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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름 - 개정판
소메이 다메히토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5년 4월
평점 :

본격 미스터리를 주로 읽어온 독자로서,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주는 묵직한 여운은 한동안 잊고 지냈다. 사건의 구조와 트릭에 집중해 온 내게 나쁜 여름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삶의 그늘에 밀착된 서사였다.
소설의 배경은 치바현 북서부에 있는 인구 30만 규모의 가상의 도시 후나오카시. 주인공 마모루는 지방 공무원으로, 생활 보호 대상자를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한여름, 땀에 찌든 몸을 이끌고 부정 수급자들을 상대하는 그의 일상은 챗바퀴처럼 반복되고 무의미해보이지만 아직까지는 그의 열정이 남아있다. 그러던 중, 동료 공무원이 20대 미혼모 아이미를 상대로 부정 수급을 빌미로 성적인 협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건은 단순한 부정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야쿠자까지 끼어들면서 점차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나아간다.
나쁜 여름이 특별한 이유는 수급자에 대한 동정 어린 시선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부정 수급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도 한때 '기생수'라는 단어가 회자됐듯, 결은 다르지만 일본 역시 복지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은 부정적이다. 작가는 부정 수급자의 존재를 통해, 진짜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복지 자원이 어떻게 새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마모루라는 인물이야말로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치는 가장 보통의 사람이라는 점이다. 거대한 정의감을 내세우지도, 악을 응징하기 위해 나서지도 않는다. 상급자의 지시 앞에 무력하고, 위계 속에서 침묵한다. 그저 정답이 아닌 기분으로 일하는, 한국과 일본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공무원의 초상이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매우 정적이다. 극적인 반전이나 화려한 전개보다는 서서히 가라앉는 감정과 상황으로 독자를 끌고 간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이상하게 오래 남는 불편함과 씁쓸함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소설은 파멸의 이야기를 한다. 부조리와 외면, 위선과 침묵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정적이면서도 여운이 긴 일본영화에 어울린다는 감상이 절로 나오는 이유다. 이 작품이 일본에서 영화화된 것도 충분히 납득된다. 일본 사회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이 이야기는 영화라는 매체에서 또 다른 울림을 만들 수 있는 원작이었다.
부정 수급자와 절차상 복지에서 밀려난 진짜 약자를 대조하며, 일본의 기초생활보호 제도 속 음과 양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이 소설은,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질문을 던진다. 누가 진짜 가난한가? 누가 이 사회의 피해자인가?
나쁜 여름은 후덥지근한 여름처럼 나른한 분위기 속에 불쾌함을 그대로 표현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 조용한 문장 속에 담긴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단순한 미스터리도, 감정 소비형 서사도 아니다. 오히려 이 시대의 부조리를 섬세하게 해부하고 기록한, 정제된 분노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작 중 특별히 인상깊었던 구절들은 모두 수급자에 대해 작가가 여러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표현한 다양한 시선들인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조금씩은 공감이 간다는 점이 독특했다. 그 구절들을 소개하며 읽고 난 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본 소설 소메이 다메히토의 나쁜여름을 추천드린다.
마모루가 케이스 워커가 되고 나서 실감하게 된 것이 있다. 일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보다 일할 수 있으면서 하지 않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생활 보조금이라.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아니, 어려운 절차가 잔뜩 있어서 자신은 그런 걸 준비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선택지에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도움의 손길을 뻗어도 당사자가 그걸 모른다면 의미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부정 수급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어도 작은 구멍을 찾아내서 나쁜 짓을 하는 인간들은 생겨나거든. 인간이란 그런 거야. 하지만 그런 놈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의 생활 보조금은 정말로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급되고 있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거지.
한마디로 세상은 ‘생활 보조금을 받는 놈들은 편하게 돈을 받아서 교활해.’가 아니라 ‘열심히 일을 해도 생활 보조금 받는 세대보다 낮은 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사회가 이상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