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문화)과 다른 존재들의 생각(사유 기타)들을 들여다 보고 그러면서 인상적인 시선도 많이 느꼈고, 어떤 분석의 깊이를 짜릿하게 목격하기도 했지만, 분석은 분석의 영역을 벗어나면 온전하기는 쉽지 않은 거 같다.

자주 들르는 로쟈 님의 서재에서 댓글로 정치영역에서 책상철학자들의 한계를 지적한 글에서도 어느 정도 느꼈지만(나중에는 비밀댓글로 바뀜), 당장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이상적이거나 이론적일 수 있고, 혹은 오랜 시간을 견디는 힘을 가진 글들이 거꾸로 시급한 현실을 다루기는 너무 느긋할 수 있다.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는 것을 임시로 '임상'이라고 부르면, 이론의 대상과 임상의 영역과 실제의 영역의 괴리는 적지 않은 거 같다. 작은 예로, 융의 분석심리학을 바라보는 입장도 차이가 있는 거 같다. 상담심리학을 하시는 분들이 분석심리학을 생각외로(내생각) 굉장히 좁게 실용적으로 바라본다는 인상을 받아서, 책으로만 접한 내 인상은 우리 의식과 적지않게 관련된 무의식을 탐구하는 훌륭한 시선이었는데, 내가 흥미와 감동을 느낀 부분과 실용성은 차이가 꽤 있구나 를 느꼈다.

<감응의 철학>에서 근대와 현대 시선으로 동아시아 문화를 다루는 것이 얼마나 엉성한지를 여러모로 경험했다.


그런 방향으로 한번 정리해본다, 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본다 의 정도인거 같다. 서양 글쓰기 전통의 대표 형식인 논증글쓰기를 다룬 <논증의 탄생>에서 보면 두 종류의 논증 글쓰기가 많은 글의 대부분이다. 특별히 단어의 의미나 정의에 관한 글이나 철학 글쓰기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지만, 좀더 정교할 뿐 
















글, 독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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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초기불교'라는 이름으로, 상좌부경전중 아함경에 해당하는 니까야 를 번역하고 논서인 아비담마 길라잡이, 청정도론 도 줄줄이 번역한 스님들이 있었다. 그분들이 다음카페에 올린, 번역한 책들의 강의나 해설, 질문에 대한 글들을 보고, 초기불교에 대한 진심과 열정 같은 것에 인상적으로 봤던 기억이 있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를 

번역된 아함경 

구사론도 굉장히... 아직 접하지 못했다.

모두 자신의 입장을 긴 호흡으로 하나씩 차근차근 전달하다.

권오민의 <아비달마불교> 는 거꾸로 통합하고 종합해 정리해 전달한다. 
















그 안에서 내가 봤거나 아는 내용을 하나씩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역으로 '아비달마불교' 중 내가 모르는 내용이 뭔지 알 수 있게 되는데, 

하이라이트는 저자가 후기에 올린, 우리불교문화에서 만연한 소승불교에 대한 편견과 폄하가, 대승불교가 시작되면서 대승불교측에서 주장하던 내용과 다를게 없다는 얘기와,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흥하던 현장법사가 방문하던 시기조차 대승불교에 비하여 우월한 소승불교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독자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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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양문화의 초월자 

유교 불교 도교 

기대했던 해석방향인, 노자를 노자로 해석

우리가 몇몇 종교에 갖고 있는 편견들이 노자 도덕경에도 있다. 노자와 가까와 보이는 '도교' 자체도 노자에 대한 편견이다. 도교는 도덕경을 반영하기보다는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자연발생하는 자연숭배에 관한 종교다. 

그래서 신라시대 최치원의 '풍류'를 우리 고유한 '도교'라고 칭하는 것은 좋지 않은 거 같다. 


확실히 종교나 종교적 체험 보다는 철학적 관점을 메인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노자해석에서 두드러지지 않은, 철학적 개념들과 해석을 꾹꾹 책에 눌러 담았다.

'무위'에서 '무'를 해석

'허'

그렇게 기대하고 궁금했던 '계곡'은 별다른 첨가물 없이 여성성기에 비유

그리고 노자와 관련된 학문 트렌드 소개는, 도올의 다른 고전번역보다는 약하다(내가 다른 고전보다 노자 번역 책들을 많이 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자 고고학 얘기도 이미 다른 이의 책들에서 여러번 언급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한문 글자 그대로 번역하는 거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들을 대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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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내편을 맨처음 접했을 때가, 아마도 이지성작가같은 이의 고전읽기 붐이 일었을 즈음인거 같다. 지적인 욕구리스트에 장자가 안들어갈리가 없었지만, 지금도 괜찮게 번역이 안된 책들이 적지 않은데, 그 당시는 번역수준이 천차만별이었고, 그런 번역도 안되서 읽을 수도 없던 고전들이 꽤 있었다. 그때 접했던 장자번역은 김학주의 책이었다. 대만에서 석사도 하시고 계속해서 개정판도 내시는 분이지만, 해석이 어렵거나 갈리는 부분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이성적인 글을 제시했다.
















그 다음은 영문학자 출신의 안동림의 장자















이 분 책은 감흥이 이렇다, 저렇다 하기가 어렵고, 아직 읽다 말았다.

그리고 후쿠나가 미츠지의 장자 내편을 만났다.
















설화부분은 특별히 다른 책들과 다르게 해석할 이유가 없지만, 그외부분 번역과 해석들은 손에서 책을 놓치 못하게 했다. 여러부분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는 왕필의 노자주에 대해서 장자의 영향을 받았을거라는 지적과 따라서 노자 본연의 뜻은 좀 다를 수도 있다는 결론이다. 전에 읽었던 김학목 번역의 왕필주 도덕경의 경쾌함과 명쾌함이 장자의 영향아래서라는 것이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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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의 철학>은 여러모로 동서양 전통 비교연구의 최종본이다.
















그리고 내 독서 이력에 높은 빈도로 등장하는 인물들과 관념들이 대거 출현한다. 영원불멸이나 보편성을 추구하는 서양전통의 관점에서 고대중국사유를 이해하려는 개별 노력과 방식들은, 진실성있고 깊이 있고 체계적이고 감탄스럽지만...복잡하고 어느게 더나은지 얼마나 더 나은지 비교하기 쉽지 않다. 이 지난한 작업을 통해 저자는 자신의 연구영역을 구축해낸다. 분명 연관은 있어 보였지만,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쉽지 않은 것들의 원래 의도했던 내용과 선후를 따지고 각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동아시아전통을 오늘날 시선에서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서양전통과의 대비로, 즉 서양전통 배경지식에서 대응하는 혹은 대응하는 것이 없는 동아시아 전통을 근사하게 잘 다루는 '프랑수아 줄리앙'의 글로는 정확하게 긁지 못했던 영역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융의 동시성, 

한 개인이 

사상과 가치관도 비슷한 경향이 

나름의 완결성과 쓰임

고대 중국 사유를 바라볼 때


저자의 이 책이 감동적인 까닭은 아카데믹한 글쓰기에 완전히 정통한, 노련한 전문가의 글이기때문이기도 하다. 철저하고 적절한 인용과 참조된 주장들 사이에서 자신의 연구영역을 찾아내고,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방식이 매우 설득력있고 논리적이고 여유롭다. 도와 기와 리를 넘나드는 이 현묘하고 미묘한 영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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