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
페테르 우스펜스키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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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끔찍한 것은 우리가 자신의 길을 모른다는 점이에요. 알고 기억한다면 모든 것을 다르게 할 거예요. 목표를 가질 것이고, 해야 할 모든 어려운 일들의 가치와 필요성을 알 거예요. 당연히 나는 삶 전체를 바꿀 거예요. p.39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2014.10.27. 연금술사)》은 1902년 4월, 현재 삶을 비관하고 절망한 ‘이반 오소킨’이 마법사를 찾아가 과거의 시간으로 돌려보내주길 요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자신의 삶은 분명히 현재와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반 오소킨’의 모습은 자신만만하다. 그러나 다시 경험할 삶에 대한 처음의 결심과 기대와 달리 1890년 10월로 돌아온 ‘이반 오소킨’은 여전히 삶을 권태롭고 지루하게 바라본다. 매번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을 예감하지만 과거 어느 순간 경험했던 똑같은 상황이 거듭 반복되는 것을 막지 못할 뿐 아니라 막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단지 걱정만 할뿐. 그리고 12년이란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온 1902년 4월 어느 화창한 날 사랑하는 ‘지나이다’를 떠나보낸 뒤 또 다시 마법사를 찾아간다.

 

 

페테르 우스펜스키의 우화 소설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의 마지막은 주인공 ‘이반 오소킨’이 몇 번의 삶을 다시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전에도 마법사에게 똑같은 요구를 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끝난다. 무작정 시간만 거슬러 올라가면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 여겼던 과거와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그리고 진정한 변화는 시간을 거슬러 똑같은 삶을 다시 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 자기 자신의 변화를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하는 희생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과연 마법사의 집에서 나온 ‘이반 오소킨’은 희생의 시간을 살아낼 결심을 할까?

 

 

나는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을 참으로 오랜 시간 읽었다. 한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책 한 권을 읽어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이유는 ‘이반 오소킨’의 행태가 말도 못하게 답답했기 때문이며, ‘이반 오소킨’이 나와는 너무도 다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현재가 가장 좋았고 지금과 다른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 왔기 때문에 과거로의 회귀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후회가 없는 건 아니다. 언젠가 다이어리 정리를 한 적이 있는데 매년 똑같은 계획과 결심을 반복하고 있던 나를 확인하고 충격에 빠졌었다. 나의 모습도 ‘이반 오소킨’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12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반 오소킨’과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등등 여러 상념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앞으로 인생의 덫에 걸려들지 않고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마법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대 스스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으며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하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한 깨달음이지. 왜냐하면 오늘 깨닫고 내일 잊어버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인간은 이 깨달음과 함께 살아가야만 해.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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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내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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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내(2014.10.20. 열린책들)》를 읽으며 줄곧 이 책을 ‘소설이라 지칭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기 전 수집한 작가의 정보에서 눈에 띈 ‘논쟁적’이란 단어의 의미는 수긍하게 되었지만 책을 덮은 후에 생각나는 거라고는 소설 속 적나라한 표현에 민망했던 느낌과 이름 모를 소녀의 일기장을 훔쳐보았다는 죄의식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문맥이 닿지 않는 문장들이 나열되어 한 권의 책으로 엮인 《가시내》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문맥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 내게 《가시내》는 어떤 책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상상만으로도 난감해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가시내》1980년대 <클레브>라는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소녀 솔랑주가 사춘기를 겪으며 성에 눈떠 가는 과정(p.340)을 서술한 책입니다. 사실적 묘사와 표현이 돋보이지만 그것 때문에 책 읽는 내내 놀란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 이 책은 소녀 솔랑주의 내면이 선한지 악한지를 파헤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성에 관심을 갖고 성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서는 솔랑주를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즉, 등장인물의 감정은 최대한 배제한 채 실제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래서 허구에 가까운 소설보다는 사실에 가까운 다큐멘터리 또는 논픽션으로의 분류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의 세계에 눈떠 가는 소녀의 모습을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이 책이 소설이어서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가끔 머리를 쥐나게 만드는 어려운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긍정적인 메시지 하나 얻지 못하고 책을 덮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책 읽기를 마칠 즈음에는 명확하진 않더라도 어렴풋이 작가와 소통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가시내》는 모르겠습니다. 민망하고 당혹스러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대담하게 공개한 작가의 글쓰기 작업에 감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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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1 - 오늘을 위한 성찰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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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신문에서 읽었던 역사 관련 기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유관순 기록 교과서 삭제 논란’이었습니다. 기사를 꼼꼼히 챙겨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여왔던 불안감과 불신감 - 우리가 학창시절부터 배운 역사가 사실 그대로의 역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역사의 한 부분이 기득권자들의 이권다툼이나 부적절한 목적에 이용되어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신감 - 이 더욱 커지게 되었거든요. 국사학계나 교육부에 실망했다고 하더라도 해결방법은 있습니다. 더 많이 배우고 익혀서 나 스스로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면 되니까요.

 

 

역사 분야의 책을 즐겨 읽는데 특히 좋아하는 역사학자는 바로 ‘이덕일’입니다. 이덕일 작가의 책은 언제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데요. 매번 기존에 정설이라고 여겨왔던 「역사」와 반대되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서 새로운 해석이라 함은 틀린 해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덕일 작가는 기록문화인 역사를 제대로 증명하는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는 분이니까요. 그래서 ‘옛 것에 비추어 오늘의 해법을 구하다 - ① 오늘을 위한 성찰’이란 부제가 달린 《이덕일의 고금통의 1권(2014.07.25.김영사)》의 출간 소식을 접하고 선 무척 기대했습니다.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게 될지 궁금했으니까요.

 

 

《이덕일의 고금통의 1권》‘1_진실은 힘이 된다, 2_어제의 마음으로 오늘을, 3_ 사람에게서 길을, 4_ 역사 속 자기 경영, 5_어떻게 살 것인가(본문)’라는 소주제로 풍성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각 소주제는 짤막한 이야기들로 묶여 있는데요. 반드시 순서대로 읽을 필요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읽고 싶은 부분을 선택해도 무관합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 1권》은 시대별 혹은 국가별 역사를 나열하지 않습니다. 대신 고구려 수도 평양 하늘의 별자리(p.16)가 일본 기토라 고분 벽화에서 발견되었다는 내용, 고려장의 실존 여부, 이 책에서 또다시 언급되는 우리나라 역사의 고대사 인식 방법, 정조의 의문사, 이완용과 3․1운동, 조선에는 일반의 상상보다 귀화인이 많았다(p.119)조선에서 철거는 합리적인 보상 대책 후에야 이루어졌다(p.215) 등 짤막한 역사 상식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지금 동북아는 역사 전쟁, 영토 전쟁이 현재 진행형(p.23)입니다.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받은 영향을 축소시키는데 급급하며, 중국은 한반도의 역사를 자기네 역사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언제나 소극적이었고 미비했을 뿐이지요. 소극적인 방법이 아닌 적극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내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고 인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출발점이 재미있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이덕일의 고금통의》라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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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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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세 명의 사람이 한 덩어리 져 있는 모양새가 눈에 들어온다. 어느 몸에서 나온 팔인지, 누구의 다리인지 파악하기 힘들지만 꼴사납거나 민망한 느낌은 없다. 이 책을 읽기 전이라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관계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박범신의 소설 《소소한 풍경(2014.04.30. 자음과모음)》을 읽은 후. 소설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보다 세 사람이 하나가 된 사연을 이해하는 게 더 난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소설 속 이야기를 소소(昭昭)하지 않고 소소(小小)하게 읽었기 때문에 하나로 덩어리 져 있는 세 사람을 평범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방문했던 ‘전라북도 김제’에 속해 있는 작은 도시 ‘만경’에 위치한 이모할머니 댁 마당에는 우물이 있었다. 우물에서 물 긷는 모습을 보는 건 재미있는 놀이였지만 직접 해보고 싶은 욕망은 없었다. 당연히 우물 속을 들여다본 기억도 없다. 그러나 이모할머니 집이 매각되어 흔적 없이 사라졌을 때 외할머니와 이모할머니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던 우물가, 엄마가 밭에서 따온 과일을 뽀드득 소리가 날 때 까지 씻던 ‘우물가’가 없어졌다는 사실은 서운했다. 내게 우물은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정겨운 장소다. 《소소한 풍경》에서 우물은 죽음과 두려움, 욕망 그리고 무덤이란 의미를 함축한다. 우물의 완성은 등장인물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그들 관계의 마지막이다. 땅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그녀ㄱ과 남자ㄴ, 여자ㄷ이 함께 하는 시간이 끝을 향하고 있음을 뜻한다. 마침내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우물 속으로 남자ㄴ이 사라졌을 때 남겨진 자들은 헤어질 시점이 되었음을 직감한다. 우물 파기가 세 사람의 합의로 시작된 일은 아니다. 결혼을 실패한 뒤 고향 소소로 내려온 그녀ㄱ이 집주인에게 쫓겨나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던 남자ㄴ을 집에 들이고, 한 달 남짓 후 다시 조선족 여자ㄷ을 받아들인 이유는 각자 마음에 품은 아픈 사연으로 위태로웠던 그들이 서로 만났을 때 서로의 상처를 알아봤다고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가족의 죽음 혹은 가족의 살인을 경험한 그녀ㄱ과 남자ㄴ, 여자ㄷ은 누구보다 죽음에 가까이 닿아있었지만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고 침묵하는 죽음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사랑의 욕망으로 표출된다. 일반적으로 셋보다 둘이 더 완벽하다는 관점은 완벽하진 않지만 안정적이기에 둘보다 셋이 더 좋다고 말하는 ㄱ과 ㄴ 그리고 ㄷ에 의해 삭제된다.

    

 

셋이었기 때문에, 대체로 더 좋았다고 나는 기억해요.

셋으로 삼각형을 이룬 게 아니었어요. 셋으로부터 확장되어 우리가 마침내 하나의 원을 이루었다고 나는 생각해요. 역동적이고 다정한 강강술래 같은 거요. 둘이선 절대로 원형을 만들 수 없잖아요. 셋이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원형이지요. p.209

    

 

《소소한 풍경》은 죽음의 두려움, 사랑의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을 우물, 원형, 숫자3으로 표현하면서 정면으로 대면하고 싶지 않은 은밀한 감정을 노출한다. 소설 속 이야기는 혼란스럽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없다. 현실에서 누군가의 욕망이 담긴 우물과 마주쳤을 때 나는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할 수 있는 건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우물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우물을 받아들일 줄 알기 위해서 나의 우물을 찾으러 길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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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 : 전진하는 진실 위대한 생각 시리즈 2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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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들 중에는 그를 설명할 어떤 수식 어구가 필요 없이, 이름 그 자체로 수식어가 되어 대표성을 지닌 상징적인 존재가 된 인물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는 진실과 정의를 사랑하는 자유주의자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진 ‘에밀 졸라’입니다. 내게 ‘에밀 졸라’는 단순히 유명 작가일 뿐이었습니다. 그의 글과 만날 요량이었다면, 나는 그의 대표작 <목로주점>과 <나나> 그리고 <제르미날>을 차례로 읽기를 계획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밀 졸라’와의 첫 만남이 그의 이름을 알린 소설이 아닌 그가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을 잃을 각오로 뛰어든 투쟁의 역사를 기록한 《에밀 졸라 : 전진하는 진실(2014.04.16. 은행나무)》이라는 점은 그에 대해 갑작스럽게 생긴 궁금증으로 설명해야겠습니다.

    

 

《에밀 졸라 : 전진하는 진실》은 1894년 10월 15일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국가반역죄로 체포되고 그가 독일스파이라는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음에도 일사천리로 재판이 진행되어 같은 해 12월 22일 군사법원 재판부의 만장일치로 유죄선고를 받은 사건, 일명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한 에밀 졸라의 투쟁 과정을 담은 책입니다. ‘반유대주의 정서를 이용한 음모와 술책에서 비롯(p.50)’된 드레퓌스 사건은 1897년 11월 25일자 <르 피가로> 지에 졸라의 첫 번째 기고문이 발표될 때까지 정치, 언론 등 사회 전체가 하나가 되어 드레퓌스를 반역자로 몰아가는데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이후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프랑스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1898년 1월 7일 ’프랑스에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기고문까지 네 차례 더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드레퓌스 사건의 진범 ’에스테라지‘를 보호하여 희생자로 소개하기로 공모하였고 1898년 1월 10일⦁11일 군사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에스테라지에게 만장일치로 무죄 판결을 내리기에 이릅니다. 이에 졸라는 1월 13일 <로로르>지에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고발한다...!’를 기고합니다. 나는 고발한다...!’를 통해서 졸라가 이루고자 하는 바는 적들로 하여금 자신을 법정에 세우게 함으로써 드레퓌스 사건의 재심을 가능하게 하려는 의도와 목표(p.175)였습니다. 며칠 후 국방부 장관이 졸라를 명예훼손죄로 고발하여 재판이 진행되면서 졸라가 원했던 의도대로 전개되는 듯합니다. 그러나 재판은 복잡하게 흘러가고 온갖 위협과 모욕, 봉변을 견디던 졸라는 영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이후 사건은 급물살을 타고 졸라가 고발했던 내용들이 모두 사실인 것으로 밝혀집니다.

    

 

1899년 7월 1일 드레퓌스가 프랑스로 돌아온 뒤 재판이 재개되지만 그의 반역죄 혐의는 쉽사리 벗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밀 졸라와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타협이나 포기 없이 투쟁을 계속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졸라는 드레퓌스가 누명을 벗고 무죄를 선고받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902년 9월 29일 사망합니다.

    

 

《에밀 졸라 : 전진하는 진실》에 실린 졸라의 글은 모두 읽을 가치와 의미 있는 글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글을 꼽으라면 1898년 1월 13일 <로로르>지에 기고한 ‘나는 고발한다...!’와 1898년 2월 22일자 <로로르>지에 실린 ‘배심원들을 향한 최후진술’을 선택하겠습니다. 진실을 향해 두려움 없이 걸어 나가려는 에밀 졸라의 확고한 신념이 가장 잘 나타난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밀 졸라의 인터뷰 기사들’도 꼭 읽으면 좋을 글입니다.

    

 

진실을 위한 투쟁은 상식적이고 당연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용기를 내야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행동이라면 상식적이고 당연한 행동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진실과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에밀 졸라’의 행동이 지금까지도 존경과 찬사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에밀 졸라’에 대한 궁금증, 호기심으로 《에밀 졸라 : 전진하는 진실》을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책 읽기를 마친 지금,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보다 더 그에 대해 알고 싶어졌습니다. 이제 드디어 졸라의 작품과 만날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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