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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음 - 귀찮의 퇴사일기
귀찮 지음 / 엘리 / 2019년 1월
평점 :
마음에 귀 기울이고 저질러보니깐 여기까지 와버린 귀찮 님의 퇴사성공(?)스토리다.
29살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로 살기로 한 귀찮 님. 꼬박꼬박 한뭉탱이 빠져나가는 지출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하겠구만 귀찮 님은 해내고 말았다. 정말 대단한 분이다. 퇴사하고 입에 풀칠할 수입이 생기기까지 느낀 불안과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그런데 귀찮 님의 책은 '괜찮아. 나도 했으니깐 너도 할 수 있어!'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아무리 불안하고 힘들어죽겠어도 캐릭터 자체가 주는 몽실몽실 평온한 이미지가 '괜찮아. 안 죽어!'라고 말해준다.
초반엔 귀찮 님이 부러워서 질투가 났다. 집안이 어느 정도 살고, 본인도 실질적 가장이 아니니깐 퇴사할 수 있는게 아닐까? 그래도 자신이 어느 정도 구축한 세계를 무너뜨리고 맨땅에 헤딩하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그 덕에 주어지는 안정과 타협한 나로서는 그 용기가 부러웠다. 그런데도 귀찮 님의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나도 할 수 있을까?'였다. 이상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었다.
....부수고 지어본 뒤에야
새장 안에서도 자유를 볼 수 있게 됐다.(203쪽)
책에 그려진 귀여운 캐릭터, 여백이 주는 한가로운 느낌은 '귀찮' 님의 이미지를 잘 표현했지만 왠지 쉽게 퇴사하고 쉽게 길을 개척했다는 오해를 살지 모르겠다. 담지 않은(또는 담지 못한) 만큼의 좌절과 고생도 들어보고 싶었는데 물 흐르는대로 진행된 느낌이라 그게 좀 아쉬웠던 것 같다. 나처럼 '귀찮'이란 캐릭터를 처음 접한 사람들을 위해 퇴사후 일군 자랑거리를 사진으로 자랑해주셨다면 더 좋았을것 같다. 평소 작업하시는 모습이라든가, 처음 의뢰받은 작품이라든가.. 글이 담백한 만큼 귀찮 님의 성장도 요약된 느낌이 들어 살짝 아쉬웠다. 혹시 퇴사일기의 후속편으로 작업일기를 출판해주시는건 아닐까?(웃음) 제자리걸음이든 나아가는 걸음이든 본인의 꿈을 위하여 부지런히 노를 젓는 귀찮 님이 스토리가 계속해서 궁금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