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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 부동명왕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9월
평점 :

미야베미유키 작가의 미야베월드 제 2막의 신작 청과 부동명왕을 보았습니다.
사실 미야베미유키 작가의 소설은 화차와 모방범으로 입문했던 터라 제게 미야베미유키는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익숙했는데요.
은근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써내려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소설들은 은근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저도 그 중 몇권은 재미있게 읽은 경험이 있었거든요.
이번에 새로 나온 에도 시대 소설 청과 부동명왕은 표제작인 청과 부동명왕을 포함한 총 네개의 중단편소설이 수록된 소설집으로 에도 시대 시리즈 중에서도 미시마야 시리즈에 해당합니다.
이 미시야마 시리즈는 에도에 위치한 주머니 가게의 이름인데요. '흑백의 방'이라는 공간을 마련해 두고 특별한 손님을 초대해 괴담을 말하고 듣는 시간을 운영해왔습니다. 한 번에 괴담을 말하는 사람은 한 명, 듣는 사람도 오직 한 명으로 이전 미시야마 시리즈에서 청자역할을 하던 오치카는 출산을 위해 그 역할을 내려놓고 현재는 오치카의 사촌인 도미지로가 그 일을 맡고 있는데요.
이러한 배경 속에서 흑백의 방에서 소설의 첫번째 괴담을 말하고 들으며 첫번째 표제작 청과 부동명왕이 시작됩니다.
등의 화염광배와 오른손의 검, 쑥 내민 왼손으로는 중생을 구할 때 사용하는 올무같은 무구를 쥐고 있다. 그렇다면,
"우린보 님은 부동명왕이시군요."
"머리 모양은 청과같네요. 머리카락은 빗어넘겨 뒤에서 묶었고, 청과의 꼭지에 해당하는 부분에 연화가 올려져 있고..."
p45,46
울외의 머리모양을 한 부동명왕을 업고 먼길을 온 이야기꾼 이네는 청자인 도미지로의 사촌 오치카의 순산을 기원하기 위해 괴담을 전합니다.
아이를 낳기 위해 돈에 팔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 못하면 석녀라불리며 쫓겨나던 시대. 이 모든 힘든일을 겪은 여인 오만은 죽어서도 투장묘도 다행이라 말할만큼 모진 대우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기근으로 인해 먹여살릴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아이를 지워야만 했던 오나쓰는 이모인 오만을 무시하는 아버지의 말에 가족에게 환멸을 느끼고 집을 나와 혼자 삶을 개척해갑니다.
"불행하고 심한 일을 당한 여자들뿐이었어요."
아이를 갖지 못해 시댁에서 쫓겨난 여자. 자식을 잃은 죄를 뒤집어쓰고 이혼당한 여자. 심한 시집살이에 상처를 입고 몸이 망가져도 소처럼 부려먹히는 고통에서 도망쳐온 여자. 남자에게 속아 아기를 갖고 혼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자.
"오나쓰 씨는 도움이 필요한 여자들을 모두 받아들였어요." p124
그렇게 또 기근에 반대되는 희망과도 같은 청과를 키우며 오나쓰는 자신과 비슷한 신세의 여인들을 받아들여 동천암을 세웁니다.
이 청과들은 자신의 몸을 던져 다른 사람을 살리는 자비의 화신이다. p134
우린보라 불리는 불상의 기원을 담은 괴담은 여성의 인권이 남성보다 못하던, 그러면서도 인간의 인권도 계급에 따라 갈라지던 에도시대를 통해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외면받고 심지어는 배척당하던 여인들이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인생역경을 이겨내는 따스함을 담고 있습니다.
미야베미유키 작가의 괴담이 괴이하면서도 따뜻한 이유는 불을 내뿜는 지네와 스스로 움직이는 무사 인형 같은 괴이함 속에 작가님이 말하고자하는 서로 돕는 정이 있는 사회를 말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제가 에도 시대를 계속 쓰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렇게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때문입니다.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청과 부동명왕이 미야베미유키의 에도시대소설 시리즈에 입문하기에 꽤 괜찮은 작품인 이유는 이 소설의 구조 자체가 찾아온 이야기꾼의 입을 통해 괴담을 전해듣는 액자식 구성을 가지고 있어 크게 배경지식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게다가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있는 기괴하고 흉측한 괴담이 아닌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마음에 전해지는 따뜻한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새로 태어날 아이와 산모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해 전하는 이야기니 오죽할까요.
기존 모방범과 화차를 좋아했던 미야베미유키의 팬이라면 이번에 새로 나온 신작 청과 부동명왕을 통해 에도시대를 그리는 미야베월드에도 입문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