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여름이다.
여름이 왔다.

 

드디어 이 책을 읽을 때가 되었나 보다.

 

 

 

 

 

김유진의 단편소설집 『여름』을 한 달 전쯤부터 사놓고 기다렸었다. 단편 <여름>은 이미『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읽었는데, 표지를 보는 순간 그만 ‘아!’하고 반해버린 것이다. 표지에 반해버린 것은 단순히 그림이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났을 때 불쑥 떠올랐던 꿈의 색채(내 생애 최초로 멜라토닌을 먹고 자던 날 꿨던 꿈과 같은), 그 강렬했던 꿈의 색채들이 고스란히 책 표지로 환원돼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순간 섬찟했다. 짜릿한 공감이란 이런 것일까? 그래서 그녀의 색채만으로 엮어진 한 권의 단편집을 읽고 싶어졌다. 지금으로선 작가가 특별히 사랑하는 작품, <바다 아래서, Tenuto>를 약간 맛본 정도인데, 매우 만족스럽다. 무슨 큰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심리묘사가 두드러지거나 긴박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지독한 담담함과 미세함 속으로 끊임없이 빠져드는 느낌이 좋다. 이런 느낌, 이상하게 아늑하다.

 

Tenuto. 지그시 눌러 그 음(音)을 충분하게 내주는 기법이라고 알고 있다. 음악이라곤 아주 어릴 적 피아노를 조금 친 것 밖에 없는데, 내가 어째서 Tenuto를 기억하고 있을까? 어쩐지 김유진의 작품 곳곳에 배어있는 (그녀의) 유년에 관한 기억이 침묵하고 있던 나의 유년의 음(音)을 회동시킬 것 같은 예감이다.

 

*                *                *

 

지난 달에는 정말 너무 오랜만에 요리책들을 샀다. 재작년인가 채소요리가 급! 필요한 바람에 서평단 도서를 덜컥 신청한 걸 제외하면 내가 관심있는 책으로 직접 골라 사보기는 어언 10년쯤 된 것 같다.

 

이렇게 간만에 요리책을 사게 된 것은 내가 '주말 요리당번'이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께서 조카를 돌보시느라 너무 지치셔서 나의 서포트가 필요하게 된 것. 그래서 내게 쌓인 객지생활 8년의 연륜을 고스란히 갈고 닦은(?) 요리실력으로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요리는 거의 속도전인 바, 결국 콩나물에는 꼬리가 나타나고, 부엌바닥에선 생쌀이 종종 출몰하며, 세간살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정산해 보니 깨진 접시가 1개, 종지 2개, 컵은…무려 4개다..ㅠ.ㅠ). 하지만 거기서 거기인 반찬거리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자 하는 노력만큼은 가상하다. 그러다 보니 평소 별로 관심없던 웰빙푸드에 드디어 입문한다.^^;

 

 

 

 

 

 

 

 

 

 

 

 

 

 

 

 

이 중 『친정엄마네 레시피』는 웰빙과는 상관 없지만 선물해 주려고 산 책이다. 사실 이 책은 내가 관심있던 다른 책을 보다가 엄청나게 기발하고 재미있는 100자평을 타고 서재를 방문했다 알게 되었는데, 정말 요리초보를 위해 기초부터 비법까지 차근차근 잘 알려주는 좋은 책이라 행운이었고, 더불어 감사하다(나중에 보니, 알라딘에서 제일 유쾌하신 분 같다^^).

 

『마크로비오틱 밥상』과 『저염식단』은 식재료의 조합이 창의적이거나 건강 위주로 되어있어 도움이 된다(물론, 일상적인 요리들도 있다). 하지만 일단! 오타가 좀 있다는 점이 아쉬웠고(급히 출간된 느낌), 조리순서를 건너 뛰거나 번역(『마크로비오틱 밥상』은 저자가 일본인이다)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어 신뢰도가 떨어진다. 그래도 나름대로의 짠밥이 있으니, 뭐..그런대로 극복할 만 하다. 강추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요리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레시피들을 나름대로 소화시켜 보다 유용한 요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                *

 

요리책들과 함께 주문한 책 때문에 ‘풋~!’하고 웃어 버렸다. 살 때는 몰랐는데, 박스를 열어보고야 깨달은 것이다. 하필 요리책들 틈에 섞여있는 책이 르 클레지오의 『허기의 간주곡』이라니…포만과 허기, 떨어질 수 없는 한 쌍이라, 이거지.^^

 

 

 

그런데 중고샵에서 구입한 이 책의 표지에서 뭔가가 툭 떨어진다. 주어보니 어느 여자아이의 사진 2장. 하나의 사진에 또렷이 적힌 날짜를 보니 누군가의 어릴 적 사진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조금은 얼떨떨해진 마음(이 사진을 어떻게 해야하나…)으로 책장을 넘기는데 빨간 줄 하나가 선명하게 눈에 띈다.

 

행복하다는 것, 그것은 기억할 것이 없음을 말한다.

 

 

이해는 가지만 흔쾌히 동의할 수 없는 문장.
그러나 소설에겐 진리를 정의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며 이내 의문에 빠져든다.

누굴까? 설마 행복을 위해 이런 방법으로 기억을 떠나 보내려는 것은 아니겠지. 내 추측이맞을 확률은 거의 없겠지만 헌 책 속에 버려진(?) 사진과 밑줄 친 문장은 이리도 오묘하게 엮인다. 암튼, 중고샵에서는 이 사진의 주인을 찾아 줄 방법이 없다고 하는데, 내 생각엔 주인장이 사진을 찾는 게 더 행복할 것 같아, 혹시나 이 글을 볼까..싶어 함께 올려본다(주인은 얼굴 부분을 가렸어도 알아보시겠지?). 언제까지고 보관할 수는 없지만 8월 말까지는 기다려 볼 생각.

 

*                *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구입’을 드디어 끝냈다. ‘읽기’를 끝냈다고 말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아직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했다.ㅡ.ㅡ;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총 6권으로 나눠진 분량 때문에 구입할 엄두조차 못냈다가 최근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다시 돌아보게 됐는데, 의외의 횡재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가이드 성격의 책이 아니라 페르낭 브로델이 직접 강연에 사용했던 원고를 소책자로 묶은 것에 해제를 더한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직접 큰 줄기만 간추린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를 맛볼 수 있고, 핵심 용어와 이론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브로델이 중요시 여겼던 ‘장기지속longue durée’이라는 개념도 표와 자세한 설명을 통해 이해 쉽게 풀어 놓았고, 삼층집 모델 또한 간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눈에 띄는 것은 “이 교환 영역을 경제생활이라고 칭하여 물질생활과 ‘대조’하고 또 자본주의와도 ‘구분’하고자 한다”(p.170)는 대목인데, ‘경제생활≒물질생활≒자본주의’라고 막연히 인식하고 있던 나로서는 브로델의 이러한 시각이 놀랍기만 하다. 여기에 대한 반론도 있다지만 장기지속의 역사를 통해 자본주의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임에는 틀림이 없다.

 

 

 

주말 동안 지금까지 읽고 리뷰를 쓰지 못했던 책들을 모아 한꺼번에 페이퍼로 정리하려 했다가 책장정리를 하는 바람에 계획을 바꿔 특별한 기억이 담긴 구매기를 쓰게 되었다. 몰아쓰기 리뷰 페이퍼는 이달 말에 상반기를 정리하며 완성해야지. 올해는 봄을 심히 타느라 책 읽기에 집중을 못했는데, 이제 내가 좋아하는 여름이 왔으니 발랄한 리듬으로 열심히 읽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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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6-1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삼매경에 빠질 분홍신님이시로군요, 에헴.
ㅎㅎ 저는 <채소가 맛있다>가 땡기는데요, 어째..요리하신 것들도 좀 올려 주시와요. 군침 흘릴 준비는 진작부터 해놓겠습니닷. >.<

탄하 2012-06-12 23:45   좋아요 0 | URL
실은, 앞치마를 두르지 못해요.
요리만하면 배부분이 다 젖어서 앞치마를 하면 옷을 두 벌 적시는거라.ㅎㅎ
(그래서 집안 일 중 설거지를 제일 안 좋아해요. 싱크대 물이 다 튀어서...)

<채소가 맛있다>는 소개한 책들보다 조금 낫긴 한데, 구하기 힘들거나 제철 아니면 비싼 재료도 있고, 조금 난이도 있는 서양요리가 섞여있어요. 실용적인 일상의 요리, 초간단 요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면 꽤 괜찮구요. 이 책에서 마+오징어 부침개, 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 우엉고추잡채 등등을 해봤네요.

원래 제가 지난 주 만들었던 '흑미마늘죽'(요건 <저염 밥상>의 레시피)을 올리려다가 이게 갓 지어 담았을 때 윤기있는 사진이 아니고 마지막에 남은 거 덜어놓은 사진이라 식욕 떨어질까봐 안 올렸어요. 가뜩이나 까만색인데 껄쭉하니 뭉테기로 보이니 아무래도 자제하는 편이 나을듯 하더군요. 맛은 좋았지만..^^ 나중에 보기에도 괜찮은 일품요리를 만들면 올려볼께요. 아직은 그저 국과 반찬만 만들거든요. 저장용으로..
 

 

 

 

 

 

 

 

 

 

문명세계의 소시민에게 몽골이란 푸른 초원이 펼쳐진 머나먼 고원지대에 불과했다. 가끔 어린이 후원단체 같은 곳에서 카탈로그를 보내오면 오늘날 몽골인들은 이렇게 살아가는구나,하며 다 해어진 그들의 옷소매를 통해 삶의 편린을 엿볼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일상을 스쳐가는 무수한 정보의 일부일 뿐, 마지막 커피 한 모금과 함께 덮어버리고 나면 그만인 것이 대개 이런 카탈로그들이 받는 대우였다. 그러던 어느날 몽골이 갑자기 성큼 다가왔다. 바로 사진가 김홍희의 작품들을 통해서였다. 푸른 초원이라는 잘 포장된 모습이 아닌 현실의 몽골, 메마른 땅이 끝없이 펼쳐지고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지기도 하는 그곳을 나는 너무도 생생히 보게 된 것이다. 뿐만아니라 사진 속의 몽골인들은 더이상 푸른 초원을 말달리던 칭기즈칸의 후예인척 하지 않았다. 그들은 황량한 사막에 가판대를 설치했고, 대지에 발전소를 심었으며, 점퍼와 츄리닝 차림으로 당구를 치거나 벽에는 포르노 포스터를 붙여놓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조드>가 광야의 중세를 그리려고 했다는 점은 무모한 도전처럼 보일수 있겠지만 아직은 선량함 남아있는 몽골의 눈망울들에게 커다란 힘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 작가정신이 나로 하여금 <조드>라는 기나긴 여정의 첫머리를 출발하도록 재촉했다. 문명화와 서구화를 동일시하는 이 시대에, 그리고 이제 그에 대한 반성이 일고있는 시점에서, 작가가 칭기즈칸의 몽골을 통해 글로써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는 상당히 전염성 강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자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에 값할 '인류사 상'을 얻기는 어렵다. 낡은 역사관을 대체할 그림이 있어야 새로운 역사관이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보다 바른 세계사 상(像)'을 찾으려는 노력에 나도 동참하고 싶었다. 소재가 국경을 벗어난 점도, 시대적 배경이 먼 것도 개의치 않았다. 가톨릭과 비(非)가톨릭 정신이 각축하는 성곽의 중세가 아닌, 이동문명과 정착문명, 농경민과 유목민의 충돌을 야기한 광야의 중세를 그리려는 의지는 21세기 정신의 산물이다. 특히 근대적 가치관이 주목하지 못한, 보다 광활한 세계에 부합하는 인간형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작가의 말 中)

 

 

 


광야의 신화
광야의 신화는 하늘에서 떨어진 조그만 연못이 자라 아주 큰 호수가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천 개의 물방울이 모여 하나가 되고 그 하나가 다시 천개로 모이는 유기적 창조의 과정은 말씀의 권위로 이레만에 완성된 서구의 천지창조와 대조를 이루며 희미해진 이 땅의 신화를 다시 세우겠다는 의지로 비춰지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익숙할법한 전래동화가 도란도란 피어날 즈음이면 마치 할머니의 무릎에 기대어 졸듯 꿈결같은 옛 이야기로 빠져든다. 그리고 꿈보다 더 달콤한 이야기 속에서 고운 백조와 사냥꾼을 만나고, 늑대족과 사슴족의 사랑을 목격하며, 민담을 갖겠다던 외눈박이의 순박함에 웃음 짓는다. 그래, 그 위대한 칭기스칸은 용이 꿈틀거리고 천지가 개벽하며 나타난 인물이 아니더란 말이지...문득 "유목민인 칭기즈칸의 제국주의는[...]소유하고 점령하는 게 아니라 소통하고 통과해 가는 것이 몽골의 방식이었습니다"라는 작가의 변이 떠오른다. 모든 신화에서 말해주는 것이 사랑이요, 바보와 외눈박이의 어진 마음이니 이후 칭기즈칸이 품은 뜻도 여기서 비롯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뿐만아니라 고운님이라는 뜻의 알랑고아가 달빛과 한 몸이 되어 만들어낸 자식, 강인한 땅의 생명력을 지닌 여인의 몸에서 하늘의 음기를 취해 태어난 자식의 후손이니 태양처럼 군림하는 칭기즈칸이 아니라 극복하고 소통하는 칭기즈칸의 모습이 예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조드>가 그리는 칭기즈칸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서구적 카리스마의 전형과 다르며, 바로 이 점이 몽골을 비롯한 동방인들에게 재조명되어야 할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혈흔을 닦는 시심(詩心)
전율을 할만큼 한바탕의 거친 싸움이 있었다. 바로 자무카의 말 무리를 공격하는 늑대 무리의 보복전이다. 너무도 치밀한 전략이 잔인함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이 싸움은 도저히 동물간의 육박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지혜롭고 영악했으며 때론 비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말이든 늑대든 우두머리들이 가진 리더십과 자식애에서 훗날 벌어질 유목민들간의 전쟁이 그려지기도 했다. 유목민들도 분명 이들처럼 뼈마디가 바스러지고 내장이 짓밟히는 가운데 자신의 영역과 자식새끼들을 지키려 안간힘을 썻으리라! '흰머리를 풀어헤친 귀신 바람이 불던 날' 설원 위에 펼쳐진 말 무리와 늑대 무리의 육박전은 강렬하다 못해 장렬하기까지한 싸움이었다. 그래서인지 안전지대인 헤를렌 강변에 도착해서도 이 느낌이 쉬 가라앉지 않는다. 흰머리 바람으로도 지울 수 없었던 붉은 혈흔이 비로소 스러지기 시작했던 시점은 바로 자무카의 입에서 시(詩)가 흐르는 순간. 그는 자신이 이끌던 말 무리를 도와준 이가 사라진 의형제 테무진(훗날 칭기즈칸)임을 알고 변함없는 우정을 시(詩)에 담아 노래한다. 헌데, 이 거친 사내의 시(詩) 한 수가 강렬한 싸움의 서사보다 더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를 분별하려는 세세한 마음에서 뚜렷한 단어를 짚어내긴 어렵지만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조드>의 서사가 시심(詩心)에 힘입어 때론 신비한 전설로, 때론 순수한 동심으로, 때론 달관의 지혜로 촉촉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투가 휩쓸고간 자리를 위로해주는 나직한 노래가 된다.

 

 


흰뼈와 검은뼈의 우정
가문을 세운 여자 알랑고아의 막내 아들 보돈차르 몽학의 직계 혈통. 사람들은 이들을 황금가문의 흰 뼈라 불렀고, 직계가 아닌 혈통을 검은뼈라 불렀다. 테무진은 흰 뼈 출신이며 자무카는 검은 뼈 출신. 이들의 우정을 다룬다는 것은 아직도 '계급혁명' 외에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 우리들에게 그 벽을 해체해 보이려는 야심찬 시도로 다가온다. 그래서 서로를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봤다던 테무진과 자무카의 관계에 주목하게 되는데, 귀족출신으로 평민인 자무카와 의형제를 맺는 테무진은 마음가짐부터 이미 남다르다. 오늘날로 치면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더 중요시했던 테무진, 즉 칭기즈칸의 자세는 문득 하늘은 높은 것이 아니라 넓은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며 이후 넓은 하늘이 지나게 될 우정과 갈등의 해법이 어떤 것일지 사뭇 기대를 걸게 된다. 서로 지문을 보여주고 서로의 운명을 엿본 두 사람, '태어나는 곳은 달라도 묻히는 곳이 같기를'맹세하는 두 사람에게서는 신분의 경계를 허물고자하는 인간으로서의 의지가 결연히 흐르기 때문이다. 만일 이 맹세가 이뤄진다면 언젠가는 하늘이 땅 위에 있지 않고 그저 평행으로만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를 우리는 희망해도 좋을 것 같다.

 

 


조드와 칭기즈칸의 길
850년전 대자연이 다스리던 몽골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한 세계로 다가온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겨울의 서식지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매섭게 몰아치는 혹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몽골에서는 그 너른 땅에 어린 추위가 움터 젊은 추위가 되고, 다시 늙은 추위로 이어지기까지 기나긴 겨울이 계속된다. 조드 또한 이 겨울의 출신으로, 한겨울 유라시아 내륙에 몰아닥치는 혹독한 추위를 의미하는데, 조드가 밀어닥치면 초원은 초토화가 되고 목숨이 달린 것들은 제아무리 인간일지라도 죽음의 문턱에서 발버둥치게 된다. 살아남을 길은 오직 서로 뭉치는 것. 이는 거룩한 어머니 알랑고아가 화살 다섯대를 묶어 일러준 교훈이었다. 그리고 어린 테무진이 칭기즈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여정도 신화속에 고이 간직된 어머니 일랑고아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길이었을 뿐, 누군가를 정복해 제국을 이루려는 것은 그의 꿈이 아니었다.


"죽음의 땅을 벗어나 다른 장소로 가고 싶은 것, 그걸 가로막는 장애물을 뛰어넘은 게 칭기즈칸의 정복의 이유가 아닐까"


작가의 깊은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테무진을 칭기즈칸으로 키워낸 원동력이 조드라는 신선한 해석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단지 자연의 순리에 따라 극복할 고난은 뛰어넘고 품어야 할 생명들은 감싸안았으며 함께할 동지들과는 화살대처럼 나란히 힘을 포갰다. 그러는 사이에 칭기즈칸은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는 소통자가 되었다. 다시 쓰는 몽골의 역사에서 그는 소유라는 상하의 축이 아닌 소통이라는 백방의 축으로 화(和)한 것이다.

 

 

 

 

서구화의 물결이 침투한 몽골의 사진을 보며 잠시 상상에 젖어본다. 지금도 몽골의 광야에서는 열두 가지 바람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도 타인의 불에 예를 갖춰 건드리지 않으며, 모든 가축이 생명의 존엄성을 알고 그것에 경외심을 가진 자의 손에서 죽어야 할까? 그리고 지금도...수분없는 눈보라가 말발굽 아래 부서져 쉬 가라앉지 않는 그 진기한 풍경들을 볼 수 있을까? 물론 나는 정답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칭기스칸의 몽골이 되살아나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왜냐고 묻는다면 푸른하늘이 내린 아이의 마음을 잠시 훔쳐봤던 설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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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5-09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홍희..찾아봤어요.
김홍희 작품집 먼저 읽고나서 다시 댓글 달아야겠어요.
ㅎㅎ 분홍신님 포스팅은 댓글 예고를 제가 자꾸 하게 되네요. 분홍신님 포스팅 글이 좋아서 그런거 같애염. ^^

탄하 2012-05-13 11:19   좋아요 0 | URL
하하, 댓글 예고편이라..
이거, 달사르님께서 신개념을 만들어 놓고 가셨군요.
김홍희님의 사진이 너무 좋아서겠지요.^^

이분 작품집 볼만 해요.
글까지 쓰신 책도 있는데 매우 감성적이시기도 하구요.
달사르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달사르 2012-05-27 22:33   좋아요 0 | URL
ㅎㅎ 작품집 멋지더이다. 첨에는 뭐이래? 이랬다가 몇 번을 다시 보고 또 보니 점점더 작품집이 좋아지던데요? 작가해도 되겠다, 란 생각이 들 정도로 글도 좋았구요. 분홍신님 덕분에 좋은 책 만났어요. ^^

탄하 2012-05-31 22:59   좋아요 0 | URL
에헤, 덕분은요..^^
이분, 김홍희님, 외모는 꽤 카리스마 있어 보이시지만 글은 참 가슴을 저리게 해요.
제일 처음 읽은 책이 <나는 사진이다>였는데, 작품만 김홍희님꺼고 글은 다른 사람이 쓴 줄 알았다가 나중에 글도 직접 쓰신 걸 알고 깜짝 놀랐었답니다. 그게 아주 오래전인데, 그때는 독서를 잘 안하던 때라 사진작가가 에세이집을 낼 거라곤 상상도 못했거든요.
달사르님도 정붙이셨다니 다행이네요.^^
 
[활동마감] 9기 신간평가단 마지막 도서를 발송했습니다.

어느덧 신간평가단 9기 활동이 끝나고 또 이렇게 마감 페이퍼를 씁니다. 정말 세월이 어찌 흐르는지 6개월이 순식간에 사라졌네요. 그동안 매달 5권씩 추천을 했고, 제 경우 12권 중 8권이나 원했던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꼭 추천한 책이 아니더라도 대체적으로 맘에 들어 더이상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은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입니다. 음악에 관한 책들은 상대적으로 적게 출간되고 간혹 마주치게 되더라도 클래식 입문서나 예술기행과 병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한 작곡가에 집중해서 좀 더 음악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말 잘 만들었더군요. 음악을 전공하신 분들께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반 대중인 저로서는 음악에 대해 이처럼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이끌어 주는 책은 처음 봅니다. 이건 이 책을 구상한 기획력이라 생각되는데요, 한 사람으로서의 차이콥스키, 한 음악가로서의 차이콥스키를 잘 보여주었고, 그의 음악적 궤적과 해석, 그리고 관련된 지식까지 두루두루 잘 갖춰 놓았습니다. 대체적으로 자신이 추천한 책이 아닌 경우 받아보고 감탄까지 하게 되는 경우는 드문데요, 이 책은 선례를 깨고 저의 사랑을 듬뿍 받은 책이랍니다. 한창 여름에 읽은 책이라 시원하게 냉방된 방에서 음악 틀고,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며 무척 즐겁게 읽은 책이기도 합니다.




내맘대로 베스트는 정말 추려내기 힘들어요. 다들 좋은 책이었고, 감흥도 비슷비슷해서 순위 매기기가  참 그렇네요. 그래서 그냥 가나다 순으로 적어봅니다.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도 베스트에 들긴 하지만 위에 기억에 남는 책에 별도로 택했기에 더 많은 책을 꼽고 싶어 여기서는 뺐어요.

<민화, 무명 화가들의 반란>
민화에 대해 체계적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냥 우리의 대표 민화를 소개하고 감상의 포인트나 관련 지식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민화나 우리나라 궁중화, 문인화와 비교해 가면서 설명해 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민화속의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이 너무 순진하고 재밌어서 막 웃으며 그림을 보았던 기억도 나네요.


<사유속의 영화>
이 책은 처음 접하는 영화 이론에 대한 책이라 두 번 하고도 포스트잇을 찝어 놓은 것까지 합해 반쯤 더 읽었습니다. 가장 시간을 많이 들여 읽은 책이지요. 100%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영화에서 생명을 끄집어 내고 세포를 끊임없이 재생시켜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참 즐거웠습니다.




<사진 철학의 풍경들>
마음이 참 고요해지는 책이었습니다. 암실에 들어가 어둠 속에서 필름을 감는 느낌, 더듬더듬 거리는 느낌인데 매우 아늑하더군요. 덕분에 사진함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다시 돌이켜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분명 수업시간에 들었던 이야기들이 적지 않은데(물론 이것은 교양과목으로 들은 것입니다), 이렇게 철학과 함께 엮어 놓으니 문득 새롭고 더 묵직하게 들립니다.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한국건축에 대한 책들은 주로 한옥이나 궁궐, 사찰에 대한 책인데 전공서적 아니면 지어지는 과정이나 세부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물론 이 책도 거의 전공서적에 가까운 내용이고 구성 또한 그렇습니다. 하지만 과학적인 축조방식에 대해 심도있게 설명해 주어서 정말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네요. 조금만 더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엮었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모더니즘편>
현대미술의 한계에 대해 배운 적은 있지만 이렇게 그 한계로부터 출발해 역으로 습격한 책은 처음입니다. 미학의 눈으로 보았다지만 의외로 작가나 작품, 역사적 배경이 꼼꼼하게 설명되어 있어 매우 드라마틱한 소설을 읽은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습니다(그렇다고 미학적인 내용이 생각보다 덜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마지막에 나가는 글에서 키치에 대한 운을 띄웠고 다음번에는 동시대 미술을 다룰 예정이라니, 다음 책도 기대가 됩니다.




이상, 신간평가단 마지막 페이퍼를 마치구요, 그동안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가 마감 날짜를 잘 못 지켰다는점...ㅠ.ㅠ 마지막에는 꼭 지키리라 안간힘을 썼는데 또 주말을 빌고 있네요.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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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올해 상반기를 되돌아 보면서 깜짝 놀란 것이 하나 있었다. 대체적으로 예술/인문학 도서에 집중하고 있지만 경제, 과학, 문학 등을 골고루 챙겨보는 편인데 올해는 경제 분야의 책을 정말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그간 경제서적에 무슨 좋은 책들이 있었을까 둘러보다가 <독식비판>, <경제학의 배신> 같은 책들을 일단 챙겼고, <미국이 파산하는 날>도 샀다가 지인한테 뺏겼으며(ㅠ.ㅠ), 지금은 <자본주의 4.0>에 포스트잇을 꼽아가며 열심히 읽고 있다.

경제 분야 서적의 전반적인 분위기는(나의 관심사에 의하면) 경제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에 관한 분석들이 꾸준히 줄을 잇고 있으며, 달러제국 미국의 실상을 고발하는 책들, 생활과 밀접한 가격에 대한 책들, 자본주의의 근본과 대책을 탐구하는 책,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책 등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리고 한결같이 다 흥미롭고 멋진 책으로 보인다(아, 이게 문제다).

그래서 비록 선정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 3권의 책 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다.





<그림자 시장>

먼저 가장 최신작인 <그림자 시장>이다. 이 책은 일단 이리유카바 최의 <그림자 정부> 시리즈를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음모론일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중동의 산유국, 싱가포르, 노르웨이 같은 수퍼리치 국가들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그들이 어떻게 부를 이용해 세계에서 권력을 얻었는지 궁금해 꼭 읽어보고 싶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에 대한 책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여러 국가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세계 경제의 배후, 혹은 예측할 수 있는 배후에 대해 알고 싶다. 만일 이 책의 주장처럼 글로벌 경제의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는 나라들이 있다면 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달러 제국의 몰락>

다음은 <달러제국의 몰락>이다. 이것 역시 필수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이슈이다. 그동안 미국의 몰락이나 미국의 퇴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 많았지만 이 책은 통화라는 관점에서 서술해 나갔기에 한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가를 너머 전체적인 통화재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추천한 이달의 읽을만한 책에 선정되었고,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읽어본데다 평도 좋다. 통화의 미래에 대한 책을 읽어본다면 단연 이 책을 꼽고 싶다.







<미국이 파산하는 날>

마지막 책은 <미국이 파산하는 날>이다. 이 책은 10페이지도 채 못 읽고 '너무 읽고 싶다'는 지인의 간절함에 선물로 줘버린 책인데, 나도 이제 나머지 309페이지를 읽고 싶다. 처음에는 니얼 퍼거슨의 제자 담비사 모요의 저서라는 점에서 주목했지만 미국의 미래에 대해 여러가지 시나리오로 결론을 내린 점에서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정답은 어떤 것이 될지 모르겠지만 각 시나리오에 담긴 날카로운 분석을 살펴보고 싶다. 행운으로 회수했으면...^^







이밖에도 궁금한 책들은 너무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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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Andy Goldsworthy, <WALL> 中 

 

단단하고 차가운 가슴에도

희망은,
노란
빛으로 속살거리고
 





 


<명작을 읽을 권리>
아주 오래전 유명한 음악가들의 잘 알려진 졸작과 잘 알려지지 않은 명작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잘 알려진 음악이면 당연히 명작이라고 생각했던 어린시절, 그 글은 상당히 신선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숨어있는 명작을 찾아내거나 이 작품이 왜 명작으로 불리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라는 소개글에서 다시금 그때의 신선한 충격을 기대하게 된다. 저자는 자신만의 독법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갔다고 하지만 작품, 작가, 사회, 독자라는 4가지 키워드는 여느 감상자에게도 중요한 항목인 바, 이 책을 통해 '명작을 읽을 권리'를 누리는 안목을 얻고 싶다.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저자는 10여년간 민화를 찾아 이곳저곳을 다녔다고 한다. 대표적인 작품 몇 점을 제외하고는 한껏 감상하기 힘든 것이 민화인데, 누군가의 노고로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민화들이 얼마나 있을까 상당히 궁금해지고 민화가 가지고 있는 힘이란 어떤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다. 뿐만아니라 이 책은 시리즈로, 저자의 발걸음 만큼이나 정성스레 한 작품 한 작품을 살펴나가고 있어 한 권에 모든 작품을 소개할 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한국의 주택, 그 유형과 변천사>
우리의 주거양식에 있어 일반적인 화두는 항상 아파트였다. 아마도 아파트 동수만큼이나 많고 층수만큼이나 다양했던 것이 아파트에 대한 연구였고 담론이었던 것 같다. 반면 주택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빈약했으며 어느덧 주거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변방으로 밀려난 듯하다. 그런데 이 책은 양식주택의 형성기부터 현대 다세대 주택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의 변천사를 살펴보고 전통을 계승한 미래 주거문화에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어 의미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 책을 통해 아파트에 몰두하느라 잊고 있던 주택의 소중한 장점들과 가능성들을 발견해 보고 싶다.


 

<존 러스킨의 드로잉>
존 러스킨은 아트앤크래프트운동을 주도했던 윌리엄 모리스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로 "모든 아름다운 미술 작품은 의도적이든 우연적이든 자연의 형태를 닮아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도 자연을 마주하는 인간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돗보이며 그림을 '그리는 법'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법'에 촛점을 맞춘 것이 무척 마음에 든다. 이 책은 이전 8기 평가단에서 선정되었던 로버트 헨리의 <예술의 정신>을 떠올리게 하는데, 사소한 드로잉 테크닉부터 예술철학에 이르는 대스승의 조언은 비단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가 될 것이다.





<우리 기억 속의 색>
책을 통해 종종 언급되는 자연의 색이나 잘 팔리는 색이 아닌 '기억속의 색'이라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다만 여기서 '기억속의 색'이란 한 개인의 심리적 경험을 통한 주관적이고 감각적인 색이 아니라 개인의 삶이 속했던 역사와 문화의 관점에서 풀어나간 색인듯 하다. 저자가 프랑스인인 관계로 우리가 가진 색에 대한 관념과 취향에 이런저런 차이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시각적 이미지가 전혀 없는 가운데 상상으로만 색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는 호기심이 먼저 앞서는 책이다.






이달에는 도서 선정에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관심도가 비슷한 책들이 많다보니 무엇을 택해야 마지막 추천 페이퍼로서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까 꽤나 고민했던 탓이다. 역시 '마지막'이란 것의 힘은 사람의 마음에 어떤 형태로든 의미를 남기나보다.

끝까지 리스트에 올릴까 고민했던 책 중 안타깝게 내려놓은 책은 먼저, <디자인의 진실>이다. 이 책은 권력과 디자인의 관계라는 매우 흥미롭고 흔하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 눈에 띄였는데, 인문분야가 상위 카테고리로 표기되어 있음에도 추천하고 싶었다. 다음으로 <검은 미술관>은 인간 심리의 어둡고 추악한 면을 다뤘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전에 읽었던 <무서운 그림>과 유사한 맥락일 것 같아 제외했고, <This is Art>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1,100점의 도판뿐만 아니라 감상의 포인트까지 제시되어있는 점이 유혹의 포인트, 그러나 이번에는 유혹을 넘겨버리련다. <좋은 시나리오의 법칙>도 시나리오를 살펴보는 가운데 영화를 비평하는 관점을 배울 수 있어 좋은 책이었지만 <명작을 읽을 권리>가 좀 더 광범위하게 영화작품들을 다룰 것 같아 전자를 포기했다. 끝으로 (헉, 진짜 많은 책이 후보였구나...) <의자의 재발견>은 멋진 의자의 시각적 감상뿐 아니라 제작과정이나 인체공학에 대한 설명이 있어 즐거운 잡학다식의 세계가 예상되지만 그저 5권의 한계 때문에 할 수 없이...ㅠ.ㅠ










8기, 9기를 합해 신간평가단으로 활동해 왔던 시간이 어느덧 1년이 다 되간다. 9기를 신청하면서 딱 1년만 하자고 결심했기에 여기서 이제 그만..해야겠지만 독서의 계절을 타겟으로 출간된 멋진 책들을 보니 또 맘이 설레기도 하고...하지만 역시, 그 책들 만큼이나 무더기로 쌓여있는 나만의 관심도서들을 보면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1년간 책을 찾고, 고르고, 어떤 책이 선정됐나 궁금해 했던 추억들이 참 소중하고, 좋은 신간을 받아볼 수 있는 기회를 누린 것에 감사하다.


 

참으로 길을 왔고

길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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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Goldsworthy, <WALL>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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