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론집의 책머리에는 ‘삶의 어느 법정에서건 나는 그녀를 위해 증언할 것‘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도대체 얼마큼 믿는 것일까.
얼마큼 아는 것일까. 얼마큼 사랑하는 것일까. 나는 누구에게 그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누가 나에게 그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금 안 밟았다고, 내가 다 봤다고 말해주는 화면 속 여자애의 얼굴을 영영 잊을수 없을 것 같다. 속거나 지거나 당하지 않기 위해 증거를 확보하느라 바빴던 내 유년기도 참 고단했는데, 아무런 무기도 방패도 없이증언자로 나서기까지 그 애가 견뎠을 온갖 서러움들은 감히 헤아리지도 못하겠다. - P490

 독자가 건네는 말에 쉽게 행복해지거나 쉽게 불행해지지 않도록 나는더 튼튼해지고 싶다. 나약하지 않아야 자신에게 엄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휘청거리면서도 좋은 균형 감각으로 중심을 찾으며 남과 나 사이를 오래 걷고 싶다.
- P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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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족이어도 서로의 마음 속에 어떤 지옥이 있는지 알지못하고 지나갈 때가 많았다. 잘 지내는지, 아프거나 슬프지는 않은지궁금해하면서도 다 물어보거나 다 말해보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나긴 이야기를 하면 새삼 놀랄 뿐이었다. 그랬구나, 세상에, 그런 일이너에게 있었구나, 하고 몇 발짝 늦게 알아주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마음을 다해 듣는대도 대부분의 문제들은 철저히 각자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얼마 전 찬이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자꾸만 눈물이났다. 한동안 그의 마음이 슬픔과 실망으로 닳아왔다는 것을 듣게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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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이는 밖에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밥도 제대로 안 먹고 집안에서 크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사람을 좌절시키는 건 고생 자체가아니라 무의미일지도 몰랐다. 알아주지 않는 고생과 보상 없는 노동이 그를 더 이상 힘낼 수 없게 만든 것 같았다. 돈을 받을 거라는 희망 때문에 참을 수 있었던 무섭고 지저분하고 춥고 외로운 순간들을이제 더는 못 할 것이었다. - P336

그 시간에 복희는 쓰리잡을 뛰고 있었다. 웅이의 몸과 마음이 왜아픈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물속에 들어가지 않았기때문에, 웅이만큼 무섭고 춥고 외로운 일을 마주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자신은 덜 지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웅이가 못일어나는 동안에도 열심히 일했다. 복희는 자기가 웅이보다 힘들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프리카에 다녀와서도 돈을 못 받은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삶이 이어지고 있었고 아이들이자라고 있었고 내야 할 돈이 끊임없이 생겨났고 냉장고에 채워넣어야 할 재료들이 끝이 없었고 갚아야 할 대출금도 태산 같았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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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PR이라는 게 흔하디흔해진 이 시대에도 자신을 어필할 언어를 장전하지 않은 자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이 내 엄마다.
나는 복희가 자기소개를 제대로 못 한 게 안타까웠지만 그녀가그걸 못 하는 사람이라는 게 너무 좋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복희를위한 자기 설명의 언어들을 선물하고 싶기도 했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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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는 내게 말했다. 망설이는 자들의 용기도 있는 것이라고,
주저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는 것이라고, 자기 목숨을 조심하고 아끼는 사람이 살아남아 해야 할 일이 또 있는 것이라고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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