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먹고 서울 탐험에 나선적이 있었다. 한강 고수부지의 한 지점에서부터 시작하여 삼각지, 서울역, 시청을 거쳐 종각에 이르렀다 되돌아오는 이 도보 여행은 지하철로 약 17~8개의 정거장에 해당하는 머나먼 거리였는데, 장장 4시간이 넘는 행군(?)을 날마다 반복한 탓에 발목에 무리가 생겨 결국 물리치료와 함께 3일천하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미 대중교통이나 차로 익숙했던 그 길을 '실제로' 걸어본다는 것은 3일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여행에서도 생생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분명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막상 걸어보니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인도가 난 곳이 의외로 사람을 반기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자연조건이나 교통계획에 의해 도심 속에서도 섬처럼 단절된 곳이 있었으며, 거리의 화려함 속에 갑작스런 초라함이 끼어들어 함몰된 듯한 느낌을 주는 풍경도, 오랜 지병처럼 끙끙거리는 노후지역의 신음소리가 대로변까지 들려오는 상황도 감지되었다. 대도시, 그것도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이라는 곳의 중앙 대로는 이처럼 번화함이나 화려함이라는 피상적인 단어만으로는 간과할 수 없는 다양한 표정들을 품고 있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를 펼치게 된 것은 그때 그 탐험의 느낌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그러나 나처럼 무모하지 않은 치밀하고 우직한 발걸음으로 서울을 경험했다면 분명 그때보다 더 풍부한 서울의 표정들을 생생하게 보여줄거라 기대했다. 또한 책속에 담긴 장소의 대부분은 유년기로부터 이십대까지의 내 모든 추억이 담겨있는 곳이기에 나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그곳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아마 서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궁금증을 안고 있으리라!

경복궁에서부터 시작하여 명동, 효자동, 광화문, 종로 그리고 인사동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을 그려나간 스케치들은 마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손으로 만져 감각으로라도 기억하려는 노력인듯 정성스럽고 섬세하기 그지 없다. 스케치라 부르기에는 너무도 촘촘히 그어내려간 선들, 거기서 화살표가 뻣어져 나와 더 자세히 또 더 자세히...그리고 또박또박 눌러 쓴 글씨로 그곳에서의 시간들을 단정하게 각인해 놓는다. 저자는 이렇게 서울의 시간들을 회고하며 옛 문화재와 옛 이야기들로부터 현대식 고층빌딩로 빽빽한 도심, 뒷골목에 자욱한 일상의 흔적에 이르기까지 씨줄과 날줄처럼 공존하는 시간들을 짜내려가고 있다.

정성스런 그림으로 상기해본 서울의 모습이 더 아름다운 까닭은 있는 그대로의 서울이 세밀하게 재현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서울을 바라보는 애정어린 시선, 감성어린 시선들이 그림으로 나타나 우리가 바라는 서울의 정취와 여유를 만나게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삶의 고단한 흔적들에서 소소한 감동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골목이든 흔히 볼 수 있는 오목거울이 흑백 스케치 속에서 주황빛 모자를 쓰고 드러나는 순간, 골목이 환해지고, 어쩐지 안도감이 들며, 누군가가 지켜준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마저 솟아난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서울의 주요 문화재와 기념비적 건물들, 그리고 뒷골목의 풍경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람을 만나게 해주어 더욱 살갑다. 때론 역사적인 인물도 만나고, 때론 서울을 지켜온 소문난 어르신들도 만나지만 그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만 보아도 서울 거리의 온기가 느껴진다.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오래되고 희귀한 나무들뿐만 아니라 일률적으로 '가로수'라 불려졌던 나무들이 제 이름을 드러내고 우리에게 인사한다. 더불어 도시학을 전공한 저자답게 서울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문제점이나 도시설계상의 이슈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따지고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저 지나치기 쉬운 표지석의 방향이나 문화재 보존을 위한 미비한 대책, 책상위에만 머문 도시계획으로 나타나는 어이없는 공간들은 성급하게 자라 온 서울의 시간을 지층이라 바라볼 때 격동으로 드러난 단층과 같이 느껴진다. 이렇게 어긋난 단층들을 고르게 잘 가꿔가야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서울 토박이인 나에게는 매우 절실하게 다가온다.


책 속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내게 소중한 의미가 되는 장소들을 꼽아보는 것이었다. 말로는 분명히 들었지만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시인 이상의 집,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저자의 스케치로나마 만나볼 수 있어 행운이었다. 그리고 광화문의 뒷모습! 이것을 다시 보게된 것이 얼마만인지...마지막으로 가수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에도 등장하는 덕수궁 돌담길의 작은 예배당! 저 안에는 아기천사가 되어 날개를 달고 있던 순수함의 추억이 고이 잠들어 있다. 지금은 서울을 향한 발걸음이 그저 일상에 지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왕복에 불과하지 않지만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다시 탐색의 문을 활짝 연다면 나도 이 책에서처럼 반짝이며 살아있는 시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

참 아름다운 생각이다.



 

늘 곁에 두고도 잊고있던 하늘이
욕심 없는 기둥 하나로 우리의 지붕이된다.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붙들어
우리의 서울이라 알려주는
지은이의 마음도
저 기둥과 같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본격 시사인 만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본격 시사인 만화 -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 1
굽시니스트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를 몇 페이지 넘겨보다 문득 떠오른 소감이었다. 아주 오래전 두팔을 벌려야 다 펼쳐질 만큼 커다란 신문의 한켠에서 4컷짜리 세방살이하듯 숨죽여 말해왔던 옛날 시사/풍자 만화들을 추억해 본다면 올컬러에 널찍한 지면을 차지하며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빵빵 해대는 요즘의(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신세기'의) 만화에서는 속시원한 웃음이 터져나올법도 한데 어째 웃음보는 이리도 비싸게 구는 것인지...

이것은 책의 내용탓이 아니다. 세상 참 좋아졌다는 소리가 흔해진지 오래되었으나 아직도 이렇게 씹을 것과 비틀 것이 많으니 정말 '제대로' 좋은 세상은 언제 오려나 하는 한탄(?)이 밀려오는 탓이다. 물론 우리보다 정치가 더 발달한 나라에서도 사회를 풍자하고 권력자와 관련인물들을 비판하는 만화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만 문제는 이런 만화들이 상당한 관심과 호응과 지지를 받는다는데 있다. 정치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라일수록 정치적 후진국이라는 나의 얄팍한 상식에 비춰본다면 정치에 대한 신뢰가 견고해지기까지는 아직 먼 길로만 보여 톡쏘는 이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마음이 씁쓸하다.

저자의 필명인 '굽시니스트'만 봐도 그렇다. 할 말 다 하는 것 같아도 퇴짜맞은 원고였다는 사실을 '못다한 이야기'에 밝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언론은 제재받고, 따라서 삼켜야 할 말이 있으며, 스스로 (정권에 혹은 데스크에) 굽신거린다 자조하기 위해 지은 필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조할 수 밖에 없는 날들도 꽤나 있었을 것이다.

아직 현실은 언론에 대해 진정한 자유를 허락할 만큼 관용을 갖추진 못했지만 굽시니스트는 그 사이를 굽이굽이 통과하며 (그래서 굽시니스트일까?) 지난 2년 남짓 작업해 온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한권의 책으로, 못다한 이야기들까지 덧붙여 우리 앞에 내놓았다. 그리고 그 못다한 이야기들에 적힌 진지한 단상들 탓인지 단순한 시사 만화라기 보다는 한 편의 짧은 칼럼과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이 부분을 통해 그림에 사용된 이미지나 관련 정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주고 있어 훨씬 더 작가의 교감이 수월해진다. 만일 MB를 스크루지로 묘사한 <크리스마스 캐롤>편에서 디킨스가 가졌던 산업혁명기의 빈곤문제와 21세기 한국의 상황을 비견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음을 은근히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저 잘 어울리는 이야기로 재미있게 표현했다는 느낌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면에 담긴 저자의 의도를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표면적인 교훈을 너머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인식하게 되고 문득 더 넓은 사유의 장(場)으로 나아가게 된다.

굽시니스트의 만화가 즐겁고도 친근하게 읽히는 까닭은 단연 그의 탁월한 패러디 능력으로 꼽고싶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는 물론이고, 소설, 시, 가요, 연예인 등을 절묘하게 활용해 빵터지는 은유와 심지있는 대사들을 풀어놓은 장면들은 감탄과 더불어 감동을 자아낸다. 특히 절묘하다 생각되었던 것은 한때 인문학의 돌풍을 몰고왔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표지를 패러디해 과도한 인사정책을 비판한 <성의란 무엇인가>, 가요 <마법의 성>의 가사를 십분 활용해 박근혜와의 협상시도를 묘사한 세종시 문제, 레이디 가가의 분장을 통해 MB를 희화한 레이디 가카(여기서는 사디즘이 등장하는 수위 높은 그림이 슬쩍 비친다) 등인데, 이슈와 패러디가 유연하게 어우러지고 20~30대의 젊은 감각이 돗보여 과연 굽본좌라 부를만하다. 한편, 가장 찡한 감동을 자아냈던 장면은 김수영의 시 <풀>이 주는 감성으로 민심이 대세를 결정한다는 교훈을 남긴 '바람과 민초'편을 꼽겠다. 역시...가장 연약한 것 같지만 가장 힘이 있는 것은 민심, 그러나 민심을 공유하지 못하고 바람만 일으키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구절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본격 시사인 만화>에는 의외로 박통이나 5공시절과 같은 현대사 속의 이야기들이 간혹 등장한다. 그래서 정치와 시사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단편적인 내용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의 유머나 깊은 부분까지 충분히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굽시니스트의 만화에서 제맛을 느끼려면 아무래도 관련 상식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다. 정치/시사만 잘 알아서도 안되고, 대중문화만 잘 알아서도 안된다. 비록 친절한 뒷설명이 종종 더해진다 해도 곳곳에 숨은 유머까지 읽어내려면 두 가지 지식이 겸비되어야 하니, 신세기의 만화를 위해서는 독자들도 부단히 진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으로 굽시니스트가 시사만화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세대를 이끌어갈지 모르겠지만 한 회 한 회가 더 예리하고 소재 가득한 내용, 세련되고 여운을 남기는 풍자로 가득하길 바라며, 그의 활약을 통해 못다한 이야기들이 점점 줄어드는 사회, 비난받을 일 보다는 발전을 위한 쟁점들이 포착되는 사회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1명의 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101명의 화가 - 2page로 보는 畵家 이야기 디자인 그림책 3
하야사카 유코 지음, 염혜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술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화가의 생애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일인가, 중요하다면 얼마나 중요하며 어떤 면에서 중요한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로뎅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에콜 드 보자르에 세번이나 낙방했던 사실이 <생각하는 사람>을 감상하는데 영향을 미칠까? 폴록이 시케이로스(멕시코 화가)의 벽화작업에서 액션페인팅을 착안했다는 사실이 현란하게 춤추는 <가을 리듬>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될까? 쇠라가 인상파전에서 감동을 받아 빛과 색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는 것을 알고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감상하는 것과 모르고 감상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실상 미술가들의 작품을 개별적으로 감상할 때에는 그들의 생애나 성격에 대한 지식이 크게 영향을 미치치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한 그림이나 정치적 성향을 띤 그림 등에서는 미술가에 대해 아는 바가 있어야 더 충실히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작품 자체의 감상에 화가 개인의 생애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반면 한 사람의 미술가가 가지고 있는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작품 변화의 계기와 요소, 반영된 관념이나 심리적 상태 등을 추적해 보다 심도있게 연구하고자 할 때에는 그 삶의 흔적이 무척 소중한 자료가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건이나 일화와 그렇지 않은 것들이 구분되며, 대체적으로 미술사조나 역사적 배경 속에서 활약한 내용을 그의 생애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2페이지 속에 담긴 각 화가들의 대표적 특징과 다양하고 사소한 이야기는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더욱이 감상할 수 있는 작품 사이즈가 작게는 우표에서 크게는 명함판 사진 정도의 크기라면 이 책을 통해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단적으로 말해 그렇지 않았다. 축소될대로 축소되 빽빽한 만화 틈새에 배치된 그림들은 화가의 일대기 속에 등장하는 조연으로 비춰졌으며, 대략 이런 것을 그렸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이지 결코 감상용 이미지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미술보다는 인물분야로 먼저 분류되어야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제목도 <101점의 그림>이 아니라 <101명의 화가>가 아니였던가!

책 속에 소개된 화가들의 인생은 (당연하겠지만) 십인십색, 백인백색이라 할 수 있다. 물질적인 고통을 겪은 사람도 있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은 사람도 있으며, 불같은 사랑을 한 사람, 아쉽게 절명한 사람, 특이하고 개성적인 사람, 그리고 별다르지 않은 평이한 삶을 산 사람까지 모두 미술사를 빼곡히 채워온 인물들이었으며 그 안에 살았던 흔적을 남겼다. 이것은 단지 인생 그 자체뿐만 아니라 작품세계나 화가의 성향 면에서도 여러가지 사람들로 나눠질 수 있었는데, 그것이 충분히 나타나지 못하고 수많은 색채의 화가들이 가나다 순으로 묻혀진 것은 매우 안타까운 점이다. 또한 특정한 의도 없는 가나다순 배열과 만화로 풀어간 형식, 매우 기술적인 일대기의 묘사는 주입식 미술교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만화 학습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 사람의 화가 이야기를 두 페이지에 담는다는 것에는 극과 극의 경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한 인물과 그의 작품을 심도있게 이해한 바탕위에 저자만의 관점과 통찰력을 담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는 고도의 경지이며, 다른 하나는 다양한 정보 중에서 중요한 사건을 뽑아 나열하고 배치하는 매우 손쉽고 일반적인 경지이다. 그런데 <101명의 화가>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성격이 더 강한 책이라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중학생에게 밀레에 관해 A4 한 장으로 조사해 오라는 숙제를 내준다 해도 이 책의 2페이지에 담긴 내용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물론 화가의 생애를 중심으로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일화와 작품활동에 대해 간략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 책을 통해 잘 알지 못했던 화가의 생애에 대해 새롭게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유익했지만 '놓칠 수 없는 최고의 추천 작품'을 찾느라 작은 글씨와 다닥다닥 붙은 그림 사이를 헤매야 했던 어려움과 끝내 그것이 두 페이지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찾다 포기한 것이 아닌, 애초부터 삽입되지 않았다는 의미) 당혹스러움이 종종 발생해 결국 아쉬움을 더하며 책을 덮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 깨진 청자를 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 깨진 청자를 품다 - 자유와 욕망의 갈림길, 청자 가마터 기행
이기영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온통 깨어진 청자 뿐이었다. 지금까지 청자라하면 적어도 교과서나 도록에 실린 국보급 청자들로 오묘한 빛과 우아한 곡선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진 '완제품'들이었는데, 전형적인 대표 작품 몇 점 외에는 한 번도 제대로 구경해 보지 못한 청자를, 이런 청자 저런 청자 감상하기도 전에 모조리 깨어진 사금파리들만 만나고 말았으니 이를 어쩔까나! 앞표지부터 뒷표지까지 시종일관 깨진 청자로 가득 메운 이 책이 적잖이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은 실망에 의한 당혹스러움이 아니라 깨진 청자가 오히려 우리 청자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놀라움에 의한 당혹스러움이었다.

도대체 저자는 무엇을 위해 깨진 청자를 향한 고행아닌 고행길에 나선것일까? 유럽 도자 기행이 무산된 이후 청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청자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닌 역사의 블랙박스라는 사실을 발견한 탓에 청자의 발전사와 땀내 배인 도공들의 삶을 추적해 나갔다지만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도자기에 대한 열정, 그리고 깨진 청자 속에 담긴 조상들의 혼으로부터 힘겨운 마음을 다잡고자 하는 한 고뇌 어린 도공의 독백이었다.

영암 구림을 첫 걸음으로 시작하여 강진, 해남, 장흥, 용인, 서산, 양주, 그리고 다시 강진에서 맺으며 약 20여개에 달하는 가마터를 찾아가는 이 순례기에는 역사를 한창 거슬러 올라 청자가 걸음마를 시작할 삼국시대 무렵부터 다양한 청자가 생산되었던 고려시대까지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제작기술 중심이 아닌 생산규모 중심으로 청자를 추적한 탓인지 흔히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기술을 구가하던 시대의 가마터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책은 청자의 아름다움과 한국의 미에 대한 관록이 주가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해 물건을 생산하고 사업을 확장하며 정치적 세력이 팽팽히 맞서고 부역하는 백성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도예산업의 이면을 담은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내겐) 놀랍게도 장보고였다.

우리에게 해상왕으로 잘 알려진 장보고는 해외 무역을 위해 우리나라 자체에서 도자기를 생산하여 수출하는 원대한 계획을 구상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도자기 기술의 씨앗을 심기 위해 중국의 기술을 비밀리에 유입해 왔다. 비록 장보고는 자신의 산업이 확장되고 커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염장에 의해 살해되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자라 1세대의 실험청자를 거쳐 점차 성장했으며 다양한 가마가 제작되고 다양한 청자 제품들이 생산되는 5세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저자가 가마터에서 발견하고 우리에게 보여주는 청자들도 충분히 건조시키지 않았던 것이라든지, 유약을 너무 바른 것이라든지, 가마 흙덩이가 떨어져 실패한 것 등 뼈아픈 도공들의 실험과 숙련과정들을 담고 있다. 청자들도 모두 녹색이 도는 것이 아니라 적색, 흑색이 도는 청자로부터 시작해 점차 청색이 도는 청자들도 보이며 백자가 함께 생산되었던 시절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때로 백자가 조각이 나타나기도 한다. 뿐만아니라 가마에서 청자를 구울 때 사용했던 갑발이나 도지미라는 보조물들도 소개되어 청자 생산의 현장이 매우 생생하게 전달된다.

깨진 청자이지만 이를 통해 청자의 상태와 당시의 상황, 도공의 솜씨와 성품, 그가 느꼈던 마음까지 모조리 읽어내는 저자의 관록에 감탄하며 마치 그가 도공의 동료이거나 선생님인 듯한 느낌마져 들었다. 이렇게 깨어진 청자에서 마음을 읽고 그것과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저자도 걱정하는 바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우리의 청자에 대해 무관심하다. 골프장에 밀려나는 가마터들, 어디있는지 찾기 힘들고, 접근하기 조차 어려운 가마터들...그곳에 깨어진 사금파리들이 다시 희망을 꿈꾸며 지금까지 숨쉬고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저자가 우리나라 청자의 보고인 강진에서 보여줬던 가마 분포도가 생각난다. 강진에는 188기에 달하는 청자 가마터가 밀집해 있었는데, 붉은 점으로 촘촘하게 표시한 그 지도를 보며 땅바닥에 어지러진 벚꽃잎들이 떠올렸다. 이미 저버린 전성기이지만 또 다른 봄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여행 끝에서 자신을 옭아매던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자유함을 얻었다고 했다. 무명의 도공들을 기리며 그들에게서 희망을 배우기도 했다. 그런데 왠지 나는 그것이 다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깨어진 청자 속에 담겨진 장보고의 원대한 계획을 다시 이 시대에 펼쳐보리라는 희망을, 장보고처럼 살아 생전 보지 못한다 해도 이후에 다시 살아날 청자의 전성시대를 꿈꾸며 그 씨앗이 되는 마음으로 무명 도공을 찾는 겸허함을 엿본 것 같다. 비록 청자에 대해서는 일자도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지만 우리의 청자가 생활과 더 가까와져 다시 밥그릇으로도 오르고, 종지로도 오르는 날을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 오래된 사물들을 보며 예술을 생각한다
민병일 지음 / 아우라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길을 가다가 벼룩시장이나 앤틱샵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특별히 골동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거나 그들을 바라보는 안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옛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과 진기함에 그저 번번히 유혹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북적이는 길거리에 펼쳐진 벼룩시장이든 어스름한 가운데 알 수 없는 내음이 깃든 앤틱샵이든 옛 사물들은 분주한 일상을 밀어내고 침잠해 있던 아늑한 시공(時空)을 재현하는데 구애받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 사이를 서성이다보면 삶의 고단함이 사라지고 마치 할머니의 품에 안긴듯 평온한 시간에 잠겨들 수 있다. 옛 사물들을 만나는 또 다른 즐거움은 누군가의 사연이 깃든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물건들과 교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서리가 닳고, 빛이 바래고, 반들반들 길들여진 골동품들은 그것에 사람의 흔적이 배어있다는 것만으로도 쉽게 친근해지며 향수라는 강한 감성이 밀려오면서 더욱 특별한 감동을 자아내곤 한다.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은 마치 지면위에 펼쳐진 벼룩시장같은 느낌이다. 여기저기 서성이는 대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긴다는게 다른점이긴 하지만 옛 물건들과 그에 얽힌 잔잔한 향수가 가져다주는 휴식은 현실의 벼룩시장에서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골동품'하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타자기, 시계, LP, 라디오, 꽃병들은 저자의 마음 가득 고인 미술과 음악, 문학 이야기과 어우러져 한층 더 특별한 감성을 자아낸다. 이에 더해 독일을 중심으로한 문화 이야기가 풍성해 어느덧 골동품 하나로 먼 나라의 이국적인 정취까지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사실 이 책을 직접 만나기 전에는 골동품의 미적가치나 감정법에 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룰것이라 예상했었다. 예를들어 램프를 볼 때, 아르누보 시대의 미학을 논하면서 램프를 이루는 곡선이나 그려 넣은 그림의 수준, 공예적 기교와 가치에 대한 평을 할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골동품 전문가의 시각으로 옛 사물을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예술인으로서 사물에 얽힌 사연와 감동, 그리고 그것을 돋워주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접목시켜 사유와 감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옛 물건들의 시각적 감흥에 곁들여지는 은은한 클래식 음악 이야기는 청각을 불러오고, 가끔씩 와인이나 맥주와 같이 미각과 후각을 자극시키는 주제까지 등장하여 공감각의 세계를 한껏 만끽할 수 있다.


저자가 소장한 옛 물건들은 어딘지 모르게 특별함이 느껴졌다. 물론 그 중에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같은 세계 명품도 있고, 파버카스텔(Faber-Castell)사 창립 222주년 기념 색연필(이 회사의 매니저도 처음 본다고 했던)처럼 희소가치가 있는 물건도 있지만 흔히 볼 수 있는 (그러나 오래된) 단추, 다리미, LP레코드, 꽃병, 시계, 몽당연필들에서도 특별함이 느껴지는 까닭은 분명 저자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한 남다른 애정, 사물에 부여한 아름다운 의미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색색의 몽당연필을 꺼내 줄을 그으면 희미한 기억이 연필심을 따라 나온다.
할머니는 저 연필을 난쟁이로 만들어가며 생의 무엇을 기록했을까?(p.30)

저자는 벼룩시장의 할머니에게서 한 봉지의 몽당연필을 샀다. 하지만 그가 산 것은 색색으로 예뻐보이는 물건으로서의 몽당연필이 아니라 오래된 기억, 생에 대한 감흥이라는 어떤 의미로서의 몽당연필이다. 그가 사물을 바라보고 그것에서 더 풍부한 예술적 감성들을 엮어나가는 것을 보며 김춘수의 시 <꽃>이 떠올랐다. 그는 오래된 물건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꽃으로 피워냈으며, 그것에 예술적 사유화를 통해 햇살과 물을 주어 더욱 만개한 아름드리로 가꿔나갔다.

이 책을 읽다보니 범람하는 소비사회의 사물과 소유자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과연 내것으로 만드는 물건들에 어떤 의미를 얼마나 부여하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까지 무심코 '사용'해왔던 물건들에서 '교감'할 수 있는 온정어린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비록 골동품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선택한 물건들에서 가격이나 품질, 디자인 이외의 어떤 다른 의미들이 숨어있는지 다시금 물건이 놓여있는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