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그리운건지, 그때가 그리운건지
김하인 지음 / 지에이소프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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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서평하는건 참 어렵다. 수백개의 단어로 소개해도 시집의 전부가 아니기에 항상 고민된다. 그저 이렇게 느낀 사람도 있구나, 하고 지나가듯이 읽어주시면 좋겠다.
이 책은 사랑을 노래한다. '너'에 대한 사랑도 있고 부모에 대한 사랑도 있고 스러져가는 것에 대한 사랑도 있다. 때로는 사랑을 처음 한 어린아이처럼 때로는 이별을 예감한 사람처럼 노래한 그의 시들은 이상하게도 한걸음 물러나 상대방을 위해 희생한다는 애잔한 기분이 들게 했다. 바로 곁에 없는 어딘 가의 '너'에게 건네는 혼잣말처럼 잔잔하고 외롭게 들렸다. 누구나 겪었음직하다고, 보편화시킨 예전의 공허함도 떠올랐다.

가을 엽서


은행나무 아래서

너로 물들었던 내 마음이

나풀나풀 떨어지는 것을 보며

너를 줍는다.


날 떠난 널 줍고

남김없이 버려지는 나를

하나하나 주웠다.

 
이 책이 마음에 들기 시작한 건 작가가 자신의 어린시절을 들려주었을 때부터다. 많지 않은 이야기인데 뭐라고 딱 꼬집을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을 이끌어냈다. 활자 뒤에 숨어 '나(화자)'를 앞세워 노래하기만 한게 아니라 생면부지인 내게 왈칵 마음을 열어준 글이다보니깐 정이 가고 내 일처럼 슬프고 씁쓸했다.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글은 '곶감'이다, 곶감을 보고 "시집 보낼 때 다 된 기라!" 하는 외할머니의 속뜻은 온전히 만끽할 수 없는 감정이라 그 깊은 여운이 좋았다. 잘 익은 곶감을 보고 하신 그 말씀을, 본인 저승에 가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게 다시 시집가겠다는 염원으로 풀어내시니 가슴이 먹먹했다. '서울로 가는 장군황소', '오리 날다', '날아가는 것들' 도 좋았다. 생명과 죽음이 바로 잇닿아 있는 듯한 가련함이 강렬하게 와 닿았다. 나는 원래 시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남의 감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나 역시 남이었고, 이젠 한 장으로 그날을 들추고 그날을 덮는 시의 힘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겪어보지 않은 상황이라도 감정으로 공감하고 끄덕일 수 있다는 건 참 대단한 것 같다. 어쨋거나 나의 궤변은 여기까지. 시와 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람'이 말하고 있구나, 싶을 정도로 그야말로 '한 사람'이 쓴 책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내가 정말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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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없다 - 나이 들수록 더 발전하고, 더 강해지는 능력을 발견하다
마크 아그로닌 지음, 신동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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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각자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도 단순히 생존하는 것으로만 만족할 것인지 각자 자문해보아야 한다.

-로버트 버틀러 「왜 생존하는가?」


미국 최고의 노인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쓴 건강하고 희망적인 노년에 대한 임상보고서, <노인은 없다>

이 책의 저자 마크 아그로닌 박사는 나이 듦을 숙명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노년의 강점을 이해하여 자신만의 풍부한 미래설계를 권한다. 그가 제시한 노인의 강점은 '지혜'와 '회복탄력성', '창의성'으로, 나이드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쌓아올린 지식, 판단, 공감, 창조성, 통찰 등이 어우러져 증진된 능력이다. 노년을 생존의 문제로 보는게 아니라앞으로의 위기를 극복하는 해결책이자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본다.


사실 책을 읽기 전이나 읽는 도중에나 이런 힘찬 말이 우리사회에 얼마나 통할까 우려되는건 어쩔 수 없었다. 고령사회에 진입해 노인빈곤이 심각한 지금 현실은 노인의 강점이 유감없이 발휘되기엔 무리한 환경이 아닐까, 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깊었다. 그러나 박사가 인터뷰한 클라이언트들의 실제 사례들을 보면 남들보다 금전적, 신체적으로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강점을 발견해 나아가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TV프로그램 '세상에 이런일이'에서 이색취미로 노년을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시는 어르신들을 본게 생각난다. 그동안 겪은 경험과 상관없이 노년에 창조력이 폭발하여 자신만의 전성기를 누리는 분을 보면 나이 듦은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쇠퇴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우리뿐 아니라 노인복지에 종사하는 분께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책의 후반에 있다. 바로 '실천계획표' 작성방법이다. 저자가 앞서 사례와 함께 설명한 여러가지 노인의 강점을, 노인 스스로 발견하고 재정립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예시가 실려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인터뷰한 집단이 작성한 실천계획표를 보면 어떻게 작성하면 될지 감이 잡힌다. '과거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현재 나는 어떤 사람이며, 미래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구체적으로 고민하여 노년 자체만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조언한 책이었다. 덧붙여 그 강점이 메마르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을 부탁드리는건 당연했다. 덧없고 약한 '노인은 없다'며 지금의 노인과 앞으로의 노인이 향기로운 봄꽃을 튀우도록 그 잠재력을 열정적으로 소개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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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이웃
양혜영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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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첫 감정이 들었다. 내게 안 맞는 주제라서가 아니라 작가의 필사적인 결의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로 내몰린 평범한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을 다룬 책은 가식이 없다는 게 내 확고한 편견이다. 소위 '잘 팔리는 책'이 되려고 자아을 버린 게 아니라, 마음이 향한 글을 쓰셨다는 생각에 일종의 경외감도 들었다. 그 내용이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누군가 자신을 마음대로 단정지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이겨낸 책.
<고요한 이웃>은 그런 강한 의지를 품은 책이었다.

 
남자 팔을 뿌리치고 세 번째 바퀴를 도는 요나의 얼굴에서 가면이 흘러내렸다.
'그분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곽 여사의 음성이 바로 옆에서 속삭이듯 들렸다.
요나는 바닥에 떨어진 가면을 주워 끈을 조였다. 새 실리콘 가면이 얼굴에 찰싹 달라붙었다.
표정이 일그러질 때마다 가면이 대신 웃었다. 늘 처음처럼 환하게(요나 186쪽)


 
'마부작침(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고진감래(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다)'란 말이 있다.
긍정과 희망을 권하는 말들이 모여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시련'은 개인의 노력과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종의 '관문'이 돼버렸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은 고난의 연속이고 영화와 드라마 속 해피엔딩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분도 많다. 태양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해바라기처럼 우리가 어두운 현실을 회피하는 건 죄가 아니라 생존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을 찾기 힘든, 지극히 현실적인 시련을 다룬 이 책을 읽는 것도 이 사회를 환상없이 투시하는 계기가 되리라 본다.

세 번째 눈을 잃은 그는 힘을 완전히 잃고 반항하지 못한다.  

피거품이 가득찬 입술을 벌리지도 못한다. 나는 그에게 묻는다. "멘스야?" (구두 134쪽)

 
책은 9가지 이야기(오버 더 레인보우/랩의 제왕/틈/올드 하바나/구두/고요한 이웃/요나/물집/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구성된다. 모든 줄거리가 그러한 것은 아니나 등장인물들(주인공 포함 주요 인물들)은 피해자이자 가해자 또는 방관자로서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미지의 희망을 쫓고 있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꿈쩍않는게 아니라, 손톱을 긁고 발버둥을 치며 누구보다 절실하게 탈출을 갈구한다. 그리고 그 끝이 결국 고난인지 낙인지 모를 열린 결말을 두고 독자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물론 정답은 없다. 이젠 희망을 기대해도 좋겠다며 확률을 따지기보다 더 깊이 그 고민에 사로잡히시길 바란다. 결코 사회를 부정적으로 보라는 뜻은 아니다. 사회의 어두운 면으로부터 스스로 격리하지 않고 차단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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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와 있다 - 기술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피터 루빈 지음, 이한음 옮김 / 더난출판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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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가상현실(VR)을 기반으로 한 영화와 애니메이션들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다못해 식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 건. 그건 아마 미디어가 표현한 가상현실과 지금 우리가 체득하는 가상현실의 갭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VR산업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고 이미 생각보다 다양한 분야에 접목되어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 효과와 부작용까지 현장의 사례를 통해 누구보다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설명해준다. 저자의 말마따나 '비동기식 타임워프'나 '수렴조절불일치' 같은 전문용어와 맞닥뜨릴 리 없으므로 누구든 안심하고 재미있게 완주할 수 있다.
7년간 현장에서 시연한 다양한 가상현실을 실감나게 풀어주셨고, 특히 가상현실이 교육계와 의료계, 더 나아가 심리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데 공감할 실험결과들을 제시해주었다. 예를들어 현존감을 살린 가상현실 속 명상지는 누구든 쉽게 명상할 기회를 주고, 일상을 재현한 가상현실은 활동성이 떨어지는 노인의 기억력에 건강한 자극을 주며, 소셜VR은 거리를 초월해 채팅보다 깊은 대인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염려하는 가상현실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과감히 설명하는게 이 책의 특징.
그만큼 가상현실을 진짜와 동떨어졌다고 할 수 없을정도로 가상현실 산업은 우리 뇌가 오인할 만한 현존감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상현실이 우리 삶에 얼마나 진입했는지 모르겠다면 유튜브 검색을 추천한다. 전세계 사람들이 업로드한 VR체험영상과 이 책을 함께 보면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이다. 특히 '페이스북 VR', '소셜 VR', '360 VR'등을 검색하면 가상현실의 진입장벽이 예전보다 낮아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저렴하게 보급된 장비만으로 완벽한 현존감을 누리기엔 무리다. 그러나 가상현실의 역할을 장소를 재현하는 데 가두지 않고 책이 소개하는 다양한 장으로 확장시킨다면, 가상현실이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실제보다 풍부한 삶을 제공하는 '하나의 세계'란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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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았습니다 - 온전한 나를 만드는 니체의 자존감 회복 수업
주현성 지음 / 더좋은책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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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니체의 이름만 알았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신은 죽었다'라는 말도 단순히 신을 부정하는 소린가, 하고 깊이 들여다 볼 생각도 없었다. 책은 니체가 남긴 문헌과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해석해주는데 본격적으로 그 말에 귀 기울인건 니체가 한평생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정신착란 속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였다. 아버지가 유전병으로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고 본인도 몹시 아파 교수직에서 물러났으며 대중과 학계의 비판 속 자비출판으로 사상을 알렸다는 그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싶었던건지 궁금했다.

감당하기 힘든 시련과 절망 속에서 우리는 부수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우리의 진실한 욕구와 새로운 눈,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다.(30쪽)

책은 니체의 문헌을 온갖 철학적 용어를 앞세워 기계식으로 해석하는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니체의 사상을 고찰할 수 있도록 굉장히 쉬운 단어로 풀어주었다. <즐거운 학문>, <힘에 의한 의지> 등 우리가 끝까지 읽기 어려운 문헌 일부를 발췌하여,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지배논리로부터 좌지우지되지 않는 진짜 내가 되라는 이야기, 위기를 회피하는 '하나의 값'이 되지 말라는 이야기, 내 안의 숱한 감정을 상대에게 이입하지 말고 수용하라는 이야기. 문헌의 한정된 활자만으로 이해하기 힘든 교훈을 누구든 알기 쉽게 눈높이를 낮춰주었다.

우리는 결과라는 근거에 따라 모든 원인을 날조한다.
결과야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힘에의 의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물론 보이는대로 해석이 가능하나 '날조'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자칫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란 해석에만 갇힐 수 있다. 그러나 책은 이 문장을 통해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기보다 현재와 미래를 바꾼다면 그 해석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며 삶에 활기를 주는 긍정적인 교훈을 전달해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니체가 굉장한 분이라고 느낀 건 '영원회귀 사유'였다. 지금 괴로운 생을 포기하고 다음 생을 산다고 상상했을 때 그때도 지금처럼 똑같은 좌절을 겪는다는 설정을 해보자. 무한히 반복되는 시련에 치를 떨기보다 지금 이 삶을 슬기롭게 헤쳐나간다면 나는 다시 태어나도 역경을 극복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상상인가. 난 이 부분에서 크게 감동 받았고, 앞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영원회귀 사유를 통해 힘내자는 다짐을 했다. 이렇듯 이 책의 뜻깊은 해석은 두고두고 볼 가치가 있었고, 니체의 다른 책에도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나는 물론 여전히 니체를 전부 알지 못하지만, 이 책을 시작으로 그의 사상이 내 삶에 체득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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