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쪽
˝개념 착오가 있다. 나는 가난하지 않다. 절제하는 것이다. 그것이 차이점이다.˝ 그는 네덜란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또 ˝겸손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자리에 있으면 더하다. 세상은 우리 없이도 계속된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정리했다.
˝가난하다고 나를 묘사했는데, 가난에 대한 나의 정의는 세네카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많이 필요하면 만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절제할 줄 아는 것이지, 가난한 것이 아니다. 나는 수수한 사람이다.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다. 물질적인 것에 얽매여 있지 않다. 왜? 시간을 더 갖기 위해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을 더 갖기 위해서. 자유는 삶을 살아갈 시간이 있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무소유의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가난하지 않다.˝

53쪽
˝교양은 욕망을 물리칠 줄 아는 것이고, 아주 적은 재료로 특히 싸고 흔한 것으로 음식을 만들 줄 아는 것이며, 마케팅 사회의 유혹에휩쓸리지않게 해준다.˝

65쪽
소박함은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정치적으로 보상을 받는다

호세 무히카는 활동가이자 이론가인 사람으로 한 번에 가질 수 없는 상대적인 가치를 모두 지닌, 에머슨의 표현에 따르면 자연인이자 교양인이었던 사람인가보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삶을 희생하여 그 기반 위에 정치력을 쌓은 사람은 도저히 전락할 수 없다.

전쟁은 이겨놓고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그랬고 손자가 그랬다. 판도 공격은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것.

책 광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끔 했는데 투파마로스의 무장투쟁 이야기를 읽고있으니 김구 선생이 떠오른다.

명백한 적이 힘을 가지고 있을 때, 과격한 방식으로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정의일까 아니면 다를바 없는 또 다른 폭력일까.

112쪽
정치인도 일개 시민으로서 우연히 권력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전제 아래, 유권자와 직접 관계를 맺는 이런 형태는 마침내 우루과이에서 정치를 하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치가 개인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정치에 봉사해야 한다. 즉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뿐 아니라 그렇게 보여야 한다.

142쪽
사람 위에 사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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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이나 인물들의 모습이나 그걸 표현해내는 문장이나, 책을 읽는 내내 쓸쓸한 바닷바람이 스쳐가는 기분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순간을 보내며 그 많은 대화와 눈빛을 나눴음에도 만남과 헤어짐의 기억은 어찌 그리 다를 수 있을까.

서로의 기억이 다름에도 같이 사랑했다고 할 수 있을까.

결혼 후 다른 여자를 찾는 남자와 그 남자를 억지로 이해하고 덮어두어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여자의 모습은, 실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너무 진부할뿐더러 옳지도 않다. 남자는 배고 여자는 항구라는 비유는 진저리난다. 바다에 표류한 두 배가 우연히 만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한 배가 딴 맘을 먹고 방향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간 것일뿐. 누구도 항구가 아니고 누구만 배일 수 없지 않겠나.

무지에 기반한 편견일 수도 있지만 일본인은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게 되어버렸다.` 라는 말을 자주 쓰는 듯 하다. 어떤 상황이 내 앞에 갑작스레 떨어져 그걸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내가 의도한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다투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자`라는 것인가 싶다. 다투면 피할 곳이 없는 섬 나라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和의 발현인지 아니면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언어습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건과 자신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남녀관계에 대한 일본적인, 남성의 일방적 변태스러움은 상당히 불편하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낯섬이 일상이 되어가고 안개 같이 스산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가 아침해가 떠오르며 안개가 걷히듯이 명확해진다. 안정되지만 진부한. 친숙하지만 궁금하지 않은. 그것이 나의 사랑만은 피해가길 바라지만, 결국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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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배제한 것이라면 그 어떠한 발전적인 주장이라도 듣고싶지 않다.

잉여 생산물이 생기고 그것의 불균등한 배분으로 인해 계급이 분화되면서부터 누군가는 노동하고 누군하는 지배하기 시작했다. 지배하는 자는 땀 흘려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얻었고 당대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반면 지배당하는 자는 감사해야했고, 만족해야했고, 검소해야했고, 땀 흘려 노동해야했다.

빈곤과 굶주림은 자연적인 것이지만 인간은 이를 해결할만한 힘을 이미 수백년 전에 얻었음에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1984년에 이미 인간은 120억 명을 먹일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고 있었다.

기아문제가 적자생존, 자연도태의 논리로 볼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구조적인 문제이지 굶주리는 자들의 생득적인 한계로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패한 것은 시스템을 지배하는 자들이고 도태되어야 할 것은 이미 충분한 식량이 있음에도 그것의 균등적 배분을 가로막는 자들이다.

자연은 배부른 자들이 맑은 공기를 마시게 하기 위해 수억명의 사람들을 기아에 빠뜨리지 않는다. 그들을 기아에 빠뜨리는 것은 배가 터질만큼 먹어놓고도 더 먹으려고 하는 유아적인 자들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지. 배탈난다.

빈곤의 비참함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제도에 의해 비롯되었다면,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

밑줄, 생각

152쪽
기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아빠는 생각해.

169쪽
세계경제의 모든 매커니즘은 한 가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한 가지 대전제는 바로 기아는 극복되어야 하며 지구상의 모든 거주민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라고 썼다. 시장의 완전한 자유는 억압과 착취와 죽음을 의미한다.

168~171쪽
기아에 관한 한 시장의 자율성을 맹신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못해 죄악이다. 우리는 기아와 투쟁해야 한다. 기아문제를 시장의 자유로운 게임에만 방치할 수는 없다. 이에 세계경제의 모든 매커니즘은 한 가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한 가지 대전제는 바로 기아는 극복되어야 하며 지구상의 모든 거주민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국제적 구조가 마련되어야 하고 규범과 협약이 마련되어야 한다.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라고 썼다. 시장의 완전한 자유는 억압과 착취와 죽음을 의미한다. 법칙은 사회정의를 보장한다. 세계시장은 규범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민중의 집단적인 의지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경제의 유일한 견인차는 이윤지상주의라는 입장, 신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두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허구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이 시대의 급박한 과제다.
시카고의 곡물거래소는 문을 닫아야 하며, 협의 등을 거쳐 제3세계에 대한 식량 공급로가 확보되어야 하고, 서구 정치가들을 눈멀게 만드는 어리석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폐지되어야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
하지만 과연 서로의 동료로서 인간의 고통을 공감하고 급진적인 연대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은 현실적일까? 그것이 가까운 미래에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역사는 그런 질적인 도약을 알고 있다. 국가의 성립도 그에 대한 한 예다. 먼 과거에 인간들은 가족, 씨족, 그리고 한 마을 사람들끼리만 연대감을 느끼고 동일시하였따. 연대감은 신체적으로 가까이 있는 친한 사람들에게만 제한되었다. 그러다가 국가가 성립되면서 인간은 처음으로 알지 못하는, 평생 알 일이 없을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민족 정체성, 공동체 의식, 공공시설,그리고 모두에게 구속력을 발휘하는 법이 탄생하였다.
이제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고 인간적인 지구를 만들기 위해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가면 된다. 이를 위해 맬서스의 생각 같은 선입견이 없어져야 한다. 이 책은 그것에 기여하고자 쓰였다.
동일성은 다른 사람과의 진짜의, 혹은 상상의 만남, 단결행위 등 한마디로 공유된 의식으로부터 생겨난다.
˝잘못된 것 안에 올바른 삶은 없다˝라고 했던 아도르노의 말마따나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에 행복의 영토는 없다. 우리는 인류의 6분의 1을 파멸로 몰아넣는 세계질서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지구에서 속히 배고픔이 사라지지 않으면 누가 인간성, 인정을 말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인류로부터 배제되고 남모르게 파멸해가고 있는 이런 ˝고통스런 분파˝는 다시 인류 속으로 편입되어야 한다.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게는 존속할 희망과 의미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기 전에는 지상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176
배고픔의 숙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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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이란 무엇인가 / 자기신념의 철학 동서문화사 월드북 127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정광섭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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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문학은 아니니 모든 문장을 음미하며 읽는 것도 아니지만 이건 무슨 내가 쓰는 레포트만큼이나 문장이 제멋대로이다. `능력의 뛰어 넘어 활약하는 사람을 보면 한없는 용기가 샘솟는다`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무슨 말인지야 뭐 다 알긴 하겠지만 이 문장은 자그마치 소제목인데 이게 뭔가. 이건 오타도 아니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쓰고 바로 책을 낸 게 아닌 이상 저런 문장이 어떻게 소제목으로 떡하니 굵은 글씨체로 되어 책의 한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건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번역은 아니나 군데 군데 저렇게 비문이 난무하니 내용만 딱 파악하고 넘어가게 된다.

볼프 슈나이더의 `만들어진 승리자들`과 말하려는 바가 비슷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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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후 식민지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들은 피식민지민들에게는 정복자, 일본 본토인들에게는 대륙 침략의 첨병이자 일자리를 빼앗고 식량을 축내는 민폐 집단으로 인식되었던 반면 그들 스스로는 패전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라고 한다.

어찌 그러한 정체성 중 단 하나만을 택해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그들은 그 세 가지 정체성 모두를 지니고 있으며 때문에 귀찮음을 무릅 쓰고 입체적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물론 나는 피식민지 경험을 했던 국가의 흐름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을 정복자라고 생각하고 보겠지만 공감의 범위를 확장시켜 그 당사자들의 마음이 되어, 본토 일본인들의 마음이 되어 당시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그것이 그 시대를, 역사를, 인간을 좀 더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건을, 시간을, 인물을 다각도로 살펴보려는 귀찮음을 포기하는 순간 일본인들에 대한 감정은 단순히 분노하기 위한 분노일 뿐이며 그들을 비난함으로써 정신적인 만족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모든 역사 속의 혼돈의 시기를 바라볼 때 슬픈 것은 정작 그러한 혼돈을 만들어낸 인간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겨 존경과 비난, 추종과 멸시를 한 몸에 받지만 정작 그 혼돈에 휩쓸려 피흘리던 사람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뿐더러 시대에 무기력하게 스러질 뿐이었다는 것이다. 역사를 대할 때 사건을 단순화 시키기 위해 사건의 연단 위에 세워진 한 인물만을 바라보지 않고 그 아래 있던 수많은 고통받던 사람들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사실, 패전 후 조선을 떠나던 일본인들이 피해를 입고 친일파들이 보복을 당한 사건들이 있었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일본인들은 성공적으로 퇴각 작전을 펼쳤고 대부분의 피식민 국가들의 친일파들은 일본인들이 떠난 자리를 틀어잡고 득세하였다. 이런 망할 역사의 흐름이란. 사마천이 말한대로 정말 하늘의 뜻은 미미하다.

정의가 승리하고 기회주의가 패배한 역사를 본 적이 없다. 단지 권력의지가 강한 자들 중 승리한 자들이 역사를 써갈뿐인 것 같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목차만 읽어봐도 그 주제는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시험공부 해야 하는데..

8쪽
미군은 대부분의 일본인을 1946년 2월까지 집단 송환했다. 그러나 소련군은 한반도에 진주하자마자 일본인의 이동을 전면 통제한 가운데 남성들을 만주와 소련으로 데려가 강제 노역에 종사시켰다.

6장에서는 식민지의 가해자가 전후 일본 사회에서 전쟁피해자로 둔갑하게 되는 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생하게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흐름에서 요코 이야기가 쓰여지지 않았나 싶다. 요코 가와시마 윗킨스라는 사람도 자신을 일본의 군국주의와 세계대전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녀 역시 가해자의 이름표를 떼어낼 수는 없지 않나 싶다. 사실 세상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무 자르듯 뚜렷하게 갈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

16쪽
8월 17일 비밀리에 총독부 부인 일행이 부산에 도착했다. 이들은 곧바로 도청 측에서 마련한 배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향했다. 운행 도중에 배가 한쪽으로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부인 일행이 조선에서 수집한 귀중품들을 어떻게든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무리하게 실은 나머지 배가 미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22쪽
전시에 패색이 짙은 쪽의 지도자들이 백성을, 국민을 버리고 도망 가는 것은 이승만만 그랬던 건 아니었나보다. 이것 역시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인가보다.

27쪽
패전 후 본토로 돌아간 일본인 중 적잖은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났거나 오랜 기간 생활하며 정들었던 조선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피력하곤 했따. 그런데 이들이 회고록을 통해 쏟아내는 조선에 관한 이야기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조선인에 대한 기억이나 조선인과 무언가를 함께했던 기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에게 조선인은 과거를 회상할 때 어렴풋이 떠오르는 한반도의 수목산천과 다를바 없는 그저 풍경의 일부일 뿐 동등한 사교의 대상이 아니었다.

악인에 대한 폭력을 통쾌해 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것일까.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해방 후 빠르게 과거의 모습을 찾아가는 조선인들의 모습에 그래도 36년이라는 시간이 우리의 정체성을 말살하지는 못했구나라고 안도하게 된다.

51쪽
그는 마지막 날 일기 말미에 ˝광고한 민족 대이동의 비극을 보았다˝고 적었다. 하지만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뒤 체험하게 될 비극은 아직 펼쳐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54쪽
일본인의 해외 이주는 더 나은 삶을 찾아 나선 개인의 욕망과 이들을 통해 영토 확장을 꾀하려는 국가의 욕망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1945년 8월 해외에서 패전을 맞이한 일본인들을 상대로 일본 정부는 어떠한 태도를 보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현실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그곳에서 버티라는 것`이었다.

55쪽
일본 정부는 패전에도 불구하고 외교적 협상을 통해 해외 식민지를 유지할 수도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그 같은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73쪽
각 도의 세화회 가운데 특히 경성일본인세화회는 총독부와 조선 주둔군이 무력화된 이후 남북한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원호를 실질적으로 담당한 일종의 총본부였다.
세화회는 조선에서 오래 생활했고 잔류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인본인들의 원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그러나 점령군에 의해 잔류 가능성이 원천 봉쇄됨에 따라 총독부 관료의 추방과 조선군 송환에 따른 행정, 치안 공백을 메우고 점령군의 송환정책에 협조함으로써 일본인의 안전한 귀환을 도모하기 위한 조직으로 바뀌어갔다.

75쪽
원죄가 부른 보복

78쪽
결국 패전 후 사면초가에 처한 조선총독부는 구체적 귀환 계획을 주도적으로 추진하지 못한 채 조선군의 물리력을 적절히 활용하며 치안을 확보한 뒤, 통화 증발과 수송을 통해 모라토리움 위기에서 벗어나고 그 돈으로 점령군에게 로비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유리한 귀환 환경을 창출하고자 했다. 그리고 형식적이나마 조선근로동원원호회를 남겨둔 것은 한반도의 일본인과 해외 조선인들이 상호 귀환 국면에서 갈등 관계에 놓일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이상과 같은 조치를 통해 조선총독부는 조선에서 패전에 따른 위기를 그런대로 넘길 수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일으킨 각종 사건과 의혹은 조선인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다.

98쪽
해방 후 해외에 있던 조선인들이 돌아오자 주택 문제가 붉어졌고 그러한 불만이 조선거주 일본인들에게 귀국하라는 압박으로 표출되었다.

105쪽
러취Lerch 군정장관은 1946년 1월 23일부로 일본인의 총철퇴력을 내렸다. 이로써 조선은 더 이상 일본인들이 살 수 있는 땅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108쪽
1945년 8월 말 마을의 젊은 처자들이 황급히 고량 밭으로 달려가 몸을 숨겼다. 미처 집을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다락과 지하실로 들어가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여자들은 모두 머리를 잘랐다. `머리를 빡빡 깎은 여성은 건드리지 않는다`라는 소문에 모두 까까머리를 한 것이다. 이것은 평안남도 강계에 소련군이 처음 진주하던 날 벌어진 마을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요코 이야기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110쪽
북한 지역에 진주한 소련군은 미군과 달리 모든 것을 현지에서 조달했다. 이에 따라 불필요한 대민 접촉이 잦아졌고, 그 과정에서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하기 일쑤였다.
: 서류상 북한에 들어온 소련군은 해방군이었고 남한에 들어온 미군은 점령군이었지만 그 행태에 있어서 소련군이 이북의 해방을 위한 정의의 군대는 아니었나보다. 당연하게도. 오히려 현지조달이라는 미명하에 더욱 가옥한 지배 행태를 보였나보다.

114쪽
소련군 관계자는 상부로부터 일본인 송환에 관한 지시를 받은 적이 없지만, 일본인들을 그대로 돌려보내기에는 `매우 귀중한 노동력`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이것은 거류 일본인에 관한 미소 양국 점령군의 시각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에다.

미군의 일본인 송환 정책은 군사적 관점에서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분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신분에 따라 순차적으로 돌려보냈다는 점에서 계획 송환이고, 궁극적으로는 모두 돌려보냈다는 점에서 일괄 송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소련군의 일본인에 대한 정책은 일괄 `이동 금지` 후 필요에 따른 선별적 `활용과 방치`였다고 볼 수 있따.

190쪽
귀환자, 제대군인, 소개민은 전후 일본의 열등 국민으로 전락했다.

192쪽
(일본) 정부는 1945년 9월 귀환항 바로 옆에 있는 규슈대학 의학부의 산부인과 의사를 소집해 만주, 북한 등 소련 점령지에서 돌아온 여성들을 대상으로 문진을 거쳐 강제 낙태 수술을 실시했다고 한다.

이처럼 해외에서 돌아온 여성을 맞이하는 `조국` 일본의 첫 인사는 바로 강제 낙태를 위한 채혈 검사로 대체되었따.

194쪽
귀환자 수용소는 해당 지역사회에서 어느새 소외된 `섬`으로 자리 잡고 잇었따.

218쪽
북한 지역에서 돌아간 여성들의 체험은 시기는 약간씩 다르지만 대개 소련군과의 전투 -> 피난 -> 소련군의 진주와 폭행, 약탈 -> 체류 기간중 사건(가족과의 이산, 사별, 강제 노역) -> 목숨을 건 탈출 -> 남한의 임시 수용소 -> 귀환이라는 일정한 형태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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