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서적 속독하기는 몇해전 한바탕 유행을 탔던 기억이 난다. EBS에서도 한번 다뤘던 거 같다. 네이버 동호회에서 아마 분당천 이란 이름으로 속독강의를 하던 분이 수강생들의 열화와같은 성원에 힘입어 강의내용을 출판하여 거의 대박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분의 책은 <스피드 리딩>이다(2007년 책이니 벌써 5년전이다.)

 

 

 

 

 

 

 

 

 

 

 

 

속독에 관련된 여러분야를 속독에 꼭 필요한만큼만 추려서 만들어진 재밌는 책이었다. 독서속도를 올리는 세세한 기술은 넘어가고, 요는 같은 책을 속도를 올려가며 회독수를 늘린다는 것이다.

 

영문책 읽는 속도가 내용이해를 가로막을 만큼 늦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독서속도를 올리는 것이 일반 독자를 위한 스피드 리딩의 목적이다. 우리글로 읽을 때는 전혀 문제가 안되는 다양한 일들이 영문 독서에는 방해물로 작용한다.

 

말이 나온 김에 영문으로 읽든 국문으로 읽든 제대로 된 독서는 어떤 것일까? 독서법 안내책들은 수도없이 많지만 누가 뭐래도 고전은 모티모 애들러의 책이다. 독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는 독서법을 획득할 수 있겠지만, 영문책을 이 독서법으로 읽어 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속독이 애들러의 독서법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마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물론 속독이 취향에 맞다면 분당 천단어 이상을 목표로 추천합니다.ㅎㅎ

 

 

 

 

 

 

 

 

 

 

 

 

 

 

 

그리고 훈련이 필요한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영어 알파벳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뇌 영역과 한글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뇌 영역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타고나자마자 독서를 할 수 없고, 독서행위는 시각, 청각, 인지를 담당하는 뇌영역간의 협응을 필요로 한다. 매리언 울프 <책 읽는 뇌>에는 특히 한자를 보는 중국인, 한자와 가나를 보는 일본인, 알파벳을 보는 미국인이 독서행위를 할때 뇌를 촬영한 MRI 사진에 사용하는 뇌영역이 다름이 선명하게 나와 있다. 이를 보면 외국어독서에는 말그대로 새로운 두뇌영역을 개발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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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을 시작하려고 할때 가장 먼저 할일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독자에게 설득력있게 전달되도록 확장하고 정교화하는 일이다. 이런 작업은 자유롭게 직관적으로 주영역과 주변영역을 오가며 아이디어를 모으는 일에서 시작된다. Brainstorming에는 여러 방법들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생각만큼 각 방법의 취지를 정확하게 알고 소화한 경우는 많지 않은 거 같다. 로직트리(logic tree)를 다루는 책으로 이호철의 책이 있다.

 

 

 

 

 

 

 

 

 

 

 

 

 

 

 

아이디어를 모은 후 이것들을 원하는 목적에 맞게 유용하게 정리하고 순서를 정해 배열하는 방식이 잘 나와있다. 맥킨지식 글쓰기는 이런 일들에 초점을 맞추며 그 원조는 바바라 민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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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육체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미지가 크게 작용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관련되는 방식은 보통 아기들이 언어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연관시킨다.

 

가만히 육체가 어떻게 길들여지는지 살피는 것이 우선인거 같다. 육체를 정교하게 보고 범주짓는 방식은 문화별로 언어별로 그리고 육체 자체 등 여러 관점이 필요하다.

 

 

 

 

 

 

 

 

 

 

 

 

 

 

육체에 대한 이해는 언어에 반영된 신체 이미지나 신체 욕망을 새롭게 조망하는 길을 열어주는데, 언제나 그렇지만, 육체가 그러하듯이, 언어도 말하는 이의 문화, 말하는 이의 육체 등 다양을 영향을 받지만, 언어 스스로의 방식이 있기 마련이고, 주변영향과 여러방식으로 결합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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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론같은 전문철학영역은 아니지만, 적절한 수준에서 의미를 정의하여 논증의 설득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 관한 논증은 여러 분야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방식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를 윌리엄스의 <논증의 탄생>은 한장을 할애하며 설명한다.

 

 

 

 

 

 

 

 

 

 

 

 

 

 

윌리엄스의 설명은 일상적인 의미라는 전제속에서 타당한 방식이다. 정의를 내리는 방식에 대한 토의는 끊임없이 있어왔고, 그간의 성과는 George Lakoff <Women, Fire, and Dangerous Things> 앞 부분에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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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철학자들의 글쓰기는 글쓰기의 정면승부의 끝이다. 미국학자들의 실용적인 글쓰기가 주는 이득과는 전연 다른 차원으로 글을 대한다. 브루드외, 후설, 푸코의 글들은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탐구하는 사상이기도 하면서 글쓰기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계에 부딪친 어떤 사건과 현상에 대한 탐구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종교영역의 글쓰기로 잘 알려진 카렌 킹은 초기 기독교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영지주의가 도대체 어떤 종교현상인지 의문을 품었다.

 

 

 

 

 

 

 

 

 

 

 

 

 

 

 

이단과 이교논쟁에 휩싸여 온전하게 남겨진 종교문헌이 없었던 과거와는 달리, 20세기 이집트지역에서 발굴될 기독교문헌들은 풍부한 문헌을 영지주의에도 남겼다. 그러나 예상과는 동떨어지게 영지주의에 대한 해명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리스 철학의 관점에 빠지기전 초기 기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제기된다. 남겨진 문헌과 유적, 유물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 부르드외나 후설, 푸코의 글쓰기 도움을 받아야 하는 정교한 글쓰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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