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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라곰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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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진짜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과 걱정을 남몰래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나니까.
주인공 넬처럼 나 역시 마흔 중반을 넘기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보처럼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 눈물에는 많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혼란과 슬픔, 반항과 체념, 두려움, 불안... 뭐 이런 것들이 제멋대로 나를 흔들었던 것 같다. 넬은 10대 때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30대 중반에 생의 마지막 나이를 들었었다. 기껏 살아봤자 10년.... 아직은 너무나 어린 딸아이 둘이 눈에 밟혔다. 엄마 없이 클 아이들이 제일 많이 걱정이 되었고,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을 그리워하며 슬픔에 잠겨 있을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부모가 되어 보니 자식 걱정, 부모님 마음이 먼저 읽혔다.
처음에는 죽음이 두려웠지만, 무작정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전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그 와중에도 가끔은 내가 어떤 식으로 죽음을 맞이할지 상상하곤 했다. 교통사고로 죽을지, 아니면 병에 걸려서 죽을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부터 떠올릴 때마다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또 있을까 스스로를 나무라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은 나에게 그리 나쁘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이왕 살 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보자!’라는 오기가 생겼다. 남들보다 시간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고, 너무 힘들 때 버티기보다 때로는 내려놓는 것도 괜찮다는 것도 깨달았다. 넬처럼 10년 뒤 반드시 죽을 거라는 확답을 자신하며 모든 것을 정리하며 마지막 순간을 대책 없이 호텔에서 맞이할 용기는 없었지만, 나는 나름대로 내가 떠난 후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했다. 육신은 떠나고 없지만 남겨진 내 물건들을 가족들이 정리하게 될 때 조금은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덕분에 더는 물건을 사 모으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내가 떠나도 오래오래 남아 많은 이들이 나를 기억해 줄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다. 이 모든 것이 맞물려 새벽 기상을 시작했고, 글을 쓰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하루를 살아도 남들과 같은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왜 그리 열심히 사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나에겐 오늘이 진짜 마지막일지 모르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이 속내를 모르는 이들은 참 별나다 싶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람에게 이 모든 순간은 낭비할 수 없는 귀한 시간이다.
이 책에서는 소피라는 친구와 주인공 넬, 그리고 그렉이 나온다. 이들 셋은 19살의 나이에 점쟁이로부터 자신들의 사망일을 듣게 된다. 그중에서 소피라는 친구는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불안했을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이 넬에게 치명적인 결정타를 날렸다. 자신도 예언처럼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사실을 믿게 만든 인물이다.
소피의 죽음은 어쩌면 스스로 자신이 죽을 자리를 찾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자신이 죽는다는 날에 굳이 절벽 다이빙을 시도하다니! 인간은 자신의 운명이 외부에 의해 정해졌다는 사실에 매우 거부반응을 느낀다. 자기 삶의 주인공은 당연히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절벽 다이빙은 자신이 예언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의 힘으로 죽는다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막상 한 달 뒤면 죽는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기분이 매우 불쾌하면서도 두려울 것이다. 그녀에게 넬의 38세는 대조적으로 아득히 멀게 느껴졌을 것이다. 소피는 죽음이라는 공포속에 매몰되기 싫었을까? 죽음을 비켜갈 수 없을 바에야 나는 죽음과 정면승부하겠다!라는 오기가 발동했던 것일까? 아니면 점쟁이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그 누구보다 지옥처럼 느껴졌을까? 결론적으로 소피의 죽음이 넬에겐 예언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다.
책의 제목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넬은 예언했던 날에 죽지 않았다. 그녀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은 헤일리라는 친구에게는 기쁜 소식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어느 누군가에겐 확신으로, 그 누군가의 생이 환희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실체 없는 것들에 속아 소중한 시간을 쓸데없는 것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넬보다 그렉이 안쓰러웠다. 겉으로는 그런 것은 미신이라고 태연한 척했지만, 그 역시 예언을 듣는 순간 이미 삶의 중심에는 죽음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누구보다 오래 살아있어야 하는 인물이기에 노후가 걱정이 되었을 것이고, 더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부단히 애써야 했을 인물이다. 나는 미처 그렉의 고통을 생각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생을 이어가야 하는 부담감. 적당히 생을 부여잡고 있다가 적당한 때에 생을 놓고 가는 것도 참 복이다 싶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나는 그 100세라는 나이가 부담으로 온다.
이 책 한 권이 나를 즐겁게도 했다가 심각하게도 만들었다. 그저 한 편의 소설로 읽고 덮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생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 한 번쯤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넬처럼 아직 살아있다. 오직 지금이라는 순간을 나를 위해 치열하게 쓴다. ‘낼다움에 압도 당한다.’이 말이 생각의 대지 위에서 맴돈다. 그리고 나에게 말한다. “스스로 ‘나다움’에 압도당할 만큼 자기답게 인생을 살아라!”라고
넬이 죽음의 시간을 자신하며 저지른 만행들의 뒷수습 과정에서 일어나는 코믹한 요소들은 절로 웃음 짓게 했고, 오해와 상처로 얼룩진 가족과의 관계 회복하는 과정과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넬이 만나게 되는 삶의 행복, 그 감동에 은근히 뜨거워진 가슴을 느끼게 될 것이라 자부한다. 소설 속 빛나는 문장들이 가슴으로 들어와 별이 되었다.
@lagom.book 출판사에서 스페셜 커버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도서를 협찬받아 읽고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