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 부는 사람 - 모든 존재를 향한 높고 우아한 너그러움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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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이 아는 것, 잘 아는 것에 대해 쓴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갈망하거나 꿈꾸는 것, 억누를 수 없는 꿈속에서 몹시도 상세하고 가혹하리만큼 솔직하게 나타나는 것에 대해 쓸 수 있다.


메리 올리버 <휘파람 부는 사람>


주말 내내 손에 힘을 주고, 이것만이 지금 나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것이라며 

책의 글자에 하소연하는 마음으로 이 책에 매달린 것 같다.

온전히 이 책의 글자에만 집중하지 못했던 것을 고백하는 것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용기내어 건네는 말이라고.


그동안의 그녀의 책과 또 다른 느낌이다.

목공으로 집을 지어보이며 월든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작은 집에서 몇 편을 썼지만 "나는 그 집을 짓기 위해 지었으며 그 집 문지방을 넘어 떠나버렸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늙어감에 대해 "우리의 시간은 이미 꽤 지났고, 남아 있는 시간은 아주 활동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우아하고 세심하게 보내야한다."라고 말한다. 쓸모없어진 목재들에 대한 애정으로 몸의 시간이 흘러버림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난 거북이와 집 안 지하실에서 바라본 거미에 대해 아주 세심하게 그려내고 살아가는 것의 경이로움을 그대로 풀어낸다. 


"거북이는 연못 바닥에서 오래도록 누워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 몸을 돌렸고, 근처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이자 공포도 슬픔도 없이, 지상의 신 가운데 으뜸인 식욕의 탐욕스러운 품 안에서 자신이 해야만 하는 것, 모든 존재가 해야만 하는 것을 했다. 모든 것은 분해되고 대체된다. 지금 이 순간은 아니지만 곧 우리는 새끼 양이고 나뭇잎이고 별이고 신비하게 반짝이는 연못물이다." <휘파람 부는 사람> 43~44p


이 뿐이 아니지.


그녀는 에드거 앨런 포, 로버트 프로스트, 제라드 맨리 홉킨스, 월트 휘트먼의 삶과 작품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건넨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아진 작품들에 대해서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 주고 싶었다는 듯이 세심하게.


책을 덮을 즈음이면 그녀의 새로운 글을 더 많이, 만날 수 없어진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고만다.


갈증난 감정에 물을 넣듯이 급하게 읽어나갔다. 다시 또, 읽었던 그녀의 책을 새로 펼쳐들겠지. 내가 미처 놓친 것, 글들을 다시 찾아내고 또 가슴이 두근거리고 싶어서.


"이제 초록 바다가 푸른 봄의 빛깔을 띠고 봄의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지치고 졸린 겨울은 긴긴 밤에 천천히 달을 윤나게 닦고 북쪽으로 물러난다. 겨울의 몸이 줄어간다. 녹아간다. 해묵은 수수께끼 뭉치가 또 한 해 풀리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휘파람 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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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 메마르고 뾰족해진 나에게 그림책 에세이
라문숙 지음 / 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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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서툴고 어눌할지라도 내 속을 통과해서 나온 언어들은 그냥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씨앗이 된다.

글을 쓰는 동안 내 몸속에 숨어있던 씨앗들은 싹이 트고 자라서 꽃으로 피어났다.

라문숙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주었으면>

그림책을 마당이 보이는 거실에 앉아 가만히 넘겨보는 손길이 느껴진다.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보기도 하고, 때로는 그 주인공들을 바라보며 한마디씩 건네지 않았을까하는 다른 존재들의 마음도 읽어보려 애쓴다.

홀로 있기를 원하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와서 가만히 곁에 있어주기를 원하던 존재들의 안쓰러움을 안아주기도 한다.

우정과 함께라는 이름으로 곁에 있어줘서 다행이라며 미소를 지어보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나온 여행에서, 지나온 시간들에서 놓친 것을 다시 잡아보려 애쓰고 떠나게 될 인연들에게 슬픔만을 던지지 않는다.

그녀가 그림책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듬는 과정에서 나도 함께 용기를내어볼 것들이 아닌가하면서

샤워를 마치고 바디워시의 향이 남아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해라고 말하면서도 이 향이 또 사라지는 것은 못내 아쉬운

아주 사소로운 것에도 기쁨보다 미련을 더 남기게 마련이지만.

한 송이 꽃(아름다움)만으로 도시 전체를 밝힐 수는 없겠지만

꽃눈같이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이야말로

희망을 움켜쥘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라문숙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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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 눈뜨는 시간
라문숙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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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나를 길어올리는 것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게 많은 세상, 미처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일상이 버거울 때가 왜 없을까?

꽃은 두어 달이 넘도록 자신을 지키다가 꽃잎 하나도 떨어트리지 않은 채 서서히 시들었다.

이제는 그만 떨어져도 좋겠다 싶어 빛이 사라져버린 꽃송이에 손을 대는 순간,

꽃이 야무지고 딱딱한 씨앗을 남겼음을 알았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점점 여물고 단단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만은 아닌 걸 크리스마스로즈는 온몸으로 보여준다.

라문숙 <깊이에 눈뜨는 시간>


우연히 펼쳐들었던 책에서 온 마음을 빼앗기는 경험을 또 했었고 온전히 제 시간을 갖기 힘든 나날들이 이어지면서 또 찾게 되었어요.

많은 이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고 그 생각대로 건네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생각했지요.

저도 다시 읽었는데 이번에는 더욱더 힘을 빼고, 필사를 해야지 하는 생각에서 오는 어깨 힘 들어간 모습에서 벗어나,

한 장 한 장 넘기며 조용히 작가님과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었죠.

저보다 조금 더 시간을 보낸 이에게서 듣는 살아가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책은, 총 3가지 이야기 속에 잔가지들이 드리워져 있는 듯합니다.

삶의 단순한 리듬을 찾는 시간,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집에서. 부엌에서. 서재에서. 일상의 모든 시간들에서 그저 시간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잘 살아내려 했던 그 마음의 움직임과 몸의 움직임들을 전하고 있죠.

우리 집을 계속 두리번거리며 여러 번 둘러보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좀 더 나은 구석을 찾으려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 공간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왔었는지 나의 시간들이 그저 흘러가기만을 바랐던 만큼

이 공간들이 저에겐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네요.

작은 공간인데 저의 취향이 조금씩 생기면서 기존의 모든 모습이 지우개로 지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하였고

요리는 도저히 못하겠다며 손 놓기도 한 순간들이 찰나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제 얼굴은 순식간에 화끈 달아올라버리고 말죠.

그런데 이제서야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막막해지고 답답해진 순간이 지나자

금방 이 집의 모든 공간에 발걸음을 더 하고 싶어지고 그냥 스쳐보내고 싶지 않더군요.

아이가 엄지 척 올려주는 요리를 해 주고 싶어지고 하루 세 번 설거지를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아이와의 시간이 더해지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편안해져서 금요일에는 함께 뒹굴뒹굴,

몸이 체력의 한계를 느끼더라도 웃으면서 함께 몸을 눕히고 놀았네요.

모든 것에 완벽히 시간을 정하여두고 계획대로 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는 대로 어느새 움직여지는 순간에 느껴지는 더 큰 만족감을 모른척하기 싫어요.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나만의 리듬을 찾는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으로도 의미 있는 날들이겠죠.

읽고 쓰며 나 자신이 되는 시간

작가의 글들이 지면을 채우게 되는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괜찮을 거라 믿던 시간들을 지내오던 그녀가 친구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찌르르 해지는 순간에 저도 동시에 찌르르합니다.

모호했던 감정이 문장이 되는 순간들, 감정의 정체가 드러나고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며 지난해 보이는 시간들 속에서

너무나 많은 이들과 엮여있고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바라보게 됩니다.

홀로 동떨어져있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 외롭게 느껴지던 순간이 많았는데 그 순간을 다시 돌이켜보기도 합니다.

"하루, 때로 며칠 동안 가슴을 짓눌렀던 감정들을 한바탕 쓰고 나면 삶과 내가 다시 보인다. 그렇게 조금씩 느긋해지고 단단해진다. 글쓰기가 주는 선물이다." - 라문숙 <깊이에 눈뜨는 시간>

몸은 몸대로 체력이 바닥나고 나의 모든 가능성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을 때 주저앉아버리고 싶었습니다.

써야 해서, 써야 할 것 같아서 책에서 찾은 문장을 쓰고 한 마디. 조금씩 보태봅니다.

처음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나의 이 표현이 너무나 사소로운 것은 아닐지, 나에게 의미 없는 시간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나더군요. 그런데 손이 키보드 위를 두드리는 소리가 익숙해질 즈음 글은 마지막을 말하고 있었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에

한 쪽에 웅크리고 있던 감정이 말랑해지는 것이 느껴졌어요. 대단한 글을 쓴 것도 아닐 테고 저의 삶에서 큰 변화를 주는 순간이 아닐 텐데도.

그런 순간이 느껴지는 날 올까 했는데, 오기도 하더군요.

삶과, 나의 생각들을 다시 모으는 순간. 조금씩 더 느긋해지고 단단해진다는 것을 믿는 순간 이미 글을 쓰는 행위는 선물일지 모릅니다.

좋아하는 곳에서 힘을 모으는 시간

작가는, 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보이는 마당에서 힘을 모읍니다. 심지어 마당 뒤 소홀한 시선에서 보이는 작은 풀들조차 허투루 볼 수가 없습니다.

공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만큼, 숨통을 트이는 공간이고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녀에겐 힘을 모을 수 있는 시간이겠죠.

"가을인가 싶었는데 여름 못지않게 덮고 한여름에 긴 옷을 찾을 만큼 서늘한 밤도 있는 걸 잊지 않기만 하면 된다고, 사는 건 원래 그런 모습이라고, 누구나 서툴고, 실패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며,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겁낼 필요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없다.

나는 언제나 진심이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마음을 다하는 게 최선이라는 말만 겨우 할 수 있으니 사프란 구근에서는 사프란이 싹트고, 개양귀비 씨앗에서는 개양귀비 싹이 나온다는 소박한 믿음에 이토록 매달리는 걸까?" - 라문숙 <깊이에 눈뜨는 시간>

저도 제 공간을 다시 둘러보고, 다시 책을 펼쳐보고 노트를 펼쳐봅니다. 빈 페이지가 더 많은 노트를 한 장 두 장 차르륵 넘겨보기도 하고 종이 질감을 만져보기도 합니다.

누구나 서툴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을 겨우 한다고 하는 문장에서,

도리어 저는 희망을 발견하고 미소를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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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비꽃 세계 고전문학 71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김옥수 옮김 / 비꽃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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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멀리서 바람이 나지막이 흐느끼고, 기다란 풀잎은 폭풍이 달려오는 느낌에 고개를 숙였어. 쌩쌩 소리가 매섭게 일어나서 남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풀밭에 가득한 풀이 한 방향으로 굽이치는 거야.

L. 프랭크 바움 / 오즈의 마법사

저 멀리서부터 불어오는 회오리바람은, 순식간에 작은 집을 덥치고맙니다.

미처 아래 지하실로 피신하지 못한 도로시는 작은 강아지 토토와 함께 바람에 휩쓸려 어디론가로 날려가버리면서 모험은 시작되죠.

 

오즈의 마법사라면, 도로시가 귀여운 (왜 저는 귀엽다고 기억하고 있을까요?) 구두를 신고, 허수아비, 사자, 깡통 로봇( 사실은 나무꾼이죠)과 모험을 떠나고 어디서든 포기하지 않고 길을 나가는 것을 떠올리곤 합니다. 물론 회오리 바람에 집 한 채가 둥실 떠올라서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는 장면까지도요. 많은 기억들은 조각 조각나서 연결이 되지도 않고, 조금의 잘못된 기억도 있겠지만 여전히 좋아했던 동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저는 생각지도 못하게, 어른의 모습들. 시선들을 모른 체 할 수가 없게 되었네요.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변할만큼 희망도 없어 보이는 그 모습이 왜 어린 시절 속에 존재하는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지워져 있는 걸까요.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평안함을 느낀 도로시와 토토는, 잠까지 들어버리고 마는 모습도 어딘가 모르게 애처롭기도 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할 수 없는 그 순간을 떠나면서 들었던 두려움보다 잠시 동안의 평안함이 어린 아이에겐 오히려 더 안도감을 안겨주었던 걸까요. 그래도 도로시는, 그 곳이 희망이 불투명하게 보인다고 해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며 불가능해 보이는 많은 것들을 헤쳐나갑니다.

 

함께하는 친구들은 또 어떤가요? 처음으로 동행하게 되는 친구인 허수아비는 자신은 두뇌가 없다고 하지만 이미 친구들이 어려움에 빠지면 적재 적소에 알맞은 해결법을 찾아내고 이끌어 냅니다. 양철 나무꾼은 또 어떤가요. 심장이 없다고 하지만 이미 다정함으로 가득찬 그에게 친구들을 도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힘을 이용합니다. 겁쟁이 사자는 또 어떤가요. 자신은 용기가 없다고 하지만 친구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크고 날렵한 몸으로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한낱 사람에 불과했던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는, 이 친구들이 원하는 것들을 말할때마다 이미 그대들은 그것들이 필요없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름의 현명한 대처로 그들이 더 큰 힘을, 희망을 갖게 했기에 마음의 힘을 얻게 했다고 해야할까요. 도로시가 마지막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 친구들은 언제나 함께합니다. 포기라는 단어를 모르는 이들처럼 말이죠.

 

"그럼 언제 출발할까?"

허수아비가 묻자, 친구들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어.

"너도 가게?"

"당연하지. 도로시가 아니면 나는 두뇌를 절대로 못 구했어. 옥수수밭 장대에서 내려주고 에메랄드 도시까지 데려온 게 바로 도로시라고. 나한테 행운이 쏠린 건 모두 도로시 덕분이야. 도로시가 캔자스로 떠나기 전까진 그 곁을 절대로 안 떠나."

L. 프랭크 바움 / 오즈의 마법사

그들은 유형의 무언가를 위해 길을 떠났지만 이미 더 본질적인 무형의 무언가를 모두 가슴에 품게 되었고, 도로시는 무사히 캔자스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도로시는 엠 숙모를 만나며, 기쁘다고 말하지만 표정은 우울함을 이야기하였죠.

자신이 떠났던 그 길에서 만난, 다시 만날 수 없을 친구들을 평생 그리워하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작품 해설에서, 이 당시의 세계 시대를 여기에 녹여냈다고 말하더군요.

각 등장한 이들이 의미하는 모습이 그 시대의 노동자라든가 대통령 후보를 풍자하여 그려냈다거나,

남쪽, 북쪽..등 지역이 나온 것도 그 당시의 지역을 이야기했노라고. 마법사의 의미 역시도.

 

그래요.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저는, 그것보다 더 큰 것은 본질을 찾아 떠나고 무엇에도 포기하지 않는 힘과 희망을 그릴 수 있는 용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너무 잘 쓰여진 동화라고 생각했고 잘 읽어내려갔습니다만, 작품 해설에서 작가에 대한 짧은 이야기와 이런 시대를 그렸다는 이야기들, 그리고 <오즈의 마법사>라는 제목 역시 사실은 '놀라운 마법사 오즈' 혹은 '오즈라는 놀라운 마법사'라는 것이 맞다고 하며 유감이 아닐 수 없다고 하지만 이 책역시 이 '유감스러운 이야기'에 그대로 따른 것은 불친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옛 기억을 소환하며, 정말 중요한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따라가면서 저 역시 내가 잊고 지내고 있던 근본적이고 중요한 가치가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되었고 마지막까지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데 작품 해설에서 저의 마음이 와르르 깨지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네이버에 찾아보면 나올 수 있는 '또 하나의 해석'에 불과한 이야기를 3페이지로 굳이 싫어놓은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작품 해설을 보지 않을 용기가 있다면 <오즈의 마법사>는, 꼭 읽어보기를 권하는 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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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드디어 읽었네. 그리고, 읽길 잘했다. 참 잘했다. 어디에서도 듣지 못할 지혜의 조언들을 기꺼이 받아들임에 기뻤던 시간들이었으니 말이다.

이 책은, 표지에서도 보이듯이 이미 '철학'에 대한 내용을 담은 것이니 어찌보면 나에겐 먼 생각들이고 감히 범접할 수 없을거란 생각까지 들게도 했다. 헌데 생각보다 술술 읽혀졌고 조금 더 생각의 시선이 확장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실제로 2015년 건명원에서 한 5회의 철학 강의를 묶어낸 책이었고, 전제의 내용은 우리 나라는 '철학 수입국'으로 살아왔기에 선진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함이었고 사회적인 모든 이슈들이 그로 인한 것이라고,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개인이 사유의 깊이가 달라지면 따르는 이들이 생기고 그것이 확대되면 공동체적인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철학하는, 깊이 사유하는 것이 비단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건명원이 무엇을 하는 곳? 최진석 교수님은 어떤 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궁금해서 찾아보고, 책들을 찾아보니 나도 모르게 주문해 두었던 최진석 교수님의 책이 있었다.

http://shindonga.donga.com/3/all/13/1230802/1


올해 2월자 기사인데, 건명원을 바탕으로 한 책이 이 책이기에 기사의 내용도 이 책의 내용과 아주 다르진 않아서, 조금 정리가 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읽어가는 시기에 나온 기사.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158955

꿈꾸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인재를 만들겠다는 생각.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와닿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헌데, 너무 좋다. 꿈꾸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이들을 키워가겠다는 것.
어른들도 꿈꾸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이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이..!

어떤 시도도 실패로만 마무리되는 법은 없습니다. 그 시도 자체가 이미 성공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것이 실패라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동력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된 동력은 실패의 암울한 풍경 속에서도 꿈꾸는 자들을 더 심층적이고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꿈을 꾸지 않는 일입니다. 시도하지 않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를 넘어서려는 그 어떤 시도라도 감행해야만 합니다.

실패가 두려운 것이라는 편견을 너무 일찍부터 갖는 아이들이 그저 안타까울뿐이다. 나조차도 실패하지 않으려고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쉬이 도전하지 못해왔었다. 이미 있는 것들을 따라하면 그 편안함과 쉬움을 포기하기가 싫은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그것에서 또 느껴지는 권태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헌데 그 과정을 동력이라고 표현한다. 무제는 꿈을 꾸지 않는 것이라고. 뒤늦게 꿈을 쫓는 나조차도 많은 이들의 시선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다. 나도 여러 생각과 고민을 한참 하고나서야 불확실해 보이더라도 이루려 노력하는 것 뿐인데. 현재에 안주하지 마시길. (너무 막막한 조언같이 들리기도 하네)

자기가 처한 조건 속에서 일상의 잡다함이나 자질구레함 속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결정하고 지배할 더 높고 큰 단계에서의 결정을 감행할 수 있는 높이가 바로 철학적 시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철학 : Philosophy
필로소피란 말은 원래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하며, 필로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이며, 필로소피아는 지()를 사랑하는 것, 즉 '애지()의 학문'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철학 [philosophy, 哲學] (두산백과)

왜 우리나라에선 유독, 철학원, 도. 이런 허무맹랑한 느낌으로 치부되고 마는 것인지. 그 생각들이 그대로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고, 돈이 되지 않는다며 무시하는 것인지. (난 사실 철학학과를 가고 싶어했었다는 것. 나도 허망한 시선으로 감히 도전할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자라 지금 어른이 되어 철학은 어렵다고 발을 담글 생각도 하지 않고 애써 고개를 저어버린다. 얼마나 흥미로운 분야인데. 물론 너무 방대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이어진 걸 보고 있노라면 흥미로운 순간이 꼭 생기는데 말이다. 편견을 거두어 주시길. 지혜를 구하고자하는 그런 의지로 봐주면 안될지.

지성의 높이에 따라 그 사회의 수준이 결정됩니다. 수학은 지성을 고도로 발휘해 수나 도형이나 대수를 가지고 세계와 관계하지만, 철학은 '수'나 '도형'대신 '관념'을 사용해서 그 일을 합니다. 우리가 철학적인 높이의 시선을 갖는 것이 현실적인 지배력까지 보장해주는 이유는 세계를 그만큼 더 넓고 높은 데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성의 높이를 철학의 단계까지 끌어오린 사람은 그러지 못한 사람보다 세계를 관리하고 지배하는 능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를 보는 시선을 더 넓고 더 높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저 눈에 보이는 것에 한정되어서 좁은 식견으로 사회를 보고 내게 주어진 일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이제 그만 두고 싶어진다.

공을 이루었으면 그것을 차고 앉아 거기에 머물려 하지 마라.
(공성이불거)

역사를 끌고 밀고 나아가야 하는 영웅은 공을 이룬 다음에 바로 다음 공을 향해 나아가는 동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지금 우리는 시대를 건너가려는 꿈을 꾸기보다는 각자의 틀로만 무장하여 싸우느라 앞을 보는 눈과 진정한 용기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매우 걱정스런 형국입니다.

자기 삶을 영위할 때도 자기 삶 속에 온전히 침잠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익숙함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삶 자체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익숙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이것이 자기로부터의 이탈입니다.

익숙한 자기는 집단적인 관습이나 보편적인 이념을 공유하는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차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자기입니다. 종속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자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집단 속에 함께 있으면서도 자신은 단독자로 고립을 자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고립을 허용하지 않으면 그 안에 몰입되어 세계의 진실을 포착할 수가 없습니다. 고립을 자초한 후, 고독에 빠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짧은 글로는 모든 걸 정리하려니 오히려 길어지니. 아직도 부족한 나의 내공이 느껴진다. 플래그가 따닥따닥 붙어있고, 줄 그은 모든 곳이 또 새롭게 와 닿으니. 이 책은 다시 재독을 해야하는 책이 분명하다. 두 번째 읽을 때는 또 어떤 생각으로 마무리 지어질지.

결국, 이 책은 내가 궁리하고 도전하고 몰입하는 모든 것의 이유를 설명하여준다. 내가 이리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이야기해주고 싶다.

최진석 교수님의 책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찾아두었으니 바로 이어서 읽어나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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