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
이지혜 지음 / 파람북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게 클래식이란 좋아하고는 싶은데 영 모르겠는 어떤 것이다. 상당한 음치인 나는 어릴 적 클래식을 무척 좋아했지만 이 선율이 바흐의 것인지 모차르트의 것인지 베토벤의 것인지 도통 구분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 음악 과목의 청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집에서 여러 클래식 곡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식은 땀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이 곡이 저 곡 같고, 저 곡이 그 곡 같고, 가사가 없는데 대체 어떻게 곡을 구분하란 말이냐. 곡의 제목을 맞추고, 작곡가를 맞춘 다음, 그 작곡가의 시대를 맞추어야 하는 이중 삼중의 음악 문제는 내게 너무 커다란 벽이었다.

클래식을 들으며 진땀을 흘렸던 열 다섯 살 소년은, 이제 긴 세월을 건너 마흔의 중년이 되어 다시 클래식 앞에 섰다. 지혜로워진 소년은 무작정 음악을 듣기보다 감상을 위해 음악의 탄생 배경을 먼저 알아보고자 책을 찾았다. 그리하여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당신을 위한 인문 클래식 가이드'라니. 인문학에 친숙한 소년에게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책은 기대만큼이나 훌륭하게 클래식의 불모지인 소년의 머릿속과 가슴속을 채워주었다. <가을> - <겨울> - <봄> - <다시 여름>으로 이어지는 4계절의 큰 Part 안에 각 10 개 내외의 곡이 소개되어 있다. 해당 곡들은 주로 그 계절에 연주되거나, 그 계절에 작곡 되었거나, 아니면 그 계절의 날씨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품고 있는 곡들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파트인 <가을>에 소개되는 곡들은 타레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리스트의 사랑의 꿈, 쇼팽의 녹턴, 엘가의 첼로 협주곡,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등이다. 각 곡마다 그 곡을 작곡한 음악가의 생애가 짧게 소개되고, 음악가가 이 곡을 작곡했을 때 처한 개인적 상황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함께 알려준다. 설명은 중학교 음악 교과처럼 건조하게 사실만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작가의 풍부한 인문학적 감수성을 토대로 서정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소년처럼 클래식에 무지한 독자라도 해당 곡에 대한 감상(감성) 포인트를 쉽게 알 수 있다.

저자는 학부에서 철학과 음악(바이올린)을 전공한 데 이어 음악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2002년부터 클래식 음악 해설가로 마이크를 잡은 이지혜씨다. KBS 라디오 《김선근의 럭키세븐》에서 맡았던 '누구나의 클래식(2018.6~2019.12)'에서 유쾌한 클래식 음악 해설로 청중들의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점은, 모차르트가 당대에는 그리 성공하지 못한 음악가였다는 사실이다. 신동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정작 음악가로서의 성공은 그의 사후에 이루어진 것이고, 서른 다섯에 생을 마감한 모차르트는 생활고와 건강 악화에 시달렸다. 천재의 자유분방하고 명랑한 음악을 주로 만들었고 삶 또한 그렇게 살다 간 인물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조금 놀라웠다. 또 다른 재미는 유명한 음악가들의 인연이다. 리스트가 베토벤의 제자였던 체르니의 제자가 되고, 체르니가 베토벤을 초청하여 리스트의 연주를 들려주자 베토벤이 당시 열 두살이었던 리스트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다른 일화로는 브람스 - 슈만이 있다. 1853년에 브람스가 슈만 부부를 처음 만난 날, 음악가 슈만은 자신의 집을 찾아온 스무 살 청년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진심으로 경탄해서 '천재가 다녀갔다'는 기록을 일기장에 남긴 후, "브람스가 베토벤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글을 음악 잡지에 기고하여 당시 무명이었던 한 청년을 유럽 음악계의 총아로 만들었다.

그 밖에 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특히 막심 벤게로프 연주)이라든가, 무려 스무 명의 자녀를 낳을 정도로 왕성한 욕구를 지녔던 바흐가 역사상 가장 많은 1,336곡을 작곡한 음악가라는 것 등, 클래식에 대한 쓸모있고 흥미로운 다양한 지식들을 이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다.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읽으며 소개 된 음악을 듣는다면 머지않아 클래식 애호가로 거듭날 수 있을 듯하다.

책을 읽은 다음 음악을 들으니 음악이 훨씬 더 깊이 와닿는다.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 같다. 클래식 애호가를 꿈꾸는 중년에게는 너무나도 반가운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와 투자의 비밀
김도정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앞단 지은이의 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책은 '자본주의와 투자의 본질을 쉽게 풀어내보자'는 목표에서 출발했습니다. (7p)
이 책은 자본주의의 본질과 핵심 원리를 제시하는 것을 넘어 투자, 그중에서도 특히 '어떻게 하면 주식투자를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8p)
'선병자의'라는 말이 있듯 특히 저같이 평범한 사람이 주식시장에 입문해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과 그 속에서 느꼈던 작은 깨달음들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습니다. (9-10p)

그리고 책의 뒷단 에필로그 바로 직전에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인식의 포로였고 기억의 노예였다. 그 인식과 기억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고 또 왜곡된 것이었는지. 중간에 몇 가지 작은 깨달음들이 있었겠으나, 그것이 진정 가슴에 자리 잡아 나의 것이 되지는 못했다. 한마디로 나의 인간적인 약점들을 극복하지 못했다. 종목에 대한 연구는 나름 열심히 했지만, 수양이 부족했고 이를 실천할 확신과 의지가 부족했다.
서문에서도 이미 말한 바가 있지만, 이 책은 스스로의 반성문이자 앞으로의 투자에 있어 자경문이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은 그 누구보다도 필자 자신을 위한 것이다. (266p)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내 솔직한 심정은 이렇다. 저자가 책을 쓴 최초의 의도는 진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가 책을 마무리하며 밝힌 소회도 역시 진실이라 생각한다. 

본격적인 서평을 작성하기에 앞서 '용기의 역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행위를 우리는 용기있다 칭송하지만, 무관심이 아니라 칭송을 얻기 위해서는 사실 '커다란 업적'이 필요하다. 그 업적이 현재에 있을 때에만 칭송은 부여된다. 가이 스파이어의 경우다. 업적을 상실하여 현재는 빈손이 된 거인의 실패 이야기는 가장 성공한 경우에도 독자에게 커다란 교훈과 저자에 대한 안쓰러움을 남길뿐이다. 결코 칭송은 부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인정받는 용기란 결국 성공을 보유하고 있는 자들만의 특권인 셈이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 본인의 실패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지만, 그 실패의 자세한 내용은 책에 담겨 있지 않다. 개인투자자가 아니라 투자자문사의 임원이었던 저자의 입장을 생각할 때 이는 인간적인 선택이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재무 전공 석사 학위를 받았다. LG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원을 거쳐 2009년 에셋디자인 투자자문에 창립 멤버로 입사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답게 1부 '자본주의와 부의 본질에 대하여'에서는 자본주의와 거시 경제에 대한 맥을 알기 쉽게 짚어준다. 

예를 들면, 경기 침체 시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하는 건(저금리) 통화량을 늘려서 시중에 돈의 양을 늘리고 이를 통해 디플레이션을 방어해서, 소비, 투자, 소득 증대의 선순환을 다시 만들어내고자 하는 정책이다. 헌데 현재와 같은 신용화폐 시스템에서 돈은 결국 대출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유동성 공급은 경제 전체의 부채를 늘린다. 부채의 증대는 각 경제주체의 신뢰 범위 한도 내에서는 문제가 없으나, 각 경제주체가 부채의 규모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그리스 디폴트,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등의 예처럼) 경제 시스템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프린스턴 경제연구소의 전 대표인 마틴 암스트롱에 의하면 (신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늘어난 국가 부채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뿐이다. 디폴트 선언, 인플레이션, 구조조정. 

책을 읽고 나서, 투자 계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야기가 왜 그렇게 많이 회자되는지 알 수 있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물가가 오르더라도 월급이 오르면 기뻐하고, 물가가 떨어져도 월급이 내리면 불만을 갖게 된다. 그래서 디플레이션은 정치적으로 죽음이다." - 세일러 (92p)

인플레이션은 정책자의 지위 안정성을 담보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은 필연적으로 자산가와 비자산가의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부의 불평등의 심화는 그 사회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키운다. 자본주의는 비효율적인 경쟁자를 낙오시키고 효율적인 경쟁자에게 자본을 몰아서 배분함으로써 발달한다. 반면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인 경쟁자가 다수일 때, 이들을 도태시키는 게 아니라 이들을 포용하는 사회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인류의 번영이라고 전제한다. 정부는 정치의 수장이자 경제의 수장으로서 이 모순된 두 요구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과 고용 안정이라는 모순된 두 요구를 추구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시 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알기 쉽게 씌어져 있어서, 나같은 주린이도 지식을 정리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1부가 갖는 강점이다.

2부에서는 주식투자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는데, 가치투자자로서는 상당히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우리의 투자 스타일은 한마디로 '매크로 헤지 전략적 가치투자'다. 그 뜻은 '거시 경제의 동향을 잘 살펴서 투자비중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겠다는 의미이고, 투자는 큰 틀에서 가치투자의 범주 안에서 행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거시 경제 동향을 읽고 투자비중을 조절한다'는 것은 시장을 전망해보겠다는 도전이다. (152-153p)

전 세계 금융시장은 주식시장 외에도 채권, 부동산 그리고 외환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속적인 수익을 거두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이의 공통된 소망이기에, 시기에 맞게 그에 맞는 시장을 선택하거나 투자 스타일을 바꿀 수 있다면 수익률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57p)

책의 내용을 다시 숙고해보아도, 저자의 언급은 돈의 흐름을 따라 돈이 이동하는 투자 시장으로-그것이 부동산이든 채권이든 주식이든 심지어 외환시장이든- 유연하게 투자금액을 이동시켜 수익률을 높이는 투자 방식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매크로 헤지 전략적 가치투자'라는 처음 듣는 용어도 그렇게 탄생된 것 같다. 주식 가치투자에 입문한 지 6개월 차된 주린이인 나로서는 당황스런 대목이었다. 

'아, 모든 투자 책이 주식의 가치투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니구나.'
가치투자연구소 카페에서 서평 이벤트를 신청한 책이었기에, 나는 당연히 주식의 가치투자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인지편향의 오류에 빠졌던 셈이다. 인식이란 이토록 틀리기 쉽다는 것을 책을 통하여 이렇게 또 한번 배우게 된다. 자, 이를 감안하고서 저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살펴보자.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좋은 주식을 싸게 사서 수익을 거두려는 행위'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가가 오르려면 내가 산 가격보다 누군가가 더 높은 가격에 주식을 사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사는 주식은, 내 눈에 좋은 주식이 아니라 남이 보기에 좋은 주식이어야 한다.

주식투자가 아니라 '주식장사'로 보는 순간, 주식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 중심에서 대중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이제 마음속으로 외쳐보자. '아, 내일부터 주식장사를 해볼까?'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나의 계좌에 진열되어 있는 주식들의 성격이 바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주식에서, 남들이 좋아할 만한 주식으로!
(176-177p)

가치투자자로서는 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기왕지사 책을 읽었으니 이 언급을 지적 양분으로 소화해보자. 자, 저자는 어떠한 맥락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일까. 아래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모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확신하는 것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오류'는 나심 탈렙의 책 『블랙스완』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다.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 간단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218-219p)

나는 인식의 포로였고 기억의 노예였다. 그 인식과 기억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고 또 왜곡된 것이었는지. 중간에 몇 가지 작은 깨달음들이 있었겠으나, 그것이 진정 가슴에 자리 잡아 나의 것이 되지는 못했다. 한마디로 나의 인간적인 약점들을 극복하지 못했다. 종목에 대한 연구는 나름 열심히 했지만, 수양이 부족했고 이를 실천할 확신과 의지가 부족했다. (266p)

똑똑한 사람이나 성공을 거듭한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 내 생각이 틀렸다고 볼 만한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생각이 맞다고 고집하는 것이다. 나의 관점이 아니라 남의 관점에서 투자대상을 바라보았더라면 그 함정을 피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저자의 자기반성이 느껴진다. 주식투자를 주식장사로 바꾸어서 생각해보라는 저자의 말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적인 자기만의 관점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관점으로 투자대상을 검토해보라는 의미로 읽을 때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주이고, 무엇이 부인가의 관점에서 저자의 이야기는 주부가 전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한편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실용적 지식은, 경제성장률이 떨어질수록 정부소비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따라서 정부 예산 계획을 보면 향후 성장 동력을 갖출 산업을 미리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아래는 책의 202p의 <표 2-2>와 204p의 <표 2-3>을 그대로 혹은 개량하여 옮겨 적은 것이다.


    - 정부의 예산 계획과 그 의미에 대해서는 네이버 검색으로 다양한 블로거의 글을 살펴보아도 좋으리라



저자는 '자본주의와 투자의 본질'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 등의 주제로 집필과 강연을 계속해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거시 경제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다른 책에서보다 쏙쏙 머릿속에 들어왔던 나로서는 저자의 앞길을 응원하게 된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에 행운이 깃들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과수익 바이블 - 100년을 관통하는 세계적 대가들의 주식투자 절대 원칙, 개정판
프레더릭 반하버비크 지음, 이건.서태준 옮김, 신진오 감수 / 에프엔미디어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학엔 '수학의 정석', 가치투자엔 '초과수익 바이블'
- 투자 대가들의 뷔페에 간 초보 투자자의 이야기

제목과 내용만 보면 초보자가 질색할 책이다. 534페이지에 이르는, "초과 수익 바이블"이란 제목의 책. 그런데 왜 이 책의 이벤트를 신청하여 나는 고난의 길을 자처했을까. 그건 한국의 주식 투자 대가들이 쏟아낸 이 책에 대한 찬사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이 책은 3년만에 양장판 개정본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내용은 원판과 동일하다)

"세계적 셰프들의 시그니처 요리를 한데 모아놓은 뷔페 같은 책. 전설적인 투자 대가들의 투자 철학, 방법, 종목 선정 기준 등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
- 최준철 브이아이피자산운용 대표

"사람은 늘 지나고 나서야 현명해진다. 《초과수익 바이블》은 거장들의 현명함을 늦지 않게 전해주는 책이다. 읽고, 공부하고, 실천하면 된다."
-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통찰이 가득한 투자 기본서. 27년 이코노미스트도 배울 게 많았다."
-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 《돈의 역사》 저자

"가치투자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가치투자자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질문의 답이 들어 있다."
- 박성진 이언투자자문 대표

"이 책 한 권이면 초·중급 투자자가 고급 투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 김철광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카페 운영자, 필명 '바람의 숲'

다섯 개의 찬사를 하나씩 짚어보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먼저 양해를 구해야 할 부분은 지금 서평을 작성하고 있는 글쓴이가 가치 투자 입문 6개월 차의 주린이란 점이다. 나는 이 책에 담긴 대부분의 의미를 의미있게 포착하지 못한 채 책을 읽었다. 내가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1. "세계적 셰프들의 시그니처 요리를 한데 모아놓은 뷔페 같은 책. 전설적인 투자 대가들의 투자 철학, 방법, 종목 선정 기준 등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
- 최준철 브이아이피자산운용 대표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가득 펼쳐진 뷔페를 생각해보자. 각 음식마다 이 음식의 재료, 조리과정, 영양, 그리고 조리한 요리사와 그의 업적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그 설명을 보고, 그래 이 음식은 이런 맛이지! 와우!! 라고 감탄을 하겠는가. 아니면 이 음식이 왠지 나랑 맞을 것 같은데, 한번 맛을 봐볼까? 라고 생각하겠는가. 
먹어본 자만이 맛을 알고, 맛을 아는 자만이 설명을 읽으며 자신이 맛보았던 맛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고수들을 위한 책이다. 하지만 엉겁결에 참여하게 된 주린이도 얻을 만한 것이 있다.

《11장 대가들을 지탱하는 3개의 기둥》 
1) 투자 전략과 규율 : 투자철학과 실행방법
2) 투자 전략 적용 시 특성 : 독립성, 근면함, 끊임없는 연구, 신중함, 지식 등
3) 투자 태도 : 겸손, 열정, 인내, 감정의 분리, 군중과 반대의 길을 갈 수 있는 용기

투자 전략에 없어서는 안 될 첫 번째 요소는 시장의 작동 원리와 투자자들의 실수를 바라보는 일관된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는 투자철학이다. (450p)

시장을 바라보는 철학은 반쪽에 불과하다. 투자 전략에는 기회를 포착하고 주식을 사고팔 때를 올바로 알려줄 실행 방법도 있어야 한다. 놀라운 사실은 철학이 같더라도 실행 방법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대가들도 직접 말하듯이, 실행 방법이 투자자의 성격 및 경험과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가들에겐 편하게 생각되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다. 그런 방법이 없다면 투자자는 감정의 압박이 클 때 자신의 시스템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451p)

자기에게 맞는 투자철학과 실행 방법을 찾으려면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성격과 관심에 맞는 투자 전략을 찾을 수 있다. (453p)

전략은 투자자의 성격과 기술, 취향, 관심 등과 어울려야 한다. 대가들에게서 영감을 얻을 수는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대가들의 전략을 모방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대가의 전략이 자신에게도 꼭 맞는다면 예외일 수는 있다.  (453p)

자신에게 어울리는 전략을 고르는 건 시작일 뿐이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전략을 고수할 수 있는 규율이다. (454p)

이 책과 가장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부분은 11장이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은, 초보 투자자의 성장에 필요한 주요소(3개를 꼽아보았다)와 대가들의 3개 기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문장으로는 참 표현하기 어려워서, 아래에 그림으로 그려보았다. (그림 실력의 조악함은 부디 양해를...)

(일곱살인 둘째가 내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쳐줄 때 쓰는 칠판이다. 나에게 그림이란... 넘나 어려운 것...)


지식, 경험, (마음)수양이 쌓이면서 초보 투자자는 상급자로 발전해간다. 이 과정은 성장하는 나선으로 표현된다. 나선이 바깥쪽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각 요소 모두에서 어느 정도의 진전이 필요하다. 나아가 각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흐름의 끊김없이 성장해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식과 경험은 누구에게나 크게 다른 과정이 아닐 것이다. 반면 (마음)수양은 각자의 성격, 살아온 경험에 따라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투자 태도'로 표현되며, 이의 요소들로 '겸손, 열정, 인내, 감정의 분리, 군중과 반대의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로 구분되어 설명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는 '관조'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수양의 핵심은 자신과 세상을 관조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겸손, 열정, 인내, 감정의 분리, 용기 등이 우리의 마음이 짓는 하나의 표정에 해당된다면, 마음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를 바라보는 것이 관조에 해당된다.

주식 투자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 않은 주린이라 하더라도, 이 11장에서 무언가를 얻어가기는 어렵지 않다. '철학 - 실행방법 - 태도'의 정립은 어느 분야에서의 성취를 원하건 공통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11장이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놓여있다는 것뿐이다. 이 책에서 주식 투자에 대한 사전지식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도 원활히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이 마지막 장뿐이다.


2. "가치투자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가치투자자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질문의 답이 들어 있다." - 박성진 이언투자자문 대표

질문을 갖기 위해서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풍부한 경험이란 더 많은 질문에 부딪쳐 봤다는 의미다. 그래서 주린이인 내가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던 질문과 대답은 많지 않다. 이를 아래에 적어본다.

안정 기업의 주식을 어떻게 거래할지는 투자자에 달려 있다. 시장의 평균보다 몇 %만 높아도 만족하는 투자자라면 탄탄한 안정 기업의 주식을 적정 주가에 사서 수년 동안 보유하면 된다. 시장을 상당한 수준으로 능가하고 싶은 야심 찬 투자자라면 안정 기업의 주식을 더 적극적으로 사고팔아야 한다. PER이 많이 떨어졌을 때 사서 PER이 다시 정상적인 수준으로 회복될 때의 초과수익을 노려야 한다. 지나치게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피터 린치는 대체로 1년 정도의 기간 동안 30~50% 오른 안정 기업의 주식은 팔아서 현금화했다. (295p)

워런 버핏과 존 템플턴 같은 대가는 우량주를 괜찮은 가격에 사는 것이, 비우량주를 싸게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 지난 50년간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주식들은 PER이 20~50인 주식들이었다. 다시 말해 주가가 본격적인 고공행진을 펼치기 전에 이미 통상적인 시장의 기준으로 볼 때 비싼 주식들이었다. (246p)

경기민감주에 투자하는 일은 투자철학과 딱 맞아떨어지는 일은 아니다. 첫째, 경기민감주는 내재가치를 고려해서 사고팔면 안 된다. 주가의 움직임이 대체로 EPS의 변동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둘째, 대가들 상당수가 경기 예측은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경기민감주에 투자하는 사람이라면 경기를 무시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경기민감주는 1년간의 후행 PER이 정점을 찍을 때 사고, 바닥을 기고 있을 때 파는 게 제일 좋다. (299p)

많은 대가들이 공통적으로 밝히는 최대 실수는 부채비율이 과도하게 높은 기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사례다. 재무 상태가 건전하지 못한 기업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426p)

- 피터 린치는 뮤추얼펀드 매니저였던 시절, 1년에 단 15분만 경제 전망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 투자자는 경제에 신경을 쓰지 말라는 조언은 진정한 상향식 투자자들이 강력하게 지지한다. 하지만 거시경제 투자자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 정말로 놀라운 건 2008~2009년 시장 폭락 이후 일부 대가들이 실토한 내용이다. 워런 버핏과 데이비드 아인혼 등은 주택 거품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조금이라도 예상한 건 실수였다고 말했다. (407, 408p)

대가들은 위험을 줄이려면 높은 수준의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가들의 신조는 "다각화는 평범한 수익률을, 집중은 탁월한 수익률을 낳는다."이다. 많은 대가들이 소수 종목에 커다란 지분을 집중투자한다. 필립 피셔는 대개 포트폴리오의 75%를 단 3~4종목으로만 채웠다. 조엘 그린블라트는 펀드의 80%를 8개 미만의 종목에 투자했다. (...)
조심스럽고 보수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조차 포트폴리오 집중을 옹호한다. 2억 달러 미만의 비교적 작은 포트폴리오라면 약 80%의 자금을 5개 종목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을 대신해 투자하는 거라면 한 종목에 최대 40%의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데, 아주 드문 경우로 제한할 것이다. 자신의 개인 자금을 투자하는 경우라면 한 종목에 최대 75%까지 투자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421-422p)

가치투자자로서 투자를 해나가면서, 원칙의 준수와 수익 극대화를 위한 유연한 대처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유연한 대처를 원하는 가치 투자자에게 이론적 근거-더욱이 대가들의-를 제공해준다는 점이다. 특히나 경기민감주 투자 시 내재가치를 고려해서 사고 팔지 말라는 조언은 놀랍기까지 하다.


3. "이 책 한 권이면 초·중급 투자자가 고급 투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 김철광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카페 운영자, 필명 '바람의 숲'
 
수학으로 비유하면 이 책은 '수학의 정석'에 해당한다. ('초과 수익 바이블'이라는 책의 제목이 참 어울린다). '수학의 정석'을 일독하는 방법은 순서대로 읽지 않는 것이다. 순서대로 읽으면 항상 첫 50페이지에만 손때가 탈 확률이 높다. 이 책은 정보와 판단을 논리적 근거로 쌓아가다가 마침내 결론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씌어지지 않았다. 옴니버스식 구성이라 필요한 부분을 필요할 때 발췌해서 읽는 방식이 적합하다. 그러므로 책의 분량에 너무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으리라.


4.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통찰이 가득한 투자 기본서. 27년 이코노미스트도 배울 게 많았다." -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 《돈의 역사》 저자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는 추천사에 이렇게 적었다. "특히 이코노미스트의 입장에서 355쪽에서 시작되는 '주식시장의 고점과 저점을 알 수 있는 지표' 부분은 참으로 배울 게 많았다." 27년차 전문가가 배울 내용이 많았다고 적은 내용은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에 해당 부분을 집중해서 읽었지만, 초보와 전문가의 차이. 그리고 상향식 투자자와 거시 경제 투자자의 차이만 체감했다. 상향식 주린이 투자자인 나는 해당 내용에는 전혀 접근하지 못했다. 거시 경제에 대한 관심은 현재로서는 후순위라, 이 보물은 다다다음 회독 때쯤 만나기로 기약한다.


5. "사람은 늘 지나고 나서야 현명해진다. 《초과수익 바이블》은 거장들의 현명함을 늦지 않게 전해주는 책이다. 읽고, 공부하고, 실천하면 된다." -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윤지호 센터장도 추천사를 적었다. 추천사 중 일부를 옮겨본다.
"이 책의 중심은 2부다. 실전 투자자라면 책에서 다룬 주제 하나하나를 직접 적용해보길 권한다. 성장주, 경기민감주, 회생주 등을 어떻게 진단하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6장에서 다룬다. 이어 7장에서 매수와 매도를 어떤 기준으로 실행해야 하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실전 투자자라면 이 두 챕터를 읽는 것만으로도 책값을 뽑아낼 수 있다." 


자, 이제 긴 여정의 끝이다. 우리는 이제 막 뷔페를 다 둘러봤다. 세계적 대가들의 요리를,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요리사들의 친절한 안내로 구경한 셈이다. 주린이라면 독서 스터디에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두고 팀원들과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초, 중급 투자자분들은 위에 인용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가치 투자 대가들의 설명을 참고하시면 좋을 듯하다. 
이 서평은 출판사의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씌어진 것이다. 예정보다 조금 늦어졌는데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고민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기 예능 <연애의 참견>의 고민정 작가가 쓴 에세이다. 아내가 이 예능 프로의 팬이다. 따라서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사랑 때문이라 할 수 있으리라.

미혼 남녀의 연애 이야기가 그득하다. 화자는 여성이다. 젊은이들의 뜨겁고 서투른 사랑맺음 이야기는 이별로 인한 가슴 앓이, 치유를 위한 효율적이지 않은 자가 노력, 새로운 사랑, 그리고 조금은 다른 러브 스토리와 어느 정도는 비슷한 이별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아무래도 에세이를 읽는 독자인 내가 나이 마흔의 남성이고 기혼이기 때문에, 이 사랑 에세이에 깊이 몰입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어른이 사춘기 아이들의 감성을 바라보듯이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이 화자는 사랑을 이런 관점으로 보는구나. 이 화자의 관점에 사랑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보편적인 관점이 담겨 있는 건가. 그렇다면 혹시 아내의 관점도? 

감수성이 발달한 사람들이 그리는 사랑에는 흔히 두 가지 모습이 있다. 하나는 빈곳이 많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내가 채우면서 사랑을 이루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한결같은 그 사람이 나의 마음 빈곳을 채워주며 사랑을 이루는 형태다. 이 둘은 모두 대체로 여성이 그리는 사랑의 서사인데, 이는 달리 말하면 보편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감수성이 발달했다 볼 수 있단 뜻이다.

아내는 연애시절 나와 어떤 사랑의 서사를 그렸을까. 그리고 결혼 10년차가 된 지금 그 서사는 아내의 마음에서 어떤 빛깔을 띄고 있을까. 평소에는 공들여 생각하기 어려운 이런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리게 됐다. 연애 이야기란 이렇듯 나이 마흔의 중년 아저씨에게조차 소용이 있다.

누군가를 푹 사랑할 때 우리는 여러 질병을 앓게 되는데, 이를테면 시도때도 없이 보고싶다거나, 그동안은 굳이 누군가와 나누지 않았던 사소한 감정들까지도 함께 하고 싶다거나, 당신이 없었던 그동안의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고 착각을 한다거나, 그대가 없다면 난 당장이라도 끝장날 것 같은 이 절박함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사랑의 증거라고 믿는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질병 중에도 딱 하나 좋은 질병이 있으니, 그건 바로 '네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질병이다.

상대의 웃음을 내가 얼마나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게 되면, 마찬가지로 상대 또한 나처럼 나의 웃음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내가 행복해질 필요가 있구나, 깨닫는 그때야말로 사랑이 감수성이 발달한 한 사람을 새롭게 태어나게 만드는 순간이다.

아내와 나는 몇 년 전 가훈을 만들었다. '시트콤처럼 살자'다. 함께 웃자.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도달한 사랑의 형태다.

헌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의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분명 아내와 나는 현재 같은 사랑의 결론을 가지고 있지만 위에 적은 맥락은 순전히 나의 것이다. 달리 말하면 아내가 결론에 다다르게 된 맥락에 대해서 내가 쓴 글은 아무런 내용도 담고 있지 못하다. 허면 아내의 맥락은 무엇일까.

어쩌면 기혼의 사랑이란 이 간격을 알아차리고 그리하여 아내에게 묻는 것이 아닐까. 당신의 맥락이 궁금하다고. 치맥 한잔 하자고.

결혼생활 10년차쯤 되면, 사랑보다도 인생이란 게 별 거 아니다 싶은 순간을 겪을 때가 온다. 별 거 아닌 인생에, 별 거 아닌 우리가 만나, 별 거 아닌 순간들을 지지고 볶다 간다. (물론 볶음 중에는 우리에게서 발생한 후손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힘든 사랑스러운 두 딸도 있긴 하다) 사랑이 웃음처럼 일상에 녹아들어서 참 별 거 아니게 되었을 때, 그때가 우리에겐 딱 좋은 것 같다. 여성들이 몸서리치는 비유를 들자면, 이것이야말로 연애를 제대한 이들의 사랑인 거다. (그러니 이제 갓 입대한 미혼의 젊은이들은 당면한 전투같은 사랑을 그저 뜨겁게 하시길)

전투같은 사랑을 하는 젊은 청춘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읽으면서 정말 우리들의 이야기야, 공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결말에는 작은 반전이 있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 관점 디렉터의 차이 나는 생각법
정광남 지음 / 라온북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관점디렉터의 차이 나는 생각법. '카피 문구'에 끌렸다. 나는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즐거워하는 관객형 인간. 색다른 관점이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환영이다.

프롤로그에 적힌 작가의 자기 소개다.
'저는 타고난 광고 크리에이터가 아닙니다. 아이디어 발상에 서투르고 방법을 몰라서 더 노력했고, 큰 거 한 방보다 매년 꾸준한 롱런 선수가 되기 위해 묵묵히 버텨왔습니다.'

이 문장을 읽고 광고디렉터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 특정 인상이 조금 바뀌었다. 막연히 감각이 색다르게 통통 튀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요즘 다양한 사건들을 계기로, '보통 사람들의 자기 긍정', '보통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특별한 사람들의 성취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는데 훨씬 더 많은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성취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다. 프롤로그를 읽으며 기대하게 됐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의 고민과 일상이 즐거움으로 변하는 색다른 관점을. 그리고 그 기대는 책을 읽으며 충분하게 충족된다.

시집을 읽다보면 전문을 외우고 싶을 만큼 좋은 시를 만날 때가 있다. 그처럼 이 책에도 전문을 외우고 싶은 글들이 꽤 있었다. 그 글들 중 몇 편을 옮겨본다.


분리수고하세요 (27p)

깨진 유리 같은 관계
더러운 이물질이 묻은 기억
일회용으로 버려진 아까운 시간
유통기한이 지난 사랑

재활용 욕심은 버리시고
수고스럽더라도 꼭 분리수고하세요

다음 네 가지 원칙을 지킬 것

1. 비운다
2. 헹군다
3. 분리한다
4. 섞지 않는다


정렬은 정열의 시작 (34p)

모두 대화에 집중하는데
나는 옆길로 새고

운동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일상

나쁜 습관도 쌓이는지
틀어진 거북목

몸만 쓱 빠져나와
늘 흐트러져 있는 침대

두서없이 잡다하게 쌓여 있는
정신없는 책상

열정이 없다는 건
내 몸과 내 마음의 정렬이 틀어져 있기 때문이야
좌우로 정렬 앞뒤로 정렬


나를 예보합니다 (60p)

며칠간 반짝 까칠했던 내가
오늘 낮부터 풀릴 것 같습니다
웃음이 가끔 쏟아지겠지만
출근 전 일요일 밤부터는 다시 감정 기복이
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평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들과는
살얼음이 생길 가능성이 커 주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긴 연휴 기간을 앞두고 있어
당분간 쾌청한 감정이 예상됩니다
전체적으로 어제보다 1도 따뜻해요
미세웃음은 보통 수준을 유지할 걸로 예상됩니다

이상 나의 기분 주간 예보였습니다


이런 제 길 (212-213p)

세상에 길은 너무 많아
대체 어느 길로 가야 할까

이런 제 길 어때요
유행처럼 따라가지 않는 길
부풀려서 과장하지 않는 길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버텨가는 나만의 길
재능이나 능력이 좀 모자라도
끈기 있게 반복해가는 나의 길

모두 이런 제 길을 가고 있길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내 길을 가고 있다"
ㅡ 영국 디자이너, 앨런 플레처


책에 씌어진 몇 편의 글을 옮겼을 뿐인데 마음에 사랑스러움이 차오른다. 이 책을 나처럼 즐겁게 읽을 많은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눌 수만 있다면, 전혀 알지 못하는 백 명의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