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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살인
카라 헌터 지음, 장선하 옮김 / 청미래 / 2025년 6월
평점 :

영국의 베스트작가이자 애덤 폴리 형사 시리즈의 카라 헌터의 신작 가족살인을 보았다. 사실 카라 헌터의 작품은 가족 살인이 처음이었는데 내가 기대한 그 이상으롤 재미있었고 미스터리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의외의 결말도 훌륭해서 이제 이 작가의 차기작은 기다렸다 보게 될 듯 하다.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이었지만 가독성이 무척 훌륭했고 몰입도도 좋아 말 그대로 영드 한편 보듯이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소설은 인퍼머스라는 이름의 리얼크라임쇼에서 20년 전 벌어진 루크 라이더의 살인사건을 다루며 시작된다.
특이한 점은 이 다큐멘터리성 실시간 스트리밍 쇼의 감독인 가이 하워드의 의붓아버지가 사망한 루크 라이더라는 점.
소설 가족살인은 마치 나 역시 책을 읽는 독자가 아니라 이 리얼 크라임쇼를 보고있는 시청자가 된 듯한 경험을 선물한다. 인퍼머스의 오프닝부터 사전 안내문까지 디테일하게 나와있으며 작가는 이 소설의 리얼함을 살리기 위해 사전 안내문에는 스탭들이 주차를 할 수 있을 만한 곳을 안내하는 문구까지 첨부되어 있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인퍼머스쇼의 대사 지문 외에도 출연자들끼리 나눈 이메일과 음성메세지, 문자내역까지 독특한 형태로 수록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인포머스와 관련된 시청자게시판까지 세밀하게 표현되어 직접 이 쇼를 즐기며 다른 시청자들의 여론까지 2차로 즐길 수 있게 장치되어 있었다.
인퍼머스쇼에는 작가가 친절하게 지문형태에 배경까지 생생하게 묘사가 되고 있고 소설 초반 등장인물들의 프로필문서와 이력서에는 이들의 외모까지 실제 배우들로 수록되어 있는데 덕분에 소설을 보면서 장편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영국판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는 듯 머릿속에 영상이 쭈욱 재생되는 것 같기도 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알고 싶다는 사전 제작된 프로그램을 공개하는 것에 비해 이 인퍼머스 리얼크라임쇼는 모든게 실시간으로 제작자에 의해 스트리밍되고 있다는 점 정도.
가족 살인은 추리 소설답게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혀내는 이야기다.
다만 이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에는 독특한 형태의 전개 방식 외에도 이 사건이 20년이 지나 실제로 많은 증거들과 증인들 그리고 사건과 관련된 자료들이 세월과 함께 흐릿해져버렸다는 점이 있다.
당시에는 소셜미디어도, 인터넷도 없던 시기였기 때문에 굉장히 고전적인 방식으로 발로 뛰는 수사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전형적인 일본 미스터리와 서양 미스터리의 차이가 아닐까 싶을정도로 스타일이 달랐다.
가족살인에서는 영감이 번뜩이는 추리가 아닌 말 그대로 조사와 수사가 진행된다. 동선을 파악하고 원한이나 이윤관계를 확인 한 뒤 용의자를 추가하고 알리바이를 통해 용의선상에서 제외하는 경찰이 할 법한 수사가 이뤄지며 실제로 인퍼머스쇼의 참가자들 역시 전직 경찰과 형사, 변호사, 법의학자, 기자 등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져있다.
닉 빈센트 - 이 바닥에서는 그걸 "예술적 허용"이라고 합니다, 휴고. 당신도 아마 들어봤을 텐데요?
휴고 프레이저 - 내 분야에서는 그걸 사기라고 합니다, 닉. 아마 들어보셨겠죠? p471
그 들은 경쟁적으로 인퍼머스의 매 회차가 진행되기 전 사건과 관련된 수사를 개별적으로 진행해 단서를 찾아와 공개하며 그로 인해 수사는 매우 빠르게 회차가 진행될 수록 진척된다. 그리고 이들간의 미묘한 수사력 경쟁부터 기싸움과 출연한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감추고 있는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소설의 초중반부에 사망한 루크 라이더가 진짜 루크 라이더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 때부터 이 소설은 미칠듯한 흡입력으로 페이지에서 손을 떼기 힘들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후반부, 증거로 채택된 사진에 찍힌 배수탑과 -ugh란 단어를 통해 미국과 영국 뿐만이 아닌 전세계를 대상으로 일일이 검색해가며 단서를 찾는 장면이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며 또 이 소설이 추구하는 추리와 수사의 방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별개로 미국과 영국의 문화와 표현에 대한 언급도 왠지 유머러스하게 느껴져 무척 재미있었다.
매화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들로 인한 인퍼머스의 시청자들을 위한 몰아치는 반전들, 그리고 소설 '가족 살인'의 독자들을 위한 굵직한 반전에 반전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추리소설, 가족살인을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