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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 개정판 ㅣ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허겁지겁 읽게 된 소설은 오랜만이었다.
잠시 읽고 내려놓으려던 계획과 달리 어느샌가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아침 드라마틱한 챕터 넘김에 홀려서 나도 모르게 넘겨본 것도 일부 인정.
담백한 문체 때문일까. 군더더기 없는 사실 묘사 덕분에 머릿속에 한 편의 드라마가 재생된다.
담담한 관찰자적 시선에 다행히도 내용과는 별개로 크게 우울하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아무래도 시대적 배경을 알고 있었다 보니 읽고 나면 마음이 무거울까 기피하고 있던 차였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배경에 초점이 맞춰진 이야기는 아니었고 - 독립운동가의 집안이라던가, 일본과 싸우는 이야기 등- 그 시대 속 살아가던 소시민의 이야기라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듯 사람 냄새 맡아가며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초반 선자의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그러니까 선자의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묘사가 일차 충격이었는데 휙휙 넘어가는 짧은 묘사 속 그들의 가치관과 죽음을 다룬 응축된 내용에 매료됐었다.
[어부와 아내는 온전치 않은 몸으로 살아남은 아들을 영리하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키웠다. 본인들이 죽고 나면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였다.]
[부부는 아들을 실망시키려니 가슴이 미어졌지만, 아들을 사랑했기에 맹목적으로 애지중지하지는 않았다. 죽은 자식보다 응석받이 자식이 가족들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서 오냐오냐하며 키우지 않았다.]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이야기 속 가난한 가족들은 순박하며 어리석고 우둔한 모습으로 나오곤 했던 것 같다. 파친코에서 본 가족은 달랐다. 가난하지만 부지런하며 지혜로운 가정이었다.
그 양육 환경 속 부모가 된 자식이 그의 부모를 닮아가는 모습을 몽글몽글한 감정으로 지켜보게 되더라. 하지만 갑작스러운 한 줄의 작별로 불시에 찾아온 죽음을 보여주는 탓에 정말로 순식간에 따뜻했던 감정이 훅 떨어졌다.
가족의 일상이 달라졌다.
[마을 처녀들 대부분이 훈이를 피했고, 훈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참고 견뎠다.]
복합적인 감정이 드는 초반. 훈이의 생각은 날 뜨끔하게 했는데 비슷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더 그 문장이 눈에 띄었는지 모른다.
또 하나의 충격은
선자의 임신. 한수의 비밀이었다.
조마조마했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유부남일 줄이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왁왁 거리며 혀를 찼다. (아니 이놈이..?)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선자 모르게 선자를 챙기는 그의 모습에서 책임감과 동시에 전략적인 모습 속에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데... 정말 좋은지 나쁜지 감정을 어중간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사람은 누구나 선과 악을 지니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사람을 한 면으로만 정의해버리고 싶은 생각이 튀어나왔나 보다.
어떻게 세상에 착한 사람, 나쁜 사람 한 면으로만 나누려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파친코를 읽으면서 상대성을 많이 느꼈다.
같은 옷도 배경이 달라지면 부유해 보였다가도 낡고 구식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좋은 집안의 사람이고 부족함 없이 지냈지만 일본에서는 돼지와 가난한 조선인만 살 수 있는 곳에 산다.
한 나라에서는 함께 같은 정서를 공유하며 일본을 향해 퉤퉤 걸려도 다른 나라에서는 서로를 견제해야 한다.
일본과 한국을 오고 가는 상황 속에서 이런 장면들이 그려지는 게 내게는 크게 다가왔다. 가난과 부의 차가 빈번하게 보여서 인지 상대적으로 가난한 쪽의 피해나 삶이 더욱 고달프고 퍽퍽하게 보였다.
선자를 보고 있자면 다양한 감정이 든다. 대견하다가도 안타깝고 든든하다가도 가엾다.
아이를 위해, 남편을 위해 생활력 강한 어머니가 된 여자. 어리숙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분별력 있는 여자.
파친코 1에서는 도대체 왜 제목이 파친코인가에 관해선 알 수가 없다. 실마리는 2권에서 풀린다고 하기에 2권을 기대하고 있다.
빠른 전개 속에서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마주하며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소설책 <파친코>
<시선으로부터>도 한 집안의 일대기인데 파친코는 조금 더 단순한 것 같다. 그 덕에 빠른 템포로 읽기 가능한 것 같기도. 다행히 인물의 이름은 기억하기 쉬워서 몰입이 잘 된다.
앞서 말했듯 정말 허겁지겁 읽게 되는 책이다. 내 나름의 커다란 포인트만 몇 적었지만 이 외에도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전달해 주는 소설이다. 몰입도도 높아서 어떤 소설을 읽을지 고민한다면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