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 - 당당한 나를 위한 관계의 심리학
크리스토프 앙드레 & 파트릭 레제롱 지음, 유정애 옮김 / 민음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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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로 분비는 장소는 답답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분비는 장소보다는 한산한 장소를 좋아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의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하는 상황은 불편합니다. 조율, 조정, 타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며칠 전부터 긴장됩니다. 오래 전 MBTI 검사에서 나타난 내성적인 나의 성향을 이미 알고 있기에 제 상태는 공포증이 아니라 나의 성향과 반대되는 상황, 즉 나의 의견이나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야하는 등의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뿐이라고 스스로 다독입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의 성향과 반대되는 상황에 마주쳤을 때 매번 불안함을 느끼는 심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나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배우고 싶습니다. 이런 간절함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책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2014.3.7. 민음인)》는 ‘당당한 나를 위한 관계의 심리학’이란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당당한 나!!’는 바로,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입니다.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사회불안을 느끼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회불안을 느꼈을 때 어떤 증상을 경험하는지도 알려줍니다. 사회불안을 느끼는 상황과 이때 나타나는 증상은 타인의 시각에서 사소한 것으로부터 심각한 것으로 보이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이런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회피 행동은 사회불안을 극복할 가능성은 점점 낮추고 사회불안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를 괴롭히는 불안이 정상적인 사회불안인지 아니면 치료를 필요로 하는 정신질환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사회불안을 극복하는 세 가지 단계와 사회불안을 느끼는 원인, 문제, 상황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노출 연습, 자기주장의 기술, 생각전환법과 같은 수단을 제시하면서 이 책을 끝맺습니다. 저자는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를 통해서 사회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의학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고 반드시 치료방법이 아니더라도 사회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개인의 의지(P.207)’ 라고 말합니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갖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과연 내가 갖고 있는 문제를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얻은 결론은 나는 ‘평가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는 평범한 사회인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껏 나에 대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여겨왔는데 그게 아니었나봅니다. 타인의 인정, 타인의 평가가 나에게 중요하게 작용해 왔습니다. 책을 읽기 전 불편한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이제 나에게는 나의 사회불안을 극복하는 단계만 남았으니까요. 이 정도면 한 권의 책을 읽고 얻은 수확 중에서도 최고로 멋진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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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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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수연이 받아야 할 전화를 우연찮게 경훈이 받습니다. 처음, 경훈은 수연이 자신을 놀리기 위해 벌인 장난전화로 오해하지만 스스로를 ‘제리’라고 밝힌 발신자가 자신과의 통화 직후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상한 기운을 감지합니다. 수연과 함께 제리가 떠난 자리를 정리하면서 그가 평범하지 않은 삶을 꾸려온 인물이란 사실과 그가 남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조합해 보았을 때 심상치 않은 사연이 있음을 직감합니다. 김진명의 소설 《1026 (2010.03.01. 새움)》은 수연과 경훈이 ‘제리’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로 결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변호사인 경훈은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제리, 즉 제럴드 현(한국이름, 현강일)의 과거 이력을 쫓던 중 그가 평생 조울증으로 고생해왔다는 병력을 알게 되고 조울증이 처음 발병했던 시점에 주목합니다.

    

 

79년 10월 18일에 입원하여 10월 27일에 퇴원. 제럴드 현은 바로 10‧26을 사이에 두고 입원했다가 퇴원한 것이다. p.89

    

 

처음 경훈이 쫓는 대상은 제럴드 현이었습니다. 그가 죽기 직전에서야 간신히 타인에게 알리려고 한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밝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럴드 현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가 간직해왔던 진실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게 됩니다. 아니, 수연과 경훈이 마주한 역사적 진실은 무겁다 혹은 중요하다는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1026》은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경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사건을 파헤친 소설입니다. 실제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을 살해한 배경에 대해 여러 설이 난무하지만 소설에서는 미국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케네디가 살해당한 이유로 동서 화해를, 박정희가 살해당한 이유로는 자주국방을 꼽았다(p.169)’고 언급하였고 나아가 ‘지금 알려져 있는 10‧26의 진상이란 너무도 허술하고 유치했다. 그러다 보니 죽은 김재규만 모든 몰상식과 모순을 한 몸에 덮어쓰고 희대의 얼간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p.330)’라는 문장으로 이 소설의 핵심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박정희의 사망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일어난 정치적 희생이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처음 책 제목을 보았을 때 이 숫자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현대사에 무지한 탓이 가장 큽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시점부터는 이 소설의 내용이 허구인지 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10‧26 사건, 박정희 대통령, 김재규, 율곡사업, 박정희 대통령과 카터 대통령의 정상회담 등의 자료를 확인한 후에도 혼란은 커지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본군 복무, 남로당 활동, 새마을 운동 전개, 유신정권 출범 등 대통령 박정희의 실제 행보는 배제한 채 박정희의 사망을 정치적인 문제로 보기 시작할 때는 박정희라는 인물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는 소설 《1026》을 진실에 가까운 허구라고 지칭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허구와 역사적 진실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진 독자가 읽어야 할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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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1 - 게와 아이들과 황소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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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격유형검사인 MBTI 를 한 적이 있다. 성격유형검사를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MBTI 검사를 통해서 나는 ‘옳다, 그르다’ 보다 ‘좋다, 나쁘다’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행동이나 사건을 판단할 때 대부분 좋다·나쁘다·기쁘다·슬프다 등의 감각을 이용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1월 9일부터 20일까지 1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읽은 책이 있다. 나는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독서 습관을 갖고 있기에 한 권의 책에 일주일 정도 시간을 투자하는 건 다반사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 10일이 넘는 시간을 할애한 이유는 읽을 책이 여러 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읽는 시간이 힘겨웠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단지 허구일 뿐이라고 되뇌어 보았지만 허사였다. 소설 《이중섭 1,2(2013.11.05. 다산책방)》으로 다시 태어난 천재 화가 이중섭은 생전 모습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감정 이입되는 작품이다. 예술혼과 가족애 사이에서 주춤거리는 이중섭, 조선의 그림(민족혼)을 그리는 화가와 일본인 아내를 둔 한국인 남편 사이에서 흔들렸던 이중섭의 모습이 애잔하고 애달팠다. 최문희의 소설 《이중섭》은 감정적으로 읽기 힘든 작품이다.

    

 

우리에게 ‘황소’그림으로 유명한 천재 화가 이중섭이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소설 《이중섭》은 2012년 11월, 남덕(야마모토 마사코) 여사가 이중섭 화가의 유품인 팔레트를 기증하기 위해 제주도를 찾은 때부터 시작한다. 이중섭이 사랑한 남덕 그리고 마사코(남덕)가 사랑한 아고리 상(이중섭)의 시선이 교차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일본강점기를 지나 6.25를 거쳐 이념과 사상이 충돌한 혼란의 시간을 버텨낸 인간 이중섭의 삶과 예술 그리고 사랑을 보여준다.

    

 

그녀가 그에게서 가장 높게 얻고 싶었던 것은 그의 순연한 영혼이었고 그다음이 그가 지닌 예술성이었다. P.257(1권)

    

 

마사코는 프랑스로 그림 유학을 떠나려던 꿈과 미래를 접고 이중섭 아내로의 삶을 선택하지만 이중섭은 마사코 앞에서 주춤거린다. 지배국과 피지배국, 수탈자와 피해자라는 관계의 고리가 이중섭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었나보다.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었기에 남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들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차이를 없애려고 한다. 그러나 손이 헤프고 마음이 헤프고 쓰임새가 헤픈(P.242,1권) 이중섭은 생존 보다 예술이 우선이었고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친구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천재 화가 앞에 놓인 예술로만 밥벌이를 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이 안타깝고 타인에게 독하지 못한 여린 감성을 지닌 남자의 아내로 살아야했던 남덕 여사의 현실이 애처롭다.

    

 

헤헤거리는 그의 헤픈 웃음(P.232,1권) 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낮춤의 의미(P.233,1권) 였다는 사실은 그의 그림 속에서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만 같은 역동적인 분위기의 ‘소’와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마음이 무겁다. 핍박받고 억압받는 민족혼을 소에 담았다고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인간에게 한없이 너그럽기만 한 ‘소’와 자신 그리고 가족을 위해 타인에게 모질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을 동일시한 결과물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또한 화가로서의 삶 이전에 자신의 그림 속 힘 센 황소처럼 가족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이중섭에게 가장 큰 상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소설 《이중섭》을 읽는 내내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인 ‘허수’가 허구의 인물이라는 작가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중섭과 마사코의 마지막 만남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배타적 존재로 인지하고 오해만 쌓이게 만든 동기는 모두 ‘허수’로부터 비롯되었기에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반가운 소식은 허수’가 허구의 캐릭터라는 사실, 하나 뿐이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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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삼바
델핀 쿨랭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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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가 프린트된 책 띠지가 마음에 들었다. 백인 여자와 흑인 남자가 시선을 마주하며 활짝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좋았고, 두 사람 사이에 조그마하게 새겨진 “너무 다른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큰 소리로 “네!”라고 대답하고픈 충동이 일었다. 특히 <언터처블:1%의 우정>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란 소개를 확인 후 두 손 들고 항복하고 말았다. 더 이상 영화 개봉 전 원작 소설을 읽을지를 놓고 고민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신분증이 없는 그에게는 삶도 없었다(p.270).

 

《웰컴, 삼바 (2015.01.30.열린책들)》는 아버지가 지어주신 ‘삼바 시세’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가 자신을 증명하는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라무나 소우’로 불리다가 어느 순간 ‘모디보 디알로’라는 이름을 빼앗고 마지막에는 ‘조나스 빌롬보’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선택하는 이야기이다. 자신을 상징하는 이름을 감추고 『체류증』을 따라 이동할 수밖에 없는 한 사내의 아픈 이야기이다.

 

모르는 사람의 신분증이 아마 사람들이 그에게 강요하는 비참과 궁핍으로부터 그를 더 잘 보호해 줄 테니까(p.283).

 

삼바는 말리 바마코에서 아버지의 허무한 죽음과 맞닥뜨린 뒤 정의롭지 않은 자기 나라를 혐오했고, 다른 나라, 프랑스를 꿈꾸기 시작했다(p.96). 열아홉 살에 태어난 나라를 떠나 목숨을 건 다섯 번의 국경 넘기를 감행한 뒤 프랑스에 도착해서 십 년 오 개월을 견뎌 낸 그는 프랑스에서 삶을 성공할 가능성을 믿었다(p.7). 그러나 기대하고 기다렸던 체류증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고, 벵센 유치소에 감금된다. 그는 곧 프랑스에서 추방당할 것이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나’는 불법 체류자 보호 단체(p.64)인 〈시마드〉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다. 국가가 생산한 불법 체류자의 권리를 대신 찾아주는 일을 한다. 법대생인 마뉘를 비롯해서 시마드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는 프랑스로부터 강제 추방당할 운명에 놓인 그들을 구해내기 위해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최선을 다하지만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때가 허다하다. ‘나’는 삼바가 벵센 유치소에 감금되었을 때 만났다. 체류증을 취득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삼바는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되었을 때 가면을 썼고, 그 뒤 체류증을 얻은 대신 삼바라는 이름을 시작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공식적으로 채용이 안 되는 그들이 비공식적으로 프랑스 경제 전체가 돌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쓰기 편하고,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했다(p.283).

 

삼바가 자신의 이름으로 프랑스에서 존재하기를 포기하기까지의 과정은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저자가 《웰컴, 삼바》를 통해 프랑스 내에서 존재하는, 아니 존재하길 원하는 불법 체류자들의 현실을 조명했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 한다. 《웰컴, 삼바》라는 소설과 영화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 그것이 아닐까. 삼바가 생존을 위해서 자신을 버렸듯이, 생존을 위해서 타인의 삶(이름)을 도둑질했을 수많은 삼바가 프랑스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앞으로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니 그러하다.

 

이 나라에서 그의 삶은 현실로 볼 수 없었다. 그는 오로지 부정적으로만 정의되었다. 그에게는 신분증이 <없다>. 그는 프랑스인이 <아니다>. 그는 백인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되고 싶어하는 것의 부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울이기도 했다. 그를 보면 프랑스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 수 있었다(p.284).

 

<언터처블:1%의 우정>을 연출한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란 소개에 책을 펼치기 전부터 내 마음은 온통 분홍빛이었다. 제목만 떠올려도 자동으로 뒤따르는 유쾌한 영화의 한 장면 때문이리라. <언터처블:1%의 우정>에서 어울리지 않을 듯 보였던 두 사람이 우정을 나누는 따스한 이야기가 《웰컴, 삼바》에서도 펼쳐지리라 막연하게 생각했었나 보다. 그러나!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영화 『노예 12년』을 떠올리게 하는 책 표지가 눈에 들어온 건 책읽기를 마치고 난 뒤였고, 프랑스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었던 ‘삼바 시세’가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을 바로, 그의 발이라고 상상하니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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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
페테르 우스펜스키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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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끔찍한 것은 우리가 자신의 길을 모른다는 점이에요. 알고 기억한다면 모든 것을 다르게 할 거예요. 목표를 가질 것이고, 해야 할 모든 어려운 일들의 가치와 필요성을 알 거예요. 당연히 나는 삶 전체를 바꿀 거예요. p.39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2014.10.27. 연금술사)》은 1902년 4월, 현재 삶을 비관하고 절망한 ‘이반 오소킨’이 마법사를 찾아가 과거의 시간으로 돌려보내주길 요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자신의 삶은 분명히 현재와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반 오소킨’의 모습은 자신만만하다. 그러나 다시 경험할 삶에 대한 처음의 결심과 기대와 달리 1890년 10월로 돌아온 ‘이반 오소킨’은 여전히 삶을 권태롭고 지루하게 바라본다. 매번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을 예감하지만 과거 어느 순간 경험했던 똑같은 상황이 거듭 반복되는 것을 막지 못할 뿐 아니라 막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단지 걱정만 할뿐. 그리고 12년이란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온 1902년 4월 어느 화창한 날 사랑하는 ‘지나이다’를 떠나보낸 뒤 또 다시 마법사를 찾아간다.

 

 

페테르 우스펜스키의 우화 소설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의 마지막은 주인공 ‘이반 오소킨’이 몇 번의 삶을 다시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전에도 마법사에게 똑같은 요구를 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끝난다. 무작정 시간만 거슬러 올라가면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 여겼던 과거와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그리고 진정한 변화는 시간을 거슬러 똑같은 삶을 다시 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 자기 자신의 변화를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하는 희생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과연 마법사의 집에서 나온 ‘이반 오소킨’은 희생의 시간을 살아낼 결심을 할까?

 

 

나는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을 참으로 오랜 시간 읽었다. 한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책 한 권을 읽어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이유는 ‘이반 오소킨’의 행태가 말도 못하게 답답했기 때문이며, ‘이반 오소킨’이 나와는 너무도 다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현재가 가장 좋았고 지금과 다른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 왔기 때문에 과거로의 회귀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후회가 없는 건 아니다. 언젠가 다이어리 정리를 한 적이 있는데 매년 똑같은 계획과 결심을 반복하고 있던 나를 확인하고 충격에 빠졌었다. 나의 모습도 ‘이반 오소킨’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12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반 오소킨’과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등등 여러 상념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앞으로 인생의 덫에 걸려들지 않고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마법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대 스스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으며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하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한 깨달음이지. 왜냐하면 오늘 깨닫고 내일 잊어버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인간은 이 깨달음과 함께 살아가야만 해.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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