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세상에 손처럼 묘한 건 없다. 있어서는 앞발이지만 인간은 직립 동물짐승에이라 그만이 앞발이 손이 된 것이다. 한가로운 이 앞발을 그냥 놀려둘 수 없다는점에서다 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들은 그것을 가지고 별 장난을그리하여인간의 문화가 생겨나게 된것이다.
아이 ‘있다‘는 존재론이고, ‘되다‘는 생성론이지.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만들어진 것은 이미 ‘있는‘ 거야. (...) 하지만 어린아이는(...) 모든것이 ‘되는‘ 생성론이지. 출발점에 있으니 모든것이 될 수 있는 무서운 존재거든.
인간은 결코 하나의 의미와 목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도구가아니다. 스스로 욕망을 갖고 끝없이 그 용도를 변경하고 어떤의미를 향해서 끝없이 움직이고 있는 돌멩이다.
의미시인이나 작가는 반대어를 창조해주는 사람이다. 기쁜 것에 대해서는 괴로운 것을, 괴로운 것에 대해서는기쁜 것을…. 그는 언제나 반대어를 만들어줌으로써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우리들 앞에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사물의 의미를 온전케 한다. 대낮으로 밤을 더욱어둡게 하며 밤중의 언어로 대낮을 더욱 밝게 해주는 것이다. 이 반대어의 기능, 그것은 상상과 창조의 원초적인 작업의첫발이다.
몸
자기와 가장 가까운 것이 자기 몸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바로 내 몸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과 가장가깝다는 자기 몸을 자기가 보지 못한다는 것은여간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의 뒷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죽을 때까지 볼 수도알 수도 없습니다. 삼면경으로 볼 수 있다고 할지 모르나그것은 이미 거울에 비친 영상, 엄격하게 말해서 타자의영상일 뿐입니다.
심술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놀부 아닌 사람이 없다. 심술이란인간이 지니고 있는 한 속성이기도 하다. 어린아이들이 노는 것을 가만히 관찰해보라. 남이 애써 만든물건을 부수고 그들은 손뼉을 친다. ‘면종 난 놈 쥐어박기, 눈 앓는 놈 고춧가루 넣기, 이 앓는 놈 뺨치기‘의 놀부의행위는 성인의 악이 아니다. 차라리 초등학교 학생 같은귀엽기까지 한 순진한 악행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누구나 다 놀부인 것이다.
피플
영어의 ‘피플people‘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그것이 동사로쓰일 때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시에 ‘동물을 많이 살게 하다‘ ‘서식하게 하다‘라는 뜻도 된다. 동물이 살 수 있는 땅이 바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다.
과정
사람은 태어나면서 사람인 것이 아니라, 끝없이사람이 되어가는 존재다. 한 발 한 발 걸어가는그 모습(人)은 바로 사람이라는 이 목표, 이상적인 인간상을 향해서 가는 형상이다. 그래서 겉만 사람, 생물학적으로만 사람이라고지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완성체가 아니라 죽을때까지 되어가는 과정의 존재, 즉 ‘비잉 Being‘인것만이 아니라 ‘비커밍 Becoming‘이기도 하다.
거리에 나가서 행동하는 것만이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마십시오. 생각하는 힘, 지성의 힘이 얼마나 큽니까? 우리가짐승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달릴 때 빠르기로 치면인간보다 타조가 빠르고, 힘의 세기로는 인간보다 사자가 더강하지요 인간이 강하다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힘입니다. 이 생각하는 힘을 개발하자는 이야기입니다.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손에 망치를 들지 않는다고 해서, 고함치지 않는다고 해서 역사의 방관자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이야말로 폭력입니다.
죄인
스스로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실은아무 죄도 짓지 못하고 있는 자가 많다, 예수처럼... 그것이인생의 역설이다.
과잉
의사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우리 몸이 결핍을 보충할 수 있도록 생체 시스템을만들었다고 합니다. 당분이 없으면 스스로만들어내죠. 그런데 과잉은 넘치는 것은버리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몸이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도록 설계되어 있지, 넘치는것을 버리는 장치는 없어요. 그래서 인간이과잉이 되었을 때는 속수무책이 됩니다.
계단은 오르기만 위해서 있는 것도 아니다. 올라가는 계단은 동시에 내려가는 계단이기도하다. 같은 계단이면서도 위에서 내려다보는계단과 아래에서 올려다본 계단은 어쩌면그렇게 다른 것일까? 땅을 향해 조금씩하강해가는 계단은 신을 떠나서 제 스스로의 길을찾아 내려가는 인간의 뒷모습 같은 것이었다.
낮잠잡은 밤에 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낮잠은 변칙의 잠이다. 낮잠의 쾌락은 바로 그 때문에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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