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한사상사 권1 상 - 주.진.한 정치사회구조 연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60
서복관 지음, 김선민 외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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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는 커녕 보지도 못했지만, 별 다섯을 줄 수 밖에 없다. ‘1995년 중국인성론사: 선진편‘ 이후 27년만에 나온 번역물 기대작. 번역은 이미 마쳤다던 선진편 나머지도 나왔으면 좋겠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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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하면 떠올릴만한 내용은, 존 듀이의 '실용주의', 경제정책으로 실용주의 노선, 일반인들에게는 경제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게 눈앞의 이익추구를 의미하는 거 같다. 


퍼스의 실용주의는 통용되는 이들 실용주의들과 멀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공유하는 특성은 있는데, 그 공유특성이 전제하고 있는 점은, 논리, 사유, 실재 사이의 연결이 생각보다 훨씬 더 엉성하다는 사실이다. 그 엉성함때문에 어느 정도 실용적인 사용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실용주의'다. 그래서 퍼스 본인은 자신의 실용주의는 일반 실용주의와 다르다고 언급하면서 철자를 일부 다르게 표현했다. 찰스 퍼스가 논리학과 수학, 물리학 교육을 아버지를 통해 철저하게 받은데 비하여 존 듀이는 이러한 이과적인 소양은 없었던 거 같다. 그런 차이가 이 둘의 '실용주의'를 가른 결과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엉성함을 파악한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는 거 같다.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언어철학은 그 엉성함 속에서 언어논리적으로 확실한 것을 철학의 대상으로 삼자고 할 수 있고, 후기는 그 엉성함이 언어의 원천이고, 언어의 유희로 형성되는 결과이기도 하다는 식이다. 

이 엉성함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거칠게나마 언급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속에 담긴 함의는 매우 깊고 넓어 보인다. 


비트겐슈타인이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프레게와 러셀은, 분석철학의 큰 원천줄기였던,  논리학과 수학의 기초와 토대를 향한 여정으로 유명하다. 그 결과물은 기하학처럼 명확하고 환하다.


퍼스의 실용주의에는, 위의 기하학같은 논리학과 유사한 방향도,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같은 유희를 통한 방향도, 그리고 '그 엉성함' 자체를 탐구한 방향도 있는 거 같다. 


하지만 <현대분석철학> 같은 개론서에 일부만 언급되었지, 잘 정돈되고 접근가능한 정도의 연구서 혹은 번역서로 만날 수 있는 찰스 퍼스에 관한 책은 잘 보이지 않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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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은 점글이 담긴 역경부분과 철학적인 해석이 담긴 역전부분으로 구성된다. 역전부분은 10익이라고 부르는 계사전 상하, 설괘전, 단전 상하, 상전 상하, 문언전, 서괘전, 잡괘전 을 가르킨다. 이들 부분은 전국시대부터 진한에 걸쳐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하지만 이들 글들은 독자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 이들 글에 나오는 소재와 내용들은 이미 주초에 역경이 형성된 후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에 계속된 점치기와 점풀이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된 것들을, 역전이라는 형태로 정리되고 연구된 것이다.

이들 내용은 춘추시대 주역점풀이에 관한 주역연구서에서 확실히 볼 수 있다.















춘추시대 주역점풀이 중에 <좌전>과 <국어>에 살아남은 내용이 상세히 고찰되어 있다. 이처럼 역경, 춘추시대점풀이, 역전 에 이르는 과정 중에 역전 10익이 자리잡기 바로 얼마전까지 그 자리를 경쟁하던 다른 역전내용들도 발견되었다. 발굴된 주역 출토 문헌은 대부분 역경 내용만 담겨있는데, 마황퇴 백서에는 계사전 상하를 포함한 역전 내용들이 많이 발굴되었다.
















그 중 <목화> 편과 <소력> 편은 10익에는 담겨져 있지 않은 내용으로 그동안 잊혀졌던 내용이다. 김상섭 번역의 백서주역으로 <목화>, <소력>을 처음 봤을 때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춘추점서역> 과 유튜브에서 '고대문명연구소' 정기포럼 중 <목화>편을 다룬 이승율의 강의를 한 번 듣고서는 그 문헌의 시대적 맥락이 보이면서, 그래도 좀 흥미로워 보였다.

춘추시대 주역의 점풀이에는 특별히 유가적인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철학적이라 할만큼 복잡한 내용보다는, 단순히 윤리적으로 좋은 행동을 하길 권하는 정도다.

그러다가 점차 고도한 윤리성으로 발전한다. 이 발전상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계사전에 실린 것처럼, 점치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하늘과 땅, 인간을 재현하는 점법에서 기인한 우주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다. 다른 하나는 점책에 나온 문구를 해석하고 그 문구에 다다르기 위한 인간의 도리를 구성하는 탐구다.

이승율의 강의에서는 유가의 두 얼굴이 '종도'와 '종군'이라고 전제하고, 선진시대 공자, 맹자, 순자 등이 '종도'를 추구하고, 진한시기에 전제정치를 지지하는 '종군'의 얼굴을 띠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백서주역의 <목화>편은 그 두 태도 '종도'와 '종군'이 혼재되어 있는 양상이라고 얘기했다. 그외 중국, 우리나라, 일본의 유가적 양상이 중국은 혼재, 우리나라는 종도, 일본은 종군 이 주도하는 경향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얘기들은 무척 인상적이었고 와닿는 것이 있었다. 그래도 <목화>편의 혼재양상은 이같은 종도와 종군의 혼재이기도 하지만, 점책 해석의 두 방향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우주구성에서 종도의 얘기가 나오고, 윤리탐구에서 종군의 얘기가 나올 수 있다. 


이 종도와 종군의 범주는 중국 청나라와 조선 사이의 도서, 출판 문화 차이를 낳기도 하는 거 같다. 메인은 출판의 중심은 청나라고 고증학같은 방향성을 갖고 있었고, 조선은 출판의 변방이고 그 학술이슈와 조금은 동떨어진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문화의 차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청나라는 종군에 가깝고, 조선은 종도에 가까워 다른 방향성을 갖는 거라고도 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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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연구도 무척 많은 방향과 연구방법이 있겠지만, 너무나 그럴듯 해보이는 기존의 상식이나 이해를 넘는 새로운 이해를 찾으면, 새롭게 재밌는 옛날 얘기를 찾은 듯 기쁘다.

예전시대 어느 시기건 널려있는 빈틈들을 그래도 본격적으로 파고드는 민속 연구들을 가끔씩 보는데 쏠쏠한 재미가 있다. 


조선시대 유학만큼 본격적이었던 고려시대 불교는 의외로 그 면모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거 같다. 그 중에서도 불교의례 연구는 더더욱 그런거 같다. 이전에 재밌게 봤던 신라불교에 관한 신종원의 책이나 밀교영향을 연구한 책에 이어, 본격적으로 고려 불교에 관한 것이라 연속성이나 일관성이 느껴져서 더 읽을만했다.

고려불교의례에는 신라시대에 이어 지속된 것도 있고, 인도불교의 영향,그리고 중국불교의 영향, 인도나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름만 같고 실제 내용은 큰 변화가 있었던 의례들도 많다. 
















의례연구이니만큼, 진한 속살을 느끼기에는 약했지만, 그동안 이름만 듣고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명칭, 유래, 원불전 등등 세세하고 짚고 확인해주는 검토작업은 인상깊었다. 고려시대 모든 불교의례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불교의례가 왕실의례에 가깝다는 내용도 획기적이었다. 의례에 참여하는 이들이 많은 수가 왕족과 일부 귀족, 고위관료에 한정되는 것이 우리 상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이런 왕실의례가 호국불교나, 통불교 같은 접근으로는 거의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신간을 내신지 좀 되는 구중회 님의 민속연구도 재밌는 얘기가 많다. 무당 중 접신하는 이들 말고도 책을 낭독하며 활동했던 이들에 대한 얘기, 오늘날 풍수지리와 차이나는 조선시대 풍수지리, 무녕왕릉 속속들이 탐구 등 생각지도 못한 역사의 조각조각들을 하나씩 연구대상으로 삼아 제시한다. 
















무녕왕릉이 백제시대 왕의 무덤이니만큼 왕의 장례에 관한 여러 의문을 제기하고 연구한 성과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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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참전에 열심히 읽었던 김재권의 책들을 다시 읽는 중이다. 


예전에 처음봤을 때는, 물리주의, 수반, 논리학적인 표현 등등 신선하고 신통한 재밌는 개념들을 재밌게 보기도 했고, 아무래도 논리학적인 표현으로 계속 진행되면 꼼꼼하게 못 쫓아가서 멍해지기도 하며 알아지면 알아지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읽었다.

처음보는 논리가 세세하게 어떻게 펼쳐지고 어떤 의미의 어떤 방향으로 논증을 쌓는지 살피느라 실제로 김재권의 심리철학이 얼마나 유효하고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잘 음미하지 못한거 같다.


요새 읽는 <물리주의>, <김재권과 물리주의> 에는 그 해석과 설명들이 충분히 담겨 있다.
















<물리주의>에서는 '거의 충분한 물리주의'에 대한 애정어린 복기로 시작하고, 뒤를 이어 김재권의 물리주의를 흘겨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다. 이 부분이 백미고, 찐이다. 김재권의 물리주의의 한계를 쉽게 지적하고 자신이 옹호하는 심적인 대상을 변호하는 논증들을 하나씩 각개격파하는 모습은 적지 않은 희열도 준다. 그런 와중에 심리철학을 둘러싼 여러 소동과 변천을 곳곳에 소개해서, 약간 옛날 이야기 듣는 기분도 있다.


어쨌든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생각해보게 되는 신체(물질)와 의식(심적인 대상) 간의 관계는, 자신이 깊이 생각해본 부분 말고는 너무 단순히 덮고 넘어가기 쉬워 그만큼 타협이 횡횡하고, 전문가들인 철학자들이나 신경학자들의 심리철학에도 그런 경향을 다소 볼 수 있는 거 같다. 

그리고 이 심리철학이 다루는 내용들을 가리키는 언어도, 일상용어와 혼재되어 그 가리키는 바가 얼마나 되는 건지 희미해지는 이유도 있다.


여러 입장들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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