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행복한달 님의 서재 (행복한달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1065158</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30 Oct 2026 16:52:33 +0900</lastBuildDate><image><title>행복한달</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51065158</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행복한달</description></image><item><author>행복한달</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의심하는 마음 - [박지원 - 글쓰기의 혁신과 새세상 만들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1065158/17599249</link><pubDate>Wed, 28 Oct 2026 23: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1065158/175992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1142&TPaperId=175992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3/84/coveroff/89364811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1142&TPaperId=175992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박지원 - 글쓰기의 혁신과 새세상 만들기</a><br/>박지원 지음, 김혈조 편저 / 창비 / 2026년 02월<br/></td></tr></table><br/>불안 때문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려는 고집, 믿음대로 될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 후회는 나중 일이고 이 순간만 지나면 된다는 식으로 버텨왔다.<br/> <br/><br/>집안 내력이니 내 불안도 어지간히 뿌리 깊은 편이다. 나이 들면 무뎌진다는 거짓말을 믿었다. 허황된 바람이었다. 나는 쉴 틈 없이 흔들렸고 수시로 휘청거렸다.<br/><br/>나를 의심한다는 건 타인을 의심하는 것보다 몇만 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옳다고 믿어온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동안 나를 지탱해 온 것들마저 무너질 것 같았다.<br/><br/>창비에서 한국사상선을 펴내었다. 내게 인연이 닿은 것은 '하필' 연암이었다. 마치 내 불안에 공명하듯, 모르는 척 아닌 척하던 내게 말을 걸어왔다.<br/><br/>연암 박지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학창 시절 배웠던 실학자, 『열하일기』를 쓴 사람,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북학파의 대표적인 인물. 내가 아는 연암은 그 정도였다.<br/><br/>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그가 무엇을 주장했는가 보다 무엇을 의심했는가에 자꾸 관심이 갔다.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을 의심하고, 익숙한 세계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었다.<br/><br/>청나라는 오랑캐의 나라였다. 적어도 당시 조선의 지식인 상당수에게는 그랬다. 그런데 연암은 그곳에서 배울 것을 찾았다. 양반들이 내세우는 명분보다 백성들의 구체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였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권위를 뒤집어 놓기도 했다.<br/><br/>그에게는 자신이 속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눈이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이 옳다고 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려 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의 글에서는 그런 태도가 읽혔다.<br/><br/><br/>나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살아왔다. 낯선 것을 경계하고, 아는 것에 기대고, 이미 내린 판단이 틀리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것이 얼마나 불안정한 믿음인지 알면서도 말이다.<br/><br/>물론 연암이 의심했던 세계와 내가 의심하지 않으려던 세계는 전혀 다르다. 그는 시대의 관습과 권위를 문제 삼았고, 나는 내 안의 오래된 믿음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글을 읽는 동안 자꾸만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왔다.<br/><br/>[ 내가 옳다고 믿는 것 가운데, 정말로 의심해 본 것은 얼마나 될까.]<br/><br/>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에 가는 낯선 사람을 붙잡고서라도 물어봄이 옳다. 부리는 종복이라 하더라도 나보다 한 글자라도 많이 안다면 우선 그들에게 배울 것이다. 자신이 남보다 못함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이는 종신토록 고루하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 자기를 가두어 놓는 것이다. (130쪽)<br/><br/> 이 문장 앞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내가 어려워하는 일 중 하나다.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해 불안했던 것도 같다.<br/><br/>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을 확신하려 애쓰느라 정작 알아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비로소 물을 수 있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를 뒤늦게 생각했다.<br/><br/>연암이 살던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그가 보았던 청나라의 수레와 벽돌, 양반들의 허위의식은 오늘의 내 삶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익숙한 세계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아는 세계 안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만큼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br/><br/>의심은 불편하다. 믿었던 것을 다시 살펴야 하고, 때로는 내 오류를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의심하지 않는 삶이 반드시 평온한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br/><br/>책을 읽었다고 해서 오래된 불안이 사라질 리 없다. 여전히 나는 아는 것에 기대고 싶고, 내가 내린 판단이 옳기를 바란다. 다만 그 마음이 꿈틀거리면 한 번쯤 물어볼 수는 있을 것 같다.<br/><br/>[정말 그런가!]<br/><br/>어쩌면, 의심하는 마음은 불안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 갇히지 않으려는 작은 시도일지도 모르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3/84/cover150/89364811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03847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