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적인 의학영역 보다는 일상적인 건강에 관련된 영어를 조금씩 접해본다. 지금 보는 책은 Jerome Groopman의 <How Doctors Think> 다.
















이 책은 의사들이 환자들을 보고 진단하는 방식과 과정에 초점을 맞춰, 학교에서 배울때, 수련의로서 경험할때, 전문의가 됐을때, 여러 환자와 전공분야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보통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도록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매번 전면에 배치하고 관련된 여러 입장과 결과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의사(잘 알려진 의사, 열심인 의사, 바쁘기만한 의사, 막 의사가 된 의사...)의 입장도 그려내고, 그런와중에 일반인이 겪는 건강과 병에 관련된 어휘들과 표현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예전에 속독연습할 때 봤던 그림이 많은 애들 책, 로알드 달의 <Matilda>에서도 어린이들이 하는 말 중에 놀리거나 감정표현할 때 몸과 관련된 말을 많이 쓰는 걸 보고, 되게 재밌게 느꼈다. 우리가 쓰던 말도 많이 등장하는데,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게' 똑같지는 않지만 거의 비슷한 표현이 있고, 코딱지 같은 말도 재밌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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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보는 방법을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생겼다. 소설이나 드라마들이, 예전처럼, 몰입도 있게 재밌는 시절은 지나간 것 같고(내 성격유형 영향이 큰 듯), 그래서 찾아서 읽거나 볼 일이 십년 정도 거의 없었던 거 같다. 영어 듣기나 말하기로 접근할 때도, 몇번 하다보면 손을 놓기가 일쑤였는데, 몰입될 일이 없었던 이유가 큰 것 같다.

어쨌든, 영어 읽기나 글쓰기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다 보니, 소설 읽기나 논증 읽기 때 하는 방식처럼 미드에 접근하는게 제일 괜찮아 보였다.

그러니까, 모르는 단어 찾기는 제일 나중에 하고, 드라마를 보면 대강의 스토리는 이해가 가는데, 크고 작은 여러 의문들이 생긴다. 등장인물 이름때문이기도 하고, 장소명때문이기도 하고, 결정적인 어휘나 문장들이 안들리고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다양한 이유에서 일어나는 의문들을 적어놨다가 계속 해결하면 된다. 그럴러면 자연스럽게 여러번 반복해서 드라마를 시청하게 되고, 의문을 해결할 때 쾌감이 쌓이면서 듣기가 향상될 듯 하다. 의문들이 거의 해결될 즈음이 그 에피소드를 그만 볼 때다.

내게 맞는 쟝르는, 이러한 의문들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는 수사물이었다. 액션과 잔인함이 주가 되지 않고, 탐정처럼 의문을 풀고, 용의자와 목격자와 밀고 당기는 심리싸움을 잘 잡아내 그리는 수사물이 당겼다. 멘탈리스트, 로앤오더, 로앤오더SVU 등이 후보였는데, 멘탈리스트는 등장인물과 상대악당이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해서 계속 보다보면 좀 지치고 물리게 되서 탈락이고, 좀더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로앤오더오리지널과 로앤오더뉴욕을 시즌1부터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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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뭐니 해도, <The Elements of Style> 가 빠질 수 없고, 조셉 윌리엄스 <Style> 도 꼭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Style 을 조금 줄인 <스타일 레슨> 도 있다.

















비교적 수십년전에 씌여진 Strunk & White 의 책도 좀 그런 경향이 있지만, 조셉 윌리엄스의 책이 특히, 너무 글쓰기에 통달하다보니 너무 다양한 쟝르의 글쓰기를 다뤄서, 오히려 좀 거리감이 생기는 문제가 (나에게) 생겼다. 영문글쓰기에 익숙지않은 사람은(혹은 멀티가 안되는, 한번에 하나밖에 안되는 사람은) 한 쟝르의 글부터 시작하는게 더 좋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된 <논증의 탄생> 이나, readings 까지 함께인 원서 <Craft of the Argument with Readings> 으로 영문글쓰기를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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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성격유형분류와 비슷한 거 같다. 외향성 심리학자와 내향성 심리학자가 성격유형을 분류할 때, 자신들이 잘 알고 깊은 이해를 한 성격유형은 자세히 상세히 많이 분류하고, 모르고 잘 이해안가는 성격유형들은 축소해 작게 분류하는 것처럼, 기능주의자들과 행동주의자들도, 자신들이 관심갖고 깊은 이해를 갖는 부분을 확대해 얘기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에델만도 그렇고, 많은 신경전공 학자들은 의식, 심적상태, 심적과정을 작게 놓고 얘기하길 좋아하는 거 같다. 















<빨강보기: 의식의 기원> 의 저자도 그런 신경전공학자들 중 일인인거 같다. '의식'이 주인공이 아니고, 의식을 일으키는 감각질을 주인공으로 삼은 인상이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 인정할건 인정하고, 혹은 모르는건 모른다고 하고, 자신이 펼칠 주장의 위치를 신중하게 만든 이도 있다. 코흐의 <의식의 탐구>가 그런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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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루는 것과 언어를 다루는 것은 너무나 넓은 범위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마음에서 언어가 어떻게 자리잡았을까하는 궁금증에 대답을 잘 시작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언어의 지칭이론을 둘러싼 논의일 것이다. 언어의 지칭이론은 언어의 의미론 방식 중 하나인데, 지칭대상과 지칭어 사이나 여러 관계를 통해 언어의 지칭이 얼마만큼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를 설명한다. 이 지점에서 그 '의미'에 상관없이 언어의 지칭성은, 마음과 대비되어 보인다. 마음에 대한 탐구의 역사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부터도 한참이지만, 마음 특유의 주관성이 일으키는 여러 어려움때문에, 앞의 언어의 지칭성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했다. 마음은 언어에서처럼 지칭할수 있는 직접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심적상태를 지칭할 수단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행동주의와 기능주의는, 그런 비지칭적인 마음의 성질때문에 등장하고, 그 명맥이 계속 이어져 온것 같다. 김재권의 <심리철학>에서 처음 행동주의와 기능주의를 접했을때는, 흔히 저자의 본격적인 주장에 앞서 과거의 유물을 간략히 다루는 줄 알았다가, 지칭이론에 관한 책을 보다가 단순한 논의들이 아니구나 싶었다. 이병덕의 <표상의 언어에서 추론의 언어로>은, 언어표현의미론의 두 방식을 대비하여 설명하는데, 지칭이론을 대표적인 상향식(bottom up)으로, 벽돌쌓기로 비유한다. 확실한 벽돌들을 생성해 확고한 의미론을 만드는 방식이다. 
















행동주의는 탄생배경에서부터 마음의 주관성을 배격함을 기치로 일어났다. 주관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외부로 드러난 행위만가지고 마음을 다루는 방식이다. 시작은 이렇지만, 관련된 논의가 진전되면서,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관점은 아니게 된다. Gilbert Ryle <The Concept of Mind>, Daniel Dennett <Consciousness explained> 처럼, 처음 보면(조금은 달라지지만 몇번봐도)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없이, 그때그때 대응만을 모아놓아, 순간순간 반짝임은 보이지만, 조금은 산만해 보이는 책들이, 행동주의자들의 방식이다. 마음의 비지칭성을 떠올리면, 행동주의도 어느정도 설득력을 갖춘 입장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일반독자가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결과다. 몇몇 진화심리론자의 글쓰기 방식도 유사하게 보인다. 아마도 진화의 방식이 행동주의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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