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토크라트 -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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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FTA가 체결되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서울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인 내 삶이 바다를 넘어 더 많은 연결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때, 현재의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구조를 담당하는 축 중 하나인 수퍼 리치에 대해, 관련된 한 권의 책을 더 읽는 것은 나쁠 일이 없다.

 

그러나 그 한 권이 이 책이어야 할지는 의문이다. 깊이는 얕고, 전략은 지루하다. 기껏 시간을 들여 한 독서이니 흠을 잡기보다는 작더라도 장점을 발견하자는 것이 지향하는 독서의 자세이지만 이 책을 두고서는 좋은 평을 내리기 어렵다.

 

책의 내용은 크게 분석과 사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분석 파트를 살펴 보자. 여기에서는 사회의 전체 부 중에 수퍼 리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만큼인지, 오늘날의 수퍼 리치는 주로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예전의 수퍼 리치들과 무엇이 다른지 등에 대해 분석한다. 수많은 이론의 요약과 의미있는 사례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사실 유럽의 수퍼리치가 미국의 수퍼리치보다 0.2% 많다'든지, '0.01%의 수퍼리치가 0.1%의 수퍼리치보다 엄청나게 많이 번다'는 정도의 경미한 자극이 있을 뿐, 대강의 내용은 '1:99'라는 구호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일통한다.

 

조금 더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 것은 사례 파트이다. 여기에는 빌 게이츠나 조지 소로스를 비롯해 이런 부류의 기사에서 언급되는 유명인들의 사례가 백화점 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수십 명의 인물이 다뤄지는 방대한 분량에 비해, 그들을 다루는 이 책만의 독창적인 시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사람이 이 정도 번대'나 '그 사람이 이 정도 쓴대', 그리고 가끔 '그 사람이 이런 좋은 일도 한대' 정도가 주된 내용으로, 아주 나쁘게 말하자면, 고급스런 가십더미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미안한 말이지만, 책날개에 실린 소개인 경제에 관한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는 사람이라면 인상적인 서두로 쓸 법한 몇 가지의 이야기를 건지는 성과를 거둘 수 있겠다.   

 

사실 이것은 제멋대로의 실망일 수도 있다. 책날개의 소개글에서도 그렇고, 저자의 서문에서도 그렇고, 이 책은 결코 플루토크라트를 둘러싼 자본주의의 구조적 폐해를 분석하겠다든지, 아니면 나아가 그 대안을 제시하겠다든지 하는 야심을 드러낸 적이 없다. 여러가지 정보와 시각을 두루 소개하고 알리겠다는 것 정도가, 드러나 있는 기획의도의 전부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왜 멋대로 이런 기대를 하게 됐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역시 반 이상은 표지에 빚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표지는 명백히 카스퍼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의 패러디이다.

 

 

 

 

 

 

이 그림은, 당대에는 '자연'으로 상징되는 외부 세계에 맞서 실력과 당당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근대 문명인의 표상으로 이해되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자연 경시를 비롯한 물질 문명의 각종 폐해의 단초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로도 사용된다. 구도, 자세, 배색 등의 요소들이 메시지에 충실히 복종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겹으로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그런 그림을 적극적으로 패러디했기에, 나는 <플루토크라트>의 표지를 보며 나름의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시점을 바꾼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늘날의 플루토크라트를 설명하는 데 18-19세기의 영국이나 미국 신사를 연상시키는 사람이 등장한 것은 어째서일까. 정복하려는 대상이 대도시인 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가 발딛고 선 것이 다시 자연인 것은 왜일까.

 

 

 

 

 

 

그런 오해는, 소박하기까지 한 원서의 표지를 그대로 써 줬더라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원서의 표지는 본문의 깊이와 넓이를 비교적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표지를 넘겨 독서를 시작했다면 범박한 주장이긴 하나 공들인 분석과 풍부한 사례의 인용에 부분적으로 후한 점수를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자도 독자도 원치 않았던 오해에, 그간 여러 권의 재미있는 독서를 빚진 출판사이지만, 나는 '열린책들'에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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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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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FTA가 체결되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서울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인 내 삶이 바다를 넘어 더 많은 연결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때, 현재의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구조를 담당하는 축 중 하나인 수퍼 리치에 대해, 관련된 한 권의 책을 더 읽는 것은 나쁠 일이 없다.

 

그러나 그 한 권이 이 책이어야 할지는 의문이다. 깊이는 얕고, 전략은 지루하다. 기껏 시간을 들여 한 독서이니 흠을 잡기보다는 작더라도 장점을 발견하자는 것이 지향하는 독서의 자세이지만 이 책을 두고서는 좋은 평을 내리기 어렵다.

 

책의 내용은 크게 분석과 사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분석 파트를 살펴 보자. 여기에서는 사회의 전체 부 중에 수퍼 리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만큼인지, 오늘날의 수퍼 리치는 주로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예전의 수퍼 리치들과 무엇이 다른지 등에 대해 분석한다. 수많은 이론의 요약과 의미있는 사례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사실 유럽의 수퍼리치가 미국의 수퍼리치보다 0.2% 많다'든지, '0.01%의 수퍼리치가 0.1%의 수퍼리치보다 엄청나게 많이 번다'는 정도의 경미한 자극이 있을 뿐, 대강의 내용은 '1:99'라는 구호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일통한다.

 

조금 더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 것은 사례 파트이다. 여기에는 빌 게이츠나 조지 소로스를 비롯해 이런 부류의 기사에서 언급되는 유명인들의 사례가 백화점 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수십 명의 인물이 다뤄지는 방대한 분량에 비해, 그들을 다루는 이 책만의 독창적인 시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사람이 이 정도 번대'나 '그 사람이 이 정도 쓴대', 그리고 가끔 '그 사람이 이런 좋은 일도 한대' 정도가 주된 내용으로, 아주 나쁘게 말하자면, 고급스런 가십더미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미안한 말이지만, 책날개에 실린 소개인 경제에 관한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는 사람이라면 인상적인 서두로 쓸 법한 몇 가지의 이야기를 건지는 성과를 거둘 수 있겠다.   

 

사실 이것은 제멋대로의 실망일 수도 있다. 책날개의 소개글에서도 그렇고, 저자의 서문에서도 그렇고, 이 책은 결코 플루토크라트를 둘러싼 자본주의의 구조적 폐해를 분석하겠다든지, 아니면 나아가 그 대안을 제시하겠다든지 하는 야심을 드러낸 적이 없다. 여러가지 정보와 시각을 두루 소개하고 알리겠다는 것 정도가, 드러나 있는 기획의도의 전부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왜 멋대로 이런 기대를 하게 됐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역시 반 이상은 표지에 빚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표지는 명백히 카스퍼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의 패러디이다.

 

 

 

 

 

 

이 그림은, 당대에는 '자연'으로 상징되는 외부 세계에 맞서 실력과 당당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근대 문명인의 표상으로 이해되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자연 경시를 비롯한 물질 문명의 각종 폐해의 단초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로도 사용된다. 구도, 자세, 배색 등의 요소들이 메시지에 충실히 복종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겹으로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그런 그림을 적극적으로 패러디했기에, 나는 <플루토크라트>의 표지를 보며 나름의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시점을 바꾼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늘날의 플루토크라트를 설명하는 데 18-19세기의 영국이나 미국 신사를 연상시키는 사람이 등장한 것은 어째서일까. 정복하려는 대상이 대도시인 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가 발딛고 선 것이 다시 자연인 것은 왜일까.

 

 

 

 

 

 

그런 오해는, 소박하기까지 한 원서의 표지를 그대로 써 줬더라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원서의 표지는 본문의 깊이와 넓이를 비교적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표지를 넘겨 독서를 시작했다면 범박한 주장이긴 하나 공들인 분석과 풍부한 사례의 인용에 부분적으로 후한 점수를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자도 독자도 원치 않았던 오해에, 그간 여러 권의 재미있는 독서를 빚진 출판사이지만, 나는 '열린책들'에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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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FTA가 체결되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서울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인 내 삶이 바다를 넘어 더 많은 연결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때, 현재의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구조를 담당하는 축 중 하나인 수퍼 리치에 대해, 관련된 한 권의 책을 더 읽는 것은 나쁠 일이 없다.

 

그러나 그 한 권이 이 책이어야 할지는 의문이다. 깊이는 얕고, 전략은 지루하다. 기껏 시간을 들여 한 독서이니 흠을 잡기보다는 작더라도 장점을 발견하자는 것이 지향하는 독서의 자세이지만 이 책을 두고서는 좋은 평을 내리기 어렵다.

 

책의 내용은 크게 분석과 사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분석 파트를 살펴 보자. 여기에서는 사회의 전체 부 중에 수퍼 리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만큼인지, 오늘날의 수퍼 리치는 주로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예전의 수퍼 리치들과 무엇이 다른지 등에 대해 분석한다. 수많은 이론의 요약과 의미있는 사례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사실 유럽의 수퍼리치가 미국의 수퍼리치보다 0.2% 많다'든지, '0.01%의 수퍼리치가 0.1%의 수퍼리치보다 엄청나게 많이 번다'는 정도의 경미한 자극이 있을 뿐, 대강의 내용은 '1:99'라는 구호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일통한다.

 

조금 더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 것은 사례 파트이다. 여기에는 빌 게이츠나 조지 소로스를 비롯해 이런 부류의 기사에서 언급되는 유명인들의 사례가 백화점 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수십 명의 인물이 다뤄지는 방대한 분량에 비해, 그들을 다루는 이 책만의 독창적인 시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사람이 이 정도 번대'나 '그 사람이 이 정도 쓴대', 그리고 가끔 '그 사람이 이런 좋은 일도 한대' 정도가 주된 내용으로, 아주 나쁘게 말하자면, 고급스런 가십더미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미안한 말이지만, 책날개에 실린 소개인 경제에 관한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는 사람이라면 인상적인 서두로 쓸 법한 몇 가지의 이야기를 건지는 성과를 거둘 수 있겠다.   

 

사실 이것은 제멋대로의 실망일 수도 있다. 책날개의 소개글에서도 그렇고, 저자의 서문에서도 그렇고, 이 책은 결코 플루토크라트를 둘러싼 자본주의의 구조적 폐해를 분석하겠다든지, 아니면 나아가 그 대안을 제시하겠다든지 하는 야심을 드러낸 적이 없다. 여러가지 정보와 시각을 두루 소개하고 알리겠다는 것 정도가, 드러나 있는 기획의도의 전부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왜 멋대로 이런 기대를 하게 됐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역시 반 이상은 표지에 빚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표지는 명백히 카스퍼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의 패러디이다.

 

 

 

이 그림은, 당대에는 '자연'으로 상징되는 외부 세계에 맞서 실력과 당당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근대 문명인의 표상으로 이해되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자연 경시를 비롯한 물질 문명의 각종 폐해의 단초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로도 사용된다. 구도, 자세, 배색 등의 요소들이 메시지에 충실히 복종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겹으로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그런 그림을 적극적으로 패러디했기에, 나는 <플루토크라트>의 표지를 보며 나름의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시점을 바꾼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늘날의 플루토크라트를 설명하는 데 18-19세기의 영국이나 미국 신사를 연상시키는 사람이 등장한 것은 어째서일까. 정복하려는 대상이 대도시인 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가 발딛고 선 것이 다시 자연인 것은 왜일까.

 

 

 

그런 오해는, 소박하기까지 한 원서의 표지를 그대로 써 줬더라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원서의 표지는 본문의 깊이와 넓이를 비교적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표지를 넘겨 독서를 시작했다면 범박한 주장이긴 하나 공들인 분석과 풍부한 사례의 인용에 부분적으로 후한 점수를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자도 독자도 원치 않았던 오해에, 그간 여러 권의 재미있는 독서를 빚진 출판사이지만, 나는 '열린책들'에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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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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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판사 '오월의 봄'에서 나오는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시리즈의 열세번째 책. 부제는 '새로운 젊은 우파의 생'이며 표지에는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라는 문장이 추가되어 있다.

 

 

 

 

 

이 책은 근래의 몇 년간 가장 많은 사회적 논란에 휩싸였던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약칭 '일베'를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얻어진 필자의 몇 가지 주장들을 함께 묶은 결과물이다. 책의 내용은 일베의 연원, 일베의 사적 기반과 정체성, 그리고 결론의 세 부분으로 크게 나뉜다. 다시 말해, '일베는 어디에서 왔는가', '일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일베가 아닌, 혹은 아니고자 하는) 우리는 어떻게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각각의 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세 부 모두 일베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접근하는 자세에는 차이가 있다.

 

 

 

 

 

1부 '일베와 그들만의 문화'의 필자는 키보드 앞에 앉아 있다. 그는 '1980년대 후반생'으로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흥망을 목격해 왔고 현재도 게임과 유머 등을 주요 컨텐츠로 하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이용자이다. 여기에서 그는 일베의 연원과 시초에 관련된 사건들 가운데 자신이 목격하고 인상적으로 인지한 바를 증언한다.

 

 

일베는 명확한 기획 의도와 집행 단계를 가지고 창립된 정부 조직이나 학술 집단이 아니다. 그 탄생과 진화에 주요하게 근거하고 있는 것은 재미, 친교, 유대감, 우월감 등과 같은 '감정', 혹은 '감성'의 우발적 발현이다. 가장 중요한 기점이 되었던 사건이나 발언, 또는 하나의 댓글은, 긴 시간이 지난 뒤 게시판에 남은 문자의 흔적을 그러모아 일베의 탄생을 학문적으로 증명하려는 어떤 연구자의 눈에는 어쩌면 너무나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라서 동세대로서 그 과정을 직접 체험하였던 저자가 재구의 형식으로 회상과 증언을 택한 것은 무척 효율적인 전략이었다.

 

 

 

 

 

2부 '일베의 사상은 무엇인가'의 필자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이제 그는 흥미로운 회고담을 마치고 현재의 일베란 어떤 집단인가에 탐구의 펜 끝을 갖다댄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베의 몇 가지 특징, 이를테면 잦은 은어 사용, 소수자 혐오 문화, 사실 관계 검증에 경도된 논술법, 자학과 조롱 등의 현상을 언급하고 그 각각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핵심에 접근해 간다.

 

 

 

 

 

3부 '일베와 한국의 정치'의 필자는 촛불집회가 끝나고 난 텅 빈 광장에 쓸쓸히 앉아 있다. 앞서 1부와 2부가 일베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일베를 혐오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를 뭐라고 분석했는지 궁금한 일베 유저 등 광범위한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이 3부는 '깨시민'도 아니고 일베도 아니고자 하는,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는, 비교적 축소된 규모의 독자를 위한 글이다.

 

 

명확히 정리하기는 아주 어렵다. 그들은 2002년의 월드컵과 촛불시위의 기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 한층 커진 집회의 주체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 집회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회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결집했던 것은 2011년 서울시장 선거부터 2012년 대통령 선거까지 이어지는 '나꼼수의 시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하는 축, 여전히 회의하는 축, 그리고 아직까지도 촛불을 들고 있는 축 등으로 분화되었다.

 

 

필자는 이 과정에 꼭 필요했던 것으로 '축제의 밤이 끝난 후에도 개인들을 연루시킬 수 있는 기획들'이었다고 평한다. '집회가 끝난 후 한데 둘러 모여서 집회의 소감을 발언하고 선후배와 경험을 공유하는 운동권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예시되어지는 이 방향성은, 거칠게 정리하자면 '연대'일 것이다. 휘발성 강한 쾌락이 있었을 뿐, 그 이후 '자유와 평등이 실질적으로 관철 가능한 집단들을 구성할 능력'을 기르지 못한 것이 의혹과 고민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런 능력을 조직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그러니까 촛불과 함께 들어졌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 '국가에 의탁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이상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3.

 

 

그러니까 3부는, 단지 일베에만 관심이 있었던 독자라면 다소 열없는 얼굴로 읽을 수도 있는 내용이다. 다소 갑작스럽다고 해도 좋을 이런 방향 선회의 이유로, 필자는 '시간낭비'를 꼽았다. 일베는 유사한 집단으로 간주되는 일본의 재특회와 달리 '구체적인 정치적 요구와 강령을 중심으로 결집'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일베는 오히려 그런 현실적 행동을 '결여한 채로 상대를 상처주고 비꼬는 방식을 지속'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의 영향력은 이미 최고점을 지났다는 것이다. 책이 출간된 이후의 한 인터뷰에서 필자는 일베가 이미 사양길에 들어섰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일베라는 커뮤니티의 검색 순위가 줄어들거나 서버 유지비가 부족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를 통해 한 차례 생생하게 발현되었던 몇 가지 속성들은 잔존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속성들을 바라보며 하나의 긴 선을 연상해 왔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 선을 뛰어서 넘어가면 지금보다 나은 무언가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을 넘어가는 데에는 물리적 시간, 자금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귀찮다'. 그 낭비와 고생을 한 끝에 무언가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두렵다'. 결국 선을 넘어 가서 얻게 된다는 것들도 따지고 보면 단기적인 쾌락이나 물질적 보상과 같은 당장의 쓸모를 주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선 이 쪽에 있는 것이 이익이다. 무서워서 넘어가지 못한다는 마음은 센 척하며 감춘다.

 

 

 

 

 

이 선은 작게는 이웃이나 동료와의 친목에서부터 진지함, 양심, 소수자에의 관용 등 내면의 문제 뿐 아니라 사회합의의 준수, 공동체 의식의 확립, 정의 실현과 같은 사회 일반의 문제까지를 포함한다. 옳고 좋은 것임은 듣배워서 안다. 하지만 일일이 힘을 들여 선을 넘어가는 것은 불편하고 귀찮다. 안 넘어가고 하고 싶은 대로 하잘 사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까 나는 이쪽에 그냥 있을 것이며, 그런 나를 그대로 인정해 달라고 말할 것이다. 다. 그런 나는 '병신'이다. 그러나 하기 싫다는 속마음을 감추면서 그 힘든 짓을 하고 있는 너도 병신이다. 따서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

 

 

 

 

 

이 주장에는 일단의 논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일베가 단순히 선을 넘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혐오의 권리'는 단순한 의사표현을 넘어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하나의 사상, 개념이 갖는 의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구체적 피해자에게 정신적 상해를 입히고 그의 사회적 관계망을 붕괴시키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게다가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그 공격의 대상이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 여성, 야당 등과 같이 권력 관계 상의 약자를 향해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는 우월감과 안온함의 쾌락을 동시에 느끼고자 하는 저열한 의도가 읽힌다. 귀찮음과 두려움으로 시작된 과정임을 감안해 보면 낙폭의 격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선 위로 한 발을 옮기는 일은 고단하고 피곤하다. 시간과 돈이 들고, 때때로 자괴감과 패배감을 안겨 주기도 한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선이 상징하는 바를 지키고자 했던 것은 그것이 (분명히 나를 포함하고 있는) 집단의 공동선에 기여하는 바이며, 아주 작게는 나 자신의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쾌락의 원동력이기 때문일 이다. 재미 없는 결론인 것은 안다. 하지만 인생이 순간마다 쾌감을 느끼라고 있는 것이 아님은 일베도 안다. '인실좆'인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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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추락 - 프로이트, 비판적 평전
미셸 옹프레 지음, 전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1.

 

'비판적 평전'이라는 말 그대로, 이 책은 프로이트의 이력을 밟아 나가며 그의 행적과 사상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곧, 기왕에 프로이트의 삶과 학문

 

에 대한 자세한 이해 없이 아주 간단한 인상만을 갖고 있었다면, 이토록 집요하고 성실한 비판

 

의 열기에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프로이트의 유명한 저서나, 혹은 팟캐스트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이트 읽기 등과 함께 접하면 저자의 의도와 열기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

 

약 700쪽에 달하는 내용에서 주요한 주장을 거칠게 정리해 내면 다음과 같다.

 

 

하나. 프로이트는 인격적인 결함을 지닌 존재이다.

 

 

- 그는 금전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데 별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상담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 그는 세속적인 명예를 강하게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명사'들의 모임에 끼지 못하거나 끼더라

 

도 존중받지 못하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 그는 자기 절제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불륜에 가까운 방탕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영위

 

하였으며, 건강에 치명적인 것을 알면서도 흡연을 멈추지 못했다.

 

- 그는 근친상간에 대한 뿌리깊은 열망을 갖고 있었다.

 

 

 

둘. 프로이트는 학문적인 엄정함을 지키지 못했다.

 

 

-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인류 전체로 적용시키려 하였다.

 

- 그는 종종 별다른 근거 없이 직관에 의한 추론으로 결론을 내곤 하였다.

 

- 그는 아주 간단한 신체적 생리 현상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몸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정신과

 

연결짓고자 하였다.

 

- 그는 자신의 주장 내에서도 논리적 일관성을 갖지 못했고, 그러한 점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하지 않았다.

 

 

 

셋. 그런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정한 전략을 사용했다.

 

 

- 그는 별다른 근거 없이도 확언적인 발언으로 주장을 마치곤 했다.

 

- 그는 학술적 용어보다는 문학, 철학, 신화학 등의 영향이 강한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 그는 신비술의 작동 과정에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고 있었고, 정신분석학에서 그것을 활용

 

하는 데 별다른 논리적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넷.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반론들도 프로이트는 학술적 토론이 아닌 전략적 대처로 피해갔다.

 

 

- 그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분석은 오로지 정신분석학을 체험한 이들의 것만이 가치 있다고 규

 

정하였다.

 

- 그는 자신에 대한 학술적 반론들도 반유대주의의 일종으로 치부하였다.

 

- 그는 환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더라도 언변으로 그 상황을 해결하였으며, 환자들의 고통이 일

 

시적으로 잦아들었거나 혹은 전혀 치료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도 치료가 성공한 것으로 발

 

표하였다. 특히 그가 남긴 정신분석학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들조차도 그 실상은 대부분 환자들

 

에게 별다른 효과를 갖지 못하거나 악영향을 끼쳤다.

 

 

 

다섯. 그런 프로이트가 세계적인 명사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본인 스스로가 '우상'으로

 

서의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는 기록들을 끊임없이 삭제하였으며 또한 후대의 전기 작가들이 그의

 

좋게 해석될 수 있는 면들만을 뽑아 우상화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기록이 속속 공개됨에 따

 

라 어두운 면들도 밝혀지고 있고,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는 기록들도 많

 

다.

 

 

 

 

3.

 

이 책을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책에서 단 한 문장만을 뽑아야 한다면 나는 460쪽의 '정신분석학

 

은 결국 그의 자전적인 모습의 발현에 지나지 않았다'를 택하겠다. 이 책의 주요한 주장은 결국

 

프로이트 자신이 많은 내적 결함을 갖고 있었고, 그런 결함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비과학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방법들을 동원하였으며, 그 과정을 통해 얻어진 일종의 방법론을 직관과 신비

 

론의 도움을 얻어 학술의 체계로 승격시켜 인류 전체에 적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문제적 인간 프로이트에 대해서 뿐 아니라 그가 창조해 낸 정신분석학에 대한 의혹이기도 하다.

 

연원과 형성 과정에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점철되었던 학문을 과연 학문이라 부를 수 있

 

을까.

 

 

문제의식의 제기, 요약, 비판 등이 성실하게, 그리고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프로이트

 

나 정신분석학에 대한 구체적 이해가 없이도 그 논리를 즐기는 재미는 일정 정도 보장된다. '우상

 

을 추락'시키는 비밀한 재미도 꽤나 쏠쏠하다. 그러나, 물론 한 책에 모든 책무를 요구할 수는 없

 

는 것이지만, 결국 해체와 회의에만 머물렀을 뿐 좀 더 발전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생각

 

거리를 남기지 못한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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