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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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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승호 씨의 인터뷰 북 시리즈 근작. (2013년 10월에 출간되었는데, 한 달 뒤 이 리뷰를 쓰는 시점까

 

지 두 권의 책이 더 출간되었다. 신작이라고 쓰기 애매하게 된 셈이다.) 이번의 인터뷰이는 전 경찰

 

대 교수 표창원 씨이다.

 

 

작년, MBC 해직기자 이상호 씨와 진행한 <이상호의 GO발뉴스>나 영화감독 양익준 씨와 진행했던

 

<렛츠 시네마 파티? 똥파리!>에서 전문 인터뷰어로서의 직능적 회의감과 현실적인 고민들을 적극

 

으로 토로하였던 저자는,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 올해엔 정말로 정력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사

 

정없이 날뛰는 인터뷰이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정봉주와의 <대한민국 진화론>은 그렇다 치더

 

라도, 두께에서 압도당하고 내용에서 한 번 더 압도당했던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이나, 전문적인 특정 분야에 접근까지 꾀해야 했던 정동영 씨와의 <10년 후 통일>, 이석연 씨와의

 

<페어플레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를 보면 그 활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오늘 소개하는 책인 <공범들의 도시>에서도 그러한 미덕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서문에 싣고 있는

 

기획 단계의 일화부터 그러하다. 저자는 인터뷰를 준비하던 도중 개인사에 관한 다른 인터뷰가

 

행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는데, 작년의 (저작물에서 연상되는) 그라면 아마 조금쯤 좌절

 

하거나, 혹은 이 프로젝트를 조용히 접고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갔을 것 같다. 그러나 2013 지승호는

 

전 경찰대 교수이자 범죄 전문가인 표창원의 직능에 주목하고 그와 관련된 깊은 내용을 준비하였다.

 

표창원 또한 언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정치, 문화, 사회의 보편적인 주제들에 대해 다소간 범박

 

한 의견도 섞어가며 발언하던 중 오랜만의 본인의 전공 분야를 만나 그 교양의 넓이와 고민의 깊이

 

를 마음껏 뽐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표창원의 전문성과 지승호의 활력이 만난 결과물이다.

 

 

 

2.

 

나는 이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 알라딘의 13기 신간평가단의 일원이고, 이 리뷰는 10월에 제공받은

 

이 책에 대한 숙제이다. 곧,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이 글 말고도 다른 신간평가단 분들이 작성하신 글

 

이 일단 여남은 개 보장되어 있다. 서로 면식은 없지만 같은 신간평가단으로 있기 때문에, 지난 몇

 

달 간 나를 포함해 함께 숙제해야 할 책에 그분들께서 다신 리뷰를 모두 읽어왔다. 그 때 생겨난 경

 

탄감과 신뢰감이, 갈수록 리뷰 쓰는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숙제를 안 내고 잠수하거나 읽지도 않고

 

아무 글이나 대충 써 내면 안 되겠지만, 무채 역할만이라도 제대로 하면 나는 성공이다.

 

 

비겁한 변명 같은 글을 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책을 읽으며 강하게 받았던 인상과 절절하게 떠

 

올랐던 생각은, 실제로 책의 내용과 큰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단 한 편의 리뷰를 써야 한다면 서문

 

이나 결론에서 가볍게 다루고 말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인터뷰이 개인에 대한 인상부

 

터 핵심 내용의 효율적인 요약, 지금의 정세, 그리고 보수의 역할 등까지 책과 관련된 생각의 줄기

 

들이 큼직큼직하게 이미 잡혀 있다. 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정도의 공감만 이

 

끌어 내도, 무채 역할은 할 수 있는 셈이다. 역시. 무채라고 같은 무채가 아니다. 광어 밑보다는 다

 

금바리 밑에 깔리고 볼 일이다.

 

 

 

3.

 

지금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이야기 하며 싸우지 않기란 지난한 일이다. 누군가의 편을 들거나 누군

 

가의 적이 되지 않는 것조차 하나의 편향성으로 지목되는 한 때이다. 그러나 표창원은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싸움을 하는 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같은 편이었던'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는 중이

 

기 때문이다. 한 시사프로에서 밝힌 바와 같이 17대 대선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이명박 후보를 찍었

 

던 그는, 6년 후인 지금 야권의 거대정당조차 '대선불복' 프레임 앞에서는 기가 죽을 때 '과정에 문

 

제가 있었다면 하야하는 것이 옳다' 라고 가장 소리 높게 외치는 이이다.

 

 

그 동인(動因)으로 그가 스스로 적시한 것은 '원칙'과 '정의' 등의 덕목이었다. 안정된 직장과 존중

 

받는 지위를 내던지며 시대에 가장 결핍된 가치를 현현한 그에게, 진보-개혁 진형은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보며 위태로움을 느꼈다. 그에 대한 지지 가운데에는 적실하게 그를 향한 것도 있

 

었지만, 보수 측을 자극하고 조롱하기 위한 도구로만 그를 소비하려 드는 전략 또한 분명히 있었다.

 

하나의 생물 같은 이 전략은 그의 가치가 떨어지면 다음 상품을 찾아 떠날 것이었다. 아울러, 그를

 

향한 열광조차 아주 현실적으로 말해 그의 안위를 담보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주로 SNS 등을 통해

 

말로 오고가는 그 응원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고 힘든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게는 해 줄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극우층의 협박이나 국가기관의 사찰까지는 막아줄 수 없는 노릇이다. 아주 작게 말하자

 

면 그가 있어 더 맛깔났던 '그것이 알고싶다'의 광팬으로서, 나는 그가 걱정됐다. 영웅화, 신격화된

 

인물의 비극적 결말은 이미 충분히 봤다.

 

 

 

4.

 

그러나 이 책 <공범들의 도시>에는 정의감과 환호에 도취된 어수룩한 영웅이 아니라, 묵묵히 체

 

중감량과 고된 훈련을 감내하는 파이터의 모습이 드문드문 드러난다. 이것은 특히 그가 현재 싸

 

우고 있는 대상인 국정원을 언급할 때에 직설적으로까지 표현된다.

 

일단 강해 보이고 싶었죠. 거대한 권력과 싸우고 있는 상태다 보니까 약한 모습은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약점을 보이는 순간 저들은 기고만장하고 우습고 짓밟고

싶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뭔가 나에게 저들이 두려워할 무기가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거든요... ...제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힘없는 일개 개인에 불과하고,

저들이 마음만 한 번 잘못 먹으면 훅하고 날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제가 인식하

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공포로 늘 자리했겠죠. (p337 - 338)

 

 

행동하는 양심이라지만, 그 또한 인간이다. 두려움이 없을 수 없다. 유난스런 강성 발언은 어찌

 

보면 '허세'의 일종이기도 했다. 앞서 내가 했던 걱정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읽으며

 

연민보다는 우려의 심정이 더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유난스런 정의감을 가진 사람들

 

이 잃기 쉬운 중요한 덕목이 있었다. 바로 생존과 승리의 전략이다.  

 

 

(국정원과의 싸움에서) 직접적으로, 직설적으로 부딪히는 돌직구적인 모습도 보였지만,

저는 나름대로 고도의 심리전도 병행해 왔습니다.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하고 혼자 싸우

는데 미련스럽고 우직하기만 해서 되겠습니까? 그건 아니거든요. 충분한 고도의 심리전

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다시 제가 안정된 모습, 차분하고 분석

적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보시게 될 거예요. (p335) 

 

 

신념만으로 투쟁을 하는 이는 요절하고 자위만으로 투쟁을 하는 이는 변절한다. 그러나 그에게

 

서는 끈덕지게 살아남아 신념을 지키겠다는 단호함이 느껴진다. 구체적으로 자기 좌표 확인과

 

앞으로 선점해야 할 위치에 대해서도 그는 명징한 인식을 보여준다.

 

 

저를 반대하는 분들이 최악의 선동가라는데, 일부 맞기도 해요. 제가 순수하게만 해온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던졌을 때 여론이 제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언론이 반응을 하고,

제가 혼자 외롭게 고립돼서 저들이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을 것인가.

늘 첨예하게 계산도 하고, 계획도 하고, 그에 따른 레토릭 수사도 준비하고, 글도 고민

해서 쓰고, 그렇게 해왔던 거죠. 제가 그렇게 탄압받거나 내쳐지거나 피해 입고, 불쌍

하게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늘 대중의 관심사에 있는 것이었어요. 대중의 관심 속

에 있는 이상 함부로 못 건드리거든요. 그렇게 건드리면 저는 더 큰 투사가 되고, 저

이 더 불편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반대편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제가 정치를 해서 힘이 생기는 것이라서)

저는 계속 혹시 뛰어들까, 혹시 저 사람이 정치권으로 갈까 하는 의혹과 비난이 나올

수 있는 한계까지만 나아가고, 그 직전에서 멈추는 거죠. 대신에 제가 정치권으로 들

어가는 순간, 제 순수성과 상품 가치 내지는 특별함, 대중의 관심, 이런 것들은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p 345)

 

 

원칙이나 정의와 같은 원론적 덕목을 거듭 발언하기 때문에, 선하기는 하지만 혹 나이브한 사람

 

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곧 또 하나의 곧은 목소리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했던 우려는 싹 날

 

아갔다. 생각해 보면, 범죄심리 전문가이자 가장 유명한 프로파일러인 그는 사회적 인생의 거의

 

전부를 바쳐 대화와 행동의 전략에 관해 고민해 온 사람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필연의 산물이라

 

고 해도 좋다. 우리는 이 사람을 꽤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5.

 

물론, 지금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영원할지는 미지수이다. 공정 대 반공정의 프레임 상에서 지

 

금 그는 진보-개혁 진영과 비슷한 지점에 서 있지만, (실현되기는 지난하나) 진정한 진보 대 보수

 

의 프레임만으로 토론을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지금 그의 지지자들은 자신과 그 사이의 간격을 새

 

삼 깨닫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언급이 그렇다.

 

 

(일베 현상에 대해 말하며) 일베 현상은 절대로 보수가 아니에요. 보수가 뭔지도 몰라요.

상당수는 그냥 반항 심리, 겉으로 깨끗하고 좋은 척 하는, 소위 말하는 진보적 지식인과

진보적 정치인에 대한 혐오와 반감으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해체

시키고 이념적으로 하려면, 정계 개편처럼 전체 시민들이 다시 한 번 논의를 해서 정말

보수인 사람은 보수 쪽으로, 진보인 사람은 진보 쪽으로, 중도인 사람은 중도인 쪽으로

 나뉘면 좋을 것 같아요. (p417)

 

 

여기에서 그는 일베를 '해체시켜야 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발언의 바탕에는, 사회에는

 

떤 목소리들을 '해체'시켜서라도 존중해야 할 모종의 '가치'가 있으며, 또 그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해체'를 행할 수 있는 모종의 '권위'가 있다는 인식이 숨어있다. 예시로 들어지는 일베가 워낙

 

극단적이기 때문에 암묵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만, 이 인식은 분명 완고한 보수주의자의

 

그것이다.

 

 

시민들이 스스로의 사상적 좌표를 밝히면 좋겠다는 의견도, 물론 그 의도는 불필요한 정치적 정쟁

 

종식시키고 건강한 공존 상태를 형성하고자 하는 선한 것이기는 하지만, 과정에 수반될 수 있는

 

폭력성에 대한 고려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아주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좋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다소간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인식까지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관

 

/세계관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기도 하다.

 

 

 

6.

 

다시 한 번 물론. 위의 논의는 '진정한' 진보 대 보수의 구도가 도래하는 세상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그는 한동안 진보의 여러 입 중 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어떤 입에 비해서는 덜 세고, 어떤 입에 비

 

해서는 덜 화끈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의 나는 확신한다. 이 입은, 그 몸에 탈이 없는 한 가장 오래 살

 

아남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독후감의 결론. 표창원에게 소식과 규칙적인 운동을 요구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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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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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은 판형, 짧은 분량, 명징한 메시지의 힘을 빌어 이 책의 본문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오늘날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수준이며 이는 수치로 검증 가능하다.

 

둘.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일반적 구조로부터 발원하는 것이다.

 

셋. 아울러 구조는 그러한 구조로부터 이득을 얻는 계층 뿐 아니라 손해를 입는 층에 의해서도 견고하게 재구조화된다.

 

넷. 이러한 재구조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에는 경제적 손해 뿐 아니라 자존감의 추락과 같은 정신적 손해, 신뢰나 연대와 같은 무형의 자산이 손실되는 사회적 손해 또한 포함된다.

 

 

 

 

2.

 

고급스러운 하드커버와 깔끔한 표지디자인,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판형이 독서의 출발을 가볍게

 

한다. 잘 구획된 챕터와, 수치와 논리를 통해 증명되는 간명한 메시지 또한 이 책의 특장점으로 꼽

 

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적어도 이 책의 기획 의도에 공감하고 접근한 독자에게는 그닥 새로운 것이 아닐

 

수 있다. 세계적인 화두이며 당장의 내 삶에도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위에 요약한 바

 

와 같이 그것을 다루는 내용의 구체는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일상적 담화의 소재로까지 내려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단견이지만, 나는 독서의 과정에서, 충격적인 수치나 엽기적인 상황의 소개를 통

 

해 이러한 내용들을 재차 삼차 활자로 확인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의식을 박제화시키는 부작용은 있

 

지 않을까를 의심하기도 했다.

 

 

 

3.

 

그러니까 이 책에 대한 감상은 '중요하지만 뻔하다'와 '뻔하지만 중요하다' 사이의 어딘가에 놓여질

 

것 같다. 단, 논의의 과정에서 자존감의 추락이나 신뢰, 연대의 상실과 같은 비계량적 요소들을 경제

 

성장과 같은 구체적 요소와 등위로 비교를 시도한 것은 눈여겨볼만한 점이다. 저자가 지적한 바와 같

 

이, 계량적 요소만을 바탕으로 하여 논의나 사고를 하게 되면 경제성장이나 소비 등을 미덕의 자리에

 

서 끌어내리기가 어렵다. 다소간 자의적이고 허황되어 보일지라도, 비계량적인 요소들을 거듭 객관

 

화시켜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그나마 남아있는 선택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매

 

일같이 이 사회의 질서를 스스로 재구조화하고 있는 개인이 위와 같은 과정을 혼자서 이뤄나가는 것

 

은 지난한 일이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상황을 '파국'으로 가는 길이라 표현한다.

 

 

 

4.

 

심상한 요소를 들어 책의 내용에 트집을 잡고 명확한 결론이 없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

 

다. 그 논리 게임의 과정은 작은 쾌감을 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가 전달하려 애쓰고 고민하였으나

 

해결하지 못한 그 문제가 바로 내 문제라는 생각을 해 보면 섬뜩한 기분이 든다. 일독의 가치는 분명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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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없는 에세이 -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 함께읽는책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1.

 

길지 않은 서양 철학사의 독서에서, 나는 이렇게나 상냥한 책을 만나본 적이 없다.

 

 

이 책의 상냥함은 조지아대학교의 사학과 교수인 커크 윌리스의 2009년 판 서문에서부터 전투적으

 

로 육박해 온다. 양 철학사 개론서 몇 권의 끄트머리에서 버트런드 러셀의 이름 정도나 몇 차례 접

 

해본 것이 전부인 나에게는, 건조하고 딱딱한 논문 식의 문체, 혹은 그 감동의 깊이를 짐작하기도

 

어려운 찬사의 문체로나마 연대기나 활동, 사상 중 하나 만이라도 설명해 주는 서문이 있다면 감읍하

 

며 받아들여야 할 첫 디딤돌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런데 15페이지의 짧은 분량에서, 커크 윌리스는 자

 

연인 버트런드 러셀의 연표, 사회인 버트런드 러셀의 종횡무진하는 이력, 그리고 지성인 버트런드 러

 

셀이 남긴 사상과 그 영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연표와 사회적 이력을 구성하면서 그가 맺은 인적 관계망과 사회의 평판

 

등을 기준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전직 총리의 손자이자 백작 작위 계승권자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는 철학과 논리학 등의 논문으로 초기의 성공을 이루어냈으며 제자로 T.S. 엘리엇, 루트비히 비트겐

 

슈타인 등을 두었다는 것 등은, 간단하기는 하지만 그가 갖는 스펙트럼의 범위가 아주 넓을 것이라

 

는 마음의 준비를 하기에는 충분한 정보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조국인 영국의 참전에 반대하였으며

 

그로 인해 한편으로부터는 배신자로 경멸을 받고 한편으로부터는 지성으로 추앙을 받았다든지, 2차

 

세계 대전 이후로는 조국에서 가장 큰 존경을 받았으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든지 하는 사실로

 

는, 개개의 말단까지는 짐작할 수 없으나 그의 사상들에 공유된 기본적 세계관의 냄새 정도는 맡을

 

수 있게 해 준다.

 

 

아울러 커크 윌리스는 결어부에 이르러, 길이도 제각각이며 각기 상당한 시차를 두고 쓰여진 글의

 

모음인 이 책은, 단순한 선집으로서 아니라 그가 일생을 추구하였던 '진보에 대한 확신', '지성을 추

 

구할 자유', '민주주의 정치' 등의 가치를 반복적으로 재확인할 수 있는 계기라고 그 가치를 평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전문적 직업인으로서의 철학자들이 버트런드 러셀의 지엽까지 낱낱이 장악하고자

 

읽는 전공 서적이 아니라 오히려 버트런드 러셀의 초입자들이 택할 수 있는 진입로 가운데 가장 넓고

 

확실한 길이라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도 잘 모르는 판에 커크 윌리스가 누군지는 더더욱이 깜깜이

 

지만, 그래도 어딘가의 누군가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때에는 일말의 진실이 들어 있을 것이다. 일

 

단이지만 그래도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2.

 

그리고 시작되는 버트런드 러셀의 상냥함의 메인 디쉬. 책의 본문은 총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양 철학사에 대해 초보적 지식이라도 구비하고 있어야 조금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1장 '이 모든

 

게 정치와 무슨 상관인가?'정도를 제하고 나면 나머지는 언제의 누구라도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

 

는 명제들을 다루고 있다. 왜 철학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철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2장

 

'초보자를 위한 철학'이나 교사에게 요구되는 본질적 자질과 그것을 저해하는 요소 등에 대해 탐구

 

하는 8장 '위대한 스승이 되려면' 등이 좋은 예이다. 그 외의 장에서도 평화, 신앙 등 누구나 한 번쯤

 

은 생각해 보았을, 혹은 생각해 보지 않았더라도 지금부터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재가 '난무'하

 

며 출연한다. 심지어, 9장과 10장의 제목은 '인류에 도움이 된 관념들'과 '인류에 해를 끼친 관념들'

 

이다. 여기에서는 그의 말대로 도움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명하는데부터 시작하면 된다. 책을 읽을

 

사람들에게 생각의 출발점과 방향을 이토록 상냥하게 잡아 주다니.

 

 

 

3.

 

여기에 더욱 독서의 맛을 돕는 것은 저자의 유머이다. '여는 글'을 부분 인용해 본다.

 

 

지난 15년 동안 이런저런 상황에서 쓴 다음의 에세이들은 대부분 투쟁의 기록으로서, 그 목표는 이제껏 우리의 비극적인 세기를 특징지었던 교조주의가 좌파에서도 우파에서도 성장하지 못하도록 어떻게든 막는 것이었다. 간혹 경망스러워 보이는 글이 있을지언정 원래의 목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진지했다. 경망스럽게 쓴 까닭은 엄숙하고 오만한 자들을 상대로 더욱 엄숙하고 오만하게 싸워봤자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p23)

 

 

'엄숙함'과 '더욱 엄숙함'은 피아구분이 어려우므로 그 대칭항인 '경박함'을 택했다는 이 언술은 그

 

논리 상의 전복 때문에 무의식적인 웃음을 유도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 안에 교조주의의 본질과

 

'적'을 상대하는 전략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 유머는 단순

 

한 언어적 습관이 아니라 투쟁과 논설에 기반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본격적으로

 

주제를 다루는 본문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책에 실린 에세이는 '비합리', '전쟁', '교조주의'와 같이 당대에는 거대한 영

 

향력을 행사하던 관념을 상대로 한 투쟁의 기록이다. 저자로서는 이에 맞서기 위해 사력을 다 하고

 

있었을 터이지만 일반 독자들이 그 문제의식과 열정의 크기를 모두 공유하는 것은 무리이다. 일단 중

 

요한 것은 '함께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고, 이 때 '적'의 본질을 적시하고 그에 대한 비유, 조롱을

 

통해 이해를 심화시키는 '유머'는 큰 힘을 발휘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 전략이 가장 빛을 발하고 있

 

는 부분은 349쪽부터 5쪽에 걸쳐 실려 있는 '스스로 쓴 부고'인데, 분량이 길지 않으니 이 부분은 직

 

접 읽어 보시길 권한다.

 

 

 

3.

 

메인 디쉬가 소문난 집에 후식까지 이름이 나는 것은 만나기 어려운 일이다. 번역서의 마지막에는

 

체로 옮긴이의 글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서 독자가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내용은 번역을 맡게 되

 

는 과정의 신이함, 번역을 하는 과정의 지난함, 그리고 최초의 독자인 번역자의 독후감과 가족에 대

 

한 감사 등이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어려운 글이지만 다른 언어로 쓰여진 책을 한국어로 접하

 

게 해 준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옮긴이의 글'에서까지

 

유감 없는 상냥함을 떨치고 있다. 번역자인 장성주는 이 책의 의의에 대해 '길게 얘기하려' 했으나

 

커크 윌리스에게 '선수를 빼앗겼'음을 순순히 인정하고, 책에서 언급된 버트런드 러셀의 어떠한 '문

 

적 주장'이 그 후 어떠한 경과를 가졌는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버트런드 러셀을 읽고자 하는 사

 

람에게는 러셀이 직접 집필한 본문의 어떠한 내용에 비해 봐도 결코 그 중요성이 뒤지지 않는 정보이

 

다. 그 저자에 그 역자,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부분이다.

 

 

 

4.

 

한 차례의 독서 만으로 그 내용을 완전히 장악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는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무척이나 즐거웠고 또 버트런드 러셀의 다른 책들과 이 책이 속한 시리즈인 '철학자의 휴일' 시리즈

 

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탓인지,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보니 처음 볼 때에는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던 표지 그림이 잘 데워진 정종이 담긴 술잔 같아 보인다. 추운 겨울이라면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도 받아들고 싶을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 입문 뿐 아니라 철학의 입문을 바라는

 

사람에게 건네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0.

 

수상한 시절이라 겁이 나지만, '미국'의 대척점으로 호명된 '소련'의 현실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

 

여기'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겹쳐 보였다. 아전인수 격의 망상인지 옛것을 배워 새로운 것을 깨달

 

은 것인지, 책을 읽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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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본 속임수와 자기기만의 메커니즘
로버트 트리버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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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사람에게 추천을 하는 글이니 부끄럽지만 자기고백은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나는 과학 도서를 거의 읽지 않는다. 화제가 되는 베스트셀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과학 도서를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 쓴 과학 도서 독후감이다. 새 독자층을 과학 도서로 유입시키려는 편집자에게는 소소한 지침이, 이제야 과학 도서를 좀 읽어 보려는 동지들에게는 나만 답답한 게 아닌가봐, 라는 동병상련의 위로가 될 수 있겠지마는, 기왕에 과학 도서들을 섭렵해 왔던 독자들에게는 거의 쓸모 없는 글일 수 있다. 감안해 주시라.

 

 

2.

 

이 책은 진화생물학자인 저자가 '자기 기만'이라는 주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탐구하고 현실 세계에 적용시켜 그 효용과 명암을 증명해 낸 결과물이다. 책날개의 소개에 의하면 저자의 최신작이라 하니, 오랜 시간의 공력이 활용된 유의미한 저작이라 하겠다.

 

그런데 읽고 난 뒤의 나는, 모르겠다는 생각만이 강하게 들었다. '살아 있는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라 하고, 유명 번역자가 그의 이름을 보고는 '내용을 보지도 않고 하겠다'고 했다 하며, 리처드 도킨스가 적극 추천한다고까지 하니, 내용에 가 닿지 못한 것은 오롯하게 내 집중력과 지성의 한계 탓일 것이라는 자책의 심정도 금할 수 없었다. 14장에 달하는 전체의 내용을 한 차례 브리핑하는 1장을 다시 읽어 봐도, 독서를 시작하며 제일 먼저 읽은 내용이고 또한 방금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읽어 왔던 내용의 요약인데, 전혀 새로운 글처럼 보인다. 책장을 덮고 'The fooly of fools'라는 원제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의 추락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3.

 

그래서 나는, 일단 '왜 몰랐을까'부터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어느 부분이 어떻게 어려웠는지, 어느 부분에서 집중을 할 수가 없었는지, 어느 부분이 불만이었는지 등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나면 재차 독서할 때나 앞으로의 과학 도서 독서에 분명 변화가 있을 것이다.

 

첫번째로 눈에 걸렸던 것은 이따금 등장하는 번역투의 문장이었다. 속속들이 등장하는 과학 개념어들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채, 그러니까 당연히 텍스트의 맥락도 다 잡지 못한 채 번역투의 낯선 문장을 만나게 되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지 즉각적인 추측이 무척 어렵고, 그렇게 멈칫하는 잠깐의 사이에도 흥미는 급격하게 식곤 했다.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왜 의식적으로 거짓을 만들어내기 위해 받아들인 정보를 수정할까?'라는 문장을 보자. 맥락을 한 손에 쥐지 못한 채로 이 문장을 접하면, '의식적으로'가 '만들어내다'에 걸리는지, '받아들다'에 걸리는지, '수정하다'에 걸리는지를 고민하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린다. 어떤 동사를 수식하는지에 따라 문장의 함의는 꽤 현격한 차이를 갖는다. 각각의 뜻을 추론하고 원래의 맥락과 짜맞추어 보아 어떤 것이 맞는 것이었는지를 골라내는 과정은, 저자나 책, 혹은 설명하고 있는 개념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다면 즐거운 게임이 되겠지만, 단순한 지적 호기심 정도로 접근하는 이에게는 하나의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로 눈에 걸렸던 것은 논거로 취하는 사례의 광대한 폭이었다. 저자가 언급하는 바와 같이, 기만은 은밀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관찰하고 탐구하기 매우 어려우며, 그 중에서도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채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은 그 실재와 효용을 증명해 내는 데 있어 더욱 엄밀한 과정을 필요로 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이미 이름난 실험과 이론 등을 통해 논리를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그저 하나의 주장을 다른 주장의 근거로 삼고 그것을 또 다시 다른 주장의 근거로 삼는 진행도 눈에 띄며, 자세한 제반 설명이 동반되지 않은 본인의 특수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논증을 펴는 시도도 보인다. 저자 스스로 '과학적으로 확정적인 것'과 '도발적이지만 확실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고 하였으며, 또한 내용 중 일부가 틀리더라도 곧 수정되어 '더 심오한 자기기만의 과학으로 발전할' 것이라 선언함으로써 비판적 독해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지만, '틀릴 각오가 되어 있다'와 '틀려도 관계 없다' 사이에는 분명 유의미한 간극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엄밀함에 빠져 큰 줄기를 잡지 못하는 것도 학자에게는 경계할 바이나 과감하며 논쟁적인 주장일수록 그 근거는 될 수 있는 한 객관적인 편이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세번째로 눈에 걸렸던 것은 낯선 목차 구성이었다. 이것은 특히 서양의 과학 도서에서 흔히 보이는 구성인데, 소챕터, 그러니까 '1장'이나 '2장' 안에 포함되어 있는 작은 챕터들 간의 상관관계가 일정하지 않다. 어떤 때에는 갑작스레 새로운 주장이 시작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하나의 예시를 따로 챕터로 분리하기도 하는데, 배치의 의도를 추측하여 다시 맥락을 잡는 데에도 꽤나 수고가 들어간다. 권두의 '차례'에 소챕터가 함께 기재되어 있었더라면 일단 일람하면서 흐름을 잡은 뒤 독서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의 '차례'에는 총 14개의 큰 챕터의 제목과 해당하는 장의 본문 중 인상적인 부분이 서너 줄 가량 인용되어 있을 뿐이다. 각각의 등위를 따져 다시 배치해 주면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겠다는 것은 고루한 독서법에서 나오는 불퉁거림인 것일까?

 

네번째로 눈에 걸렸던 것은 주된 테마인 '자기기만'의 적용 범위였다. 이 책은 총 14장 중 7장까지는 이론을 설명하고 8장부터는 실제 사례에 적용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책상 위의 글자들로 끝나지 않도록 현실 세계의 다종한 면에 적용을 시도하는 것은 이 책의 뛰어난 미덕이다. 그러나 그 범위와 방법은 앞서 이론 파트에서 설명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분야에 한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가 7장까지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특별한 변수를 갖지 않는 생물들과 인간이 자신과의 관계, 혹은 가족, 배우자와 같은 가까운 관계에서 어떻게 자기 기만을 저지르는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 사례'를 취하기 위해 저자가 택한 필드에는 항공 우주 재난, 역사 기술, 전쟁, 종교, 사회과학 등과 같이 특정 개인의 정서 만으로 전체를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 안에는 유의미한 해석이 분명 존재하며, 한 명의 학자와 한 권의 책이 모든 시각에서의 성찰을 보여 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의 이론의 틀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을 경계하지 말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4.

 

위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셨겠지만, 내가 지적한 내용의 대부분은 사실 과학 도서 독서계의 뱁새가 토하는 투정에 가깝다. 편린적 이해로도 저자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있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한 동인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른 뱁새 동지들에게는 위와 같은 지엽적 불만들이 장애물로 작용하지 않기를 기원하며, 나도 또한 곁에 두고 익숙해질 때까지 때때로 꺼내어 걸음마의 동반자로 삼고자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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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자유 -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
김종철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1.

 

서른이 넘은 뒤로는 인천의 본가에 갔다가 하루 자고 오는 일이 더욱 줄었다. 계획에 없이 갑자기 자게 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자리를 펴게 되는 것은 명절날의 전날이라든지, 혹은 처리해야 할 개인적인 약속이나 행정적인 업무가 심야나 오전에 있을 경우 등으로 한정되었다.

 

 

볼 일이 있기 전까지는 꼼짝 않고 자리라 생각하지만, 잠귀가 밝은 나는 눈을 감은지 얼마 되지 않아 밖이 아직 어슴푸레할 무렵, 잊고 있던, 그러나 십수 년 간 들었던 터라 삽시간에 귀에 달라붙는, 현관문 여닫는 소리에 잠을 깬다. 때는 아침 여섯 시. 아버지가 <조선일보> 가지러 나가는 소리이다.

 

 

그러니, 내가 세상에는 세 종류의 신문만이 있는데 <조선일보>를 보던 사람들이 조금씩 심심해지면 보는 것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인 줄로만 아는 유년기를 보냈다든지, <한겨레일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것이 스무 살 넘어서의 일이라든지 하는 것은, 사회 일반의 기준으로 본다면야 무식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일이지마는, 나 스스로는 눈 딱 감고 면죄부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중동'이라는 단어를 거침 없이 말할 때마다 오래된 선배들의 얼굴 한 귀퉁이가 어두워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도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그래도 동아는...'이라는 말을 들은 것은 이십대 중반의 일, 그 말의 뜻을 알게 된 것은 서른 근처의 일이었다. 바로 그 간극을 가르는 '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라는 이름, 약칭 '동아위'를 오랫동안 지켜온 초기 멤버이자 현재는 해당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철 씨의 신작, <폭력의 유>이다.

 

 

 

 

 

2.

 

이 책의 부제는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이다. 제목의 맥락대로, 이 책은, 시기로는 일제강점기부터 MB정부까지를 다루고, 주제로는 주로 신문과 방송을 위주로 한 언론의 역사를 엮었으며, 독자의 대상으로는 각각의 사건들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요하는 전문가들보다는 통사적 차원에서 개괄과 일람을 원하는 '젊은이'들을 상정하고 있다. 내용과 기획의도가 잘 반영된, 좋은 부제라고 생각한다.

 

 

650여 쪽에 달하는 책은 '부록'을 포함해 총 10개의 부로 나뉘어져 있다. 본문 격인 1 - 9부을 나누는 기준은 정에 따른 것이다. 집권 자체가 길었던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관한 3부나 가장 최근의 것이었던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 관한 9부가 상대적으로 긴 10개의 소챕터로 나뉘어져 있고, 나머지 부는 대체로 30쪽 정도에 걸쳐 3-5개 정도의 소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각 부의 소챕터들 또한 그 안에서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대개 첫 번째 소챕터를 통해 해당 정권과 언론과의 관계 양상, 혹은 해당 정권의 언론관 등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려준 뒤 다음 소챕터들에서 개별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우, 모범적이다.

 

 

내용은 부제에서 적시한 그대로 한국의 현대언론사이다. 손꼽히는 언론사들의 기원과 성쇠,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보여주었던 명암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저자가 '해직기자'임을 굳이 밝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 그 논조의 방점은 사주보다는 기자에, 보수보다는 진보에, '산업화'보다는 '민주화'에 놓여져 있다. 인과관계를 잘 얽어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사실들 자체도 흥미롭지만, 이따금 섞여들어가 있는 저자 본인의 경험도 훌륭한 양념 역할을 한다. 신익희의 사망 날 신문을 읽고 침통해 하는 아버지를 보고 의아해 했다든지, 백골단에게 맞아가며 쫓겨나고 동아투위를 건설했다든지, 감옥에서 동지들과 언젠가 만들 <한겨레일보>를 구상했다든지 하는 경험을 모두 직접 말해줄 수 있는 언론인이 이제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경외감을 가졌던 부은, 당시 인물들의 발언을 따옴표를 붙여 재구성했다든지 하는 식으로 약간의 드라마타이즈는 있지만, 본인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가져다 주었을 사건들을 언급하면서도 그 목소리가 대체로 담담하다는 것이었다. 회상과 슬픔에 사무쳐 왈칵, 하고 감정을 쏟아내었더라면, 그에게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마는, 그러나 이 책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젊은이'들은 갑작스런 격차에 당황하거나 혹은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본인이나 동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젊은이를 위한 것이라는 집필 의도를 잘 살린, 프로페셔널한 접근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은 담백한 문체이다. 수십 년 간 기자로 단련해 온 저자이니 이것은 예상 외의 소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600쪽이 넘도록 이렇게 강건하고 담백한 문장을 읽고 나니 마치 정갈한 집밥을 담뿍 먹고 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꼭 적어두고 싶다.

 

 

 

 

 

3.

 

그 귀한 집밥을 먹고도 간사한 아쉬움이 조금은 남는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단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앙탈 부리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미리 달고 이야기해 보자면.

 

 

첫째는, 근현대 정치사를 잘 모르는 독자라면 접근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두꺼운 분량 내에서 해당 시기의 정치적 상황 또한 설명해 줄 수 있만큼 설명해 주었고, 아울러 이 책의 방점은 언론사에 찍혀 있는 만큼 주객이 전

 

도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언급되는 역사적 맥락과 사건들을 기왕에 알고 있지 못하다면, 인과 관계를 온전히 파악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은, 근현대사는 쥐꼬리만큼 포함되어 있고 그나마도 선택 과목제와 집중 이수제로 국사 과목을 이수한 '젊은이'에게 건네는 책이 아닌가.

 

 

둘째. 아무래도 분량 상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려진 선택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진과 그림 자료가 단 한 장도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쉽다. 거론되는 사건들이 역사적인 중량감이 있었던 것들인만큼 남겨진 사진들도 무척 드라마틱한 것이었을텐데. 기자 출신이며 현재도 언론인이라는 저자의 특성 상 밝혀지지 못했던 사진이라든지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사진 등을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제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호기심 없이 600쪽 이상의 책을 읽는 것은 무척 고된 일일 것이다.

 

 

셋째. '언론사'라는 부제가 달려 있음에도 방송사와 신문사, 그 중에서도 특히 '5대 신문'이라고 하는 전국 단위 활자 일간지에 거의 대부분의 분량이 할애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이명박 정부 시대를 다루는 9부에서 <리셋KBS>나 <뉴스타파> 등이 단편적으로 언급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YTN, MBC, KBS의 파업과 관련된 연장선 상에서 설명되고 있을 뿐이다. 올드 미디어 내에서도 지방지, 주간지, 월간지 등 다른 카테고리의 언론에 대해 다루어 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인터넷 신문, 팟캐스트, 1인 블로그 등의 뉴 미디어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는 점은 무척 아쉽다.

 

 

위에 적은 세가지는 개인적인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이 책이 꼭 갖고자 하는 본질적 미덕만을 갖추는데도 600쪽 이상의 분량이 들어갔다. 그 이상의 시도는 분명히 상업적인 무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지금부터 적는 두 가지의 불만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비교적 사소한 불만인 첫번째는 '부록'의 성격이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 책은 9부의 본문과 '부록'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부록에서는 머독, 베를루스코니, 그리고 줄리언 어산지가 소개된다. 앞의 두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이들의 만행과 그 악영향을 다루고 있으며 어산지에 관해서는 그가 설립한 위키리크스의 성공 이력과 의의를 기록하고 있다. 언론의 역사를 정리하며 '나쁜 언론'과 '좋은 언론'의 실 사례를 제시했다고 하면이 시비를 걸 것까지는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해직 기자의 입장에서 썼다고는 하나 되도록 공정한 통사를 구성하려고 했던 본문의 의도와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부연하자면. 물론 본문 중에서도 '나쁜 언론'과 '좋은 언론'의 구분은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판단은 단 한 번도 명시적으로 선언되지 않으며, 충분한 근거를 제시한 뒤 독자에게 선택하도록 하거나, 혹은 선택할지 말지조차도 독자에게 넘기고 있다. 독자는 그 안에서 '좋은 언론'의 부침과 명암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한편 부록에서 선택된 사례들은 선연한 의도를 띈다. '공공의 적 머독과 베를루스코니', '위키리크스가 일으킨 언론혁명'이라는 소챕터 제목만 보아도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질문들이 얼마든지 덧붙을 수 있다.

 

'머독이나 베를루스코니는 언론이 권력에 영향을 미친 케이스인데, 권력이 언론을 억압하였던 대부분의 본문 내용과는 무슨 상관일까?', '사주 한 명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일까?', '폭스 뉴스가 나쁜 언론인 것처럼 종편 언론도 나쁘다는 것일까?', '위키리크스가 가진 절차적 부당함도 있는데 마냥 좋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일까?' 등등.

 

만약 '나가는 말' 정도로 해서 세 개의 사례를 간단히 언급한 뒤, 이 책의 집필 의도와 매끄럽게 이어주는 짧은 글을 썼더라면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질문조차도 여운의 형태로 잘 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부록은 약 55쪽으로, 본문 중의 웬만한 부보다도 길다. 무시할 수 없는 중량을 갖고 있는데 그 방향성이 본문과 달라, 불편한 채로 독서를 마무리하게 된다.

 

 

두번째는, 전체의 구성이 '권력 - 언론 간의 투쟁'의 틀로 짜여지다 보니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자본 - 언론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는 왜 의료민영화에 소리를 높였나, 와 같은 질문은 정치상황의 정보만으로는 답할 수 없다. 자본과 언론 간의 혼맥, 유착 관계와 같은 전통적 이슈 뿐 아니라 근래에 불거지고 있는 통신사 설립 운동, 네이버로 상징되는 포털과의 불화 등도 자본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언론사'를 재구할 때에는 빠질 수 없는 문제이다. 이 코드를 씨실로 삼는 후속작이 나온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개론서가 될 것이다.

 

 

 

 

 

4.

 

 

아쉬움과 불만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고 많았지만 그만한 애정의 반증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바랄 만한 책이니까 바람이 들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쓰는 것인데다 제공받은 책으로 정해진 기간까지 써야 하는 독후감라 부담을 갖고 시작한 독서였는데, 글이고 뭐고 나중 일은 난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500쪽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슬슬 끝나간다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했다. 흥미로운 주제에 탄탄한 구성, 담백한 문체를 갖춘 삼박자 모범생. 지금 당장 부담스럽더라도 일단 사 놓고 현대사 공부와 병행해 가며 읽으면 언젠가는 책값의 몇 배를 되돌려 줄 우량주. 언론이나 사회, 역사를 읽고자 하는 이에게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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