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보는 중국 기예 - 무대 위와 손끝에서 피어나는 중국의 문화예술
이민숙.송진영.이윤희 외 지음 / 소소의책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이야기로 보는 중국기예>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었다.


16명의 저자들이 각자의 꼭지에서 소개하는 변검, 곡기, 실경공연 같은 다채로운 무대들을 아직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채 글로만 만난다는 점이 속상했다.  하지만 책에 실린 소개를 따라가다 보니, 스크린 너머로 스쳤던 순간들이 다시 살아났다. 영화 '패왕별희'와 '인생' 속에서 본 경극의 화려한 분장과 소리, 종이인형극의 섬세한 움직임이 떠올랐다. 직접 본 것은 아니어도, 영화 속 장면들이 책의 설명과 맞닿으면서 또 다른 이해로 이어졌다. 

 


경극과 곡기, 변검 같은 무대 예술에서부터 전지, 직금, 청화백자, 옥기와 같은 손끝의 공예까지, 책장을 넘길수록 다채로운 세계는 중국문화의 보고다. 특히 장이머우 감독의 실경공연은 강과 산을 무대 삼아 수백 명의 배우가 어우러지는 장대한 현장이라 하니, 공연이라기보다 삶의 축제처럼 다가왔다. 구기의 박진감 넘치는 순간, 변검의 눈 깜짝할 변신은 언젠가 직접 보고 싶은 무대로 남았다. 타이완의 포대희는 더욱 흥미로웠다. 우리 전통의 꼭두각시놀음을 닮은 인형극이고, 한국 드라마 속에도 잠깐 등장해 낯설지 않았다. 전지가 1만 번의 가위질 끝에 소망을 빚어낸다는 사실, 직금이 한 올 한 올 이어내는 인내의 시간이라는 설명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책장을 덮고 나니 마음속에 새로운 여행의 소망이 자리했다. 언젠가 중국을 찾게 된다면, 경극 무대의 생생한 분장을 보고 싶고, 동춘서커스단을 떠올리게 하는 전통 서커스의 긴장감도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실경공연의 장대한 장면을 마주하며, 책에서 만난 기예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의 정원 - 2000년 지성사가 한눈에 보이는 철학서 산책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박재현 옮김 / arte(아르테)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비 오는 날 창가에서 『철학의 정원』을 펼쳤다.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100여 명의 철학자를 불러내, 인생·사회·언어·과학·종교 등 여덟 갈래 주제로 나누어 소개한다. 시대순이 아닌 주제별 배열 덕분에 서로 다른 철학자들이 같은 물음 앞에서 어떻게 다른 목소리를 냈는지 한눈에 비교할 수 있었다.




나는 중요한 문장을 필사하며 책을 읽었다. 손끝으로 옮겨 적으니 글이 쉽게 흘러가지 않고 오래 머물렀다. 그중에서도 3장 「세계와 자연에 관하여」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는 인간을 단순히 ‘대상’이 아니라 ‘너’라는 인격적 존재로 바라보게 했고, 메리 울스턴크레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는 강한 감탄을 자아냈다. 1700년대라는 시대에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했다는 사실, 그 담대한 목소리가 놀랍고도 존경스러웠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난이도 표시다. 1에서 3까지 구분된 난이도 덕분에 독자는 자신의 수준에 맞게 책을 선택할 수 있고, 어려운 철학자를 만나도 ‘원래 그렇구나’ 하며 안심할 수 있다. 각 장 끝에 덧붙은 ‘철학자의 한마디’는 짧지만 강력했다. 가볍게 읽고 넘길 수 없는 문장들이 화두처럼 남아, 책장을 덮고도 한동안 생각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물론 몇 문장 인용만으로 철학자의 저작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철학의 정원』은 철학을 멀리 있는 학문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묻고 따져볼 수 있는 길잡이로 되돌려준다. 필사한 문장을 다시 펼쳐보면, 고전의 목소리가 지금도 여전히 내게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관내 여행자-되기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책의 제목만 보고 기존의 여행기를 떠올리면 오산이다. <관내 여행자-되기>는 한국 사회의 무거운 상처들을 따라 여러 도시를 걷는다.


 

인천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광주 항쟁,세월호, 이태원 참사 같은 사건들을 마주하며 나는 책장을 덮고도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저자들은 하지 않음도 가해일 수 있다는 물음을 던지며, 외면하거나 나와는 먼 일로 치부했던 태도까지 돌아보게 한다.

 

두 저자는 길을 걷는 행위가 곧 아픔의 자리에 들어가 멈추고 바라보는 일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집과 걷기에 대한 사유는 삶의 일상과 사회적 맥락을 자연스레 연결한다. 바우만의 <액체 현대>에서 끌어온 항공기의 이미지는 자본주의의 속도 속에서 길을 잃은 나의 일상을 비추고, “멀어져야 화목하다는 가족의 역설은 관계를 지탱하는 거리에 대해 다시 묻게 한다. 집 앞 공원의 ‘3억 원짜리 창의적 훼손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지는 인간성과 풍경을 드러낸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펼친 서문에서 관내는 단순한 지역의 이름이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모든 자리, 그 속에 겹겹이 쌓인 기억과 고통을 뜻함을 알게 되었다. 관내 여행자란 결국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그 자리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걷는 사람일 것이다. 이 책은 나를 무겁게 주저앉히면서도 동시에 다시 일어서게 만든, 오래 남을 여행의 기록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 - 의학의 새로운 도약을 불러온 질병 관점의 대전환과 인류의 미래 묻고 답하다 7
전주홍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건강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끌렸고, 서평단에 지원했는데 운 좋게도 당첨이 되었다. 그렇게 만난 책이 전종휘의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이다. 


"질병의 개념과 지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습니다."



이 책은 신화·체액·해부·분자·정보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를 따라 인류의 의학사를 그린다. 


고대에는 병을 신의 징벌로 여겼고, 그리스 시대에는 체액의 균형으로 설명했다. 르네상스는 해부학으로 인체를 직접 들여다보았고, 현대에 들어 분자와 유전자 단위로 병을 이해한다. 오늘날 우리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이끄는 새로운 의학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전문적이라 읽는 동안 부분부분 어렵게 느껴졌지만, 그 과정에서 의학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었다.  건강 상식이나 의학적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질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설명해왔는지 그 긴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전작인 <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도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신화와 철학, 사회와 정치, 그리고 최신 과학이 얽혀 형성된 의학사의 궤적은 결국 “우리는 질병을 어떻게 이해하며, 그 과정을 통해 자신과 사회를 어떻게 성찰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신화와 철학, 사회와 정치, 그리고 최신 과학이 얽혀 형성된 의학사의 궤적은 결국 “우리는 질병을 어떻게 이해하며, 그 과정을 통해 자신과 사회를 어떻게 성찰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책을 덮고 나면 의학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시대마다 병을 보는 눈은 달랐지만 그 안에는 두려움과 희망, 그리고 살아가려는 마음이 늘 함께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의학으로 역사를, 역사로 지금의 나를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손자병법 -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지혜 한 권으로 끝내는 인문 교양 시리즈
시마자키 스스무 지음, 양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금을 넘어 사람들은 손자병법을 읽는다. 2,500년 전 전쟁의 지혜가 왜 오늘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걸까. 시마자키 스스무의 <손자병법>을 통해 그 해답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원전의 핵심 구절을 50여 편으로 나누어 짧게 해설한다. 덕분에 손자병법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주석으로 가득한 무거운 번역서가 아니라, 일상에 바로 연결되는 지혜의 노트 같다. 




특히 각 꼭지마다 더해진 일러스트가 돋보인다. 제갈량이 울면서 마속을 베는 장면을 그림으로 만났을 때, “좋은 것은 좋다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강함”이라는 해설이 훨씬 생생해졌다. 그림은 글을 단순히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병법이 가진 결단과 교훈을 눈앞에 끌어온다. 




읽는 동안 특히 마음에 오래 남은 구절은 “근심을 장점으로 바꿔라(以患爲利)”였다. 나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내 근심들을 떠올렸다. 일에 대한 불안, 관계에서의 갈등, 앞으로의 길에 대한 막막함 같은 것들이다. 예전 같으면 없애야 할 짐으로만 여겼겠지만, 책은 오히려 그 조건을 활용하라고 말한다. 불안은 나를 더 준비시키고, 갈등은 대화의 기술을 배우게 하고, 막막함은 새로운 배움을 향한 자극이 된다. 손자가 전장에서 불리한 지형을 역전의 기회로 삼았듯, 나는 일상 속 근심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또한 각 장 말미에 실린 ‘손자병법의 발자취’ 코너는 손무의 삶과 춘추전국시대의 배경을 간결하게 정리해준다. 이를 통해 손자병법이 단순한 군사 전략서가 아니라,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지혜였음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그동안 손자병법을 다룬 책은 많았다. 하지만 대체로 주석이 지나치게 무겁거나, 경영과 자기계발에 억지로 끼워 맞춘 경우가 많았다. 시마자키 스스무의 <손자병법>은 다르다. 원문을 짧게 나누고, 일러스트와 역사적 맥락을 곁들여 독자가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한다. 



<손자병법>은 오늘의 삶에서 길을 찾게 해주는 살아 있는 지혜다. 손자병법을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가장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