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jooltac님의 서재 (jooltac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084411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06 Sep 2026 11:44:12 +0900</lastBuildDate><image><title>jooltac</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50844114377507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5084411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jooltac</description></image><item><author>jooltac</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데미지 - [데미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0844114/17344654</link><pubDate>Sat, 20 Jun 2026 02: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0844114/173446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139095&TPaperId=173446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10/60/coveroff/k21213909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139095&TPaperId=173446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데미지</a><br/>조세핀 하트 지음, 공경희 옮김 / 녹색광선 / 2026년 06월<br/></td></tr></table><br/>의외로 그 어느 부분에서도 화들짝 놀라지 않았다. 모든것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br/>1인칭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사건을 진행시킨다. 모든것은 꽤 담담하게 흘러가지만 그녀(안나)를 처음만나는 순간과 그녀와 함께하는 순간은 말 그대로 '타오른다'. 그러나 여러 사건과 아들의 죽음 등에 대해서는 놀랄만큼 건조하게 서술된다. 이렇게 주인공은 자신의 세계를 건설해 나간다. <br/>지나칠만큼 당연스럽게, 고루한/성공한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모두가 꿈꾸는 진정한 사랑(! 또는 자신의 생)을 만난다. 여기서 모든것을 다 던지고 사랑만을 쟁취할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것을 덮어두고 이전의 삶을 지켜나갈 것인지 선택의 갈래에서 사실 많은 소설과 같이 사랑을 선택한다. 아마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선택을 할 때, 영위해 나가던 삶은 산소처럼 익숙하기에 오히려 그 중요성은 잠시 흐려지고, 타오르는 태양같은 사랑에게 끌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음 적어도 나는 항상 그래왔던것 같다. 물론 모든 사랑이 그가 겪은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걸 버려 사랑을 선택한것 같다. 또는 반대로 나는 항상, 매 순간 사랑을 위해 모든걸 버리는 선택을 하는 것 같은데 다행이도 그 사랑이 보통 가족과 친구 등이어서, 나의 삶과 사랑이 크게 부딫히는 것이 아니어서 나는 아직 파괴되지 않았다. 각설하고,<br/>선택을 하는 그 당시에는 어렴풋이 이후의 결과가 걱정되기는 하나 아직 닥쳐오지 않은 무언가 이기에 우리는 모든것을 유예하고 싶은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은채 사랑을 선택한다. 나중에 모든것이 천천히 드러나겠지. 그러나 그 판결의 순간 이전까지는 그 사랑에 조금 더 탐닉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러한 안일함으로 우리는 모두 진실의 법정에 서게된다. 나의 선택은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어떤 이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고 어떤 이는 삶을 지속해나가지 못하기도 한다. 여기서 나는 안타깝게도 조금 느꼈다. 나는 모든것을 안고 죽을 수 없는 생존자가 될 것 이라는 사실을. 차라리 모든것을 멈추고 고통에서 빠져나오기 보다는 이 진득한 생에 들러붙어 마지막까지 구차한 목숨을 지속해 나갈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애스턴과 마틴의 선택을 할 수 없으면서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역시 태초부터 다르게 태어난 탓이겠지. 생존자는 그 굴레를 지고 살지만 죽은자는 모든것에서 자유롭다. 역시 자유는 추구미로 두고 모든것에 매여산다. 가장 궁금한 것은 애스턴과 마틴이 그러한 선택을 한 이유이다. 아마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10/60/cover150/k2121390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106011</link></image></item><item><author>jooltac</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진보에 반대한다 - [진보에 반대한다 - 희생된 진보의 새들은 연합할 수 있고, 우리는 소외를 거부할 수 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0844114/17322725</link><pubDate>Mon, 08 Jun 2026 00: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0844114/173227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135336&TPaperId=173227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40/92/coveroff/k1021353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135336&TPaperId=173227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진보에 반대한다 - 희생된 진보의 새들은 연합할 수 있고, 우리는 소외를 거부할 수 있다</a><br/>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우중몽 / 2026년 02월<br/></td></tr></table><br/>꽤 오래전에 읽기 시작했지만(!) 도저히 당시에는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잠시 놓아두었다 6월 3일이 참담한 지방선거 결과를 밤새 보다 이 책을 다시 잡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진정으로 새로운 세대가 진보담론에 동조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나는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정당이 '진보'라고 생각치는 않는다. 그러나 진보는 이미 자신이 거부하기로 한 것들에 대해 온몸으로 부딪히기는 커녕 이미 그 것이 되어가고 있다.<br/>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제는 단순히 좌파의 오래된 믿음이 전 지구적 파국에 일조하는 것 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진정한 변화를 거부하는 지배계층, 눈 앞의 이익(심지어는 이익도 아닌)에 눈이 멀어버린 피지배계층은 조선이나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도, 그리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요즘 망국에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이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하루하루 발버둥쳐 무언가를 조금 바꾸어 놓았다 생각해도 결국 바뀐것은 없고 모든것은 다시 제자리를 찾는것. 그러나 실은 이전보다 더 악화되기만 하는것. <br/>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팀플레이이고 이 팀플레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장서는 이가 천재적이거나 모든이가 자신의 욕망을 조금 접어두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 지금 나의 세계는 어떠한가. 모든 의지를 잃어가는 이 무기력함이 함께하고자 했던 이들에게 닥쳐온다. 그 이유는 같이하는 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조금도 뒷전으로 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젝은 (나와달리!) 멸망해가는 세계를 그대로 침잠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그는 "희망이 없더라도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운명 자체를 바꿀 행동을 수행함으로써 주어진 상황 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고 외친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2배는 훌쩍 넘은 나이의 지젝이, 나보다 세상의 절망을 곱절은 더 많이 지켜보았을 지젝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가 진정으로 침몰하는 세계를 구할 수 없을지라도 이러한 열정을 가진 이가 함께 한다면 한번은 더 눈감도 앞으로 나아가야하지 않을까?<br/>극우주의가, 극단적 이기주의가, 파시즘이 다시 득세하는 세상, 우리는 2차대전이 끝난 폐허보다 사상적으로 더 후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모든것이 파괴되었을 때 과거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으로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젝의 말처럼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야만 한다.<br/>나에게 이 책은 단순한 진보의 비판이 아니라 내일을 나아가게 하는 희망의 빛 한줄기를 비춰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40/92/cover150/k1021353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40928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