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본을 고를 때도 하지 않았던 짓을 왜 이제서야 하는 걸까 싶다마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관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원체 많은 번역본이 나와 있고, 또 각각의 개성이 원체 두드러져 어떤 번역본을 선택해야 할지 고르기 쉽지 않은 게 이 <위대한 개츠비>할 수 있다.

하여 아래에서는 서문격에 해당하는 첫 부분을 비교적 상세하게 비교해보고자 한다.

 

비교 대상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1) 민음사(김욱동)

2) 문학동네(김영하)

3) 열림원(김석희)

4) 열린책들(한애경)

5) 펭귄(김보영)

6) 문예출판사(송무)

7) 새움(이정서)

 

7번은 원래 취급하지 않으려 했으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쳐 주기 위해 포함시켰다.

 

 

1.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 my father gave me some advice that I've been turning over in my mind ever since.

민음사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 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문학동네

지금보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 아버지가 충고를 한 마디 했는데 아직도 그 말이 기억난다.

열림원

내가 지금보다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여리던 시절 아버지가 충고를 하나 해주셨는데, 그 충고를 나는 아직도 마음속으로 되새기곤 한다.

열린책들

지금보다 쉽게 상처받던 젊은 시절, 아버지가 내게 해주신 충고를 나는 지금까지도 마음 깊이 되새기고 있다.

펭귄

지금보다 더 어리고 상처 받기 쉬운 시절에 아버지는 내게 충고를 몇 마디 해주셨는데, 나는 그것을 평생 가슴속에 새겨두었다.

문예

내가 지금보다 더 젊고 마음 여렸던 시절, 아버지께서 내게 충고를 한 가지 해주신 적이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늘 그 충고를 마음속에 되새겨왔다.

새움

내가 훨씬 더 젊고 상처 입기 쉬웠던 시절 아버지는 내게 그 이후 내 마음속에 되새기던 몇 가지 조언을 주었다.

 

- 첫 문장으로, 출판사별로 큰 차이는 없다. 다만 김영하와 이정서는 높임을 하지 않아서 우리나라 정서에 적합한지 의문이다. 이정서는 특히 다른 역자들과 달리 that절을 굳이 한정적으로 번역하여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을 준다. 김석희의 대구를 맞춘 번역(‘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여리던’)이 눈에 띈다.

 

2. “Whenever you feel like criticizing any one," he told me, "just remember that all the people in this world haven't had the advantages that you've had."

민음사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문학동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열림원

누구를 비판하고 싶어질 땐 말이다,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타고난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도록 해라.”

열린책들

"혹여 남을 비난하고 싶어지면 말이다, 이 세상 사람 전부가 너처럼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걸 기억해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펭귄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네가 가진 장점을 다 가진 게 아니라는 사실만은 기억하렴.”

문예

누구든 흠잡고 싶은 맘이 생기거든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누리고 산 건 아니란 걸 잊지 말아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새움

네가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질 때에는 언제든…….” 그분은 내게 말했다. “이 세상 사람들 전부가 네가 지녔던 이점을 누렸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하렴.”

 

- 마지막 문장과 함께 가장 유명한 문장이라 할 수 있다. 역시 큰 차이는 없으나, 번역 스타일은 확연히 드러난다. 김욱동의 번역(‘하여라’)과 송무의 번역('말아라')은 다분히 문어적인 느낌을 주고, 나머지는 비교적 최근의 번역답게 구어적인 느낌이 가미되었다. 김영하의 번역은 한발 더 나아가 거친 느낌을 준다(‘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이정서의 번역(‘누렸었던’)은 부자연스럽다.

- 개인적으로 ‘he told me’ 같은 부분은 굳이 번역을 안 해도 되지 싶다.

 

3. He didn't say any more, but we've always been unusually communicative in a reserved way, and I understood that he meant a great deal more than that.

민음사

아버지는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우리 부자(父子)는 언제나 이상할 정도로 말없이도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고, 나는 아버지의 말씀이 그보다 훨씬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문학동네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말이 훨씬 더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우리 부자는 말 한 마디 없이도 서로의 뜻을 이상하리만치 잘 알아차리곤 했다.

열림원

아버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언제나 긴 말이 없어도 이심전심으로 잘 통하는 데가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짧은 말씀 속에는 훨씬 많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열린책들

말씀이라곤 그것뿐이었지만, 우리는 서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늘 신기하게 통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짧은 말씀에 그보다 깊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펭귄

아버지는 더는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우리 부자는 항상 말을 아끼면서도 유난히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이였기에 나는 아버지의 말에 그 이상의 더 큰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았다.

문예

아버지는 더는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말없는 가운데서도 남달리 잘 통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 말씀에 그 말 이상으로 큰 뜻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새움

그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제한된 방식으로 특이하게 의사소통을 해왔고, 나는 그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그가 의미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 김영하는 왜 문장을 순서대로 해석하지 않고 뒤집어놨는지 의문이다. 이정서의 번역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4. In consequence, I'm inclined to reserve all judgments, a habit that has opened up many curious natures to me and also made me the victim of not a few veteran bores.

민음사

그래서 나는 모든 일에 판단을 유보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 때문에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자주 나에게 다가오는 바람에 그야말로 지긋지긋한 사람들에게 적잖이 시달려야 했다.

문학동네

그후로 나는 모든 것에 대해 판단을 미루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 때문에 유별난 성격의 소유자들이 툭하면 나에게 접근해왔고, 따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간들로부터 적잖이 시달림을 받았다.

열림원

그 결과 나는 무슨 일에서든 판단을 유보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이런 습성은 많은 괴짜들로 하여금 나를 찾아오게 만들었고, 그래서 나는 지겹기 짝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적지 않게 시달림을 당하기도 했다.

열린책들

이후 내게는 매사에 판단을 잠시 유보하는 습성이 생겼다. 그 덕에 세상에는 별별 희한한 성격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몇몇 재미없는 사람들의 따분한 이야기를 다 들어 주어야 했지만 말이다.

펭귄

결국 나는 모든 판단을 유보하는 성향을 갖게 되었다. 그런 성격 탓에 수많은 별난 사람들이 내게 마음을 터놓았고, 생각만 해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적잖이 시달리는 경우도 많았다.

문예

그 결과 나는 모든 판단을 유보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버릇 때문에 나는 성격이 기이한 사람들로부터 빈번한 접근을 받았을 뿐 아니라, 지겹기 짝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적지 않게 시달림을 당하기도 했다.

새움

그 결과로, 나는 모든 판단을 유보하는 경향과, 많은 특이한 사람이 내게 마음을 열게 만들었던 습성이 있었고, 그것은 나를 꽤 많은 따분한 참전용사들의 희생양이 되게 만들었다.

 

- 판단을 유보하는 성향은 아버지의 충고를 들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래서 ‘in consequence'를 쓴 것이므로 인과관계가 잘 들어나지 않는 김영하(’그후로‘)와 한애경(’이후‘)의 번역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 'a habit‘은 바로 앞의 ’I'm inclined to reserve all judgment'와 동격으로서 별개의 습성이 아니다. 따라서 이정서의 번역은 오역이다. ‘참전용사들은 또 무슨 말이람...

(veteran bores와 관련하여 위트 있게 반론을 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https://asnever.blog.me/221026282939)

 

5. The abnormal mind is quick to detect and attach itself to this quality when it appears in a normal person,

민음사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람에게 그런 특성이 나타나면 재빨리 알아차리고 달라붙게 마련이다.

문학동네

정상적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비정상적인 특징이 나타나면, 비정상적인 정신은 얼씨구나 하며 잽싸게 달라붙게 마련이다.

열림원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이런 특성이 정상적인 사람에게 나타나면 그것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찰싹 달라붙게 마련이다.

열린책들

정상적인 사람에게 비정상적인 면이 보이면,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재빨리 알아채고 착 달라붙게 마련이다.

펭귄

정상적인 사람에게서 이런 자질이 엿보이면 비정상적인 사람은 재빨리 간파해서 그것에 달라붙는다.

문예

비정상적인 사람은 그런 특성이 정상적인 사람에게 나타나면 금방 알아차리고 그 사람에게 엉겨붙으려는 경향이 있다.

새움

비정상적인 마음은 그것이 보통사람에게 나타날 때 빠르게 간파하고 이런 자질에 애착을 갖는데,

 

- 첫 부분에서 번역이 가장 차이를 보이는 문장이다. 바로 ‘this quality'를 어떻게 번역했느냐 하는 것으로, 김욱동·김석희·김보영·송무는 이런/그런 특성으로 옮겼고, 김영하·한애경은 비정상적인 특징/으로 번역했다. 여기서 'this quality'는 바로 앞 문장에 나타난 '판단을 유보하는 성향을 의미하는 것이지 'abnormal‘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후자 그룹의 번역은 명백한 오역이다. 한편 이정서는 그것이라고만 번역하여 다소 불분명한 느낌을 준다.

 

6. frequently I have feined sleep, preoccupation, or a hostile levity when I realized by some unmistakable sign that an intimate revelation was quivering on the horizon;

민음사

그래서 그들이 은밀한 고백을 털어놓을 기미가 확실하다 싶으면, 나는 종종 잠을 자는 척하거나 뭔가에 몰두해 있는 척하거나 아니면 악의를 품은 듯이 일부러 경망스럽게 굴었다.

문학동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내밀한 고백을 하려는 기미가 확실하다 싶으면 종종 자는 척, 뭔가에 몰두해 있는 척했고, 때로는 곁을 주지 않으면서 함부로 대했다.

열림원

그들이 슬슬 비밀을 털어놓을 조짐이 지평선에 가물거리기 시작하면, 나는 일부러 자는 척하거나, 뭔가 딴 일에 정신이 팔린 척하거나, 혹은 쌀쌀한 태도로 방정맞게 대하곤 했다.

열린책들

사람들이 은밀한 비밀을 털어놓을 낌새가 분명하다 싶으면 종종 자는 척하거나, 다른 일로 바쁜 척하거나, 잔인하긴 하지만 입 싼 놈인 척하곤 했다.

펭귄

누군가 속내를 드러내려고 하면 나는 종종 잠든 척하거나 뭔가에 몰두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혹은 경박하게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문예

오히려 누군가 내심을 털어놓으려는 낌새가 확실하면 나는 잠을 자는 척하거나, 짐짓 딴 일에 정신이 팔린 척하거나, 상대방을 싫어하는 것처럼 경망스런 태도를 취하기가 일쑤였다.

새움

흔히 나는 전율이 일 만한 은밀한 폭로가 곧 일어나리라는 확실한 징후를 깨달았을 때 자는 척, 몰두한 척하거나, 또는 경박하게 적대적인 체했다.

 

- 여기서는 'quivering on the horizon'이라는 상당히 문학적인 표현이 등장하는데, 오직 김석희만 이를 살렸고(‘지평선에 가물거리기 시작하면’) 나머지는 기미가 보인다는 식으로 무미건조하게 번역했다. 문학의 번역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 그 외에는 ‘a hostile levity'의 번역에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데 크게 문제는 없어 보인다. 다만 한애경의 번역('잔인하기는 하지만')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7. Reserving judgments is a matter of infinite hope.

민음사

판단을 유보하면 무한한 희망을 갖게 된다.

문학동네

판단을 유보하면 희망도 영원하다.

열림원

판단을 유보한다는 것은 무한한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다.

열린책들

판단을 유보한다는 것은 무한한 희망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펭귄

어쨌든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희망을 주는 모양이다.

문예

판단의 유보란 한없는 희망을 품어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움

판단 유보는 무한한 희망의 문제이다.

 

- 이정서는 너무 직역을 했고, 김보영은 너무 의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8. Conduct may be founded on the hard rock or the wet marshes, but after a certain point I don't care what it's founded on.

민음사

인간의 행동이란 단단한 방위 덩어리나 축축한 습지에 근거를 둘 수도 있지만, 나는 일정한 단계가 지난 뒤에는 그 행위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문학동네

인간의 행위야 단단한 바위에 기초할 수도, 축축한 습지에 근거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더 이상 그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는다.

열림원

인간의 행위는 단단한 바위 위에 바탕을 둘 수도 있고 눅눅한 습지 위에 바탕을 둘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고비를 넘기면 그 행위가 어디에 바탕을 두었건 나는 개의치 않는다.

열린책들

인간의 행위는 단단한 바위 같은 것이나 물이 가득한 습지 같은 데 그 기반이 있지만, 어느 단계가 지나면 그 행위의 기반이 어디 있느냐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게 마련이다.

펭귄

품행이란 단단한 바위나 습기 찬 늪지 위에서 만들어지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그것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든 상관하지 않게 된다.

문예

인간의 행위는 단단한 바위에, 혹은 눅눅한 습지에 그 근거를 둘 수 있다. 그러나 일정 단계를 넘어서고 나면 나는 그 행위의 근거가 어디에 있든 상관하지 않는다.

새움

품행은 단단한 바위나 젖은 습지에 기초하여 세워질 수 있지만, 어느 시점 이후에는 그것이 무엇에 기초하여 세워졌냐는 것이 과연 무슨 상관이 있을 터인가.

 

- 왜 한애경만 유독 ‘I'세상 사람들로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may도 빼고 번역해서 불필요하게 단정적인 느낌을 준다. 한편 김보영의 번역에는 주어가 빠져 있어 누가 상관하지 않게되는지 다소 모호한 느낌을 준다.

 

9. When I came back from the East last autumn I felt that I wanted the world to be in uniform and at a sort of moral attention forever;

민음사

지난해 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이 세계가 제복을 차려입고 있기를, 말하자면 영원히 도덕적인 차렷자세를 취하고 있기를 바랐다.

문학동네

지난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이 세상이 제복을 차려입고 영원히 일종의 윤리적 차려 자세를 취한 곳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심정이었다.

열림원

지난 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차라리 온 세상이 제복을 입고 영원히 일종의 도덕적 부동자세를 취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열린책들

지난가을 동부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나는 이 세상이 군인처럼 제복을 갖춰 입고, 영원히 도덕적인 <차렷> 자세를 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펭귄

지난 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세상이 제복을 입은 군인처럼 도덕적으로 영원히 군기가 잡힌 모습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문예

지난 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세상이 제복을 입고 일종의 도덕적 부동 자세를 취한 채로 영원히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분을 느꼈다.

새움

내가 지난 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세상이 언제나 한결같고 도덕적 관심 속에 놓여 있기를 바란다고 느꼈다.

 

- 김욱동의 번역에서는 중간에 들어간 있기를이 빠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보영의 번역은 너무 설명적이다. 이정서는 유일하게 ‘uniform’한결같고, ‘attention'관심으로 번역했다. 더 코멘트하지 않겠다...

 

10. I wanted no more riotous excursions with privileged glimpses into the human heart.

민음사

나는 이제 더 이상 특권을 지닌 시선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오만하게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문학동네

오만한 시선으로 다른 인간의 내면을 내려다보는, 그런 요란한 행보는 이제 피하고 싶었다.

열림원

인간의 마음속을 특권의식을 가지고 오만하게 들여다보는 광란의 소풍 놀이에 식상해 있었기 때문이다.

열린책들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특별하지만 번잡한 일탈은 더는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펭귄

특권 어린 시선으로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그런 떠들썩한 유람은 이제 원하지 않았다.

문예

나는 이제 더는 특권을 가진 눈으로 시끌벅적한 유람이나 하듯 인간의 마음을 기웃거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새움

나는 더 이상 사람의 마음을 특권적으로 일별하는 떠들썩한 외도는 하고 싶지 않았다.

 

- 'excursions'와 같은 비유적인 문구를 제대로 옮기지 않으면 문학의 맛이 살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별게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비문학이 아닌 문학을 읽는 이유는 이런 언어의 맛을 느끼고자 하는 데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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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서프라이즈'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얽힌 비화를 다뤘다.

사실 그 전까지는 앨리스에 1도 관심이 없었지만, tv를 보며 몇 해 전이 출간 150주년이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렇게 나는 이 작품에 급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알라딘에서 그동안 왜 그렇게 앨리스 관련 상품을 만들어냈는지도 그때 알게 되었다..)

 

원체 유명한 동화라 시중에 나온 번역본도 엄청나게 많다.

초판본과 유사한 디자인으로 나온 판본도 몇 있고.

해서 며칠 동안 몇 권 골라서 앞부분을 원문과 대조해봤는데, 그렇게 어렵게 쓰인 글이 아님에도 생각보다 번역이 제각각이어서 놀랐다.

그동안은 주로 믿을 만하다 싶은 출판사의 책을 몇 권 골라 비교했지만, 이 작품의 경우 메이저 출판사에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아 마이너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도 많이 뒤져보게 되었다.

 

아래에서는 굳이 출판사를 거론하지 않고 작품 앞부분에서 번역이 상이한 문장 2개만 다루기로 한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글 쓰기가 더 귀찮아진다...)

 

 

1.

Ah, cruel Three! In such an hour,
Beneath such dreamy weather,
To beg a tale of breath too weak
To stir the tiniest feather!

Yet what can one poor voice avail
Against three tongues together?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서문격으로 실린 시이다.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게 된 배경이 나온다.

여기서 주로 해석이 갈린 것은 'breath'의 주체이다.

즉 ⓐ아이들이 약한 숨소리로 이야기를 구걸했다는 해석과, ⓑ약한 숨소리를 가진 '나'에게 아이들이 이야기를 구걸했다는 해석으로 나뉜다.

breath는 누구의 숨결인 것일까.

문장을 보면 beg A of B 구조로 돼 있는데, 이는 A를 B에게 바란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breath라는 '대상'에게 이야기를 구걸했다는 것인데, 아이들이 이야기를 구걸하는 대상은 '나'이므로 결국 breath는 '나'의 은유가 되는 것이다.

얼핏 생각해보면 약한 숨소리는 아이들을 의미할 것 같지만, 앞 문장에 나오는 "cruel Three!", 그리고 뒷 문장에 나오는 "one poor voice" 같은 구절들을 봤을 때 이야기를 즉석에서 지어내야 하는 작가 자신의 난처함을 강조하기 위해 쓴 표현이 아닌가 싶다.

 

2.

So she was considering in her own mind (as well as she could, for the hot day
made her feel very sleepy and stupid
), whether the pleasure of making a
daisy-chain would be worth the trouble of getting up and picking the daisies,

 

번역본들을 보면 크게 ⓐ더워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는 뉘앙스와 ⓑ더워서 움직이는 게(일어나서 꽃을 딸지 말지) 고민되었다는 뉘앙스로 갈린다.

여기서는 두 가지 해석 모두 가능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후자 편에 서고싶은데, 이유는 언급한 문장의 앞 내용 때문이다.

앞부분에서 앨리스는 할 일 없이 언니 옆에 앉아 있으려니 심심해 죽을 것 같다고 한다.

언니의 그림책을 흘깃 봤지만, 거기에는 그림도 대화도 없어 당최 왜 읽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당연히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찾아나서야 마땅하다.

그런데 윗 문장에서 그녀는 일어나서 꽃을 꺾는 수고로움과 화관을 만드는 즐거움을 저울질한다.

왜 심심해 죽겠는데 꽃 꺾는 게 뭐 대수라고 그걸 고민하고 앉았을까?

(거기다 그녀는 'trouble'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도대체 왜?

더워서 졸리고 멍해지니까 귀찮아서 그런 것 아닐까?

선택은 각자의 몫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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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꾸러기

                       보들레르

  그것은 새해의 폭발이었다. 무수한 사륜마차가 가로지르고, 장난감과 봉봉과자가 번쩍거리고, 탐욕과 절망이 들끓는 진흙과 눈의 혼돈, 가장 완강한 고독자의 뇌수마저 어지럽히려고 마련된 대도시의 공인된 착란.

  이 소동과 난장판의 한가운데서, 나귀 한 마리가 채찍으로 무장한 어느 무뢰한에게 시달리며 굳세게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나귀가 보도의 모퉁이를 막 돌려 할 때, 장갑이 끼워지고 에나멜 칠로 번들거리고, 넥타이로 끔찍하게 목이 조여, 완전 신품 양복 속에 감금당한 멋쟁이 신사 하나가 이 누추한 짐승 앞에 정중하게 절을 하고는, 모자를 벗어들고 말했다. "아름답고 복된 새해를 기원합니다!" 그러고는 내 알 바 없는 떨거지들 쪽으로 득의만만하게 고개를 돌렸다. 제 만족감에 그들이 칭찬이라도 얹어주기를 앙망하는 듯이.

  나귀는 이 멋쟁이 장난꾸러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그래서 제 의무가 부르는 곳으로 계속해서 열심히 달려갔다.

  나로 말하자면, 프랑스의 모든 재기를 고스란히 한몸에 끌어모은 것만 같았던 이 으리으리한 바보를 보며 측량할 수 없는 분노에 돌연 사로잡혔다.

 

- <파리의 우울>(황현산 역) 中

 


  새해 첫날의 난잡함, 어느 무뢰한을 태운 나귀, 나귀에게 절하는 신사, 그리고 그에게 분노를 느끼는 화자. 별 생각 없이 시를 읽다 보면 마지막에 화자가 분노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이 사뭇 뜬금없게 다가온다. 도대체 화자는 신사에게 왜 화가 난 걸까.

 

  사실 화자는 신사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불쾌한 상태이다. 눈처럼 희어야 할 새해 첫날은 이미 물질 만능 주의라는 진흙에 더럽혀진 지 오래고, 어리석은 대중은 이러한 혼란을 '공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방이 온통 이러하니 아무리 '가장 완강한 고독자'일지라도 머리가 지끈지끈할 수밖에.

 

  이런 화자의 상황은 새해의 난장판 한가운데서 마주친 나귀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나귀는 비록 무뢰한에게 예속된 '누추한' 짐승이지만, 자기 도리를 알고 묵묵히 길을 걸어간다는 점에서 등에 올라탄 무뢰한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화자로서는 굳세게 종종걸음을 치고 있는 나귀에게 더욱 눈길이 갔을 것이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겨를도 없이 화자는 '장난꾸러기'의 방해를 받는다. '내 알 바 없는 떨거지들'에게는 그가 한껏 멋을 낸 '신사'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화자의 눈에는 신품 양복에 감금당한 '으리으리한 바보'요, 나귀보다 나을 것 하나 없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노예일 뿐이다. 그런 그가 안 그래도 시달리고 있는 나귀를 대놓고 조롱하며 만족해 하고 있으니, 화자로서는 어찌 울화가 치밀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화자는 신사의 재롱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귀의 의연함을 보며 끝내 화를 삭혔을지도 모른다. 결국엔 그 모든 것 역시 화자가 사랑하는 파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파리는 '치욕의 수도'이지만, 동시에 '지옥의 매력으로 끊임없이 나를 회춘시키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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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A Streetcar Named Desire" 연극을 보고 왔다.

실제 배우들의 공연이 아니고, 'NT Live'라고 하여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re)이 연극을 촬영해 전 세계 공연장과 영화관에 생중계 또는 앙코르 상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역시 나는 영상보다 글을 좋아해서인지 극을 보면 볼수록 글로 읽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히 집에 와서 책을 검색해봤는데, 민음사 책 소개 중 다음 내용이 유독 눈에 띄었다.


B사
스텔라 시중을 드는 것이 기뻐서 그래요, 블랑쉬. 더 가정적인 기분이 되거든요.

민음사
스텔라 난 언니 시중을 들고 싶어. 그러면 친정에 있는 기분이야.

 

이 부분에 유난히 관심이 간 것은 아까 본 연극의 자막에서도 B사처럼 '가정적'이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당 부분의 원문을 찾아봤다.

 

Stella I like to wait on you, Blanche. It makes it seem more like home.

 

과연 'home'이 '가정'의 의미로 쓰였을까 '친정'의 뜻으로 쓰였을까.

두 의미가 명백히 다르기 때문에 두 번역 중 하나는 틀린 것이라 할 수 있다.

해당 대사를 구글에 검색해 본 결과 해외 사이트에서 이런 글들을 찾을 수 있었다.

 

Stella has two lines that illustrate her past in Belle Reve: ⓐ'I like to wait on you, Blanche. It makes it seem more like home.' AND ⓑ'You never did give me a chance to say much, Blanche. So I just got in the habit of being quiet around you.'

(출처: https://www.theatrefolk.com/spotlights/analysis-and-exercise-a-streetcar-named-desire)

(졸역: "스텔라의 대사 중 두 군데가 벨 리브에서의 과거를 설명해준다. ⓐ(문제가 된 대사)와 ⓑ'언니는 내가 말을 많이 할 기회를 절대 안 줬지. 그래서 난 언니 곁에서는 조용히 있는 습관이 들었어.')

 

참고로 '벨 리브'는 두 자매가 어린 시절 살던 곳이다.

 

When Blanche first arrives at Stella's flat, in scene one, the conversation alludes to Blanche's overbearing nature (when the women were girls). "You never did give me a chance to say much, Blanche." Here, readers can assume that Blanche was very controlling, spoke a lot (probably even for Stella), and Stella clearly accepted it. 

In scene five, Stella states her liking of wanting on Blanche: "I like to wait on you, Blanche. It makes it seem more like home." Here, it seems as though Stella accepted her role as Blanche's "servant." She, Stella, probably accepted the fact that she lived in Blanche's shadow.

(출처: http://www.enotes.com/homework-help/there-anything-this-scene-which-suggests-462595)

* 여기서 중간에 나오는 'wanting'은 'waiting'의 오타로 보인다. 따라서 아래 졸역도 후자에 맞춰 하였다.

(졸역: 장면 1에서 블랑시가 처음 스텔라의 flat에 도착했을 때의 대사를 보면 (두 자매가 어렸을 당시) 블랑시의 독재적인 성격이 넌지시 드러난다. ⓑ. 여기서 독자는 블랑시가 매우 독단적이고 말이 많았으며, 스텔라는 분명 이를 받아들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장면 5에서 스텔라는 블랑시의 시중을 드는 걸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 여기서 스텔라는 블랑시의 "시중"으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아마도 블랑시의 그늘 아래서 살았단 사실을 인정한 것 같다.)

 

즉 두 글 모두 문제가 된 저 대사가 벨 리브에 살던 어린 시절 블랑시와 스텔라의 관계가 어땠는지를 암시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민음사 판처럼 벨 리브를 떠올릴 수 있는 단어로 옮기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B사나 오늘 내가 본 연극에서처럼 '가정'이라고 번역할 경우 그런 암시를 느낄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게 얼핏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고 번역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 한 줄의 번역문만 봐도 번역의 질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내가 특히 문학 번역에 있어 프로 번역가보다 전공자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좋은 번역을 알린답시고 과제도 안 하고 이 늦은 시간까지 이 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참..

(심지어 다른 메이저 출판사에서는 별로 출간되지도 않았다. 그러모아봤자 아래 열거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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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민음사 때문에 미치겠다.

표지를 왜 이렇게 사고싶게 바꿔서 내는 거냐...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랑 <제인 에어>도 질러놓고 못 보고 있는 마당에 또 저렇게...

고민되는 김에 번역 비교.

<프랑켄슈타인> 때만큼 자세히 하기는 힘들어서 첫 페이지만 살펴봤다.


비교 대상은 민음사/문학동네/을유문화사 세 권.

역자를 간단히 살펴보면,

민음사의 김종길은 고려대 영문과 명예교수이다. 주로 시를 번역한 듯한데, 이 작품도 시적인 면이 있어 번역을 한 듯하다. 영미문학연구회에서 그의 역본을 좋은 번역으로 선정한 바 있다.

문학동네의 김정아는 비교문학과에서 영문학을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을유의 유명숙은 서울대 영문과 교수이다. 이분의 역본 역시 좋은 번역으로 선정된 바 있다. 다만 이분이 영국 사투리의 느낌을 살린답시고 우리나라 사투리로 옮기는 경향이 있어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1


참고로 제목은 '폭풍의 언덕'보다는 '워더링 하이츠'라고 옮기는 게 옳다는 것이 중론이다. 읽어보지 않아 판단은 못 하겠다...2 



 

1801. - I have just returned from a visit to my landlord -

김종길) 1801- 집주인을 찾아갔다가 막 돌아오는 길이다.

김정아) 1801. 방금 주인 양반 댁에 다녀왔다.

유명숙) 1801. 집주인을 방문하고 오는 길이다.

 

 

the solitary neighbour that I shall be troubled with.

김종길) 이제부터 사귀어가야 할 그 외로운 이웃 친구를.

김정아) 이제 그는 내가 신경 써야 하는 유일한 이웃이다.

유명숙) 나를 성가시게 할 유일한 이웃인 셈이다.

 

* solitary의 번역이 외로운/유일한 둘로 갈린다. 책을 안 읽어봐서 히스클리프가 부딪쳐야 할 외로운 이웃인지 유일한 이웃인지는 잘 모르겠다여러 한영/영영사전을 검토해보면 이 단어가 only보다는 alone의 의미를 우선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only의 뜻으로는 주로 부정문/의문문일 때 쓰인다는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외로운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한데, ④⑤번 문장 내용을 보면 유일한 이웃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참고로 문예출판사의 이덕형과 홍익출판사의 신현숙은 '고독한'으로 번역했음)

 한편 김종길만 왜 유독 trouble을 사귄다는 표현으로 의역했는지 좀 의문이다. 번 문장의 내용을 토대로 추측을 해보자면, 화자(I) 입장에서 곤란을 겪는다는 게 사귀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This is certainly a beautiful country!

김종길) 여긴 확실히 아름다운 고장이다.

김정아) 경치 좋은 시골인 것이다!

유명숙) 정말이지 아름다운 고장이다!


  

In all England, I do not believe that I could have fixed on a situation so completely removed from the stir of society.

김종길) 영국을 통틀어도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이렇게 완전히 동떨어진 곳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김정아) 영국 땅을 전부 뒤져본들, 이다지도 완벽하게 세속잡사에서 동떨어진 곳이 어디 있으랴.

유명숙) 잉글랜드를 통틀어 세상의 소란에서 이보다 더 동떨어진 곳을 골라잡을 순 없었을 것 같다.

 

 

A perfect misanthropist's heaven:

김종길) 사람을 싫어하는 자에겐 다시없는 천국이다.

김정아) 더할 나위 없는 염세가의 천국이로구나.

유명숙) 염세가에게는 다시없을 천국인 듯.

 

 

and Mr. Heathcliff and I are such a suitable pair to divide the desolation between us.

김종길) 더구나 히스클리프 씨와 나는 이 쓸쓸함을 나누어 갖기에 썩 알맞은 짝이다.

김정아) 적막강산을 반씩 나누어 가질 히스클리프 씨와 나는 너무나도 어울리는 한 쌍이로구나.

유명숙) 더구나 히스클리프와 나는 이러한 적막감을 함께 나누기 딱 알맞은 한 쌍이다.

 

* suitable과 to 부정사구의 해석에 약간 차이가 있다. 김종길과 유명숙은 to divide 이하가 suitable을 꾸민다고 보았고, 김정아는 주어(Mr. Heathcliff and I)를 꾸미는 것으로 번역했다. 즉 전자는 부정사를 부사적으로, 후자는 형용사적으로 본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전자에 한 표를 주고 싶다. <suitable + 명사 + to 부정사>가 한 세트가 되어 '~하는 데 적합한 (명사)'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이덕형과 신현숙도 이렇게 번역함)

 

 

A capital fellow!

김종길) 멋진 친구!

김정아) 대단한 친구다!

유명숙) 멋진 친구다!

 

 

He little imagined how my heart warmed towards him when I beheld his black eyes withdraw so suspiciously under their brows, as I rode up, and when his fingers sheltered themselves, with a jealous resolution, still further in his waistcoat, as I announced my name.

김종길) 말을 타고 다가가는 나를 보고 그의 시꺼먼 두 눈이 눈썹 아래에서 미심쩍게 찌푸려지는 것을 봤을 때, 그리고 내가 이름을 대자 그의 손가락들이 잔뜩 경계하며 조끼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그에게 호감을 품었는지 그는 상상도 못 했으리라.

김정아) 내가 말을 세우자 의심이 가득한 그의 검은 눈은 눈썹 뒤편으로 움푹 들어가고, 내가 이름을 댔는데도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는 그의 손은 조끼 안쪽으로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가니, 그는 상상도 못했겠지만 나는 그에 대해 적잖이 호감을 느꼈던 것이다.

유명숙) 내가 말을 타고 다가가자 검은 두 눈이 의심쩍다는 듯 눈썹 뒤로 물러서고, 이름을 밝히자 손가락이 단호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조끼 속으로 더욱 깊숙이 숨어드는 것을 보고 얼마나 큰 호감이 솟아났는지 그는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 when의 번역에 다소 차이를 보인다. 뉘앙스가 살짝 다르게 느껴지나, 뭐가 맞았다 틀렸다 할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when이 주는 뉘앙스, 그리고 한글로 읽을 때의 느낌을 고려했을 때 김종길처럼 그냥 ‘~할 때로 번역하는 게 나아 보인다.

 그리고 ride up의 번역도 좀 갈리는데, 김정아만 말을 세웠다고 해석했다. 영영사전에 ' to approach someone, riding'3이라 돼 있는 걸로 봐서는 김종길이나 유명숙의 번역이 더 좋아 보인다.

 

 

# 전반적인 느낌


많은 내용을 본 게 아니라 눈에 띄는 오류를 찾긴 어려웠다. 하지만 번역 스타일은 확실히 차이가 있어 보인다.

 

김종길) 모범생의 정직한 번역 같은 느낌. 좀 문어적이나 가독성은 괜찮은 것 같다.

김정아) 한껏 멋을 내려고 노력한 느낌. (세속잡사, 염세가, 적막강산 등...)

유명숙) 대체로 김종길과 유사하나, 보다 문체가 간결한 느낌.

 

 

 

 


 

1. 개인적으로는 사투리 쓰는 테스를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기 때문에 불호...
2. 다만 유명숙의 설명 중 'Wuthering Heights'가 집 이름이기 때문에 '언덕'이라고 번역한 게 잘못이라는 부분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집이라도 얼마든지 언덕이라 이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에일린의 뜰'이라는 아파트가 존재하지 않는가.
3. http://idioms.thefreedictionary.com/ride+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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