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구르기 하듯이 고꾸라지며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이문재 시인이 「바닥」이라는 시에서 그랬지. "모든 땅바닥은 땅의 바닥이 아니고 지구의 정수리" 라고. 그러니까 이것은 지구의 정수리와 나의 정수리가 맞부딪치는 우주적 모멘트였던 것이다.
머리가 아팠지만 참을 만했다. 부딪히기 전부터 이미 머리는 깨질 듯 아팠기 때문이다. 커다란 내적 두통에 까진 정도의 외적 두통 하나 더해진들 대수겠는가. 피가 조금 났지만 괜찮았다. 하지만 우주적 모멘트는 나의 형질을 유인원에서 마침내 네발 짐승으로 바꾸어놓았다. 다리가 완전히 풀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기어야 했다. 턱에서부터 집까지는 50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내 생애 땅바닥을 기어가는건 처음이었다. 현관까지 기어가면서 생각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면 걷는 놈 밑에는 기는 놈이 있구나…. 지나가는 뛰는 놈 걷는 놈이 없어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