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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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상대의 잘못을 탓하기보다는 책임을 지는 쪽을 선호합니다. 나 자신을 희생자로 보는 게 정말 싫어요. 차라리 뭐랄까, 내가 이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를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개새끼였어. 이렇게 말하는 게 나아요. 그건 ‘내가 한 선택이었으니까요. ‘
이것은 내가 육 년 전 뉴욕여행에 갖고 갔었던 책의 한 구절이다. 그 책에서 왜 이부분이 적힌 페이지를 접어놓았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행이란 죽음의 예행연습이라는 어머니의 말은 잊히지 않는다. 그 여행 내내 어머니는 검은색 수첩을 갖고 다녔고 그 안에는 빛바랜 내 신춘문예 당선 기사가 간직돼 있었다. 코니아일랜드에 함께 갔던 여성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 수첩은 이제 내가 갖게 되었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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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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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무슨 거짓말을 했을까. 와인을 좋아한다는 말은 대체 언제 내뱉은 것일까. 상대의 질문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했을 때 나는 대체로 불분명한 어조로 예스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노라고 대꾸하면 대화가 복잡해지기 때문이었다. 마마두가 뭔가 물었을 때 잘 알아듣지 못해서 적당히 고개를 끄덕인 적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대화를 할 때의 나는 아무도 아니었다. 그때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익명성과 일회성의 태도, 깊이 없는 친절, 단답형 문장들, 그리고 여름 시즌 동안만 유효한 임시 신분이었다. 하지만 마마두는 그런 나의 말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 P116

마마두를 검색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마마두들의 국적과 언어, 그리고 마마두는 마호메트이고 그들의 나라에서는 가장 흔한 이름이라는 것 정도이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반찬의 이름은 반찬, 마마두의 이름은 마마두 나는 여전히 미래에 대해 아무런 상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작가 마마두가 나무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가서 뜨거운 소금을 검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을 때 그 푸른 하늘과 호수의 장밋빛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상상해본다. 누군가의 왜곡된 히스토리는 장밋빛으로 시작한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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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컬렉션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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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드: 더러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간직한 책들이 있어요. 선생은 채 200쪽이 못 되는 소설을 하룻저녁에 끝내고 이 책을 완독했다고 생각하겠지요? 천만의 말씀! 얇은 두께는 눈가림에 지나지 않을 뿐, 실은 읽어야 할 것이 2천 쪽, 2만쪽, 20만 쪽이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요! 이 책을 읽는 데 하룻저녁이 아니라 열흘, 백일, 천일, 어쩌면 평생이 걸릴지도 몰라요!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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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과 무게
이민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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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그렇듯 본디 아름다움은 진실이 아닌 그럴듯한 왜곡에서 태어났고, 두 사람은 기꺼이 속아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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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과 무게
이민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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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상상하지 못했을 미래에 관한 계획을 듣고 있으면 인생의 선택지가 늘어난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이 마트에서 산 저렴한 와인을 마시며 에릭 로메르의 「녹색 광선」을 보다가 잠든 날이었다. 주인공이 해변을 거니는 장면에서 윤우는 같은 장소를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언뜻 보았다. 노트북 화면은 바다를 담기에 너무 작았다. 이내 전신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을 마주한 윤우는 잠시나마 지형과의 미래에 진심이 된 게 부끄러워졌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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