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과 문장은 다른 것이 아니다. 육경은 모두 성현의 문장으로서, 사업事業에 적용한 것이다. 지금 글 짓는 이들은 경술이 근본인 줄모르고, 경술에 밝은 이들은 글을 지을 줄 모른다. 이는 습관이 치우친 것일 뿐만 아니라, 행하는 자가 힘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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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상황의 차이가 아닐까요?"
"상황은 허약한 사람들을 지배하는 힘이지요. 하지만 현명한사람은 그 상황을 자신의 무기로 삼습니다. 당신은 어떤 상황을만날 때마다 그 상황에 허리를 숙이고, 또 그 상황이 시키는 대로 합니까?"
데이비드는 그렇지 않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가브리엘은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요점을 강조했다.
"데이비드 폰더,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당신의 감정과 결단력은 상황에 의해서 좌우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데이비드가 단호하게 말하자, 가브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상황이 사람을 앞으로 밀거나 뒤로 당기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 P207

"여기는 도대체 어떤 곳입니까?"
가브리엘은 등 뒤의 날개를 가볍게 흔들면서, 데이비드에게다가와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오른손을 한번 들어 보였다.
"데이비드 폰더, 이곳은 존재할 뻔했지만 결국 존재하지 않은것들을 모아놓은 장소입니다."
데이비드가 충격으로 거의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데, 대천사가 그의 손에서 아이들 사진을 가져갔다. 그 사진을 쥔 채 대천 - P210

사는 그곳의 주위를 크게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기에 있는 물건들은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열심히 일을 하고, 또 기도를 올렸더라면 그들에게 주려고 마련해놓았던 물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더 이상 기도하지 않고 일하지도 않기 때문에 취소되어 여기에 쌓이게 된 것입니다. 이 창고는용기 없는 사람들의 꿈과 목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데이비드는 깜짝 놀랐다. 그는 입을 딱 벌린 채 통로 주위의무수한 코트와 구두, 자전거와 담요, 환풍기와 에어컨, 타이어와 시계 등을 바라보았다. 또 받침대 위의 종이 뭉치도 기억났다. 그는 다시 가브리엘의 손에 있는 그 사진을 보았다. 그는 손을 내뻗으며 말했다.
"그 사진을 내가 가질 수 있을까요?"
"미안합니다."
대천사가 그 사진을 거대한 바구니에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제이슨과 줄리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지상에 도착할 시간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기회를 상실한 거예요. 두 번째기회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 순간 데이비드는 무릎에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았고, 오른손으로 땅을 짚으면서 간신히 중심을 유지했다. 그런데도 계속.
무릎이 흐물흐물하여 대천사의 발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거나 악을 쓰지는 않았다. 눈물도 이미 메말라버린 상태였다. - P211

가브리엘은 양손으로 데이비드의 얼굴을 가볍게 감싸쥐었다.
"데이비드 폰더, 당신은 필요한 건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 혼자서 헤쳐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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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은 일생 동안 귀족과 영주들과 부유한 상인들 틈에서 지내 왔다. 베릴라에 있는 아버지의 궁정은 그런 사람들로 들끓었다. 많은 것을 소유한 자들, 많은 것을 사들이고 팔아넘기는 자들, 세상 만물을 잔뜩 소유한 사람들…………. 그들은 고기를 뜯고포도주를 마시고 큰소리로 이야기했다. 말싸움을 하고 아첨을하고 대개들 자기 욕망을 좇았다. 아렌은 젊었지만 가식과 처세술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가운데 있어 본 적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 이 사람들은 빵을먹고, 거의 말이 없으며,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설사 그들이 - P41

무엇인가를 찾는다 할지라도 그건 이기적인 욕망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위대한 힘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아렌은 그것도알 수 있었다. - P42

내 재주는 날 돕지 못해요."
대현자의 목소리에 깃든 뭔가가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그들은 불안한 눈길을 다른 데로 돌렸다. - P47

"내겐 나이도 주문도 두 사람 몫만큼 있다오. 아렌, 아버님이어쩌시겠니?" - P48

"아버지는 저를 이리로 보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닥쳐오고 있는 어둠과 위험의 시대가 두렵구나. 그래서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너를 심부름 보내는 거다. 너라면 우리가 이문제에 관해 현자의 섬의 도움을 청해야 할지, 아니면 거꾸로인라드의 도움을 그분들께 제공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을 테니말이다.‘ 그러니 만일 제가 필요하시다면, 전 여기 있습니다." - P49

"아, 봤느냐, 응? 그는 질투하고 있어. 더 오랫동안 충성을 바쳐 온 자의 특권을 주장하는 거지."
"그리고 능력도 저보다 한결 나으시지요."
"그럼 그가 나와 함께 가고 너는 뒤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냐?"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두려워서......."
"뭐가 두려우냐?"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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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래 마법사가 물었다.
"악(惡)이란 무엇일까요?"
중심에 검은 점을 단 둥근 거미집이 두 사람을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게드가 대답했다.
"우리 인간들이 짜내는 거미줄이지." - P25

어린 시절을 벗어나는 첫 발걸음은 그렇게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 조심성 없이, 어떤 것도 신중하게남겨 놓지 않고서.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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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가 되면 서서히 기울어가는 여름의 대기 속에 얼마간 명료한 기운이 서립니다. ‘그림 같다‘는 말을 화가들이 ‘그리기 쉽다‘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그림 같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명료함은 붓으로 그려내기가 무척 힘들 테지만, 그럼에도 붓을 멋지게 놀려 훌륭하게 그려내고 싶은 욕구가 솟구칩니다. 색이 이처럼 마법같은 광채를 내고 이처럼 보석 같은 힘을 가진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또, 그림자가 지금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흐릿해지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식물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꽃, 나무, 풀 모두가 가을의 기운을 머금고 있을 뿐 가을의 현란하고 강렬하고 환희에 찬 색들을 아직 본격적으 - P57

로 펼쳐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색채를 띤적이 없습니다.
지금 정원에는 1년 중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여전히 빨간 석류가 타오르는 불꽃처럼 여기저기 달려 있고, 달리아와 과꽃, 그리고 매력적인 붉은 푸크시아까지 보입니다.
그러나 늦여름과 초가을의 다채로운 색을 대표하는 꽃은 역시 백일홍입니다! 요즈음 늘 이 꽃을 꺾어 방에 꽂아둡니다. 꽤 오래가는 편이라 싱싱할 때부터 시들 때까지꽃이 변해가는 모습을 행복하고 호기심 어린 눈길로 한없이 지켜볼 수 있습니다. 방금 꺾은 다양한 색깔의 백일홍다발만큼 건강하고 강렬하게 빛나는 꽃은 없습니다. 백일홍은 빛을 받아 더욱 강렬해지고 현란한 빛깔을 뿜어냅니다. 진하디 진한 노랑과 주황, 쾌활한 빨강, 신비로운 짙은보라∙∙∙∙∙∙. 순진한 시골 처녀의 리본이나 일요일 나들이옷을 닮았습니다. 이 강렬한 색들을 원하는 대로 나란히 늘어놓아도 뒤섞어놓아도, 꽃들은 늘 황홀하게 아름답고,
강렬하게 빛나고, 아주 조화롭고, 사이좋게 지내며 서로를 자극하고 돋보이게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당신에게 새로운 것은 아닐 테지요. 백일 - P58

홍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인 척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저 나의 백일홍 사랑을 말해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은 벌써 오래전부터 나를 사로잡은 가장 편안하고 가장 반가운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감정이 어느 정도는 노쇠했겠지만 절대 약해지지 않았고, 특히 이꽃이 시들 때 더욱 강렬해집니다! 꽃병 속에서 서서히 빛이 바래 죽어가는 백일홍을 바라보며 죽음의 춤을 체험하고, 삶의 무상함을 슬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중히 받아들입니다. 가장 무상한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꽃이며 가장 사랑스러운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이여, 일주일이나 열흘 동안 꽃병에서 시들어가는 백일홍을 한번 관찰해보세요! 그 후로도 며칠 더색이 바래가면서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백일홍을 날마다 자세히 관찰해보세요! 싱싱할 때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하고 황홀하던 색이 섬세해지고 지쳐 아주부드럽게 흐려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틀 전만 해도주황색이던 꽃이 이제 노란색으로 변하고, 이틀 후면 얇게청동을 입힌 듯 회색이 됩니다. 쾌활한 농부를 닮은 청적색은 그늘에 가린 듯 서서히 창백해집니다. 지친 꽃잎 가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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