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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과일장수 - 2020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ㅣ 고래책빵 어린이 시 1
서울재동초등학교 어린이 지음, 박미림 엮음 / 고래책빵 / 2019년 12월
평점 :
우리 반 과일 장수
글·그림 서울재동초등학교 어린이
박미림 엮음
고래책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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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읽고 쓰다 보면 알게 되지요.
자기도 모르게 사물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관찰의 힘은 매우 세답니다.
관찰할수록 생각과 생각을 잇게 되고, 그 힘으로 전체를 꿰뚫는 통찰의 힘이 생기기 때문이에요.(중략) 결국, 지혜가 쌓여 공부는 물론, 마음공부까지 잘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책 읽기나 글쓰기 등 모든 공부의 최종 목적은 이렇듯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지요.(7쪽)
고래책빵의 《우리 반 과일장수》는 서울 재동초등학교 어린이들이 2019년 재동 시동아리 활동을 통해 쓴 동시들을 묶은 어린이 시집이다. 어린이들이 직접 쓰고 그린 130여편의 시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시집에 실려 있다.
# 내가 어린이 시를 읽는 이유
어린이들이 쓴 ‘어린이 시’에는 특별한 ‘보물’이 담겨 있다.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 진심이다. 어른들은 이제 안 보이는 세계를 섬세하게 마음의 결이 담긴 언어로 길어내는 어린이 시인들의 시야말로, 삶이 폭폭하고 무거운 어른들에게는 위로 따뜻함, 일상의 발견이란 시선을 선물한다.
또 함께 읽는 어린이들에게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시는 쓰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한발 물러서게 하면서, ‘이런 일도 시가 될 수 있구나!, 다른 친구들은 시를 이렇게 쓰는구나!’ 하고 보고 느끼며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고래책빵의 《우리 반 과일장수》도 어린이들의 마음과 시선이 엄청 궁금해서 초등생 아들과 읽어 보았다.
# 동시란 무엇일까?

2학년 김민지 어린이의 <시> 작품을 보면 ‘어린이 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어린이 시인이 생각한 시는 ‘케이크의 마음에 생크림을 펴 바르는’ 것이라고 한다. 케이크와 생크림의 관계처럼, 마음에 생각을 바를 수 있고, 마음에 그림을 그려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시’라고 생각한 시의 언어를 보면서, 시인의 깊은 생각과 마음이 느껴졌다.
‘햇님은 쨍쨍, 바람은 산들산들’과 같은 의성어의태어 가득한 표현도 좋지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표현해보는 것이 바로 ‘동시’라고 말하는 어린이 시인의 이야기가 마음을 이끈다.
# 솔직하게 쓰다
박미림 선생님은 시 동아리에서 시를 잘 쓰려면 친구를 사귀듯 자주 만나고 솔직해지라고 지도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반 과일장수》를 읽으면서 유독 그 ‘솔직함’에 반하였다.
보고 느끼고 관찰한 바를 솔직함의 언어로 빚어낸 시야말로, 어린이들의 깨끗하고 진솔한 성정을 마주 보는 것 같아서 반갑다. 어른이 되니 서로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고, 하고 싶은 말보다 하지 못하는 말들이 더 많고 이것저것 드러내지 않고 싶은 모습도 많다.
시집을 읽으면서 초등생 아들의 엉뚱했던 생각과 이야기들도 떠오르고 한편, 나의 어린 시절로도 타임머신을 타본다.


2학년 최예린 어린이의 <나눔 장터>는 나눔 장터에서 물건을 사고 혼났던 경험을 시로 담아내었다. 어린이의 시선에서는 아주 예쁘고 귀한 것이었을 텐데, 아빠 입장에서는 큰 쓸모를 느끼지 못해 싫은 소리를 하셨나보다. 그래서 어린이 시인은 ‘아빠한텐 맞아 죽는다’라고 솔직하게 마음을 적어놓았다.
홍이안 어린이의 <살인 미소>를 보면서 깔깔깔 웃었다. 어른이라면? 나쁜 것보다는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우선이었을 텐데 이 시는 솔직함으로 어필한다. 김치찌개를 맛있게 드신 아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어서 그 솔직함에 재미도 느꼈고,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생각도 해보았다.
# 어린이 시선에만 보이는 것들


함께 읽었던 아들도 기발하고 재미있다고 했던 시들이다.
일상에서 가까이 할 수 있는 필통, 연필깎이, 모기가 어린이 시인의 시선에서는 아주 재미난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 학용품을 담는 필통이 자세히 보면 ‘필통버스’였고, 연필깎이는 ‘연필 미용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재미난 시선이 어른으로서 참 재미있고 참신했다. 그저 갖다붙이고, 억지로 해서는 안 되는 것들, 바로 어린이 시선에만 보이는 ‘순수’의 힘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모기 주사기>도 참 재미있었다. 모기에게 한 방 물린 사건이 ‘모기 주사기’의 멋진 시어로 탄생하였다.
나 같은 어른에게는 사물이 사물로 존재하는데 어린이 시집의 사물 시어들을 보면 살아서 꿈틀거리고 말을 건네는 모양이다. 그런데 어린이 시선에만 보인다!

강선재 어린이 시인의 시를 읽고 그 감수성에 깜짝 놀랐다.
<빗방울 형제>에서도 비오는 날의 풍경을 참 아름다운 시선으로 빗방울이 ‘술래잡기’한다고 표현하여 느낌표!!!!!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도라지>에서도 세심한 시선으로 도라지의 성장을 고드름에 비유하여 시로 표현한 것을 보고 감동을 하였다.
또 신지승 어린이의 <하얀 점>도 인상적이었다. 눈높이 어린이문학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방학 동안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와 까맣게 탄 친구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깊은 속내와 녹록치 않은 현실이 진솔하게 다가왔다. 하얀 점이란 비유적 표현으로 마음에 담긴 그득함을 시로 썼다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어린이 시의 깊은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 마음을 담다


작은 생명을 보고 마음 깊이 그 존재를 기억하고 생각하는 두 어린이의 시를 보면서 참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무덤 꽃>은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무덤까지 만들어 마음으로 간직했던 어린이의 시선에 마음이 묵직해졌다. 무덤가에 핀 꽃 두 송이를 보며 동물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참 훌륭하고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새의 장례식>은 학교 가는 길에 참새의 죽음을 마주한 시인의 시선과 마음이 묻어났다. ‘죽었다’ 하고 무심히 지나갔을 수 있었을텐데, 참혹한 죽음의 현장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파리들이 명복을 빌어준다고 표현하였다. 비유로 표현하였지만, 작은 생명을 바라보는 관심과 따스함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구겨진 종이>와 <우리 할아버지>를 읽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어린이지만 깊은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바라보는 시인의 깊은 마음이 참 기특했다. 마음 한켠에 ‘구겨짐’이란 상처를 간직한 시인의 이야기에서는 토닥토닥해주고 싶었다. 진솔한 마음일수록 솔직한 마음일수록 더 깊이 와닿고 여운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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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그 순수의 세계에 첨벙첨벙 즐겁게 빠져들었고 덕분에 몸과 마음도 청안해진 시간이었다. 함께 읽은 초등생 아들도 동시의 재미를 알게 되었고 어렵게 생각했던 시 쓰기를 한풀 가볍게 바라볼 수 있었다.
어린이들이 평범한 일상에서 찾아낸 순수와 재미, 속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던 고래책빵의 《우리 반 과일장수》 어린이 시집, 초등 어린이와 부모님께 추천하고 싶다.