하는 작품을 창조하자.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자. 어중간한 작품을 만들면, 흔쾌히 일을 그만두게 해 준 동물원 동료들에게 면목이 없게 된다. 그렇게 나는 그림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을 만드는 일을 위해 동물원 일을 그만두면서도 온전히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그게 우리들에게도 온전히 전해졌던 것이겠지.

이 책이 그저 그의 자전적인 소설에 지나지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인상적인 것은 너무 그의 삶을 비관적으로 그리려 애쓰지 않았고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냈지만. 그래서 더 평범함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가 그림책 작가가 되겠다고 어릴적부터 생각하던 것도 아니었고. 그 역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막연히 도쿄에 가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고, 그저 돈을 벌어야지 생각하며 일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런 그 역시 사육사 일을 하고, 그 안에서 그림을 조금씩 그리면서 예전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너무 많이, 당연하게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저 순응하는 아이들이 많은 요즘이라. 이 책이 오히려 더 반갑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억지로 자신의 어려운 시절을 눈물 짜내게 하려고 극대화 시키지 않았다. 자신도 어찌될지 모르는 그 시절을 그대로 떠올려보고, 그게 그냥 나 자신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우리 어른들도 누구나 그러지 않았나?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고 그 극복기가 대단할 수록 더 많은 감동을 주고, 더 많이 깨닫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거라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나에겐 이 책이 더 아이들에게 와 닿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도 끊임없이 책을 읽고 근원적인 질문을 하면서 답을 찾지 못한다해도 끊임없이 생각한 것이. 나 역시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습 그대로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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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미니 속닥모임에서 그동안의 부재를 극복하고자 선택된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제, [글쓰기]의 굴레에서 더 이상은 벗어날 수가 없는 게 내 일이 되어버렸고, 읽어보고도 싶었던 책이어서 망설임은 없었다.

책과 삶에 대해서 어떻게 녹여냈을지 우선 궁금했고.

저자인 은유 작가님은 이미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총 6파트로 나눠지는데
part1 삶의 옹호로서의 글쓰기
part2 감응하는 신체 만들기
part3 사유 연마하기
part4 추상에서 구체로
part5 르포와 인터뷰 기사 쓰기
part6 부록 - 학인들의 글

개인적으로는 프롤로그 부분부터 나에겐 깊이 읽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나에겐 수많은 플래그를 붙이게 만든, 글쓰기 입문서로써 멋진 책이었다.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은 "인간이 물질세계는 탐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며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동의한다. 일선에서 물러서기는 아무런 가치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쓸모없는 시간이 삶을 쓸모 있게 만들어주는 아이러니는 늘 유예되는 진리다. 이미 경험한 자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고 경험하지 못한 자에게는 설명이 가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자면 글쓰기는 물러서서 숨 고르기의 쉽고 좋은 방편이다.

쓸모없는 시간이 삶을 쓸모있게 만들어주는 아이러니라니.
표현이 어찌나 맘에 들었는지 모른다.
저자가 쓴 프롤로그 부분에서 저자의 나이가 마침 나와 같고,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고 동시에 공부를 매일 해 나가는 나의 모습에서 동질감마저 느껴졌다. (물론 남들이 보기엔 달팽이처럼 엄청 느리고 눈에 띄지 않겠지만, 분명 나는 일을 하고 있고, 틈틈히 공부도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육아에 갑자기 뛰어들어 나에 대해 쓸모없이 낭비되는 내 삶의 시간들을 지나왔는데. 쓸모없이 여기는 시간들조차 후에 삶을 쓸모있게 만들어주게 될거라니. 그 땐 왜 몰랐을까 싶기도하다. 여튼, 그 시절 생각이 우선 나는걸보니 여전히 지나온 것에 대해 미련을 갖는 것이구나.

'어떤 글을 쓸 것인가'하는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탄탄한 문장력은 그 다음이다. 열심히 잘 쓰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 '열심'이 어떤 가치를 낳는지 물어야 한다. 밤이고 낮이고 온 국토를 삽질하는 게 '발전'은 아니듯 자신을 속이는 글, 본성을 억압하는 글, 약한 것을 무시하는 글, 진실한 가치를 낳지 못하는 글은 열심히 쓸수록 위험하다.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글을 쓴다는 게 언젠가부터는 아주 막막하게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어려워졌다. 글쓰기 대회를 좋아했고 독후감상문 쓰는 걸 좋아했고 일기 쓰거나 교환노트 쓰는 것도 좋아했는데 말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이제,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다시, 글을 쓰면서 나를 발견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이게 되었다. 글쓰기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겠지?

잘 쓴 글이든, 미완의 글이든, 숨겨둔 글이든, 파일로 저장하지 않고 날리는 글이든, 그런 과정 하나하나가 자기 생각을 정립하고 문체를 형성하는 노릇이며 '삶의 미학'을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못 써도 쓰려고 노력하는 동안 나를 붙들고 늘어진 시간은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고, 자기 한계와 욕망을 마주하는 계기이자 내 삶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인과 인사하는 시간이라고, 이제는 나부터 안달과 자책을 내려놓고 빈 말이 아닌 채로 학인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삶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인과 인사하는 시간.
나도 그것에 완전히 공감하고 싶어졌다.

문장이 길든 짧든 나는 이런 글이 좋다. 사유가 촘촘해서 문장이 흐름을 타고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건드리며 인식의 틀을 흔들어놓는 글. 하나의 메시지나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라도 남으면 그건 좋은 글이다.

문장의 호응, 문법적으로써 글쓰기를 설명하는 게 아닌, 삶에서 자신의 생각을 녹여내는 글을 쓰는 게 중요하고 삶과 연결지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냥 단순히 '글을 써야 한다'며 주장하고 반복하지 않아서 내가 가진 생각들이 동시에 떠오르면서 글쓰기와 내 삶을 연관지어지게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남들이 당신을 설명하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남들이 말하게 하지 마라.
-마사 킨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어떤 내용을 적어내려가야 할지. 보여져서 좋다고 인정받는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기보단, 내가 나의 진실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고 싶은지를 더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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